'금강경' 이라는 낱말의 본 뜻은 '인간의 마음이 금강석과 같이 단단하고 견고하여 깨질 수 없는... 변할 수 없는 영원한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지난 이야기 라는 뜻이다.
사실 한글화한다면... '금강심(心)법'을 깨닫기 위한 방법론이며, 흔들림이 없는 마음을 구하는 방법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인간의 관념, 지식으로써는 어떤 부연 설명으로써도 이해가 불가능한 말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한 마음이 있다고 굳게 믿을 수밖에 없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지식으로 가공된 것이 마음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에 석가모니의 말을 단 한구절도 이해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옳다는 주장 때문에 인간세상, 인간들의 삶이 발전이 가속되는 만큼 더욱더 처참한 전쟁터가 되어가는 것이다.
사실. 금강경이라는 경을 비롯하여 수많은 불경들의 요점은 단순하기 이를데 없는 말들이다. 다만 인간이 어러석어서,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해 하려 하지 아니하고... 서로가 잘난체 하기 위해서... 서로가 지식을 견주기 위해서... 우상을 만들기 위해서... 석가모니의 진리의 앎의 말들을 왜곡시킨 것들이 '금강경'을 비롯한 수많은 경전나부랭이들이다.
물론 예수를 우상화 시키기 위해서 가공된 성경이라는 책자들 또한 그러하다.
문자로 기록된 인간류의 역사로 볼때, 오직 석가모니와 예수만이 진리의 말을 남겼던 유일한 인물들이다. 물론 소크라테스의 말 또한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지만 오직 예수와 석가모니를 꼽는 이유는, 오직 그들만이 '진리의 말' 과 함께 '진리를 깨닫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했던 유일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은 단지... 자신의 마음의 근원을 본 사람들이며, 시쳇말로 '도를 깨달은' 사람들이며, '득도'한 인물들이다.
사실. 그들의 가르침은 하나지만, 둘로 표현될 수 있다.
그 '하나'라는 뜻은, 인간의 마음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이며, 둘은 지식은 진리가 아니다. 라는 말이다.
사실, 인간세상의 인간들의 모든 지식은 진리가 아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자신들의 지식이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인식하는 것 같지만, 죽는 날까지 자기의 지식(마음)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의 진리의 앎이 아닌 지식(알음알이)의 앎에 대해서 '우주보다 더 무한한 어리석음'이라고 하는 것이며, 겨자씨 만큼도 올바른 앎이 없는 앎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인간들의 존재 자체가 진리가 아닌 지식에 바탕을 둔 그릇된 앎으로써... 무한한 어리석음에 바탕을 둔 것들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서로가 옳다는 그릇된 앎으로써 자기 주장을 멈출 줄 모르기 때문이며, 그런 인간들의 존재 자체가, 그 주장에 따른 갈등이며, 다툼이며, 경쟁이며, 더 나아가 투기, 투쟁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인간류의 역사가 그러하듯이 인간들의 인간들간의 전쟁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까닭은 올바른 앎이 아닌, 지식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자유와 평화는 오직 지식을 초월하여 진리의 앎으로 거듭나야만 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들 가르침의 요지는... 인간의 마음이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지식으로써 가공된 것이다는 말이 첫째이며, 둘은 인간들의 모든 앎은 진리의 앎이 아니라, 지식의 앎으로써 올바른 앎이 아니라, 명색의 동일시로써의 허구적인 앎으로써의 착각이다, 라는 말이다.
사실. 인간들의 모든 행위의 원인, 즉 삶을 영위하기 위한 '언행. 언동'의 시초는 '마음'이 생겨나서가 아니라, 지식이 생겨나서 시작된 것이다. 사실, 인간은 마음과 지식은 다른 것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하지만... 순수의식의 어린아이에게는 아무런 앎이 없다.
아무런 앎이 없다는 말은 '언어가 없다는 말이며, 마음이 없다는 말이며 또한 이름이 없다는 말이다. '이름'이 없다는 말은... '자아' 라는 이름, '나' 라는 이름, '사람'이라는 이름, '동물' 이라는 이름, '하늘' 이라는 이름, '땅' 이라는 이름, '영혼' 이라는 이름, '하나님' 이라는 이름, '부처님' 이라는 이름, '귀신' 이라는 이름, '어린아이' 라는 이름, '순수의식' 이라는 이름, '무의식' 이라는 이름, '잠재의식' 이라는 이름... '어른' 이라는 이름... 더 나아가 '우주' 라는 이름, '태양' 이라는 이름... 등의 아무런 '이름'이 없었으며, 더 나아가 '형상, 모양'이라는 이름 또한 없었다는 뜻이다.
그대가 기억할 수 없는 어린아이시절 또한 그러하다.
그 아이들은 '내가 아이'라는 앎이 없다.
'소리' '이름' 이라는 앎이 없으며, '형상, 모양'이라는 앎이 없다.
여기서 '소리'라는 말은 '이름'을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형상'이라는 말은 '이름'의 대상을 뜻하는 말이다.
사실 '소리와 형상'으로 여래를 볼 수 없다는 말은... '이름과 모양'으로써는 '여래'를 볼 수 없다는 말이며, '이름과 모양' 이라는 말은 한자로의 표기는... '명색(名色)'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 '명색'이라는 말은 앞서 설명된... 12 연기법 중에 나오는 말로써, 인간들의 모든 앎(지식)이 '이름과 형상'의 동일시로 구성된 것이기 때문에 올바른 앎이 아나라는 뜻이며, 진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금강경의 본 뜻은... 사실 모든 불경의 내용이 그러하지만. (석가모니의 말이 아니라, 중생들의 말로써 왜곡된 것들이다)
본래의 뜻은.
그대의... 아니 인간들의 마음이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니다'는 말이며, 어린아이가 말을 배워서 아는 앎이, 즉 인간들의 모든 앎이 '이름과 형상'의 동일시로써의 앎으로써 허구적인 것이며, 그런 지식들에 의해서 다시 가공된 것이 '마음이다' 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마음이 본래 없었던 것'이다... 는 말이다.
이 말은 지극히 논리적인 말이다.
왜냐하면 그대 또한 자신의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상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말을 배우는 과정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는 이유는... 그대의 뇌세포에 저장될 수 있는 것은 오직 말(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된 언어'가 기억세포에 저장되지 않은 상태에 대해서는 기억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상태... '마음이 없는 상태' 이다.
마음이 없다는 앎도 없는... '무안이비설신' 의 뜻이며 또한 '무색성향미촉'의 뜻이다.
인터넷 검색창에 '금강경'이라는 낱말을 기록해 보니, 어리석은 중생들의 금강경에 대한 해석들이 무수히도 많다.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들이지만.... 올바른 앎은 단 하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설명하는 것이다.
그들의 말은 '진리'이며, 인간들의 말은 지식이다.
지식은 '진리' 라는 말만 아는 것이며, 진리가 무엇인지 모른다.
지식은 '명색의 동일시'로써의 앎으로써 모두 거짓된 앎이며, 올바른 앎이 아인 앎이며, 진리란 명색의 동일시가 허구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아는 올바른 앎이며, 진실된 앎이며, 참된 이치이다.
사실. 이런 설명들... 일념법으로써 일념을 깨달은 인물들에게는 지극히 상식적인 말이며, 건널목의 빨간 불과 파란 신호를 구분하는 것과 같은 분명한 앎이며, 명백한 앎으로써의 지식을 초월한 지혜의 앎이다.
지식은 마음이 있다고 아는 앎으로써 자기의 마음을 주장하는 그릇된 앎이며, 진리란 자신의 마음이 본래 없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으로써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 앎이며, 논리적으로, 육하원칙이라는 법칙에 어긋남이 없는 앎으로써의 올바른 앎이다.
사실. 도가의 '화원'의 '일념법강좌'에서의 강의 내용이 '언어의 상대성'이며 또한 '명색의 동일시'에 대한 설명들이다. '명색의 동일시'에 대한 설명은 여러 비유를 듦으로써 지적으로써도 이해는 가능할 수 있는 말이다. 왜냐하면 지극히 논리적인 말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가령, '하나님'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와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자의 논쟁은 끝이 없겠지만... '하나님'이 있다는 근거가 없다는 사실과 함께... 그런 '이름'이 있는 것일 뿐, 사실적인 것이 아니며... 어린아이시절에 마음이 없었던 것과 같이 '본래 없었던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이해만으로써도... 모든 의구심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며, 종교간의 갈등들 또한 말끔히 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금강경이라는 말의 본 뜻은. 마음이 본래 없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아는 앎으로써의 '득도, 깨달음'의 마음을 비유한 말로써, 마음이 금강석과 같이 단단햐여 변할 수 없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사실, 인간은 존재이 이유, 목적에 대해서 행복과 평화 자유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행복이나, 자유 평화를 얻을 수 없는 이유는 헛된 욕망을 쫒기 때문이다. 사실 헛된 욕망을 쫒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어린아이시절부터 그런 사고방식으로 길들여졌기 때문이며, 습관 되었기 때문이며, 그런 방식으로 버릇되었기 때문이다.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욕망을 모두 채울 수도 없으며, 욕망을 모두 버릴 수 없는 까닭은 '마음이 본래 있는 것'이며 자신만의 고유한 마음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욕망을 포기할 수 없는 까닭은... '육체가 나다'라는 앎이 기억세포에 저장된 고정관념일 뿐,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고는 감히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의 원리' 라는 말에 바탕을 두고 설명하는 것이다. '육체가 나다'라는 생각이 단견이며, 편견일 뿐만이 아니라, 명색의 동일시에 따른 착각이기 때문이다.
가령, '육체'가 '나다' 라는 '생각' 과 '육체'가 '나가 아니다' 라는 생각'은 단지... '한 생각의 차이'라는 말이다. 다만 인간은 경험이전의 순수의식에 깊이 세뇌된 '육체가 나다'라는 생각과 '내마음이 있다'는 생각에 대해서 의심조차 해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 감히 상상조차 해 볼 수 없기 때문에... 욕망의 노예로 전락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들의 존재, 인간들의 삶, 인간들의 생명활동 자체가 그러하다. 인간들의 존재라는 것은 겨우... 욕망의 노예들이 서로가 욕망을 더 많이 채우기 위한 경쟁, 투쟁, 전쟁터이며, 그 전쟁을 멈출 수 없는 것이 인간들의 삶이라는 허구적인 것이다.
사실, 인간이 스스로 만족하여 평화로울 수 없는 까닭은... '육체가 나다' 라는 생각과 '육체가 나가 아니라는 생각'... 즉 한생각의 차이를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며, '육체가 나다'라는 고정관념이 '마음'으로 왜곡된 마음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욕망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까닭은, 육체가 나다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며, 그 고정관념에 바탕을 둔 지식에 의해서 가공된 것이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은... 어떤 사고방식으로 조절되든 간에.... 모두가 오직 자신의 '육체의 안위'를 위한 집착에 한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며, 그 집착이 곧 욕망으로 왜곡된 것이며, 그 욕망이 또한 모든 고통의 원인인 것이다.
사실, 석가모니와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중 하나는, 그런 '명색의 동일시' 에 대한 착각에서 깨어나라는 말이며, 동시에 둘은, 명색의 동일시에 대한 착각에서 깨어나는 방법이다. 인간의 어리석음이란.. 그들의 말의 본질은 이해 할 수 없으면서도..., 자신들의 앎이 진리가 아니면서도... 진리인냥 뛰어난 언술들로써 그들의 말을 왜곡하고 변질시켜서 그들을 우상의 대상으로 여기고 서로가 옳다고 죽는 날까지 전쟁을 일삼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의 모든 앎, 지식들에 대해서 우주보다 더 무한한 어리석음이라고 하는 것이며, 겨자씨 만큼도 올바른 앎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사실. '육체=나' 라는 앎이 '형상'과 '이름' 과의 동일시이다.
'자아' 라는 이름과 '어떤 물질'에 대해서 '동일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어떤 물건 = 까마귀) 라고 이름 짓는 일과 같은 방식이다. 그것은 본래 '까마귀' 가 아니라... 이름이 없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의 이름을 '부처' 라고 짓더라도... 그것은 본래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의 이름을 '하나님'이라고 짓더라도 또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다 더 사례를 든다면.
금강경에는 '시명(是名)' 이라는 낱말이 등장하는데... 올바른 앎이라면... '이름'일 뿐,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앞서 설명했던 것과 같이... '시명불성'이라는 말과 같이... '시명아뇩다라삼목삼보리' 등의 말들 또한 같은 뜻이며, '시명중도' 라는 말 또한 그러하다.
이는 '시명불성'이라는 말이며, 또한 '시명마음'이라는 말이며, '시명인간'이라는 말이며, '시명자아' 라는 말이며, 더 나아가 '시명고통'이라는 말과도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사실 '시명 삶' 인 것이며... '시명 죽음' 인 것이다.
이 말은 또한 흔히 사용되는 '별은 별이 아니다'는 말과 같은 의미이며, '달이 뭐라 카드나' 라는 말과 같은 의미이며... 더 나아가 '명색이 사람이다'는 말과도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이는 '이름과 형상'만이 사람일 뿐, 본래 사람이 아니다는 뜻이며, 더 나아가 '본래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또한 '언어'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본래 없는 것'이라는 말이다.
삶과 죽음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며, 불변의 진리라고 하는 것이다.
그 길이 있다.
'명색'의 동일시의 착각으로 구성된 지식이 있기 때문에 지식을 초월한 올바른 앎의 '진리'가 있다.
삶과 죽음의 고통이 있는 세상이 있기 때문에 삶과 죽음의 고통이 소멸된 세상이 있는 것이다.
생로병사의 고통이 있는 세상이 있기 때문에 생로병사가 없는 세상이 있는 것이다.
지수화풍이 있는 세상이 있기 때문에 지수화풍이 없는 세상이 있는 것이다.
그대의 나가 있는 세상이 있기 때문에 그대의 나가 없는 세상이 있는 것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이 진리이다.
왜냐하면, 그대 자신의 마음의 근원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신이 되기 전에는 결코 만족할 수 없는 까닭은 본래 그대가 신이기 때문이다.
'신'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말이다.
진리와 인연있는 이에게 영원한 평화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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