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론 · 깨달음. 도. 진리의 길

깨달음과 명상에 대한 환상 / 인간의 믿고 싶은데로 믿는 착각. 그 어리석음과 무지

일념법진원 2014. 7. 1. 07:01

'깨달음' '도' 에 대한 인간들의 앎(말, 뜻, 생각, 마음)은 모두 망상이며 착각이다.

인간은 자신의 마음이 착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인지할 수 없다.

마음이 사실적인 것이라는 오해, 경험의 오류 때문이지만, 그런 사실에 대해서는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세상에사 가장 무식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있다면, 그것들이 '도'를 논한다는 자들이며, '깨달음'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는 언술로써 말재간을 부리는 자들이다.

 

 

간혹 텔레비전을 통해서 인간의 마음에 대한 연구 결과들을 보곤 한다.

무심코 옆에 있는 사람에게 '컵'을 들어 달라고 부탁할때, 누구나 그 컵을 잠시 들어주지만, 다른 사람이 손을 내밀면 그 컵을 건네준다. 컵을 들어 달라고 부탁했던 사람과 컵을 다시 되돌려 받는 사람이 다르더라도 인식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어떤 사람이 길을 묻는다. 그리고 길을 묻는 사람과 답변하는 사람 사이에 두사람이 큰 액자를 들고 지나간 뒤, 길을 묻던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더라도 답변하는 사람은 그것을 인식할 수 없다는 상황 들 또한 같은 맥락이다. 

 

이런 상황들을 설정해 놓고 한다는 말이,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며, 듣고싶은 것만 들으며, "사람은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착각"을 한다는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착각을 한다" 는 말. 

 

사실은 "사람은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착각을 한다는 말" 그 말, 말, 말이 착각이다. 

 

믿고 싶은데로 믿고 싶어서 믿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사실 세상에 정신을 차리고 사는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도  과언은 아니다. 왜냐하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인간들의 삶 모두가 정신병자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간혹 '머리가 살짝 돈 사람'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항상 비실비실 웃는 사람들이거나 또는 하루종일 혼잣말을 하는 사람들이다. 소위 '미친놈, 미친년' 또는 정신질환자 등으로 분류되기도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 또한 다른 사람들과 같치 '자신만의 생각의 세상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며, 컵을 건넸던 사람이 바뀐 줄도 모르면서 컵을 내주는 사람이나, 또는 길을 묻던 사람이 바뀐 줄도 모르면서 길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나 똑 같이 '자신만의 생각의 세계'에서 헤매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며, 인간들은 왜 그렇게 정신 없이 살아가는 것일까? 

 

그렇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삶에 대한 뚜렷한 목적의식이 없다. 

 

삶에 대한 분명한 이정표가 없다는 뜻이다. 

 

목적이라는 것이 있다면, 겨우 '남들보다 더 잘사는 것'이라거나 또는 남들과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남들로부터 승리해야 한다는 것, 남들을 짓밟고 남들의 위에 서고자 하는 욕망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남들에게 잘보여야 한다는 것 등이며, 겨우겨우 자신의 그릇된 앎에서 비롯된 욕망을 채우기 위한 목적 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인간세상에서 인간들에게 이루어지는 교육이라는 것들 무두가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에 대한 분명한 목적이 없는 것이며, 항상 자신만의 생각에 이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생각이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착각'이 아니라 무한한 어리석음의 소치이며, 정신 없이, 정신 못차리고 살기 때문이다. 

 

 

인간세상. 

인간이 인간이면서 인간들끼리 투쟁하는 것이 인간들의 삶이며, 삶의 목적이다 

그 속에서 행복을 기원하는 것이니... 무한한 어리석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말이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며, "너 자신을 알지 못한다면 살아갈 가치도 없다"는 말이다. 

 

 

가치 있는 삶은 어떤 삶이며, 올바른 삶은 어떤 삶일까? 

 

오죽하면 예수는 인간들에게 말하기를.... 하늘에서 보니 선한 자가 단 하나도 없더라. "너희 인간이 과연 짐승들보다 뛰어난 것이 무엇이 있는가" 라고 한다. 사실 세상에 짐승보다 더 뛰어난 인간이 없다. 

왜냐하면 최소한 짐승들은 자신들끼리 피를 흘려가며 죽고 죽이는 짓들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들에게 세뇌당한 짐승들은 피를 흘리며 죽을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는 것들도 있다. 인간들에게 그렇게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인간들 또한 인간들에게 그렇게 길들인 것이다. 

명색이 '사회적 동물'로.

그대 또한 그렇게 길들여진 것이다. 남들과 경쟁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며, 서로가 더 잘살기 위해서 싸우고 이겨서 승리해야만 한다는 사고방식과 함께,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사고방식으로 교육받은 것이며, 길들여진 것이다. 

 

 

가치 있는 삶이란 어떤 삶이겠는가? 

최소한 인간이 인간들과 겨루는 짓, 서로가 더 잘살아야 한다는 무한한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잘 사는 삶'이라는 말 조차도 분명히 정의될 수 있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잠시 돌아보라. 

세상에 진정으로 '잘 사는 사람'이 누가 있는지 찾아 보라는 뜻이다. 

'축구 선수들'이 잘 사는 사람들인가? 정치인들이 잘 사는 사람들인가? 경제 제벌이라는 사람들이 살 사는 사람들인가? 지식이 많아서 헛소리를 지껄이는 사람들이 잘 사는 사람들인가? 

 

자신 스스로 '잘사는 삶'이 어떤 삶인지,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곧 잘 사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들 누구나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조차 이해 할 수 없는 무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 조차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지식'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올바르게 정의할 수 없으며, '무식'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올바르게 정의할 수 없으며, 지혜가 무엇인지 조차도 정의할 수 없는 무지에 빠져 있는 것이다. 

 

지식은 왜 지식이 끝이 없는지에 대해서 조차도 이해 할 수 없는 무지에 빠져 있으며, 의학은 인간의 질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조차도 이해 할 수 없는 무지에 빠져 있다. 과학은 무엇때문에 과학에 집착하는지에 대해서 조차 이해 할 수 없으며, 심지어 꿈이 무엇인지 조차도 이해 할 수 없다. 

 

 

과학이든, 의학이든, 모든 지식들이든간에, 그것들은 인간의 삶을 위해서 존재해야 하는 것들임에는 틀림이 없다. 

 

인간은 모두가 동일한 인간이다. 

그렇다면, 인간들의 모든 학문이라는 앎들이 인간을 위한 것이라면, 어떤 인간이거나 그 인간의 생명이 끝나기 전에 모두 알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인간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다른 인간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들의 모든 앎(지식)은 개개인, 인간 하나하나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야 한다는 뜻이다. 

그대의 생명이 끝나기 전에 모든 것을 알아야만 한다는 뜻이다. 

개체적 자아에게는 지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이 기장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인간동물들만의 무한한 어리석음이란 다른 사람들의 목숨 조차도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목적의 도구쯤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대 자신이 소중하다면, 남들 또한 그대 자신만큼 소중하게 여길 수 있어야만, 최소한 최소한 최소한 인간으로써 인간답게 사는 것일 수 있다는 뜻이다. 

 

나이 79세인 '은주의 아빠' '도가의 선식' 두 달여만에 40여년 동안이나 앓던 당뇨 및 당뇨 합병증에서 벗어났단다. 그런데, 사십년동안이나 인술린 주사제와 각종 여덟가지 정도의 약물을 처방해 왔던 충남대병원의 담당의사 하는 말이... 이제 다른 약물들은 더 이상 처방할 필요가 없는데, 그래도 예방 차원에서 아스피린을 처방하겠다고 하더란다. 

 

이에 은주 말하기를. 전달에 처방 받았던 아스피린을 복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충분히 남아 있으니... 라는 답변으로써 대화를 끝냈다는데.

 

그런 의사.... 과연 인간다운 인간인가 말이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인간이라면, 병마에서 벗어남에 대한 축하와 함께 '은주 아빠'가 40년 동안이나 고생했던 불치병에서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벗어나게 되었는지 확인하여 다른 환자들에게 그 방법을 알려야만 하지 않겠는가말이다. 

짐승이라면 말을 못하니 할 수 없겠지만... 최소한 인간이라면 말이다.

 

 

어떤 삶이 가치 있는 삶일 수 있겠는가? 

 

그대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대는 정신을 차리고 사는 사람인가? 

 

정신을 차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는가? 

사실. 인간은 어떤 상태가 '정신을 차린 상태'인지에 대해서 조차 이해 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식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깨달음'에 대해서 이해 한다고 주절거리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은 노자의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도는 참다운 도가 아니다' 라는 말의 뜻 조차도 이해 할 수 없는 자들이다. 사실상 그 말의 뜻을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이겠지만...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도는 참다운 도가 아니다" 라는 말, 말, 말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은 '이해' 하는 것이 아니라 오해 하는 것이다. 사실 인간세상에 이런 말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사람은 극 소수에 불과하다. 

 

사실 '이해' 한다는 말 자체가 '오해'라는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다만 이런 말에 대해서 지적으로나마 이해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일념명상법" 수행으로써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다. 

 

인간세상에 오직 그들만이 "가치 있는 삶" 이라는 말에 대해서 또한 이해 할 수 있는 인물들이기 때문에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올바른 앎이란, 언어를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본래의 뜻에 대해서 알아차리는 것이다. 

"깨달음"이라는 말을 상상하는 것... 세상에서 가장 무식하고 어리석은 자들의 망상이다. '그것'은 인간이 인지(인식)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의 나. 그대의 나 아닌 나. 

그것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의 기원이다. 

우주가 있든 말든, 그것만이 유일한 것이며,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에게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