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론 · 깨달음. 도. 진리의 길

순수의식과 삼매 / 올바른 집중이란?

일념법진원 2014. 7. 13. 07:29

삼매란 무엇일까?

한자의 뜻으로 본다면, '석 三 자와 새벽 昧' 자로써 새벽 세시를 이르는 말인 것 같다.

새벽 세시 쯤과 같은 고요한 상태를 이르는 말이겠지만, 이해 할 수 있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삼매'라는 말은 '독서 삼매'라는 말과 같이 흔히 쓰이는 말이지만, 불교의 용어로써는 '한 가지에만 마음을 집중시키는 일심분란의 경지'라는 말로 표현되며, 삼매경'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일심분란의 경지'라는 말은 '마음이 한가지에만 집중되므로써 不亂, 즉 어지러움이 없는 경지라는 뜻이다. 마음이란 갈대와 같이 끊임없이 흔들리는 것이며, 바다의 잔물결과도 같이 잠시도 쉴 수 없는 것이다.

흔히 불도를 공부한다는 사람들의 삼매라는 말에 대한 정의는... 기도하거나 또는 수행중에 빛을 보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광명의 빛'이라는 말을 염두에 두고 수행을 하기 때문에 그런 착각속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환상을 보는 것이다.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라는 말과 같이 '종교들' 모두가 삿된 길을 가는 자들이다.

 

사실 광명이라는 말은 '무명'의 반댓말로써 지식을 넘어선 올바른 앎을 이르는 말이다. 예를 든다면 소크라테스의 "유일한 선은 앎이며, 유일한 악은 지식'이라는 말과 같은 뜻의 '올바른 앎, 참다운 앎'에 대해서 광명의 빛, 광명의 지혜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다. 

 

올바른 앎, 참다운 앎, 참된 이치' 등으로 표현되는 진리의 앎이란 인위적으로 가공된 상대적인 모든 앎이 허구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앎을 이르는 말이다. 

 

반야심경에는 그런 표현들이 있는데, 불구부정 부증불감 불생불멸... 등으로써 선과 악의 분별이 어리석음이라는 말과 같이 깨끗함과 더러움, 큰것과 작은 것... 등의 인간세상의 모든 분별심, 분별된 앎... 지식들이 허구적인 것들이라는 뜻이다.  

 

 

'순수의식'이라는 말은 '의식'이 있으되 '나와 너' 또는 '선과 악'이라는 분별심이 일어나기 이전의 어린아이들의 투명한 의식을 일컷는 말이다. '의식'이라는 낱말 또한 본래의 뜻은 '뜻 의' 자와 '앎 식'자로써  말을 알아들음을 일컷는 말이다. '말을 알아듣는다는 것'의 '말'이란 곧 '뜻'이며, '앎' 이다.

사실 깊이 잠든 사람에게는 '意識'이 없는 것과 같이 '앎'이란 '말과 뜻'이 내포된 말로써 '언어'가 곧 지식이며, 앎이며, 뜻이라는 말이다.

 

 

예수의 모든 말에는 항상 '너희가 어린아이 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라는 말이 전제되어 있다. 이 말은 '너희가 말을 배우던 어린아이 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있다면' 선과 악, 너와 나, 삶과 죽음, 천국과 지옥... 등의 인간들의 모든 분별심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분명히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순수의식'을 경험한다. 다만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써는 그런 사실(순수의식)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나와 너'라는 분별에 대해서 사실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이며, 선과 악이라는 분별에 대해서 사실적인 것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올바른 앎이란, 삶과 죽음 또한 선과 악이 상대적인 것이듯이, 상대적인 것으로써 분별이기 때문에 '죽음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이 왜곡, 변질되어  '하늘나라' 라는 말과 죽은 다음에 '천국'이라는 등의 어처구니 없는 말이 종교들에 의해서 재창조된 것이며, '극락왕생'이라는 말과 육도윤회라는 말들 또한 어리석은 자들에 의해서 재창조된 거짓된 말들이다. 

 

 

종교들은 '천국과 지옥'을 구분하여 나약한 인간들을 세뇌 시키기에 여념이 없는 것 같다. 예수가 옳다고 주장하는 자들과 석가모니가 옳다고 주장하는 자들... 모두가 어리석음의 극치를 보이는 것들이다.

 

영생, 환생, 재생, 하늘나라, 천국... 등의 말들이 성경의 주장이며, 불경 또한 같은 뜻의 다른 표현들이 한자로 나열된 것 뿐이다. 불경에는 '극락왕생, 불생불멸, 33개의 천국, 육도윤회, 해탈... 등의 신비스러운 말들이 무수히도 많이 있으나, 모두 같은 뜻의 다른 표현들이다.

 

 

 

상대적인 언어에 세뇌당하기 이전의 어린아이에게는 삶이라는 말도 없으며, 죽음이라는 말도 없으며, 생각도 없으며, 마음도 없다. 그러니 '不生' 즉 태어남도 없으며, 不滅 즉 멸함도 없다는 뜻이 '불생불멸'이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다. 

 

 

사실 삼매라는 낱말은 '일념삼매'라는 뜻으로써 '일념명상법'으로써 일념, 즉 하나의 생각에 몰입되어 있는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사실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삼매'를 경험할 수 없으나, 일념법 수행으로써 '유상삼매'를 경험할 수 있는데, 이 또한 일념을 깨달아서 생각의 생멸현상에 대해서 이해가 가능할 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다. 

 

일념을 깨닫지 못했다면 여전히 우이독경이다. 사람의 올바른 말을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니, 소의 귀에 불경을 읽는것과 다르지 않다는 뜻이 우이독경이라는 낱말의 뜻이다.

 

불경은 성경에 비교한다면 그나마 조금은 다행스러운 것이 있는데, 인간이 스스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나마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을 볼 수 있는 자가 없으니... 우상숭배사상으로 변질된 것이지만...

 

사실 '무명의 행'으로... 말을 배우기 이전의 어린아이들의 상태에 대해서 '순수의식'이라는 말로 표현 한다면, '일념의 무념처'에 대해서의 '삼매'라는 말은 그와 유사함 표현이다. 왜냐하면 책에 설명된 바와 같이 '일념의 무념처'에서의 행위가 곧 순수의식의 어린아이들과 같이 '번놔와 망상'이 끊어진 상태에서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든 분별된 생각이 번뇌이며, 망상이다)

 

이런 행위에 대해서 '무위'라는 말로 표현되는 까닭은 행위를 하되, 행위자가 있으나, '내가 행위한다'는 생각이 없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육체가 나다'라는 앎이 착각일 뿐, '육체가 나다'라는 생각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알게되는 명백한 앎이다.   

 

 

 

사실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올바른 집중'이라는 말 또한 이해 할 수 없는 말이다. 왜냐하면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써는 결코 경험될 수 있는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올바른 집중'이라는 말은 독서에 빠지듯이, 사랑에 빠지듯이, 경치에 빠지듯이 오락이나 영화에 빠지듯이, 또는 맛있는 음식에 빠져서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르듯이... 등의 그런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생각 사이에 틈이 없이 한생각에 몰입됨'을 이르는 말이다. 사실 지식으로써는 이해가 불가능한 말이며, 경험될 수 없는 사건이기 때문에 '우이독경'이라는 말이나 또는 '대도무문'이라는 말, 그리고 언어도단, 불립문자... 등의 수많은 말들이 창조된 것이다.

 

 

"생각과 생각에 틈이 없이 몰입되어 있는 상태" 라는 말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물론 이런 말을 이해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생각에 대해서 이해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인간이 생각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면... 아니. 불가능한 일이다. 

 

만약에 인간이 생각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면, 뇌의학이라든지, 생명공학이라든지... 등의 인간들의 모든 의학이나 과학, 인문학 등의 모든 학문은 쓸모없는 쓰레기가 되어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도'를 만난다는 것에 대해서 '백천만겁난조우'의 인연이라는 말로써 귀하디 귀한 인연이라고 했던 인물이 석가모니이다.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이런 말에 대해서도... 어찌하여 그토록 귀한 인연이라고 하는지에 대해서조차도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길을 갈 수 없는 것이며, 그 길을 찾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대도무문'이라는 말이 창조된 것이겠지만...

 

사실. 뇌과학, 뇌의학... 등의 인간들의 모든 학문들은 '일념을 깨닫고 나면' 사실 쓰레기에 불과한 것들이다. 왜냐하면 올바른 이치를 깨닫는다는 것은 인간생명의 기원을 이해 하는 것이며, 우주의 기원을 이해 하는 것이며, 인간의 마음을 이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가의 선식(약식)' 또한 인간생명체의 본래의, 본래 있었던 면역능력을 회복하게 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인간들의 모든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의약 대체식품이다. 히포크라테스의 말과 같이 인체는 기계들과 같이 부품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의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류 역사로 볼때 '생각'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 했던 인물들은 노자와 장자, 그리고 석가모니와 예수, 소크라테스 등의 극소수의 인물들 뿐이다. 그들의 말의 본질은 같다.

 

인간세상 인간들의 모든 삶들이 모두 다툼이거나 논란, 논쟁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올바른 앎이 겨자씨 만큼도 없기 때문이다. 왜 올바른 앎이 겨자씨 만큼도 있을 수 없다고 하는가 하면, 인간들의 '내가 사람이다' 라는 앎 자체가 올바른 앎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사람이다' 라는 말(앎, 뜻, 마음)은 '내가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과 상대적인 말이다. 상대적인 것은 빛이 사라지면 그림자가 사라지듯이 주체가 있기 때문에 대상이 존재하는 것일 뿐,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마도 사람들은 이런 말, 즉 상대적인 것은 손뼉이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과 같은 말이기 때문에 '상대적인 것'은 사실적인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은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인 것 같다. 

아닐까? 

  

 

예수의 말이 왜곡되면서 선과 악의 분별에 대해서 '원죄'라고 주장하는 무리들이 있다. 남자와 여자가 상대적인 말이듯, 선과 악 또한 상대적인 말이라는 뜻이다. 밝은 낮이 있기 때문에 어두운 밤이 있듯이 남자라는 말이 있기 때문에 여자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낮이라는 말이 사라지면 동시에 밤이라는 말도 사라지는 이치와 같다.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 성공과 실패, 부자와 가난한자, 하늘과 땅, 천국과 지옥... 등등. 인간의 언어는 모두가 상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논란, 불란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은 끝없는 분란, 논란이며, 올바른 앎은 다툼이 없는 것이니 무위자연과 같은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도'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는 오직 '일념법 수행'이 유일한 길이며 방법이다. 

일념법 수행만이 '올바른 집중'이라는 말을 이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신비한 일은... 인간들이 '올바른 집중'이라는 말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실 '올바른 집중'이라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내가 올바른 집중을 한다'는 말을 하거나 또는 생각함과 동시에 이미 '올바른 집중'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념'이라는 말의 뜻을 이해 할 수 없는 까닭은 그것은 '일념'을 경험하는 자가 없는 상태를 이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일념수행'에 몰입된 상태로써의 '유상삼매'이다. '유상삼매'라는 말 또한 '일념법 수행'으로써 '생각의 생멸현상'에 대해서 분명히 알아차림을 뜻하는 말이다. 

 

생각의 이치와 속성이라는 말과 생각의 원리라는 말에 대해서는 전에 들어볼 수 없었던 말들이다. 일념을 깨달았을때, 그때 비로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인간이 '일념'을 깨닫는다면, 그의 삶은 새로운 삶으로써 번뇌와 망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삶과 죽음의 한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진리, 부처, 불성, 성령' 등의 말들은 '도'와 같은 뜻의 다른 표현으로써 본래 '이름이 없는 이름'이며, 본래 '형상이 없는 형상'을 이르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무', '본래무일물'이라고 하는 것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그대와 인류에게 평화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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