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언어 · 불이일원론

착한 목자와 삯꾼과 이리와 어린 양 / 부처와 중생 - 지식을 초월한 올바른 앎이란? / 무용지물과 무용지용의 올바른 이해

일념법진원 2014. 10. 14. 05:33

사실 도가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 중에는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서의 일념의 깊이가 깊어져서 올바른 앎을 얻고 더 나아가 올바른 앎이 깊어져 가는 사람들이 많고도 많다. 하지만 그들의 안타까움은 (자신의 앎은 확고부동하여 의구심이 없는 절대적인 앎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면. 종교에 세뇌당하여 광신자, 맹신자가 되어버린 사람들 또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신들린 사람들이 신을 맹신하듯, 종교에 빠진 사람들 또한 오직 '우리가 믿는 신'만이 절대자라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허긴. 현세상에는 '내가 깨달았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많으며, '이것이 깨달음이다, 깨달음은 이런 것이다'는 등, 무지 무식을 드러내는 자들이 많기도 하니... 그것들은 자신들이 깨달았다고 주장하며 말재간을 부리니. 인간의 천적은 인간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사실 올바른 앎이란 그런 착각에서 벗어난 앎을 이르는 말이다. 단적인 예를 든다면... 신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말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 그런 말들을 회피하는 사람들... 소위 이단이나 사이비, 또는 유사 명상집단에 세뇌당한 사람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가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며, 자칫 감정이 격하여 주먹을 휘두르게 되는 일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이다.

 

소위 정치권에서.... 의회에서... 계란을 던지고, 서로가 소리를 지르고, 비난하고, 협박하거나 겁박하는 일들 또한 다르지 않은 현상의 일부이며, 심지어 가족들간에도 서로가 옳다는 주장들이나, 재산 다툼 등이, 그런 상황들과 다를 바 없는 오직 자기만이 옳다는 사고방식으로써의 자기 주장들이 아닐 수 없으며, 인간들의 이런 일상에 대해서 무명이며, 무지이며, 무식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들보다 더 무식하고 어리석은 것들이 있다면... 깨달음에 대해서 까지도 "이것이다, 저것이다" 는 등으로 분별하는 것들이며, '깨달음이 있다, 없다'는 말까지도 서슴치 않는 것들이다. 

허긴. 삶이 힘겹다 보니... 그렇게라도 미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다가 좀 더 나아가다 보면... 어떤 미친놈들처럼, '내가 하나님이다'고 주절거리겠지만, 그 또한 하근기 중생들의 천태만상중 하나이니, 

 

못내 안타까워 웃을 수밖에 없는 인물들... 그들이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다.   

 

 

 

그렇다면, 대체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의 앎은 어떤 앎일까? 

그렇다. 

언어가 상대적인 말들일 뿐., 허구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올바르에 아는 앎이다. 

 

가장 기본적인 사례 하나를 든다면 '신'이라는 것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으로써 '신, 또는 영혼' 등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없는 앎이라는 말이며, 더 깊은 뜻이 있다면... 일념법명상으로써 생각의 이치와 속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써... 신을 비롯한 자신의 마음과 느낌 그리고 자신의 몸 까지도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생각의 환상물질'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할 수 있는 앎으로써... 인간세상의 색다른 어떤 지식에 바탕을 둔 주장들에 대해서도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앎이라는 뜻이다.  

 

 

 

지식은 분별일 뿐, 올바른 앎이 아니다. 

분별이기 때문에 올바른 앎이 아닐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라는 것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타인들의 말, 말, 말들로써 구성된 것들이라는 사실. 그런 사실에 대해서 이해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에 올바른 앎일 수 없다는 말이다.

 

만약에 지적으로나마 마음이 허구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면, 지식을 초월한 앎이며,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할때,  그때 비로소 '도'의 실마리를 찾은 것이며 '도'와 인연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도와의 인연은 귀하고 귀한 인연이기 때문에 '백천만겁난조우'의 인연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도, 도가'와 인연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한가지 더 비유를 든다면.

'도가의 약식'으로써 고혈압이나 당뇨, 당뇨 합병증, 신장질환, 통풍등의 수많은... 모든 질병들로부터 벗어난 인물들에게는 신체의 건강에 대한 염려, 우려는 모두 말끔히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들의 그런 경험, 체험은 더이상 아무리 신비스럽다고 주장하는 의학이나, 각종 민간약제나 보양식 등의 어떤 말들에도 결코 현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가의 '화원'의 상담하는 말을 듣다보니. 버섯에 비유를 드는데. 

 

만약에 버섯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독버섯을 구분할 수 있는데... 설령 버섯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어떤 희귀한 버섯에 대해서 산삼보다 더 좋다고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독버섯이라고 아는 사람은 절대로 그 버섯을 먹지 않는다는 비유이다. 이와 같이 '도가의 약식'으로써 모든 질병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는 인간세상의 모든 의학의 주장이나, 민간약재가 좋다는 주장이나 또는 산삼이 좋다는 주장들, 그리고 맛있고 몸에 좋은 음식이라는 말들... 을 비롯한 인간세상의 모든 지식들이 전혀 가치 없는 주장들이며, 낭설들일 뿐, 올바른 앎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알기 때문에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지 않는다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의심이 없는 앎이기 때문에 '올바른 앎'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언술이 뛰어난 자들이 예수의 말을 왜곡하여 종교를 창조하면서 창조된 말이 '착한 목자'와 삯꾼과 이리라는 말이다. 사실. 예수는 인간들에 대해서 '길잃은 어린 양'에 비유한 것이며, 석가모니는 인간들에 대해서 '중생'이라는 말로 표한 것이다. 사실 노자는 종교나 명상집단 등의 언술이 뛰어난 자들에 대해서 말하기를 '짚으로 만든 개처럼' 취급해야 한다고 했는데. 소크라테스는 그져 살아갈 가치도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말로 표현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 이 글을 보는 그대는...

정녕 가치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인가?

가치 있는 삶을 산다면, 과연 어떤 기준에 따라서 사는 삶이기에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하는가?

사실 내가 보기에는... 이곳의 글들과 인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의 실마리 조차 찾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결코 가치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어떤 사고방식으로 살든,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 앞에서는 삶에 대한 후회와 회한, 두려움과 고통, 그리고 여한만이 남겨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의 말이 왜곡되어 전해지는 '착한 목자'라는 말은 '명색이 부처'라는 석가모니의 말과 같은 뜻이며, 이는 또한 노자의 '도' 라는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다만 언술이 뛰어난 자들에 의해서 '성령, 불성, 불법' 등으로 왜곡된 것이며, 유일자, 천상천하유아독존 등의 말로써 신비화 된 것이다.

 

물론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이해가 불가능한 말들이기 때문에 신비스럽게 여겨질 수밖에 없겠지만, 이곳의 글들로써 지적으로나마 이해가 가능한 까닭은. 그들이 존재하던 시대보다 언어가 그만큼 더 풍부해 졌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의 원리' 즉 생각의 이치와 속성에 바탕을 두고 설명하는 것이다.

 

 

인간들의 지식 수준으로 볼때, 인간세상에서 가장, 가장, 가장 무식하고 가장 어리석은 자들이 있다면... '깨달음이 있다'거나 '깨달음이 없다'거나, '이것이 깨달음이다'라고 주장하거나, '깨달음이 이것이다' 라고 주장하거나, '깨달음이 있다' 고 주장하거나 '깨달음이 없다' 고 주장하는 것들이다. 연기법에 대해서 이해 한다고 주절거리는 자들이다. 

 

 

 

인간세상에는 훌륭한 사람이거나, 위대한 사람이거나, 스타 등의 말, 말, 말들로써 똑 같은 인간들이지만 누구는 위대하고, 누구난 훌륭하고, 누구는 비천하고... 등으로 분별함에 대해서 당연시 하지만, 그야말로 무한한 어리석음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일찍 죽든지, 더 늦게 죽든지, 더 행복하게 보이거느 더 불행하게 보이거나... 사실 인간이라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 보이거나, 어떤 사고방식으로 살거나, 죽거나... 인간들 개개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모두 모두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무게의 삶의 짐을 짊어진채 살다가 죽어서 한줄기 바람과 같이 흔적도 없이 사리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인간세상이 위없는 훌륭하거나 위대한 인간이 있다면 오직 그들 '도를 잘 깨달은 사람들' 뿐이다. '도'와 간격이 사라진 사람들 뿐이라고 하는 까닭은 오직 그들만이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인간들 모두를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오직 그들만이 인간들을... 천지만물을 편애하지 않기 때문이며, 누구에게나 그 길을 알려주기 위한 목적으로서만 존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해 하지 말라.

그들은 스스로 '내가 깨달았다'는 생각도 없는 사람들이며, '내가 잘 안다'는 생각도 없는 사람들이며,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아니며, 내가 훌륭한 사람이라는 생각 조차도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인간들의 앎이 올바른 앎이 아님으로써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알기 때문이며, 올바른 앎이 겨자씨 만큼도 없으면서도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만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며, 후회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그 길을 알리는 것이다.

 

인간들의 삶이 못내 안타까워 그 길과 방법을 전하는 것이며, 그런 앎에 바탕을 둔 방편설들로서 인간들에게 가치 있는 삶을, 검증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전하는 것이다. '내가 행위자'라는 생각이 없기 때문에 '무위'라고 하는 것이며, 나는 행위한 바 없다고 하는 것이며, 행위자가 '나'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육체가 나다라는 앎도 올바른 앎이 아니며, 육체가 나가 아니다는 앎 또한 올바른 앎이 아니라는 앎으로써의 올바른 앎이다. 반면에 인간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내가 사람이다'는 앎으로써 단견이며 편견이며 소견이다. 이런 방식으로 설명한다면... 그야말로 한생각의 차이일 뿐,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이해 할 수도 있는 일이다. 

이런 글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낯선 말이겠지만...

 

 

사실 그들에게는 '내가 잘났다'거나 '내가 훌륭하다거나' 내가 위대하다거나, 내가 성스럽다거나' 등의 망념이나 망상, 사념이 없다. 단지 올바른 앎이 아닌 앎으로써 자기를 주장하는 자들에 의해서 그런 방식으로 왜곡되어 전해지는 것이다. 그들에게 그런 망상이 없는 이유는. 자신의 앎이 특별하거나 대단한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며, 보편타당한 앎이기 때문이다.

 

사실 평생동안이나 나라고 알던 나가,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일념의 무념처에서는 '나가 나가 아니다'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당연한 앎에 지나지 않는 앎이기 때문이다. 인간들의 모든 앎이 올바른 앎이 아니라, 편견이며, 단견이며 소견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육체가 나다'라는 최초의 앎이 상대적인 것들 중에 하나에 대해서 '나'라고 아는 앎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의 시작이 올바른 앎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서로간의 갈등에서 빚어지는 다툼이 죽는 날까지 끊임없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지금 그대의 삶은 어떠한가?

 

 

사실 모든 경전이라는 책자들은 인간을 우상숭배사상으로 길들이기 위한 잡서들이다. 

사실 일상에서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인간들은 누구나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행복하거나 평화로운 삶일 수 없는 이유가 세상탓이거나, 사람을 잘못 만난 탓이거나, 부모의 탓이거나... 다른 사람들의 탓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인간들 모두가 그런 사고방식이기 때문에 세상은 평온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모두가 피해자라면, 모두가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명분은 그럴 듯 하지만, 모두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며, 육체가 나다라는 편견, 단견, 소견에서 비롯된 견해들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선한목자는 길잃은 어린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내 놓지만, 삯꾼은 목자가 아니며 양도 자기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면  양을 버리고 달아난다'는  성경에 기록된 말에 대해서... 그렇다면 삯꾼은 무엇이며, 이리는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는 질문이 있었다. 

그 질문에 대해서 다른 각도로써 설명하자면. 

 

선한 목자라는 말은 석가모니의 말로 전해지는 '불타, 부처'라는 말로써 인간들의 삶이라는 것이 가축이나 짐승들과 다르지 않은 무리들로써 가치 없는 삶을 산다는 뜻이며, 올바른 앎일때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며, 소크라테스의 말과 같이 삶과 죽음의 한계를 벗어난 검증된 삶을 사는 것이라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또한 소크라테스가 올바른 앎을 전함에 있어서 독배를 달게 마시는 일과 같이 '도를 잘 깨달은 자'들의 삶은 오직 인간들에게 올바른 앎을 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일 뿐, 목숨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해 한다면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이며, 현명한 사람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목자, 착한 목자라는 말로 비유될 수 있다.

 

 

사실. 예수의 말에는 '하늘에서 보니. 선한 인간이 단 하나도 없다'는 말이 있으며, 부패하고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인간들의 마음이 사실상 허구적인 것들이지만, 그것을 깨달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실적으로 여긴다는 전제하에 하는 말로써 인간의 마음이 다른 것이 아나라 마음의 바탕이 욕망이기 때문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더라도 결국 욕망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무지에 빠져 있다는 뜻이다. 

 

 

'하늘에서 보니' 라는 말은 '하늘에 올라가서 본다'는 뜻이 아니라, 육체가 나라는 착각에서 깨어나서 보니, 라는 말로써 인간들만의 오직 '육체가 나다, 내가 사람이다, 내가 여자다, 내가 남자다'라는 단견, 소견, 편견에서 벗어나 보니, 라는 말이라고 이해 한다면, 현명한 자이다.

 

인간이 어리석어서 '내가 하나님이다'고 주장하는 자들에 이끌려 다니거나, '내가 깨달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말에 이끌려 다니거나, 신을 받았다는 말에 이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까닭은 말, 말, 말들에 대해서 사실적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타인들의 말, 말, 말들에 의해서 구성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가 삯꾼이라고 말을 했다면, 그 삯꾼들은 다른 것들이 아니라, 예수의 말을 옮겨서 종교를 만든 언술이 뛰어난 자들을 일컷는 말이며, 이리들 또한 여타 종교나부랭이들을 두고 하는 말이며, 더 나아가 인간들간에 전쟁을 주도 하게 하는 모든 지식층들을 일컷는 말이다. 그리고 길잃은 어린 양들이라는 말은 그런 자들... 올바른 앎은 겨자씨 만큼도 없음에도 불고하고 언술이 뛰어난 자들의 말이 이리 저리 이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중생들을 일컷는 말이라고 이해 한다면...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며, 현명한 자들이다.

 

 

 

사실 불치병이나 난치병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의학이나, 한의학이나, 민간의학, 자연의학 등의 말, 말, 말들, 말재간들에 이끌려 다니는 일들 또한 길잃은 양무리들이며, 중생들이라고 이해 한다면,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며, 올바른 앎으로써 '도'와, 또는 '도가'와 인연있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이며, 그들의 인연에 대해서 백천만겁난조우의 인연이기 때문에 귀하고 귀한 인연이라고 하는 것이다.

 

 

노자의 말 중에는 '무용지물'이라는 말과 '무용지용'이라는 말이 있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라면, 인간세상의 모든 지식들에 대해서 쓸모 없는 것들이며, 가치 없는 것들이라는 뜻으로써 '무용지물'이라고 아는 올바른 앎을 증득하는 것이며, 그런 지식들이 무용지물이지만, 올바른 앎을 실천하기 위한 방편으로 쓰일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무용지용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무용지용에 대한 실 사례를 든다면. 

동의보감에 기록되었다는 타액의 중요성에 대한 설명과 현대 의학에 의해서 알게 된 '타액의 독성이 황소 다섯마리를 죽일 수 있는 맹독성이며, 활성산소를 억제할 수 있다'는 지식들... 그리고 인체를 구성하는 세포들의 교환주기가 부위에 따라서 다소 차이가 있으나, 3개월 내지 6개월 마다 지속적으로 새로운 세포로 교체된다는 것들이며, 더 나아가 태아가 형성되는 양수의 경우 염분농도가 약 1퍼센트라는 것 등이며, 건강에는 충분한 물이 필수적이라는 것 등이다. 그러니. 도가의 약식을 설명하기에는 쓸모 있는 지식이기 때문에 무용지용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도가의 약식은 그런 지식들에 바탕을 두고 창조된 것이 아니라, "지식으로 설명하는 방식으로 볼때..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 '진리'" 라고 표현한 바와 같이. '도가의 약식'은 진리에 바탕을 둔 방식이며, 진실된 앎에 바탕을 둔 방식이며, 인간생명체가 본래 유기체라는 사실에 바탕을 둔 방식이며, 더 나아가 우주의 근원에 바탕을 둔 앎에 의해서 창조된 것으로써 오직 도를 공부하는 사람들과 또는 그 사람들과 인연있는 사람들의 모든 질병이 완전하게 치유된다는 사실에 대해서 확인하게 되었는데. 

 

사실. 현대의학으로써는 당뇨나 합병증 등을 비롯하여... 특히 이미 기능이 저하된 신장등의 장기들이 정상적으로 회복되는 일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정짓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도가의 약식'으로서는 각종 장기 기능이 병들기 이전의 건강한 상태인 정상기능으로 회복된다는 사실이 의학기술의 검사로써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현대의학 등의 지식으로써는 간장 및 신장기능의 회복은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소리, 즉 어불성설이라는 인식 때문에 '도가의 약식'에 의한 치유원리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설명은 가능하지만... 지식을 맹신하는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며, 귀하고 귀한 '인연이 있는 사람들만이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의학이나 한의학 등의 지식들에 대해서 알게되었는데, 사실 도가의 '화원'과 '은주'의 노력에 의한 결과들이 지식은 사실 무용지물로써 쓸모 없는 것들이지만, '도가의 약식'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지식으로써 이해 할만한 합리적인 말들이 있기 때문에 '지식은 무용지물이지만 무용지용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다는 뜻이다. . 

 

 

사실 좋은 일이 있다면 꼭 그만큼 나쁜일도 있는 것이다. 두사람이 싸우면 한사람은 승리자이며 한사람은 배자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와 같이 도가와의 인연으로써 세상에서 가장 큰 이득을 얻는 사람이 있다면, 값비싼 건강식품을 파는 사람들에게는 이익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며, 병원이나 한의원이나, 기타 고급음식을 파는 사람들에게는 장사할 대상이 줄어드니, 손해를 보는 일이라는 뜻이다. 

 

'도가의 약식'으로써 건강한 몸을 되찾은 사람들이라면, 더 이상 '몸에 좋은 음식이나, 건강식품이나, 한약재 등의 모든 건강식품들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독버섯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분명히 알기 때문이다. 

 

 

 

참으로 올바른 앎이란 스스로 체험을 통해서 아는 앎이지만, 그 체험 또한 각자 다르기 때문에 결코 올바른 앎일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진정한 올바른 앎이란 오직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깨달아 아는 앎에서부터 시작된 앎이다.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남들, 타인들의 말에 이리저리 이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들의 마음이라는 허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념법, 일념명상법이 유일한 길이며, 진리라고 하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이해 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귀하고 귀한 인연 있는 자들이여.

그대와 인류에게 영원한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