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아카데미. 풀라톤에게 진리를 묻겠다는 자들이 현시대의 지식이라는 빛 좋은 개살구이며, 지식의 한계인 것 같다. 사실 현시대 지식층이라는 자들 대다수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흉내내거나, 공자와 맹자의 말을 흉내 내는 것 같다.
만약에 지식이 쓸모 있는 것이며, 교육수준이 높아져서 지식 수준이 더 높아졌다면 아득한 옛시대에 존재했던 사람들의 말들로써 서로가 지식을 견주는 일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인간들 문명의 발전의 최후시점이 현시대이기 때문이다.
발전이라는 것들...자세히 보면, 참으로 가관이 아니다.
왜냐하면, 기껏해야 옛 고대인들의 삶에 대해서 재확인하는 일들이거나 또는 옛 사람들의 헛소리들에 대한 연구가 고작이기 때문이다. 고대의 사람들의 삶보다, 옛 사람들의 지식수준보다 더 뛰어난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지식이 발전되었다면, 옛 사람들의 말은 쓸모 없는 것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지식들로써의 발젼의 결과라는 것들을 보면 더 가관이 아닐 수 없다.
현시대의 실상은 전파를 통해서 누구나 볼 수 있다. 다만 어떤 관점에서 보는가에 따라서 그 차이는 천지 차이이다. 조금만 올바르게 볼 수 있다면, 인간세상의 발전상들의 무한한 어리석음에 대해서 직시할 수 있을 것이며, 지식을 맹신하는 광신자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보는대로 듣는대로, 이리 저리 이끌려 다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메스컴이라는 것들 또한 모두가 자신들의 권익을 위한 집단들이며, 인간들 또한 모두가 철저한 이기주의자들이 아닐 수 없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죽는 날까지 경쟁과 투쟁을 일삼는 일에 대해서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며, 그대 또한 그들 중 한사람으로써 똑 같은 짓을 죽는 날까지 반복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다가오는 죽음 앞에 다가서서야 비로소 후회와 회한만을 남기니.... 인간들의 존재, 삶들... 우주보다 더 무한한 어리석음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사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의 말들... 진리가 아니라 무지에 바탕을 둔 지식이며, 언술이 뛰어난 어리석은 중생들들의 말재간들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라고 주절대지만 사실. 소크라테스의 진실된 말에 해서는 단 한구절도 이해 할 수 없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소크라테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자라면... 그 따위 말재간을 부릴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의 관념들,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써는 소크라테스의 말에 대한 이해는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예수의 말도 그러하며, 석가모니의 말도 그러하기 때문에... 인간세상은 행복이나 평화를 추구할 뿐, 우주를 여행 하는, 현시대까지도 갈등과 투쟁, 전쟁이 끊임없이 어어지는 것이다.
만약에 그것들이 소크라테스의 '유일한 선은 올바른 앎이며, 유일한 악은 지식'이다는 말 그 한구절에 대해서라도, 다만, 지적으로나마 이해라도 할 수 있었다면... 감히 자신들의 언술 따위에 대해서 '진리'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세상은 대학에 대해서 '진리의 전당'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 같다. 아니다. 대학은 진리의 전당이 아니라, 무지를 가르치는 곳으로써 인간이 인간과 인간들간의 서로간의 더 뛰어난 경쟁을 위한 언술을 가르치는 곳이며, 자존심을 가르치는 곳이며, 더 나아가 경쟁, 투쟁, 전쟁을 가르치는 곳이다. 각종 종교나 명상집단들이 뛰어난 언술로써 서로가 진리라고 주장하며 편을 가르는 일에 최선을 다하듯, 대학이라는 곳들 또한 그와 유사한 다른 방법들의 언술로써 서로간의 경쟁, 투쟁, 전잳을 가르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인간지식의 한계는.
현시대까지도 더 좋은 음식, 더 좋은 약들을 찾아 헤맨다는 것이다, 만약에 지식이 올바른 앎이라면 어찌 지식이 최고조에 이른 현시대까지도 아득한 옛날 사람들의 허구적인 말들을 쫒아다닐 수 있겠는가말이다. 텔레비전이 진리인가? 그대 또한 텔레비전이 진리라고 생각하는가?
그것들의 행태를 보니. 참으로 우주보다 더 어리석은 것들이 인간이라는 생각이다. 우주보다 더 무한한 어리석음이 인간들이 믿는 지식이며, 인간들은 그 터무니 없는 지식이라는 함정에 매몰된 것 같다.
지식에는 '식자우환'이라는 말도 있으나, 그 뜻 조차도 이해 할 수 없는 앎이 지식이다. 지식으로써는 절대로 인생의 해답을 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지식으로써는 결코 생명의 비밀, 신비, 근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며, 인간 존재의 이유조차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식자우환이라고 하는 것이며, 지식이 많으면 많은만큼 서로가 잘났다는 상만 늘어가기 때문에 절대로 화합할 수 없는 것이다.
삶이 전쟁이다.
끊임없는 다툼, 논란, 경쟁과 투쟁들, 그 전쟁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어찌 무한한 어리석음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사실. 인간이 죽는 날까지 재물이나 명성을 쫒는 이유는, 자신이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완전하게 무지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자신 스스로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자신 스스로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스스로 만족하여 평화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들의 자신에 대한 이해 즉 자신의 행복이나, 자유, 평화를 누릴 수 없는 까닭은 자신의 지식으로 가공된 마음으로써가 찾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들의 말과 타인들의 시선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며, 타인들의 말, 말, 말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사실은 자신이 자신을 모르기 때문에 타인들로부터 자신을 인정받기를 원하는 것이며, 죽는 날까지 남들의 시선을 두려워 하는 것이며, 남들로부터 인정받기위해서 애쓰는 것이다.
사실. 그대의 창조, 그대 자신의 존재 또한 그러하다.
그대가 그대 자신에 대해서 이해 한다는 것은, 그대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이해 하는 것 같지만, 그대가 그대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이해 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들의 마음, 즉 타인들의 지식에 의해서, 타인들의 말을 들어서, 타인들의 책들을 통해서, 타인들의 말, 말, 말들을 종합하여 '나는 이런 사람이다' 라는 방식으로 그대를 창조한 것이다. 즉 타인들의 말에 의해서 가공된 것이 그대 자신의 '나' 라는 말이다. 만약에 타인들로부터 듣고 보고 배운 지식이 없다면, 지식에 의해서 생겨난 마음이 없다면, 그대는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해 조차 불가능한 것이다. 사실 (그대의 나 = 타인들의 말, 지식)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그대는 우주자연의 원리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타인들의 말, 말, 말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다. 보고 배우고 익힌 익힌 모든 앎, 지식, 마음, 감정, 느낌, 생각들.... 그대 자신만의 고유한 것도 아니며, 특별한 것이 아니라, 타인들로부터 끌어 모은 지식이라는 말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그런 그대의 나가 아니라, 타인들로부터 가공되지 않은, 다른 그대의 나가 있다.
타인들의 말에 의해서 가공 조합된 나가 아니라, 스스로 완전한 '나' 가 있다.
'그것'에 대해서 '천상천하유아독존' '유일자' '절대자' '전식자' 등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것" 에 대해서 우주의 근원이라는 말, 생명의 비밀이라는 말 등으로 표현되는 것이며, 창조자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며, "그것"에 바탕을 둔 말들에 대해서 '진리', '진리의 말' 또는 '하나님 말씀, 부처님 말씀' 등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하늘에서 보니... 가 아니라, 하늘의 관점에서 보니, 인간들 삶이 죽음을 향해서 질주하는 것과 같다.
한켠에서는 좋은 음식, 맛있는 음식... 더 좋은 보양음식, 더 좋은 약제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광고하며, 맛있는 음식이 삶의 목적인 것 같다. 그런데, 한켠에서는 그런 목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그런 몸에 좋다는 음식들을 먹고 즐기기 위해서 살던 사람들이, 그 사람이, 그 장본인들이 대장암, 위암, 간암, 백혈벙 등의 수많은 불치병이나 난치병으로 사경을 해메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마음에 속아 투병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고 사는 것이 '잘사는 삶'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먹지 못하고 죽는 것보다는 먹고 죽는 편이 더 나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런 앎들에서 생겨나게 된 어리석음이 우주보다 더 무한한 것 같다.
사실. 불치병에 걸리는 사람들이 의사가 아니거나 약사가 아니거나 한의사가 아닌 것이 아니라, 사실. 직업과는 전혀 상관 없는 것이다. 사실은 삶이 삶이 아니라 죽음이 목적이 아닐 수 없으니, 인간들 모두가 불치병 환자가 아닐 수 없다. 사실. 명예나 재물이나 지식의 고하를 막론하고 현시대 인간들 누구나 불치병에 걸릴 확률이 99퍼센트라는 뜻이다.
물론 항상 예외는 있다.
진리에 눈뜬 사람이라면 불치병, 난치병, 치매, 갱년기... 등의 말, 말, 말들과는 상관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설령 그런 불치병에 걸린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능력이 아니라, 지식의 한계를 뛰어 넘는 올바른 앎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대의 마음이 곧 지식이다.
지식을 믿는다는 것은 곧 미신을 믿는 것이다.
지식의 바탕이 하늘에서 내려온 단군신화에 바탕을 둔 것들이며, 이와 같이 미신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 여전히 신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진리에 대해서 이해 한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다.
'신, 절대자, 영혼'이라는 것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올바른 앎이라고 하는 것이며, 진리를 이해 하는 앎(광명의 빛, 지혜)이라고 하는 것이다.
'깨달음의 실체를 밝힌다' 라는 책을 쓰기 전에 인간세상을 샅샅이 둘러 보았다.
오랜 사유 끝에 인간들 삶이 못내 안타까워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인간들의 삶에는 온통 고통만 가득했기 때문이다.
서로가 진리라고 주장하지만, 진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남겨진 글들은 진리가 아니라, 언술이 뛰어난 자들의 괴변이었기 때문에 설명할 가치가 없었다. 사실. 지식으로써는 진리를 볼 수 없다. 지식으로써 진리를 볼 수 없는 까닭은, 인간은 절대로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분법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대상'과 상대적인 '나(자아)' 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논리적으로 보더라도 근거 없는 주장이다.
인간들의 '내가 있다, 내가 사람이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보더라도 단견, 소견, 편견이다. 그렇기 때문에 근거가 없는 주장인 것이다. 설령, 신이 있다고 주장하더라도 그 신 또한 '있다'는 근거가 없다. 사실. 인간들의 '신'이 있다는 주장은 무턱대로 주장하는 것이며, 인간들의 '우리가 사람이다'는 주장 또한 무턱대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주장들과 같이 종교들이 서로가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며, 무속인들이 신을 믿는 것과 똑 같은 믿음인 것이다.
사실. 아마도. 책 '비밀의 언어' 에는. 국가관이나 기타 인생관 등에 대해서 설명되었을 것이다.
이곳을 통해서 옛 사람들의 말에 대해서 설명하는 까닭은, 지식으로써도 '진리'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을 만큼 현시대의 지식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이며, 논리적이라는 말에 근거하더라도 지적으로나마 이해가 가능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은 지식의 앎으로써도 '인간들의 지식의 바탕이 논리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만큼은 분명히 이해 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 했기 때문이다. 사실. 지식은 비논리적인 사고에 대한 주장들이 아닐 수 없지만, 진리는 지극히 논리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지식은 소크라테스의 말에 대해서는 토론을 기피하는 것 같다. 사실 지식은 그토록 비겁한 것이다. 올바른 앎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올바른 앎이 아니기 때문에 편을 가르는 것이며, 어리석은 자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 모으기 위해서 온갖 말재간을 부리는 것이 지식이다. 용감한 척 하지만, 사실 가장 비겁한 인간들이 지식을 주장하는 자들이며, 지식으로써 진리를 가장하는 자들이다.
그대가 진정한 지식인이라면, 소크라테스의 "유일한 악은 지식이며, 유일한 선은 올바른 앎이다'는 말에 대해서 지적으로나마 이해 해야만 한다. '선함과 악함'의 분별이 죄악이라는 말이며, 정의와 불정의의 분별이 악이라는 말이며, 사실은 '나와 너' 라는 분별심이 '선함'이 아니라 '악함'이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의 말 또한 그러하며, 석가모니의 말 또한 그러하다.
지식은 분별이며 논리적이지 못한 주장인 반면에 진리는 논리적이며, 분별이 사라진 앎이다.
지식은 서로간의 분별로써 불평불만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진리는 평등하여 평화로운 것이다.
지식은 '나와 너' 라는 분별로써의 다툼이며, 진리는 나와 너, 그리고 우주가 둘이 아님을 아는 앎으로써의 평등이며, 평화이다.
올바른 앎은 지식을 추구하지 않는 앎이다.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다.
진정 자유로운 사람은 자유를 갈망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대가 본래 그런 사람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깨달아 아는 방법이 있다.
그 법에 대해서 일념법, 일념명상법이라고 한다.
인생의 길이기 때문에 '道' 라고 한다.
시공간을 초월한 앎이기 때문에 '진리'라고 한다.
고통이 본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무고집멸도'라고 한다.
진리와 인연있는 이에게 영원한 평화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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