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언어 · 불이일원론

슬라보예 지젝과 헤겔의 관념론/ 마르크스주의의 정치학/ 21- 20 세기/ 고대, 중세 철학의 추상적 허구와 진리에 대한 사유

일념법진원 2015. 2. 23. 07:51

헤겔은 독일 관념론, 나아가 서구 관념론의 정점에 도달한 독일 철학자이다. 넓게 이해하여 관념 철학자들은 ‘사물들 혹은 물질적 세계는 정신이 그에 대해 갖는 관념들과 독립해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런 전통 아래에서 헤겔은 개별 관념들이 하나의 절대 관념으로 통합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고 이것이 필연적이라고 했다. 헤겔은 그가 ‘총체성'(totality)라고 부른 세계 전체를 이해하는 방법으로 변증법적 사고를 전개 시킨다. 질문과 답변으로 지식을 얻는 변증법은 세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우선 한 테제/관념이 있고 다음에는 안티테제/관념의 구체적인 한정이 그에 대립된다. 마지막으로 이 둘은 하나의 종합이나 더 포괄적인 관념으로 통합된다. 이 과정은 완전한 진실(총체성)에 도달할 때 까지 계속될 수 있다. 지젝은 헤겔의 변증법을 독창적으로 읽어낸다. 헤겔 변증법은 관습적으로 더 큰 진리로 화해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지젝은 변증법을 화해나 종합적인 관점이 아니라, 헤겔이 언급했던 ‘모순은 모든 동일성의 내적 조건’의 관점에서 이해한다. 이 명제를 통해 헤겔은 어떤 것에 대한 관념은 언제나 불일치로 분해되며, 이 불일치야 말로 그 관념이 애초에 존재하게 된 필연성임을 주장한다. 즉 지젝에게 진리란 차이가 매끄럽게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모순 속에서만 발견되는 것이다. ‘모순어법적 사유방식’이라 칭해지는 지젝의 특유한 사유방식은 지젝이 헤겔의 변증법을 받아들였다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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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이 있기 때문에 진리가 있다.

지식이 모순이며, 상대적이기 때문에 상대적이 아닌 절대적인 앎의 진리가 있는 것이다.

지식으로써 진리를 구할 수 없는 까닭은, 지식은 그 바탕이 상대적인 언어, 즉 모순된 언어로 시작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가 모순이라는 사실, 상대적이라는 사실... 즉 지식은 결코 절대적인 앎일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우선 이해 하는 것이 진리를 이해 하는 첫걸음인 것이다.

 

진리는 단순하다.

왜냐하면 지식이 본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올바르게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지식 이전에 '나' 가 있다. 그런데 '있다는 나' 가 본래 '나' 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스스로 아는 것'에 대해서 '진리'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자아' 즉 '내가 있다'는 것은... '내가 없다는 것' 과 상대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있다'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닌 것이며, 내가 없다는 것 또한 절대적인 것일 수 없다. 

 

슬라보예 지젝과 헤겔의 사상은 유사하다. 

하지만, 정신이 있다는 말과 관념이 있다는 말은 둘 다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으로써 올바른 앎이 아닌 것이다. 다만 '생각'이라는 낱말, 이름이 있기 때문에... 지적으로써도 이해는 가능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관념, 정신, 지식, 마음, 느낌, 감정, 인식, 지식... 등의 이름, 낱말들의 뿌리가 '생각'이라는 낱말, 이름이기 때문이다. 

 

인간 개개인의 뇌에 저장된 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언어 이다. 그리고 그 모든 언어의 뿌리, 바탕은 '생각'이라는 낱말, 언어, 이름이다. 사실 도가의 '화원'으로부터 일념법 교육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지적으로나마 이해가 가능할 수 있으나 이 또한 올바르게 아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진리란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이 아니라,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스스로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세상 모든 인간들의 사고방식은 남들을 의존하여 얻은 지식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지식들로써 서로가 말재간을 견주는 것들일 뿐, 진리일 수 없다. 단지 진리가 아니라는 말이 아니라... 지식의 앎은 올바른 앎이 겨자씨 만큼도 없는 것이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세상은 논란만 무성한 것이며, 해답은 있을 수 없는 것이며, 현시대의 정치가 그러하며, 인간들의 개개인들의 삶들 또한 치열한 삶의 전쟁터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더 나아가 문명의 발전과 비례하여 더 많은 살상무기들이 창조됨은 물론이거니와 더 많은 범죄와의 전쟁들, 삶을 위한 투쟁들, 그리고 더 많은 불치병 난치병들이 생겨나는 이유 또한 인간들의 지식이 올바른 앎이 아니기 때문이며, 진리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이다. 

 

 

도. 진리를 이해한다는 것은...

사실, 인간이 진리에 대해서 이해 한다는 것은, 최소한 자신의 몸과 마음의 병듦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삶과 죽음의 한계를 벗어나 무위자연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사실은 우울증이나 신들림 환자가 자신의 의지의 정도에 따라서 '도가의 수행법으로써' 정신을 되찾게 되는 일이 그러하며, 현대의학으로써는 치료가 불가능하거나, 치료가 포기된 불치병 환자들이 나이와 병명과 상관 없이 '도가의 단식법'과 '도가의 약식법'으로써 모두 완전하게 치료되는 사례들이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을 초월한 진리를 아는 앎이 유일한 자유의 길이라고 하는 것이며, 인류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유일한 길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인간은 경험이전의 사고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내가 있다'는 생각(지식)에 대해서 실존이라고 여기는 것이며,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절대적인 앎, 사실적인 것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본다면... '내가 있다'는 생각은 '내가 없다'는 생각과 생각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의 '내가 있다'는 앎에 바탕을 둔 모든 지식들, 사상들은 올바른 앎일 수 없는 것이며, 절대적인 앎일 수 없는 것이다. 

 

사실은 인간들의 모든 지식으로써의 주장들은 진실이 아니라 거짓된 것들이다. 그런 상대적인 논리, 거짓된 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종교들간의 전쟁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며, 인간들간의 전쟁들 또한 그러한 것이다. 

 

 

"생각" 의 원리에 대해서 지적으로나마 이해 할 수 있다면 진리는 단순한 것이다. 

관념론자들의 관념이 있다는 생각은 관념이 없다는 생각과 상대적인 생각이며, 단지 기억세포에 저장된 한생각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정신론자들의 주장 또한 그러하다. 정신이 있다고 생각하든, 정신이 없다고 생각하든 이 또한 한생각의 차이이며, 자신의 뇌에 저장된 낱말들간의 상대적인 충돌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정신이 있다고 생각하든지 정신이 없다고 생각하든지... 그 또한 한 생각의 차이이며, 보는자들의 제각기 다른 생각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누가 옳다, 옳지 않다는 분별 자체가 무한한 어리석음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정신병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이 정상이기 때문이다.

 

 

무신론과 유신론의 주장들 또한 그러하다. 

사실은 그대의 '내가 사람이다, 내가 여자다, 내가 남자다'는 주장들 또한 그러하다. 왜냐하면 그대가 기저귀를 차고 다니던 어린아이시절에는... 그런 관념, 정신, 마음, 느낌, 감정... 따위의 분별된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대가 지금 '나, 자아, 마음'이라고 아는 모든 지식들... 그것은 그대가 스스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남들을 의존하여 얻어진 것들이다. 남들로부터 빌려온 것들이다. 그것이 의학이든, 과학이든, 종교학이든... 모든 학문들이 그러하며, 인간세상의 모든 지식들이 그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그대가 자기를 주장하는 것은 자기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남들을 주장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의 마음이 그대 스스로 창조한 마음이 아니라... 남들의 마음으로부터 얻어진 것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에 대한 논란들 또한 그러하다.  

고대 중세 현시대 또한 그렇듯이, 인간류의 통합은 불가능한 것이다.

왜나햐면 인간류에게 있어서 성품, 성격, 성질, 마음, 이상, 사상이라는 것은... 남들을 의존하여 가공된 것이기 때문이며, 마음이 있지만 그것 또한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남들에 의존하여 가공된 것으로써 모두가 '욕망'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욕망이 있다는 생각과 욕망이 없다는 생각 또한 한 생각의 차이일 뿐,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것이며, 환상이기 때문에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것이며, 모두 버려질 수도 없는 것으로써,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만족하여 평화로울 수 없는 것이다.

 

환상을 사실로 믿기 때문이다.

본래, 나 아닌 것을 나라고 믿기 때문이다.  

 

정신적인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물질적인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상대적인 생각일 뿐, 사실적인 것이 아닌 것이다. 그대의 생각이 없다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것이 진리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 있어서 자유가 있다면 오직 진리의 앎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진리의 앎이란,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아는 것이다. '스스로 아는 것'이 있다는 것은 스스로 알기 위한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 방법에 대해서 '일념법, 일념명상법' 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며, 자아 탐구를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이 또한 진리라고 하는 것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창조를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본다면, 세상이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세상의 소멸을 사실 그대로 본다면... 세상이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대의 태어남과 삶 또한 그러하다. 지금 그대의 삶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본다면 삶은 없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죽음'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본다면 삶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죽은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죽음이 있을 수 없는 것이며, 삶 또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삶의 입장에서 볼때, 죽음이 있는 것이며 영혼이나 귀신이 있는 것이며, 신과 하늘나라, 부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죽음의 입장에서 본다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삶, 죽음, 세상...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대의 뇌에 저장된 언어에 바탕을 둔 생각들로써만 있는 것이기 때문에... 착각이라고 하는 것이며, 몽상이라고 하는 것이며, 환상이라고 하는 것이며, 꿈과 같은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지몽매한 지식에서 벗어나라고 하는 것이며, 진리로 깨어나라고 하는 것이며, 진리로 거듭나라고 하는 것이다. 

 

진리를 모른다면 짐승들과 다르지 않은 것들로써 결코 가치 있는 삶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류에게 세로은 세상, 새로운 생각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각은 다양한 것 같지만... 사실 인간의 사념들은 지금 이순간 까지 뇌세포에 저장된 언어에 한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들로써 올바른 앎일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에 해답이 있을 수 없는 것이며, 서로간의 주장만 있는 것이며, 결코 행복할 수 없는 것이며, 평화로울 수 없는 것이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이 자유로울 수 없는 까닭은 지식이 올바른 앎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류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유일한 길이 있다.

인류의 통합을 위한 유일한 길이 있다.

그대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유일한 방법이 있다.

상대적인 지식을 넘어선 절대적인 앎을 얻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있다. 

 

그대의 지식, 마음, 앎이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우선 이해 해야만 한다. 그런 사실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자아탐구를 실천할 수 있는 것이며, 자아탐구를 통해서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스스로 아는 앎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상대적인 앎이 아닌 절대적인 앎에 대해서 '진리'라고 하는 것이다. 

 

진리와 인연있는 이에게 영원한 평화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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