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제각기 자기 나름대로 인생에 해답을 구하고자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말은 허무맹랑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누구나 '나는 사람이다'라고 알기 때문이며, 뭔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태어난 이상, 죽는 날까지 무엇인가 꼭 이루어야 될 것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 즉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 꼭 해야만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지식(앎)이 없다. 분명한 앎이 없는 까닭은 그런 사실에 대해서 들어 보거나 분명하게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름, 나이, 성별, 고향, 부모, 형제, 친척, 친구 그리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도덕 등의 무수히도 많은 학문들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들, 배워야 하는 것들은 많다. 죽을 때 까지 공부를 해도 다 할 수 없는 학문들이 있다고 배웠다.
사실 학문은 왜, 그 끝이 없는 것인지, 그 이유 조차도 모르는 채 말이다.
인생에는 그 끝이 분명하건데, 어찌하여 인간을 위해서 존재해야 하는 학문은 그 끝이 없는 것일까? 학문이 끝이 없다면, 인간이 학문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일까? 학문이 인간을 위해서 있어야 하는 것일까?
이런 말들... 전에 들어본 적이 있는 말인가?
인연 있는자여. 이런 말에 대해서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그런데 중요한 것은 죽을 때까지 배워도 다 배울 수 없는 학문들 속에서도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설명되는 학문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사실상 가치 없는 질문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던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 또는 의구심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실체 없는 소리, 소리에 불과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나다' '나는 나다' 라는 앎(생각, 지식, 마음, 뜻)에 대해서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다, 나는 사람이다, 나는 여자다, 나는 남자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라는 앎(말, 생각, 뜻, 마음)에 대해서 감히 의심 조차 해 볼 수 없기 때문이며, 그런 말은 들어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 감성이 예민 하던 시절, 누구나 시인을 동경할 무렵 쯤의 비교적 순수하던 나이에, 누군가로부터 '너는 왜 너인가'라는 질문을 받거나 또는 '우리는 왜 우리를 사람이라고 하는가, 또는 '우리는 왜 나를 나라고 하는 것일까' 라는 명제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거나...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면, 인생의 길, 삶은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나다' 라는 말(앎, 생각, 주장, 마음)은 터무니 없는 말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어치피 인간은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 생활하는 즉 생명활동'을 영위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의 '경험'은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운 것들에 대해서 '나는 사람이다'라고 아는 것이다.
물론 인간은 누구나 '어린아이시절, 즉 말을 배우던 아이시절에 대해서는 기억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할 수 있는 범위 내의 경험에 의해서 '내가 사람이다'는 말에 대해서 '내가 나다'라는 말에 대해서 당연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습을 통해서 낱말의 뜻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모든 낱말'에는 '반댓말'이 있다고 배우게 되며, 그것을 사실화 하게 된다. 어떤 낱말이거나 반대 되는 말이 있다. 반댓말이 없는 말은 있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는 상대적인 것들로써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하늘과 땅이 반댓말이며, 아빠와 엄마가 반댓말이며, 남자와 여자가 반댓말이며, 선함과 악함이 반댓말이며, 사람과 영혼이 반댓말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삶과 죽음이 반댓말이며, 나와 너가 반댓말이다. 나와 다른 것들 또한 나와 상대적인 것들이기 때문에 반댓말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내가 나다'라는 말과 반댓말은 '내가 나가 아니다' 라는 말일 것이며, '내가 사람이다'라는 말과 반댓말은 '내가 동물이다'라는 말이 아니라... '내가 사람이 아니다' 라는 말과 반대 되는 말이다. '내가 있다'는 말과 반댓말은 '내가 없다'는 말이다.
행복과 불행이 상대적인 반댓말이며, 기쁨과 슬픔이 반댓말이며, 고통과 즐거움이 상대적인 말이다. 인간들의 모든 언어가 이와 같이 절대적인 것들이 아니라 상대적인 말, 말, 말들이다.
인간은 누구나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있다는 생각과 마음이 없다는 생각은 상대적인 생각이며, 한 생각의 차이이다.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마음이 무엇인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이런 글들 조차도 관심 밖의... 일, 소득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 하거나, 쓸모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내가 죽기 전까지... 뭔가 꼭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꼭 해야 할 일'... 그것이 무엇인지,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분명히 아는 사람은 없지만... 인생에 해답이 없다는 말에 대해서 들어 본 적은 있지만...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마음 한켠에는 책임감, 의무감... 등의 감정(마음, 느낌, 생각, 뜻)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근거가 없는 앎이지만...
사실 인간은 아득한 옛날부터 지금 이 순간들 까지도 '행복한 세상'을 추구하는 것 같다. 서로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상이다. 사실 행복한 세상을 추구하는 까닭은 지금, 이 시대의 삶, 이 세상의 삶이 행복한 세상이 아니라 불행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존재하는 현 세상이 불행한 세상이 아니라, 행복한 세상이라면, 굳이 다른 행복한 세상을 추구해야 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천국을 꿈꾸고, 행복한 세상을 꿈꾸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꿈을 위해서 사는 것일까?
왜, 지금 이 순간순간을 행복한 세상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인까?
왜, 지금 이 순간, 현실에 대해서 불행한 세상,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까?
인간은 누구나 '내가 나다'라는 착각에 의해서 보다 나은 내일이나 미래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부터 타인들로부터.... 그렇게 듣고 배웠기 때문이며, 그 듣고 배웠던 말, 말, 말들에 대해서 사실적인 것이라고 생각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생각을 아니 할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순간 만족하여 평화롭지 못한 사람은 영원히 행복할 수 없다. 왜나햐면 그대가, 인간들이 상상하는 행복이나 자유 평화는 사실적인 것이 아나라 환상이며, 몽상이며, 착각이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것들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행복한 세상'이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사실적인 것, 절대적인 것이라서, 실체가 있는 것이라면... 수천수만년 역사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이미 찾아 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아니 인류는 지금. 수천 수만년 동안이나 찾아 왔으나 결코 찾을 수 없는 '행복이나 평화'라는 이름의 실체 없는 것들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니 헛된 짓이라고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상대적인 것들, 절대적이 아닌 것들에 대해서 사실적인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있다.
삶과 죽음이 본래 없는 이치를 깨달아 알기 위한 방법이 있다.
그대와 인류가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우선... 언어가 상대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분명히 이해 하는 일이다. '유일한 선은 앎이며, 유일한 악은 지식이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에 대해서 이해 해야 한다는 뜻이다. 행복과 불행, 선함과 악함의 분별이 모든 고통의 원인이라는 뜻이다.
'내가 있다는 앎과 내가 없다는 앎'이 분별된 앎이다.
'내가 옳다는 앎과 너는 옳지 않다는 앎'이 분별된 앎이며 고통의 원인이다.
'내가 나다'라는 앎(생각, 말, 마음, 뜻)은 '내가 나가 아니다' 라는 앎과 상대적인 것이다. 그리고 상대적인 것은 주체가 사라짐과 동시에 대상 또한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희로애락, 생로병사'가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그대의 '나 아닌 나' 그것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의 기원이다.
그대와 인류에게 평화 있기를...
일념 명상의 집 '도가'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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