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신화에 불과하다.'라는 책의 첫 장에 나와있는 포기선언문을 읽어본다면 당신은 U.G 크리슈나무르티에게 무엇인가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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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두-크리슈나 무르티 그는 누구인가?
신지학 협회가 그를 발견해 세계의 새로운 스승이 되기를 기대했다는 '별의 제단'을 해체하면서, 라는 글로 시작되는 요지가 아래와 같다.
생각(사고)은 시간이다. 생각은 시간과 과거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경험과 지식에서 생겨난다. 시간은 인간의 심리적인 적이다. 우리의 행위는 지식 그리고 시간에 기반을 두고 있으므로 인간은 항상 과거에 사로잡힌 노예가 된다. 생각은 늘 제한되어 있고,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는 갈등과 투쟁 속에서 살아간다.
자신의 사고의 움직임을 깨달아 알기 시작할 때 인간은 생각의 주체와 생각, 관찰자와 관찰 대상, 경험과 경험자 사이에 분리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분리가 망상임을 알게 된다. 그때야 비로소 과거나 시간의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는 통찰, 즉 순수한 관찰이 생겨난다.
초시간적인 이러한 통찰이 마음속에서 깊은 근본적 변전을 일으킨다. 총체적 부정이 곧 (그 뒤에 드러날) 긍정적인 것의 본질이다. 사고가 심리적으로 불러일으켰던 온갖 것들이 부정되면, 그때 비로소 (긍정적인 차원을 대표하는) 사랑이 나타나는데, 사랑은 자비이며 지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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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간들의 무한한 어리석음이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 하거나, 동경한다거나, 또는 그들을 우상으로 떠받들기를 좋아 하거나, 또는 그들의 말을 지식으로 이해하여 제 잘난체 하기 위한 도구로 삼으려 한다는 것이다. 특히 지성체들의 그들의 말에 대한 해석들이 그러하며, 노자와 장자를 해석하거나, 소크라테스를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그러하다.
사실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만이 이해 할 수 있는 말이겠지만... 그나마 노자와 소크라테스, 그리고 석가모니와 예수를 비유로 든다면, 그들의 존재하는 방식에 대해서 상상할 수 있다면.... 지식으로써도 이해는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그들의 말의 깊은 뜻과 또는 그들의 지식의 정도에 대해서 설명하려는 것이다.
사실. 위의 두사람의 글들로 본다면,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앎임에는 틀림이 없다.
'라마나-마하리쉬'의 제자라는 '슈리푼자'의 말보다 더 높은 경지? 에 이른 인물들이다. 물론 '라마나-마하리쉬'의 존재로 볼때, 그는 '소크라테스, 예수, 석가모니, 노자' 등의 앎과는 또 다른 점이 있다.
그 다른 점이란, 앎은 올바른 깨달음의 앎이지만... 올바른 앎을 전하기보다는 그져 그 지역의 통념에 따라 '인격신'으로써 존재했기 때문이며, 그의 가르침이 헛된 우상숭배사상으로 전락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의 제자라는 '슈리푼자'라는 사람은 그의 곁에서 십여년간 동거동락했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곳 도가를 찾는 인물들...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들의 올바른 앎에 비교한다면, '도의 언어' 즉 올바른 앎의 측면에서 본다면.... 슈리푼자 역시 하근기 중생이며, 일념조차 깨닫지 못한 말재간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유지'의 말에는 참으로 옳은 표현들이 많다.
지식의 한계를 넘어선 말들이다. 기존에 갖고 있던 인간들의 신념체계를 완전히 깨버리는 충격적이라는 말 또한 옳은 표현이며, 단지 '마음이 허구적인 것'이라는 말 한마디만으로써도 그의 앎은 가히 지식으로써는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깨달음의 경지로써는 미숙하기 이를데 없다.
왜냐하면.
물론 판권을 주장하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예수의 말과 같이 '나의 말을 너희의 관념, 지식 따위로써는 옮기지 말라고 해야 하는 것이며, 그 이유는 현시대의 종교들과 같이 서로가 진리라는 주장들에 의해서 편을 가르게 되는 일이며, 전쟁을 예고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더욱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예수의 가르침이나, 석가모니의 가르침'과 같이 깨달음을 얻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는 단 한구절도 올바르게 언급한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인간들이 그 말을 듣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그나마 그런 여지만이라도 남겨 두었다면, 그 길, 올바른 앎의 길, 진리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밝은 빛으로 남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소크라테스 또한 깨닫기 위한 방법, 즉 일념법... 등의 법에 대한 설명은 없었으나, '나는 너희가 원한다면, 그것을 설명해 줄 수 있다'는 말로써... 이곳에 설명되는 '명색의 동일시'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유지. 지두... 크리슈나, 라는 명칭들... 그들의 글을 보면서 일어나는 생각은
이나라에 한시절 명색이 '성철스님'이라는 사람과 명색이 '법정스님'이라는 사람들의 행위들이다.
세간에 넌리 알려진 인물들이며, 전자는 '내가 죽으면 지옥에 갈 것이다'라는 말로써 석가모니의 가르침의 기본이며 기초적인 '일념조차 깨닫지 못한 인물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 그러니... 그러니 차라리 하근기 중생의 진솔한 고백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무소유를 주장하던 '법정'이라는 사람 또한 똑 같은 중생이지만... 그의 말은 '성철'보다 더 낮은 하근기 중생인 것 같다. 왜냐하면, 유언 같은 것은 남기지 않겠다던 자가, 자신이 죽으면 책의 출판을 중단하라는 유언으로써 세상을 시끄럽게 했기 때문이다.
가장 낮은 단계의 중생들의 아상이다.
사실. '유지'의 앎은 참으로 올바른 앎으로써 깊은 앎이며, 가치 있는 앎이지만... 인간들에게 망상만 더하게 할 뿐, 삶에 이익되거나 도움이 될 수 없는 앎일 뿐만이 아니라, 판권에 대한 말이나 또는 임의로 해석하든 말든 당신들 마음대로 하라는 말을 볼때, 오쇼-라즈니쉬의 헛소리- 여행과 유사한 짓이며, 더 나아가 '내가 죽거든 출판을 금지해 달라'는 '법정'이라는 중생 또한... 그런 무리들과 같이 오직... 명성에 눈먼 봉사들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 하나만큼은 이해 해야 하는데. 유지, 지두.. 등의 앎은 지식을 뛰어 넘어 아는 올바른 앎이며, 성철, 법정, 오쇼-라즈니쉬 등이나...이나, 옛 선사라는 사람들의 앎, 또한 '언술이 뛰어날 뿐, 올바른 앎은 겨자씨 만큼도 없다는 것이다.
사실. 지두-크리슈나의 말들 또한 그 깊이가 충분히 깊어졌음을 볼 수 있는 말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과거에 묶여 있으며, 지금 여기에 사는 것도 아니며, 현제를 사는 것도 아니며, 끊임없이 과거를 만들어 나가는 것 뿐이라는 설명이.. 책의 내용이며, 이곳 카페에서 설명하는 말들인데...
'지두-크리슈나'의 말들 또한 생각(사고)은 시간이다. 생각은 시간과 과거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경험과 지식에서 생겨난다. 시간은 인간의 심리적인 적이다. 우리의 행위는 지식 그리고 시간에 기반을 두고 있으므로 인간은 항상 과거에 사로잡힌 노예가 된다.'라고 하니.
오쇼-라즈니쉬 또는 슈리푼자 등의 올바른 앎이 없는 언술에 비교한다면.... 도를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는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다만 한가지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그렇다면 언제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그런 사실에 대해서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만약에 달마대사라면.... '마음을 찾아 보시요' 라고 말을 했을 것이며, 석가모니라면, 그의 기록된 말과 같이...'무상한 것은 나가 아니며, 수생행식도 이와 같다, 그러니 그것을 관찰하라'는 말로써 '일념법'을 설했을 것이며, 예수라면... 하루종일 기도하라는 말로써 같은 방식으로 '일념법, 일념명상법'을 설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가 예수나 석가모니가 존재했던 수천년 전이 아니기 때문에... 현 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언어로써 설명하는 것이며, 현시대의 언어로써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념법, 일념명상법'이라는 말로써 표현하는 것이다.
사실 소크라테스나 석가모니라면... 별의 제단을 해체 할 일이 아니라, 그런 상황이라면, 신지학 협회가 있었다면... 그리고 그 방법에 대해서 분명히 아는 앎이라면... 그 장소에서 그 길을 전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 길을 알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도'를 올바르게, 잘 깨달은 자라면 누구나, 그런 일 이외에는 굳이 해야 할 일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며, 오직 그 길만이 인간들의 고통을 소멸할 수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며, 인간들에게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평화가 무엇인지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도를 공부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과 죽음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겠지만... 궁극에서는 '나가 나가 아니다'는 사실에 대한 올바른 앎으로써... 인간세상을 조금이나마 평화롭게 하기 위한 일을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자신을 위해서는 더 이상 해야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명색이 '도를 깨닫은 인물'은 동시대에 둘이 있을 수 없다. 이는 여러 사람이 동시대에 깨달을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사실. 올바른 깨달음이라면... 그는 우선 자신보다 '먼저 깨달은 사람'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며, 만약에 먼저 깨달은 사람이 존재할 경우에는, 그의 제자로써 그를 보필하여, 더 많은 가르침의 길을 돕는 일이 전부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사람 또한 그렇기 때문에 '깨달음의 실체를 밝힌다'라는 책을 쓰기 전에...
그런 생각이 먼저 일어났기 때문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철학자'들은 물론이거니와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람들, 그리고 '신비주의자'들에 이르기 까지 모두 검색해 본 연후에 비로소 출판을 결정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사실 인간들의 논리는 논리적일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언어의 기원을 모르기 때문이며, 인간이지만 인간의 기원을 모르기 때문이다. 반면에 깨달음의 앎은 언어의 기원을 아는 앎으로써 절대적인 앎이며 논리적인 앎이며, 독보적인 앎이다. '독보'라는 말은 홀로만 아는 보물로써 남들이 뺏거나 훔쳐갈 수 없는 앎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천지자연이 인간들을 품듯이 인간들에게 베풀지만, 인간이 어리석어서 그 뜻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평화로울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방편설들로써 인간들에게 그 뜻을 전하는 것이며, 그 방편설 중의 첫째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써의 '일념법, 일념명상법'이며, 그에 대한 과정에 대한 설명들과 함께 마음의 조화, 마음의 실체 및 허구성에 대한 설명들이며, 둘째가... 인간들의 모든 질병이 치유되는 '도가의 단식' 방법과 '도가의 약식' 방법으로써 '도'와, 인연 있는 이들이 '도가'와의 인연을 맺게 하기 위한 방법 등이며, 여러 성인들의 말들에 대한 해설들 또한 방편의 일환이다.
깨달음이란, 타인들의 말로써 이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이해 함에서 시작될 수 있는 것이며, 궁극에서는 '육체가 나다'는 착각에서 깨어나므로써 삶이 삶이 아니며, 죽음이 죽음이 아니기 때문에 무위자연의 자유를 누린다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예수의 구원, 천국이라는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며, 석가모니의 불생불멸이라는 뜻이며, 극락왕생이라는 말의 뜻이며, 환생, 재생, 거듭남, 환골탈태, 해탈, 삼매, 성불, 불성, 열반... 등으로 표현되는 말들이 모두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만약에 자금 그대의 삶이 행복하여 평화로운 나날들이거나, 또는 그대의 과거를 되돌아 볼때, 단 하룻동안만이라도 근심 걱정 없는 날이 있었다면... 후회없는 삶일 수 있다면... 가치 있는 삶일 것이다. 하지만 그대가 '내가 사람이다'고 아는 앎에 대해서 당연하게 여긴다면... 결코 가능할 수 없는 일이다.
사실 이런 말들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있다면,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들만이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죽음이 없는 검증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대 자신의 나를 이해 한다는 것, 가치 있는 삶의 시작이다.
그 법, 방법에 대해서 일념법, 일념명상법이라고 한다.
인연있는이에게 영원한 평화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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