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론에 따르면 우주에 관한 모든 지식은 과학적 연구 영역에 포함된다. 자연주의는 참된 초자연적인 실재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지식을 간접적으로 얻을 수 있을 경우, 즉 자연의 대상이 이른바 초자연적 실체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밝힐 수 있을 때 초자연적인 것을 인정한다. 이 경우 초자연적인 것 자체는 과학으로 검증할 수 있는 자연적인 상태로 환원된다. 자연주의는 자연이란 원칙적으로 완전히 인식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자연에는 객관적 법칙을 함축하는 규칙성·통일성·총체성이 있으며 만일 이런 법칙이 없다면 과학 지식을 추구하는 일은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자기 믿음에 대한 구체적 증거를 끝없이 찾는 인간의 노력은 자연주의 방법론에 대한 확증으로 볼 수 있다. 자연주의자들은 하나의 과학 이론이 다른 과학 이론으로 바뀔 때조차도 인간은 자연에 대한 인식을 단념하지 않으며 진리를 찾는 '자연적 방법'을 부정하지도 않는다고 지적한다. 이론은 변하지만 방법론은 변하지 않는다.
자연주의는 흔히 유물론과 동일시되지만 유물론보다 훨씬 더 넓은 의미로 쓰인다. 물론 유물론은 자연주의이지만, 자연주의라고 해서 반드시 유물론인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자연주의는 어떠한 존재론적 편향도 가지고 있지 않다. 즉 실재에 대한 특정 부류의 범주에 치우쳐 있지 않다. 이원론과 일원론, 무신론과 유신론, 관념론과 유물론은 모두 그 자체로 자연주의와 양립할 수 있다. 자연주의는 모든 실재가 자연적인 것이라는 점 외에는 어떤 제한도 갖지 않는다. 자연주의자들은 실제로 매우 다양한 견해를 보여주었으며 심지어 유신론적 자연주의를 발전시키기도 했다. 자연주의자들은 형이상학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쏟지 않으며 자기들의 관점을 세우기 위한 철학적 시도를 전혀 하지 않는다. 자연주의자들은 단지 자연은 실재이며 실재의 전부라고 주장할 뿐이다. 존재를 넘어서는 어떤 것도 없고 존재와 '다른' 어떤 것도 없으며 '또다른' 존재 세계도 없다는 것이 자연주의들의 주장이다. 자연주의는 1930, 1940년대에 주로 미국에서 가장 성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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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 인간세상 인간들의 모든 논리의 일부분인 것 같다.
인간이 끊임없이 자기를 주장하는 이유는.. 그 목적은 사실상 스스로 평화로울 수 없기 때문이며, 인생이 있다지만 인생의 해답이 무엇인지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며,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기 위한 목적일 것이며, 사실은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죽음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올바르게 본다면... 논란, 논쟁, 논리 따위는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인간세상의 모든 논리, 논술, 논란, 논쟁은... 관념론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관념론이란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의 모든 지식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며... 모든 생각들 또한 기억된 생각에 바탕을 둔 다른 생각들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경험이전에 대해서, 즉 언어를 알기 이전의 순수의식의 상태에 대해서 기억할 수 있다면... 인간세상의 모든 문제는 일시에 사라지는 것이며, 인류 개개인으 삶과 죽음의 문제 또한 말끔히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에 그대가 일념명상법으로써 '남들의 지식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아는 것'이 생겨난다면 인간세상의 모든 지식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것이며, 더 나아가 허구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올바르게 알게 되는 것이며, 이에 대해서 '정견'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사실,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관념이 생겨나기 이전의 순수의식의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삶과 죽음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인간은 "예수의 너희가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 라는 말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사람이다'는 관념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만약에 인간이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내가 사람이다' 라는 앎(언어, 지식)이 올바른 앎이 아니라, 단순히 '고정관념'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말을 배우고 익히기 이전의 순수의식의 어린아이에게는... '내가 있다, 내가 사람이다, 내가 여자다, 내가 남자다' 라는 앎이 고정관념일 뿐, 사실은 '내가 내가 아니다' 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사실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 하는 앎에 대해서 소위 '도, 깨달음' 이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다.
사실, 석가모니의 말이 왜곡된 경전에서는 이런 말에 대해서 '원리전도몽상에서 깨어나라' 는 방식으로 번역된 것이다.
자연주의자들은 단지 자연은 실재이며 실재의 전부라고 주장할 뿐이다. 존재를 넘어서는 어떤 것도 없고 존재와 '다른' 어떤 것도 없으며 '또다른' 존재 세계도 없다는 것이 자연주의들의 주장이다.
사실, 존재가 없고 존재 세계도 없다고 주장하는 것들 또한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써의 주장일 뿐, 그것으로써 행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평화로울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자유를 누닐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주장들이 사실 쓸모 없는 주장들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으로써 비로소 삶과 죽음의 한계를 뛰어넘어 무위자연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삶과 죽음 또한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본래에는 언어 또한 본래 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우주 천지만물이 있다는 생각 또한 오직 인간동물들만의 관념의 산물일 뿐, 근본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낳는 것이며, 언어 또한 또 다른 언어를 창조해 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생각이나 언어 또한 근본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인간들의 '육체가 나다'라는 착각, 원리전도몽상에 의해서 지어진 환싱이기 때문이다.
자!!! 이런 논리적인 말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인간들의 모든 언어는 논리적일 수 없다. 왜냐하면 언어의 기원에는 언어가 없기 때문이며,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의 기원에는 인간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보는 그대의 기원 또한 그러하다. 다만... 기억할 수 없는 어린아이시절부터...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일 뿐, 스스로 아는 것은 아무것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언어의 기원에는 언어가 없기 때문에 언어로써는 '언어가 없음' 에 대해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언어가 없다는 말' 또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대의 '존재'가 없다는 말 또한 그러하다. 설령 '내가 없다'고 주장하더라도 그 주장하는 '나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나'의 근원에는 '나' 가 없다. 그런 사실에 대해서 스스로 깨달아 아는 것에 대해서 '중도, 정견'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며, 예수의 말과 같이 '네 안에 하나님이 있다'는 방식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앎은 '스스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남들로부터 얻은 지식으로써 아는 것들이 아닐 수 없다. 그 남들 또한 다른 남들로부터 듣고 보고 배워서 아는 것이다. 그런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할 수 있을때, 그때 비로소 '스스로 아는 것'을 알기 위한 방법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세상에는 그 방법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현시대 까지도 '대도무문'이라는 밀로써 '도, 깨달음' 에는 그 문이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며, 지식인 것 같다.
물론, 인간의 관념을 벗어난 말이기 때문이며, 인간세상의 언어로써는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들의 모든 지식은 '관념'이며, '육체가 나다'라는 고정관념에 바탕을 둔 모든 생각들에 대해서 '관념'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인간들의 '내가 여자다, 내가 남자다, 내가 사람이다' 는 앎들 또한 하니의 고정된 생각, 즉 고정관념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세상의 역사를 볼때 '내가 사람이다, 육체가 나다'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인물들이 있었으며, 그들 중에서 오직 석가모니와 예수만이 '스스로 아는 것'을 알기 위한 방법을 설명했던 인물인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의 가르침이 우상숭배사상으로 전락되면서 왜곡되고 변질된 것들이 경전들이지만... 그 내용들 중에는 그들의 가르침의 본질이 그대로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스스로 아는 것'을 알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 현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언어로 표현하고자 하는 방법이 '일념법, 일념명상법' 이라는 방법인 것이다. 다만 인간의 지식이라는 관념으로써 이런 법, 방법을 실천할 수 없는 까닭은... 모든 지식을 얻는 과정이 남들로부터 듣고 배우고 이해 하는 방식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스로 아는 것'이라는 올바른 앎은, 남들의 말, 지식을 쫒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자신의 내면에 묻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의 어리석음이 우주보다 더 무한하다고 하는 까닭은 자신의 마음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까지도 남들에게 묻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남들에게 묻는다면, 이는 남들의 마음은 믿는다는 것이며 자신의 마음은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이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묻거나, 또는 신을 믿거나, 종교에 의존하는 것은... 자신이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스스로 아는 앎이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스스로 아는 것이 있다면, 남들에게 물어야 할 까닭이 없는 것이며, 스스로 만족하여 평화로울 수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소위 '깨달음'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절대적인 앎을 증득하게 됨으로써 무위자연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자신 스스로 아는 앎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 '일념법, 일념명상법'이다.
그 방법으로써 스스로 아는 앎에 대해서 '진리의 앎'이라고 하는 것이며, 지식을 초월한 올바른 앎이라고 하는 것이다.
진리와 인연있는이에게 영원한 평화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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