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지성체의 허구

인류 최후의 날/ 노스트라다무스 예언/ 인류의 총체적 무지와 어리석음의 한계 - 진리란?

일념법진원 2014. 12. 15. 08:28

노스트라다무스의 인류 최후의 날


미셀 노스트라다무스(1503~1566)는,
전생이 기독교의 천사장인 미카엘 (Michael)이라고도
전해지고 있는 불란서 출신의 위대한 예언가입니다.

그는 ‘세상의 대변혁’은 별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난다
고 하였으며, 특히 지구 대이변의 마지막은
화성이 불러 일으킨다고 했습니다.

다음은 그의 예언서 『모든 세기』의 머릿말에 실려 있는 내용입니다.


아들아, 그 원인은 화성이다.
종말이 올 때 갖가지 이변이 덮쳐온다.
그리고 지구 대이변의 마지막은 화성이 불러 일으킨다.

유례없는 질병, 전쟁, 기아, 대지진 …. 아들아, 이리하여 ‘세상의 변혁과 별들’은 합치하는 것이다. …

모든 예언적인 직감은 창조주이신 신으로부터
근원적인 원리
를 받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다행히도 후세 사람들은 알게 될 것이다.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하늘은 540차례나 불 타 오른다.
불꽃은 거대한 새도시로 번지고 순식간에 불꽃은 타오른다.
(『모든 세기』 6:97)



1900, 90의 9년, 7의 달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오리라.
앙골모아의 대왕을 소생시키기 위해 그 전후의 기간,
마르스는 행복의 이름으로 지배하려 하리라.

L'an mil neuf cens nonante neuf sept mois Du ciel viendra un grand Roy d'effrayeur Resusciter le grand Roy d'Angolmois, Avant apr , Mars regner par bon heur.
(『모든 세기』 10:72)

고도 벤이나 그 밖의 많은 노스트라다무스 연구가들은
이 시의 첫 줄을 보고, 지구 최후의 날은 1999년 7월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과연 타당한 것일까요?

모든세기 10장 72편의 원문을 보면,
그가 예언하고 있는 종말의 때는 “L'an mil neuf cens nonante neuf”로 되어 있습니다.

노스트라다무스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이 구절을 1999년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프랑스어로 『99』라는 숫자는, 『4×20+19(quatre vingts dix neuf)』로 표기합니다. 그러면 노스트라다무스가 이같은 확실한 단어를 두고,
노낭뜨 뇌프(nonante neuf)라고 표기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nonante neuf』를 글자 그대로 직역하면 『90의 9』라는 뜻입니다.
또한 neuf(nine)라는 단어는 9라는 뜻 이외에도 new(새로운, 신참인)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의 뜻을 전혀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첫 줄을 우리말로 옮기면 『1900, 90의 9년, 7의 달』입니다.(7월은 Juillet란 단어를 쓴다)

이 숫자 배열의 속 뜻을 1999년이라 단정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이 시간대의 비밀은, 숫자에 담겨있는 철학적 의미를 파악할 때, 비로소 드러납니다.

상수원리(象數原理, 숫자의 철학적 의미를 탐구하는 동양의 학문)에 따르면,
9와 7의 수는 둘 다 분열 작용의 마지막 단계를 나타내는 수 (象數)로서

9는 ‘작용의 끝수(終數)’이며,
7은 ‘분열의 최후단계에서 작용하는 천지기운
(火氣)을 말하는 상수’입니다.

즉 ‘1900, 90의 9년, 7의 달’이라는 본문의 정확한 의미는,
‘분열의 최후단계 과정’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9와 7을 연속적으로 배열함으로써,
인간문명이 극도로 다극화 다분화되는 것을 나타냈고

이 때가 바로 개벽의 시간대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1980년대 동서냉전체제가 붕괴되면서
촉발된 국제정세 변화는 90년대에 들어 많은 분야에서
새 질서의 윤곽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발생하는

민족분규, 유럽공동체(EC) 및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의 세계블록화 현상,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
지구촌의 환경문제 등이 새 질서의 태동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21세기는 지구촌의 보편문화와 새 질서가 가시화되는 대변혁의 시기입니다.

교회나 각 종파는 환상으로 바뀌고 파괴로 치달으리라. (『모든 세기』 1:96)

화성(火星)이 전쟁 같은 힘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70회나 피눈물을 떨어뜨리고
교회의 파멸로 이어지며 사람들은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리라.
(『모든 세기』 1:15)


그 때는 신,구약성서는 추방되고 소각되지요.
… 그리고 이 최후의 시대에 ‘기독교 왕국의 모두’와
불신앙자는 수년간 진동하고 또 더욱 슬픈 전쟁이 있고
도시, 시, 성, 그 밖의 건물이 불에 타 폐허가 되고
순혈(純血)한 피의 유출로 파괴되는 것입니다.

… 거의 전 세계는 ‘미완성의 적막한 것’이 되겠지요.
(『앙리 2세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인류의 최종 심판은 대전쟁후의 병겁이다

무서운 전쟁이 서쪽에서 준비되면 다음 해에 질병이 퍼지고
너무도 무서워 젊은이도 늙은이도 동물도 달아날 수가 없게 된다.
(『모든 세기』 9:55)

지금 우리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힘의 주기’로 돌아오는 달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그것이 끝날 때 다음에는 태양에게, 그 다음은 토성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다.

하늘의 증표에 따라 토성의 통치는 다시 오고 ‘모든 것이 회전하고’
세계는 모순없는 변혁에 접근
할 것이다.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하느님의 힘의 주기’라는 구절의 주기라는 단어에서,
그는 우주의 순환성을 전하여 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 말씀의 보다 깊은 뜻은, 우주가 통일 되는 이 천지대운을 타고
우주의 최고 주재자께서 친히 인간의 몸으로 강세 하시게 된다는 뜻입니다.

달의 지배가 끝나고 태양에로 넘어간다는 말은 태양 자체에서도 이변이 생겨서
새로운 변화세계를 창조하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의 핵심은 천지자연의 큰 변동이
새로운 세계질서를 열기 위해 이 지상에 대재난을 몰고 온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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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간의 무한한 어리석음이란 다른 것들이 아니라, 우주를 여행하는 최첨단 시대라고 주장하면서 까지도 아이러니하게 옛 말들.... 신화나 전설들에 대해서 맹신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의 지식에 대해서 미신이라고 하는 것이다.

 

현시대까지도 '인간의 창조'에 대해서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여긴다거나, 단군신화와 같은 신화에 의존한다는 것은 아득한 옛날에 존재했던 미개인, 비문명인들이나 다른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참으로 신비스러운 것은 우주자연이 신비스러운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제잘난체 하는 지식이 신비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최첨단이라고 주장하는 현시대 인간들까지도 아득한 옛시대의 말, 말, 말들에 대해서 무조건 믿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는 절대자나 신, 하나님, 단군신화등의 신화에 대해서 당연하다는 듯이 맹신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식은 지식이 아니라 무지이며, 우주보더 다 무한한 어리석음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미신이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 '신'이라고 믿는 인간들의 지식이 미신이 아닐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그렇지 아니하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는 있는 것일까?

 

사실은 노스트라다무스라는 인간이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그런 무지한 자들의 괴변을 믿는 인간들의 앎이라는 지식이 어리석은 것이다. 사실은 인간이 인간의 기원조차 이해 하지 못하면서도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일 자체가 우주보다 더 무한한 어리석음인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사실. 근거 없는 낭설, 전설, 신화에 대해서 무조건 적으로 믿는 것들이 인간이며, 의학이며, 과학이며, 문학이라는 학문들이며 첨단 의학이라는 지식들이다. 인간이 왜, 인간인지도 모르는 인간들의 주장들... 참으로 우스운 일이며, 신비스러운 일이다. 그러니 무지몽매한 것이 인간이며, 인간들의 지식이라는 허울이다. 인간이 인간이라고 주장하지만, 인간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진리' 라는 말이 있다. 

인간들이 주장하는 지식은 진리가 아니다. 

서로가 진리라고 주장하는 인간들 또한 진리가 아니라, 근거 없는 신화에 바탕을 둔 자기 주장들이다. 하지만 진리가 있다. 

 

논리적으로 본다면,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 진리이다. 

인간들의 지식은 논리적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언어의 기원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어 중에는 '생각'이라는 낱말이 있다.

 

생각이라는 낱말에 대한 이치, 생각이라는 낱말을 논리의 근본원인으로 본다면, 생각의 법칙으로써 이해가 가능할 수 있는 말이 진리이며, 진리의 말이다. 왜냐하면 모든 언어는 생각의 다른 표현들이기 때문이며, 기억된 생각들에 대해서 표현되는 것이 언어이기 때문이다.

 

 

개체적 자아들의 생각(기억세포) 속에는 무수히도 많은 낱말들이 저장되어 있다. 다만, 인간이 기억할 수 없는 어린아이시절부터 살아오는 동안 내내, 그리고 지금 이순간 까지... 타인들로부터 듣고 보고 배웠던 말들이 저장된 것이다. 컴퓨터의 하드 디스크에 저장된 낱말들과 같은 방식으로 저장된 것들이지만,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낱말들과 같이 저장된 순서대로 출력되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 작용에 의해서 순서 없이... 상황에 따라서 유기적으로 끊임없이 변화되면서 스스로 출력되는 것이 인간의 생각이기 때문에 '생각'이라는 낱말에 대해서 '언어의 기원'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언어의 기원이라는 말은, 우주의 근본원인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이며, 인간생명의 비밀이다. 왜냐하면 인간세상의 모든 것들은 '언어'로 구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인간의 관념으로써 이해 할 수 없는 까닭은 '언어가 없다'는 말도 언어이기 때문이다. 우주가 있다는 말도 언어이며, 인간이 있다는 말도 언어이며, 우주가 없다는 말도 언어이며, 우주가 있다는 말도 언어이며, 종말이 있다는 말 또한 언어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언어, 말, 말, 말은 상황에 따라서 스스로 통제할 수도 있으나, 즉 하고 싶지 않은 말은 아니 할 수도 있으며, 하고 싶은 말은 할 수도 있으나... 생각은 '내생각'이라고 아는 앎에 대해서 당연하게 여기지만... 스스로 통제할 수 없으며,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신비스러운 것이다. 

 

생각을 더한다는 생각도 생각이며, 생각을 아니한다는 생각도 생각이기 때문이다. 생각을 지울 수 있다는 생각도 생각이며, 생각을 집중할 수 있다는 생각도 생각이며, 생각을 못한다는 생각 또한 기억세포에 저장된 수많은 생각들 중 하나의 생각이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의 비밀에 대해서 이해 하는 일에 대해서 '진리'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인간은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다'는 말에 대해서 신뢰하는 것 같다. 

하지만 착각이다. '내가 생각할 수 있다는 앎'이 올바른 앎이 아니라 착각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윤회현상에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직 인간의 생각이다. 우주의 생각도 아니며, 지구의 생각도 아니며, 하나님의 생각도 아니며, 절대자의 생각도 아니며, 귀신의 생각도 아니며, 오직 인간들의 생각이다. 만약에 인간들의 생각이 다른 것들의 생각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생각이라면, '나는 하나님이다' 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며, 내가 절대자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며, 내가 우주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며, 내가 부처, 불성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며, 내가 동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산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대의 생각이며, 내가 죽는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대의 생각이며, 인간들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내가 죽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만 '내생각'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항상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만 '내생각'이라고 단정 짓거나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인간은 이런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에 옛사람들의 말, 말, 말들... 전설, 신화 등의 말들에 대해서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는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며, 사실은 자신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새로운 생각이란 없는 것이다. 그져 기억세포에 저장된 낱말들에 대해서, 타인들로부터 듣고 보고 배워서 얻은 지식들, 낱말들에 한정된 범위 이내에서의 스스로 일어나는 생각들에 의해서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타인들의 말들에 대해서 자신의 앎인냥 착각하는 것이며, 그것들에 대해서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사실. 인간들의 지식에 바탕을 둔 모든 앎들이 그러하다. 자신이 스스로 깨달아서 아는 앎은 단 하나도 없다. 그런 사실에 대해서 지적으로나마 이해 할 수 있다면, 진리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다. 

 

진리란 우주의 근본원리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며, 우주의 근본원인에 대해서 이해 한다는 것은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라는 생각'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 그대의 그대 자신이며, 우주 만상만물이기 때문이다. 

 

 

천지만물의 창조가 있다는 생각은 천지만물의 생각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이다. 하나님이 있다는 생각 또한 그러하며, 부처님이 있다는 생각 또한 그러하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또 다른 생각일 뿐, 틀린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인 것이다. 부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인간의 생각이며, 불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인간의 생각이다. 인간들의 생각들... 서로간의 의견충돌들... 서로간의 생각들이 틀린 생각들이 아니라.. 서로가 다른 생각들이다. 이런 사실적인 말에 대해서 지적으로나마 이해 할 수 있다면, 그런 인물들에 대해서 상근기 인물이라고 하는 것이다.

 

인간이 어리석어서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며, 남들의 생각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들의 모든 생각들은 그 바탕이 근거가 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어느 생각도 올바른 생각일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 아무런 근거도 찾을 수 없는 허구적인 말들 뿐인 '신화'에 바탕을 두고 있는 모든 주장들이 인간들의 지식이라는 허구적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은 허구적인 것들이며, 무지몽매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 허구적인 지식이 있기 때문에 올바른 앎인 진리가 있는 것이다. 지식은 근거 없는 신화에 바탕을 둔 주장들로써 단견이며, 편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들간의 갈등과 다툼, 투쟁과 같이 인간들의 삶 자체가 전쟁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반면에 진리는 단순한 것이며 올바른 앎이기 때문에 다툼이 없는 것이며, 평화로운 것이다. 지식은 논리적이지 않은 것이며, 진리는 지극히 논리적인 것이다. 

 

가장 단순한 비유를 든다면. 

하늘 어디엔가 '신, 절대자' 가 있다는 망상으로써 서로가 자신들이 믿는 신만이 진리라고 주장한다면, 그들간의 갈등은 다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며 더 나아가 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의 원리에 대한 이해로써 '신, 절대자' 같은 것들이 '이름'으로써만 있는 것일 뿐,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들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닫는다면, 어찌 갈등이 있을 수 있겠는가? 

 

사실. 인간들의 모든 주장들이 그러하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만큼, 꼭 그만큼 다른 사람들의 생각 또한 그러하다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할 수 있다면... 다툼은 사라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말이다.

 

지식이 있기 때문에 진리가 있다.

행복, 자유, 평화는 오직 진리안에 있는 것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이 진리이다. 

왜냐하면 생각의 원리를 이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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