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행복할 수 없는 이유는 죽음을 모르면서 사는 삶의 목적지가 죽음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죽음을 모르는 사람으로써의 삶이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죽음을 두려워 하는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하는 것은, 불치병환자가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고 말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기원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불치병 환자이다.
왜냐하면 삶의 끝이 누구나 다르지 않은 죽음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불치병 환자가 아닐 수 없는 것이며, 죽음을 모른다면, 행복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한 삶이 있다면... 지금, 순간 순간을 기쁨으로 존재할 수 있는 능력을 얻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이 있다.
인간이 불치병 환자에서 벗어나는 길은 딱 두 가지 방법이 있을 뿐이다.
그 하나는 죽는 일이며, 둘은 죽음이 없는 이치를 스스로 깨달아 아는 것이다.
하지만, 죽는 일은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은 사는 일 또한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스스로 깨달아 아는 것만이 행복한 삶을 위한 유일한 길인 것이다.
인간의 삶의 끝은 죽음이 아닐 수 없다.
누구나 죽음을 앞 둔 사람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사람이 행복할 수 있다면... 어불성설이다.
사실, 행복이 본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이다.
사실, 죽은사람에게는 생로병사의 고통이 없으며, 희로애락이 없다.
죽은 사람을 보는 사람들의 사고방식 속에서만 생로병사의 고통이 있는 것이며, 희로애락이 있는 것이다.
사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 아니다.
왜냐하면 죽은 사람에게는... '자아'가 없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에게는 '자아'가 없을 뿐만이 아니라, 자아가 보고 느끼는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신과 영혼, 우주 천지만물을 인식하는 '나'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행복할 수 없는 이유는,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있다면, 그는 현명한 사람이며, 오직 그들만이 행복을 구할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인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아무것도 모르면서 모든 것을 다 안다는 착각에서 깨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지식은 지식이 아니라, 무지(無知, 無明)이다.
왜냐하면 삶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며, 죽음이 무엇인지 조차 이해 할 수 없는 것이 지식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인간세상 지식으로써의 앎에 겨자씨 만큼이라도 올바른 앎이 있었다면, 있다면, 최소한 죽음이 무엇인지 이해 할 수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들 개개인의 지식이 무지하다고 하는 까닭은, 인간들의 모든 앎이 그렇듯이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대의 앎 또한 그러하다. 만약에 지금 이 글을 보는 그대가... '나는 내가 스스로 아는 앎이 단 하나도 없다, 나의 모든 앎은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이다' 는 사실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있다면... 그대는 지헤로운 사람인 것이다.
삶의 끝은 죽음이다.
죽음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는 결코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인 것이다.
행복에 조건이 있다면 오직 두 가지의 길 뿐이다.
그 하나가 죽는 것이며, 둘은 스스로 아는 것이다.
죽는 것이 기쁨이 아닌 까닭은 스스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죽는 것이 기쁨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스스로 아는 것만이 행복한 삶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 하여 행복할 수 없는 까닭은 자신에 대해서 자신이 스스로 아는 것이 아니라, 타인들로부터 듣고 보고 배워서 아는 것들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타인으로부터 듣고 배우고 익히고 궁리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 아는 것에 대해서 '진리의 앎' 이라고 하는 것이며, '정견'이라고 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양 극단들 벗어난 '중도'의 견해라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삶의 입장에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본다면 삶이 없을 수 없는 것이지만, 죽음의 입장에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본다면 삶이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삶의 입장에서 본다면 죽음이 있겠지만, 죽음의 입장에서 본다면 삶이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대의 모든 사고방식, 즉 인간의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은 세상 사람들 누구나 똑 같이...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에 대해서 '자신의 앎'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유한한 삶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길이 있다.
이름하여 진리의 길이며, 중도를 깨닫는 방법이다.
남들의 말을 의존하여 아는 것이 아니라, 그대 스스로 깨달아 아는 방법이기 때문에...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이해가 불가능한 것이다.
사실, 그대가 그대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몸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는 까닭은, 그대의 모든 앎이 그대 스스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알 수 없는 그대의 몸, 그대의 마음, 그대의 생각, 그대의 느낌에 대해서 남들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아는 방법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길, 방법을 알리려는 것이다.
현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언어로 표현 되는 "일념법, 일념명상법"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이 진리라고 하는 이유는, 인간세상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며, 그대 마음의 근원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법이기 때문이다.
지식은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이며, 진지(올바른 앎)란 (일념법으로써)스스로 아는 것이다.
삶과 죽음...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 죽음이 본래 없는 것이다, 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아는 앎으로써 비로소 행복한 삶, 무위자연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진리와 인연있는이 그대에게 영원한 평화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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