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언어 · 불이일원론

존재의 거듭남 / 헤르만 헷세 - 비밀의 언어

일념법진원 2014. 10. 1. 06:24

- 존재의 거듭 남 -

 

새는 알속에서 빠져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세계이다

다시 태어나기를 원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선악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고

진리의 세계를 얻을 수 없다.

 

소유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고

존재의 세계를 얻을 수 없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파괴하지 않고

지금의 순간을 누릴 수 없다

 

존재의 거듭남은

옛 생명을 파괴하고 새 생명을 얻는 것이다.

 

궁극적 차원의 경험은 경험이 아니다.

그 순간 경험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험자가 없기에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누가 그것을 말할 수 있겠는가 주체가 없으니 객체 또한 없는 것이다.

막힘이 사라지고 공만이 남는다.

앎이 거기에 있지만 아는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모든 깨달은 자, 신비주의자의 문제이다.

 

들은 그 경지에 들었지만 그것을 설명해 줄 수 없다.

지적인 이해를 넘어서 있기에 설명이 불가하다.

그들은 그것과 하나다.

그것이다.

 

그들의 존재만이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지적인 교류는 가능하다.

만일 그대가 받아들일 준비만 되어 있다면 그들은 그것을 전해줄 수도 있다.

그대가 허용한다면, 그대가 수용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다면 그들은 그대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도와줄 수 있다.

 

이론이나 교리 그리고 사상은 아무 쓸모도 없다.

세상의 모든 신비주의자들은 언어의 무력함을 절감한다.

영적인 교류는 가능하다.

언어는 분별로써 존재할 수 있기에 끝없는 분별일 뿐이다.

 

진실은 말로 표현될 수 없다.

일상에서도 그러하다.

미지의 어떤 것이 나를 삼켜버렸다.

더 이상 나는 없었다.

 

그런데 그 어떤 것이 어떤 것이 아니다.

어떤 것도 없었다. 삼켜졌던 나는 없었다.

 

그곳에는 나만이 있었다.

있다 라고 말하는 것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있는 것이다.

오직 또 다른 나만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나다.

 

그대의 눈으로 보이는 그것을 나가 아니다.

그것을 꼭두각시다.

그것에는 마음이 없다.

그것은 이미 내가 아니다.

나는 죽었다.

그대가 보는 그것은 내가 아니다.

 

어떤 일도 무관심하라.

무심할 때 신이 그대를 껴안을 것이며 그때 그대는 신에 흡수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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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거듭남' 이라는 말.

만약에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라면, '존재의 거듭남'이라는 말이 예수의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의 말 중에. '하나님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예수 말하기를. 진실로 진실로 말하노니. 사람이 거듭남이 하나님 나라를 보는 것이요, 성령이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책과 카페에 이미 기록된 글이지만, 이 글에 대해서 설명한 적이 없기 때문에 다시 설명하려 한다.

아직 일념이 깊지 않은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이다.

 

 

 

'존재의 거듭남은 옛 생명을 파괴하고 새생명을 얻는 것이다'

 

예수의 말이 우상숭배사상으로 전파되면서  '천국', 환생, 재생' 등으로 왜곡된 것이며, 석가모니의 말로써는 '불생불멸, 육도윤회, 극락왕생' 등의 수많은 말로 왜곡되어 전해진 것이다.

 

 

 

궁극적 차원의 경험은 경험이 아니다.

그 순간 경험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험자가 없기에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경험자가 없다'는 말. 이 말에 대해서 '나는 없다'고 주장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있으나, 그런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원성인 다양성이 사라진 상태, 즉 '나' 라는 존재가 '한생각의 차이일 뿐' 사실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에 표현된 그대로 '육체가 나라는 생각일 뿐' 이라는 말이니. 이다, 아니다라는 분별된 사고방식으로써는 이해 할 수 없는 말이다. 낮과 밤의 비유설명과 같이 주체와 객체가 모두 없는 상태에 대해서 '본무' '아무것도 없는 것의 완전함'이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며 '空, 無' 등으로 표현된다. 

 

 

 

 

앎이 거기에 있지만 아는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모든 깨달은 자, 신비주의자의 문제이다

그들의 존재만이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들의 존재... 예수의 말이 그러하며, 석가모니의 말이 그러하며, 소크라테스의 말이 그러하며, 노자와 장자의 말이 그러하다. 지금 이곳에 설명되는 수많은 방편설들이 그러하다. 하지만 한생각의 차이이다. 인간은 누구나 '내가 행위자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그들에게는 '행위자가 나가 아니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들의 '내가 있다'는 말과 '내가 사람이다'는 말이 사실에 바탕을 둔 말이 아니라 허구적인 말이다. 왜냐하면... '내가 사람이다'는 말은 근거가 없을 뿐만이 아니라,  '내가 있다'는 말과 '내가 없다'는 말이 상대적인 말이기 때문이다. 한생각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내가 사람이다'고 당연시 하지만... 어린아이시절부터 타인들로부터 들었던 말들에 대해서 맹신하는 것이다. 그런 착각에서 깨어나야만 검증된 삶이라는 말이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의 핵심이다.

 

 

 

그대의 눈으로 보이는 그것을 나가 아니다.

그것을 꼭두각시다.

그것에는 마음이 없다.

그것은 이미 내가 아니다.

나는 죽었다.

그대가 보는 그것은 내가 아니다.

 

사실 이런 말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이 말 또한 올바른 말은 아니다. 다만 그렇게 표현될 수도 있는 말이다.

사실. 마음이 있다는 말도 올바른 말이 아니며, 마음이 없다는 말도 올바른 앎은 아니다. 물론 '나는 죽었다'는 말은 옳은 말이다. 왜냐하면 '나는 죽었다'는 말에서의 '나'라는 말은. 인간의 관념으로 볼때에는 '육체가 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육체의 죽음'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으나, 사실 죽었다는 '나'는 육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든 앎은 육체가 나다는 앎에 바탕을 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육체가 나다'는 생각과 '육체가 나가 아니다'는 생각은 한생각의 차이로써 '육체가 나라는 생각'이 죽었다는 뜻이다. 이는 일념명상법으로써 일념의 무념처에서 사념이 모두 사라졌음으로써 일어나는 하나의 생각이라고 설명된 바와 같다. (두권의 책에... )

 

인간의 무한한 어리석은은 '내가 생각한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으로써 깨달음에 대해서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라며 주절거린다. 심지어 '내가 깨달았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으며, '내가 없다'고 주절거리는 자들도 있으며, 깨달음이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다. 모두 사념들이다. 일념명상법으로써 그 모든 사념, 상념, 이상, 사상등의 모든 생각이 사랴져야만 비로소 드러나는 '나' 가 있다. 그것의 다른 이름들이 '도, 부처' 이다.

 

사실. 일념법, 일념명상법 수행을 통해서 첫번째 알아차림이 있다. 올바른 앎이며, 스스로 깨달아 아는 첫번째 앎이다. 그 올바른 앎이 '생각은 스스로 윤회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라는 앎으로써의 생각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 생각이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아는 것이다.

 

남들의 말을 주어 듣고, 남들의 말, 말, 말재간에 이리 저리 이끌려 다니는 어리석음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 깨달아 아는 앎이기 때문에 올바른 앎이라고 하는 것이며, '진리'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써  '진실된 이해'라는 뜻이다. 

 

인간들의 모든 주장들. 모든 지식들. 모든 앎들.... 모두 하나같이 타인들로부터 주어 모은 것들이 아닐 수 없다. 남들의 말들, 수많은 정보들을 끌어 모아서 그것들에 대해서 '내가 안다'고 '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사실. 남들로부터 듣고 배우지 않은 말은 단 한구절도 없다.

그렇지 아니한가?

 

곰곰히 생각해보라.

타인들의 말을 끌어 모아 그 말들을 조합하여 '나' 며, '내가 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말들에 대해서 옳다, 그르다... 라고 분별하는데, 그 분별 또한 타인들로부터 끌어모은 말들이다. 타인들의 말들에 대해서 또 다른 타인들의 말로써 분별하지만.... 해답은 없다. 왜냐하면, 그대 자신이 스스로 깨달아 아는 앎이 아니라, 그대의 모든 앎들... 타인들의 앎이기 때문이다. 그 다른 타인들 또한 모두가 똑 같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옳다고 주장만 무성할 뿐, 해답은 없는 것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 또한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워서 아는 앎이다. 

하지만, 일념법이라는 말, 말, 말을 아는 앎은 전혀 쓸모 없는 소리이다. '일념'이라는 말을 안다는 것은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흉내내는 것과 같은 것이며, 인간들의 모든 지식 또한 앵무새의 지저귐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들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은.... 인간 지식으로써는 감히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앎을 스스로 깨달아 알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오직 그 방법으로써 생각의 이치와 속성, 즉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기 때문이며, 그대의 삶에 있어서 남들에게 듣지 않고 아는 최초의 앎이며, 진실된 이해로써 의심이 없는 완전한 앎이기 때문에 '진리'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다. 

 

일념법으로서의 깨달아 아는 최초의 앎에 대해서 '생각의 원리' 이며, '생각의 이치와 속성'에 대한 앎이라고 했다. 이런 말 또한 인간세상에서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앎은 스스로 깨달아 아는 앎으로써, 절대로 남들에게 설명해 줄 수 없는 앎이다. 설명해 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아무리 설명하더라도 인간의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써는 절대로 이해가 불가능한 앎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앎만이 진실된 앎이다. 더이상 타인들의 말 따위에 귀기울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며, 다른 모든 정보들이 허구라는 사실에 대해서 깨달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언어는 분별이다. 그 분별된 언어들 속에서 분별이 아닌, 올바른 앎을 분별할 수 있는 고유한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 고귀한 능력을 찾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일념법, 일념명상법이다.

 

 

사실 '일념'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한글로 표현하자면 '한생각'이기 때문이다. 한글을 아는 아이들까지도 아는 말이다. 하지만... 예수의 네 안에 하나님이 있다는 말과 같이... 지식으로써는 절대로 이해가 불가능한 말이다. 

한가지 분명한 비유를 들어보자.

 

'의학의 무지'에 대한 설명에서... '신경. 신경질환' 등의 설명들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지성체들은 '신경'이라는 말에 대해서 이해 한다고 생각한다.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신경'이라는 말의 한자의 뜻을 보면, '귀신 神' 자와 '지날 經'자로써 '귀신이 지난 자리' 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귀신이 지나간 자리'에 대해서 '신경'이라고 아는 자들이... 신경에 대해서 연구한다면, 귀신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사실.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인물들만이 '신경'이라는 말에 대해서 웃어버릴 수 밖에 없는 말이다. 신경이라는 말이 귀신이 지나간 자리가 아니라, 한 생각의 차이로써 생각의 이통통로라고 이해 하기 때문이다. 생각, 생각, 생각의 작용이며, 생각의 원리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라면... 병원, 의사... 여타 인간들의 지식, 말재간 따위들... 그런 말, 말, 말들에 절대로 이끌려 다닐 수 없다는 뜻이다.  '도가'의 모임에서 만나는 인물들... 그들만이 빙긋이 웃을 수 있는 말이다.   

 

 

 

마지막 구절이 아래와 같다.

 

어떤 일도 무관심하라.

무심할 때 신이 그대를 껴안을 것이며 그때 그대는 신에 흡수될 것이다.

 

사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어떤 일에도 무관심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생각하지 말라'라고 해서 생각을 아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을 쉬라고 하지만, 그 생각을 쉴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을 쉰다는 말도 생각을 쉰다는 또 다른 생각이기 때문이다. 생각을 안한다는 말 또한 생각을 안한다는 기억된 수많은 생각들 중에서 또 다른 한조각 생각에 불과한 생각이기 때문이다.

 

생각을 없애야 된다고 주장하는 자들, 사념을 쉬면 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가장 무식하고 어리석은 자들이다. 그런데,, 이런 말 또한 일념을 깨달아야만 사실을 사실 그대로 분명히 이해 할 수 있는 말이다.

 

더 나아가 기억된 생각을 죽여야(버려야) 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가장 무식하고 어리석은 자들이다

왜냐하면, 기억된 생각을 죽여야 된다는 말은, 기억된 생각을 죽여야 된다는 또 다른 생각이기 때문이며, 생각을 없애야 된다는 말 또한 생각을 없애야 된다는 또 다른 생각, 생각,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 생각, 생각, 생각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생멸을 반복 순환 하는 것. 다섯가지 감각기관과 그 앎(識)에 바탕을 두고 일어나기 때문에 '윤회'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라는 사실. 이런 사실에 대해서 깨달아 아는 앎에 대해서 '일념을 깨달아 아는 올바른 앎'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사실. 생각을 할 수 있다는 말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며, 생각을 할 수 없다는 멀 또한 생각을 할 수 없다는 또 다른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생각의 노예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며, 생각의 표현들인. 언어의 노예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의 유희이며 언어의 유희이며, 생각의 굴레라고 한 것이며, 언어의 굴레라고 하는 것이다. 그 수례바퀴 속에서 절대로 빠져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짐승보다 더 뛰어날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며, 무리지어 사는 짐승들을 비유하여 인간무리들, 중생무리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인간들 지식은 온전한 앎이 단 하나도 없다.

마음이 끊임없이 변해가는 까닭이다. 진실된 앎, 올바른 앎일때에는 어느 누구의 말에도 흔들림이 없는 것이다. '도가'의 모임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앎이 그러하다. 그들의 일념을 깨달음을써의 건강에 대한 앎은 확고부동하여 어떤 사람들의 말에도 흔들림이 없다. 설령 어떤 사람이 진귀한 '산삼'을 가져다 주더라도 그들에게 '산삼'은 배추 뿌리나 다름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알기 때문이다. 그들이 몸에 좋다는 음식이나, 보약이나, 보신탕 들에 대해서 건강을 해치는 '독약'과 같다고 생각하는 까닭은, 모든 식물이나 동물들...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의 근원이 모두 하나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알기 때문이다.

 

설령 그들은 건강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근심 걱정이 없다.

사실 '도'를 이해 한다는 것은 자신의 몸의 건강만큼은 스스로 완전하게 치유할 수 있는 권리. 능력을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마음이 평온하니...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며, 일념이 더 깊어짐에 따라 깊어지는 만큼, 꼭 그만큼 근심걱정이 사라지는 것이며, 더 나아가 '별은 별이 아니다'는 말과 같이 '나가 나가 아니다'는 올바른 앎으로써 '존재의 거듭남'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며, 검증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이 평온할때, 그때 비로소 주위 사람들 또한 그 평온함이 전염되기 때문이다. 세상에 불평불만이 없는 사람들....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 뿐이다. 올바른 앎이라면... 불평불만이 있을 까닭이 없기 때문이며, 모든 면에서 긍정적이 아니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백천만겁난조우의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 일념을 깨달아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할때, 일념의 뜻에 대해서 분명히 이해 할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도'의 실마리를 찾은 것이기 때문이며, 대도무문의 빗장을 여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를 이해 한다는 것은 자신의 스스로 열 수 없는. 자신의 마음의 문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함을 이르는 말이다. 

 

'존재의 거듭남'의 해석을 통해서, 그대 자신의 존재가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를... ^^

 

백천만겁난조우의 인연있는자여 그대에게 평화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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