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 이토록 무재몽매한 것일까?
어떤 것들은 '내가 하나님이며, 내 마누라도 하나님이며, 내 자식도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데. 이곳에 와서까지 참사람, 삶과 느낌을 주장하고자 한다.
'내가 사람이다'는 말 조차도 '내가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과 상대적인 말이기 때문에 올바른 앎이 아니라고 함에도 불구하고, 느낌이나 감정따위를 주장하고 싶을까?
느낌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 느낌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 천차만별이며, 천태만상이 인간들의 삶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 천태만상의 인간들... 모두 자연스럽지 못하다. 벌짓들 다하기 때문이다. 야생동물들은 차라리 자연스럽다. 자연이기 때문이며, 그들 스스로에게는 '나' 라는 주체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만이 무위자연의 자유를 누리는 자연 그 자체이다.
인간들의 스포츠 행위들, 음악이나 율동 행위들... 부자연스러움의 극치이다.
인간들 또한 본래 인간이 아니라 자연상태에 속해 있던 것들이다.
먹을꺼리가 풍부해지다 보니. 별짓을 다 하는 것이다.
인간이 본래 감정의 동물이었겠는가?
인간이 본래 느낌이 있었겠는가?
말을 배우기 이전의 아이적에도 그런 느낌이나 감정이 있었는가?
그대는 물론 순수의식의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어린아이들을 볼 수 있다.
사실. 어린아이에게는 느낌이라는 생각이 없으며, 감정이라는 느낌도 없다.
그런 말, 말, 말을 배우므로써 그런 말에 세뇌당한 것이다.
강아지가 길들여지듯이....
참사람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자신들만이 참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사람은 그져 모두 사람이다.
'내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모두 자신이 스스로 '나'라고 알게된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착각이다.
크나큰 착각이다.
그대가 '나'라고 알기 까지는.
그대가 '내가 사람이다' 라고 알기 까지는.
그런 말들을 배워서 익히고, 언어를 구사할 때 까지는.
그대의 부모라는 사람들로부터 수천수만번 끊임없이, 반복해서 듣고 보고 배워서 알게 된 것이다.
'자아' 라고 스스로 알게 된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아니한가?
그런 사실.
설령 그대가 기억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말을 배우는 아이들을 통해서 볼 수 있다.
그대 또한 그 아이들과 같이.... 내가 사람이다, 내가 남자다, 여자다' 라는 인식조차 없었다. 말을 배움으로써 들었던 말들에 대해서 그대로 흉내내기 시작한 것이며, 다른 말들을 배우면서... 타인들로부터 끌어모은 말들에 대해서 '자신의 나' 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그대의 이름 또한 수천수만번 듣고 배워서 알게 된 것이다.
사실 어린아이에게 말을 가르치는 일보다는 앵무새에게 말을 가르치는 일이 더 쉽다.
말을 배우는데 대해서 만큼은 어린아이들보다 앵무새가 더 지능이 뛰어나다는 말이다.
사실 삶의 방식, 즉 생명활동 또한 그러하다.
인간들의 삶이라는 것들 모두가 죽는 날까지 남들과의 경쟁이며 투쟁이며, 서로 잘났다는 방식의 자기 주장들 뿐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자기가 옳다는 모든 주장들이 자기 자신의 앎이 아니라, 타인들의 말들을 끌어모은 것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대의 마음 또한 그대의 마음이 아니라, 타인들의 마음들을 끌어 모아서 '내마음'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대가 스스로 아는 앎은 단 하나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남들로부터 배우거나, 들어서 아는 말 이외에 다른 앎은 있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의 모든 앎에 대해서 겨자씨 만큼도 올바른 앎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곳에 쓰여지는 글들에는 항상 일념법이라는 말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오직 일념명상법으로써만 자신의 자신만의 올바른 앎을 깨달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들로부터 주어 모은 지식 따위들에 대해서 주장하는 무한한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타인들의 말에 이끌려다니는 무한한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만 한다는 뜻이다.
왜 자신을 나를 구성하기 위해서 타인들의 말 따위를 동원해야 한단 말인가?
그대가 스스로 자신을 알때, 그때 비로소 하나님이라고 했던 인물이 예수이다.
'너 자신을 알라, 그렇지 않다면 살아갈 가치도 없다'고 했던 인물이 소크라테스이다.
네 본래성품이 부처라고 했던 인물이 석가모니이다.
왜, 자신의 지고지순한 나를 타인들의 말, 타인들의 부패한 마음에서 나오는 말로써 채우려 하는가?
참사람이라고 생각하든, 참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든... 그것은 그대의 자유이다.
그대의 진정한 나가 있다면, 그것은 그대의 부패하고 부패한 마음이 사라져야만 드러나는 것이다
부패하고 부패한 마음... 그것들에 대해서 사념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망념이며 망상이며 몽상이다.
그대의 '나'에 대해서 '내가 사람이다'는 말조차도 올바른 앎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말 또한 타인들로부터 들어서 아는 말일 뿐, 다른 근거가 없는 말, 말, 말에 불과한 말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이다'는 말은 '내가 사람이 아니다'는 말과 상대적인 말이기 때문이다.
상대적인 말에 대해서 주장한다는 것은. 단견이며, 편견이며 소견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그러니.
내가 사람이다고 주장하지 말라.
참사람이 있다고 주장하지 말라.
느낌이 옳다고 주장하지 말라.
이렇게 하라고 주장하지 말라.
저렇게 하라고 주장하지 말라.
자신만의 편견이며, 단견이며, 소견이기 때문이다.
인생에 해답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평화로울 수 없는 까닭은 이와 같이 자신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인생에 해답이 없는 까닭이며, 모든 고툥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내가 사람이다'는 말이 상대적인 말이며, 편견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 하는 자 있다면, 그가 곧 성인이며, 가치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며, 검증된 삶을 사는 사람이다.
그렇지 않다면, 짐승보다 더 뛰어날 것이 없으니. 하근기 중생이다.
너 자신을 알라
왜냐하면 그것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이 진리이다.
왜냐하면 그대의 마음의 근원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대와 인류에게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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