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인간들의 발상들... 교육의 가치를 말하는데, "경쟁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도전을 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 같다.
말은 말인데,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것들이 현시대의 지성인들이다.
경쟁, 도전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가 아래와 같다.
경ː쟁 (競爭)【명사】【~하다|자동사】 같은 목적에 관하여 서로 겨루어 다툼.
도전 (挑戰)【명사】【~하다|자동사】 1. 싸움을 걸거나 돋움. 2. 비유적으로, 어려운 사업이나 기록 경신에 맞섬.
인간이 인간이면서 인간들끼리 서로가 도전해야 한다는 말에 대해서 미래의 교육의 목표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현시대의 최고 지성이라는 무지몽매한 자들이다. 경쟁사회는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한편으로는 도전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대해서 옳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인간류들... 인간의 지식들, 이제라도 논리적인 올바른 앎으로써의 진리로 거듭나야만 한다.
사실. 지식은 모두 근거 없는 주장이며, 논리적으로 보더라도 완전하게 비논리적인 말들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끊임없는 전쟁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논란 논쟁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세상에서 '행복한 사람'을 단 한사람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다.
유ː유―상종 (類類相從)【명사】【~하다|자동사】 같은 무리끼리 서로 내왕하며 사귐.
물론 인간류, 인간무리들을 비유하여 창조된 말이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같은 목적에 관하여 서로 서로 겨루어 다투는 무리들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인간무리들의 삶의 최종 목적은 누구나 다르지 않은 죽음이다.
사실. 인생은 삶을 위한 노력인 것 같지만, 사실은 죽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어리석어 잘살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경쟁과 투쟁을 일삼는다는 것이다. 도전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인간이 인간이면서, 서로가 똑 같은 인간들끼리 서로가 도전하여 싸우고 이겨서 승리하는 것이 인생이며, 인생의 목적이라고 여기니... 그런 사고방식으로 사는 삶에 대해서 당연하게 여기고, 그렇게 교육하니... 세상이 어찌 평화로울 수 있겠는가말이다.
인간들의 실상을 자세히 관찰해 보라.
결국 죽기 위해서 사는 사람들의 삶이... 모두가 죽음이 목적지일 수밖에 없는 것이 모든 인간들의 삶이다.
결국 죽음을 위해서 열심히 사는 것이며, 남들과 열심히 경쟁하는 것이며, 남들과 열심히, 죽는 날까지 투쟁하는 것이다.
잘살기 위해서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죽기 위해서 투쟁하는 것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남들과의 투쟁을 통해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발상들... 무한한 어리석음이 아닐 수 없다. 대체 잘 사는 삶이 무엇이란 말인가?
어떤 삶이 잘 사는 삶인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있는가?
세상사람들 모두를 대상으로하여... 그 사람들의 좋은 점만 모두 갖추는 일에 대해서 잘사는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묻는 것이다.
누차 강조되는 말이지만... 인간세상에서 행복한 사람은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똑 같은 무게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은 그런 방식으로 세뇌 당했기 때문이며, 지식에 의해서 가공된 마음에 대해서 '나'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 그렇겠는가?
왜, 인간들의 삶은 경쟁이나 투쟁이 아닐 수 없겠는가?
왜, 인간무리들은 한시도 행복이나 자유, 평화를 누릴 수 없겠는가?
왜, 인간들은 인간들끼리 죽는 날까지 전쟁을 해야만 하는 것이겠는가?
사실. 인간들의 앎이 진리가 아니라 지식이기 때문이다.
인간들의 앎이 올바른 앎이 아니라, 편견이며 단견이며 소견들로써 서로간의 끝없는 끊임없는 주장만 난무할 뿐, 근거가 전무한 낭설들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사실은 인간들의 모든 주장들이 모순이 아닐 수 없으며,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들의 언어가 논리적일 수 없는 까닭은, 논리, 즉 '언어의 이치를 모르기 때문이다.
언어가 왜 생겨난 것인지, 언어의 근원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대 또한 그런 언어,, 말, 말, 말로 세뇌 당했기 때문이다.
인간들의 삶들... 단지, 앵무새와 같이 듣고 배운 말들에 대해서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며, 지저귀는 것이다. 근거도 없는 말, 논리적이지도 않은 상대적인 말들에 대해, 세뇌 당함으로써 서로간의 주장만 난무한 것이다.
경쟁사회는 아니된다고 주장하면서도 도전을 해야한다는 말이 그러하다.
사실. 인간은 논리적이라는 말을 창조했으나, 논리적이라는 말의 뜻 조차 올바르게 이해 하는 것이 아니다.
'논리적'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를 보니. (論理的)[놀―]【관형사】【명사】 논리의 법칙에 들어맞는 (것). 추리(推理)의 형식에 적합한 (것). 이라는 설명이다.
그리고 '추리' 라는 말은. 추리 (推理)【명사】【~하다|타동사】
1.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알지 못하는 것을 미루어서 생각함.
¶ 증거와 정황에 따라 ∼하다.
2. 『논』 기지(旣知)의 판단으로부터 새로운 판단을 도출하는 사유(思惟) 작용. 추론.
결국 인간들의 모든 언어, 주장들은 추론이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언어의 기원을 모른다'는 말에 대해서 모른다고 말하지 아니하고, 추론이라는 말로 얼버무리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인생론 또한 다양하기만 한 것 같다.
인생의 해답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가 옳다는 방식으로 인생론에 대해서 주장하는 것이며, 교육을 주장하는 것이며, 발전을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인간들이 추구하는 것은 행복이나, 자유, 평화로운 삶이다. 그리고 행복이나 자유, 평화롭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드러나지 않는 잠재의식 깊은 곳에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들이 아등바등 욕망을 쫒는이유, 욕망의 노예, 욕망의 화신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떨쳐내기 위한 방편인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에 인간에게 죽음이 없다면... 죽음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스스로 깨달아 알 수 있다면, 지식을 초월한 진리에 대한 이해로써 올바른 앎이 있다면... 삶이 무한한 것이라면, 굳이 조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단 한시도 진정한 행복이나 자유, 평화를 누릴 수 없는 까닭은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완전하게 무지하기 때문이며, 마음에 바탕을 두고 스스로 생멸을 반복순환, 윤회하는 자신의 생각의 흐름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인물들에 대해서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인간들의 지식은 진리가 아니다.
지식은 지식의 시작도 모르며, 지식의 끝도 모른다.
사실. 인간이 왜 인간인지, 인간이 무엇인지 조차 모른다.
인간의 기원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잠을 왜 자야만 하는 것인지 그 원인도 알 수 없으며, 꿈은 왜 꾸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아는 바 없는 것이 지식이다.
사실. 지식은 모든 것에 대해서 다 아는 것 같지만, 정작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며,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이해 조차 할 수 없는 무지몽매한 것이다. 근거 없는 것에 바탕을 두고 인간이 본래 인간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신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인간이다.
하나님의 창조물이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인간이다.
하늘에서 천웅이 내려와서 신시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것들이 인간이며, 인간의 지식의 시작이다.
사실 터무니 없는 주장일 뿐만이 아니라,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그런 주장에 바탕을 두고 '우리가 인간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인간이며, 지식이며, 지성체들의 앎이라는 지식이며, 지혜라는 말, 말, 말들이다. 그러니 허무맹랑한 것들이 인간의 지식이라는 허울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 삶에 대해서 몽상이라고 하는 것이며, 인간무리들의 삶에 대해서 무지몽매한 짓이라고 하는 것이며, 원리전도몽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 인간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며 서로가 잘난체 하기 위해서 창조된 말들이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라는 말인 것 같다.
정치를 주장하는 무리들은 아득한 옛날부터 지금 현시대까지도 서로가 잘났다고 주장한다. 올바른 정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정권이 올바르지 않을때에는 도전해서 부수고 다시 세워야 한다고 주절거린다. 만약에, 만약에 말이다. 만약에 인간세상의 역사를 모두 뒤져서라도 올바른 정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단 한번만이라도 뒤돌아 볼 수는 없는 것일까?
정치를 잘 해서 인간세상이 평화로운 시대가 있었는지 돌아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정치판 속에서 행복하거나 평화롭거나 또는 자유로운 사람이 단 한사람이라도 있었는지, 있는지 보라는 뜻이다. 고대, 현시대를 막론하고 그속에 행복한 사람이나, 평화로운 사람을 찾아볼 수 있겠는가말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부류들... 그 중에 경제 발전을 주장하는 인간들의 삶은 어떠한가를 되돌아 보라는 말이다. 그들이 욕망을 채워서 행복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인가? 그들이 평화로운 사람들인가? 그들이 자유로운 사람들인가? 경제와의 전쟁 속에서 행복이나 자유, 평화를 구할 수 있겠는가말이다.
그런 틀 속에서 이루어진 것들에 대해서 사회와 문화라고 하는 것 같다.
어떤 문화, 어떤 사회이든간에 스스로 만족하여 평화로운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아니, 사실은 인간들의 지식으로써 행복이나 자유, 평화를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런 아귀다툼들 속에서 어찌 행복이라는 말이나, 자유라는 말, 평화라는 말이 합당한 말이겠는가말이다.
왜, 인간세상에서는 아득한 옛날이나 현시대나 행복한 사람이 있을 수 없는 것이며, 평화로운 시대가 있을 수 없는 것이며,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 없는 것일까?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그렇다.
인간들의 모든 앎, 지식들이 근거 없는 앎에 바탕을 둔 주장이기 때문이며,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식은 근거가 없을 뿐만이 아니라, 논리적일 수 없는 말, 말, 말들을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인간들은 그런 사고방식으로 세뇌 당했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그런 근거없는 지식에 바탕을 둔 말로써, 말에 의해서 사회적 동물로 세뇌당한 것이다. 사실. 인간들의 언어 자체가 근거 없는 낭설이며, 논리적이지 않은 말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대가 진정한 지성인이며,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해 할 수 있는 말이다.
사실. 인간들의 '우리는 인간이다'는 말 자체가 근거 없는 낭설이며, 논리적으로도 올바른 앎이 아니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우리는 본래 인간이다'라는 방식으로 세뇌당하다 보니, 의심할 여지가 없었던 것 뿐이다. 이는 강아지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그 이름을 반복하여 부르다 보면, 강아지 또한 자신의 이름과 자신을 동일시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사실. 그대의 이름 또한 그러하다. 하늘에 날아다니는 까만색깔의 동물에게 '까마귀'라는 이름을 짓게 된 것과 같이 그대의 이름 또한 그런 방식으로 지어진 것이다. 본래 그대의 이름이 그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다만 까마귀는 '자신이 내가 까마귀' 라고 아는 바 없다. 다만 인간들의 관념으로 볼때에 까마귀일 뿐이다. 그대가 '내가 본래 인간이다'는 말에 대해서 알게된 그대의 어린아이시절 또한 '까마귀'가 '나는 까마귀'라도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사실. 인간들의 '우리가 인간이다'는 말은 '우리가 인간이 아니다'는 말과 상대적인 말이다. 더구나 '우리가 인간이다'는 말을 주장하기 위한 근거가 '하나님, 절대자, 신, 초월자' 등의 창조물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낭설이며, 풍문이며, 전설이다. 근거 없는 말, 말, 말들에 세뇌당한 것이다. 왜냐하면 '절대자, 신, 하나님'이 있다는 주장 또한 '절대자'의 주장이 아니라 오직 인간들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신이 있다는 생각과 신이 없다는 생각은 오직 인간들의 생각이며, 단지 한생각의 차이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사람이다' 는 생각 또한 '우리는 사람이 아니다'는 생각과 상대적인 생각으로써 한생각의 차이일 뿐, 오직 인간들만의 편견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지식에 대해서 무재몽매한 것이라고 하는 까닭은, 이와 같이 근거 없는 주장들로써 죽는 날까지 경쟁, 투쟁, 전쟁을 일삼는 짓들에 대해서 인간들의 삶이며, 인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종교들의 갈등 또한 그러하다. 타인들로부터 세뇌 당한 그대로, 인간들에게 세뇌당한 투견들이 피를 흘리면서도 죽을 때 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는 것과 같이... 서로가 다른 지식으로 세뇌당한 자들의 서로가 옳다며, 죽는 날까지 싸우는 것들이 종교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에 대해서 짐승보다 더 뛰어날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예수의 말과 같이 '하늘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간들의 존재 또한 개미무리들의 존재와 다른 바 없는 무리들이며, 개구리무리들과 다를 바 없는 무리들이며, 사슴무리들과 다를바 없는 무리들이며, 축생무리들과 다를 바 없는 일종의 인간무리들일 뿐이다.
다만 다른 무리들은 인간무리들과는 달리 자신들 무리들끼리는 결코 죽고 죽이는 싸움, 전쟁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다만 오직, 인간무리들만은 자신들 무리들끼리 죽는 날까지 싸운다는 것이며, 아득한 옛날부터 현시대까지 끊임없이 전쟁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대는, 지금 이 글을 보는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이런 글들로써 자신의 삶, 인생의 목적이 달라질 수 있다면 상근기 인물이다. 이런 사실적인 말들에 대해서조차 반신반의한다면, 중근기 중생이며, 이해 조차 불가능한 자라면, 하근기 중생이다. 사실. 생명있는 무리들 중에서 인간무리들을 제외한 다른 무리들의 소통의 도구는 '언어'가 아니라 단순한 몇 몇 가지의 '소리' 들이다.
새들의 지저귐 또한 그러하다. 그 단순한 소리들이 그것들에게는 완전한 소통의 도구이다. 그런데 인간들의 말은 이원성이나 다양성으로써 무수히도 많다. 끊임없이 더 많은 소리들이 창조된다. 그 이유는 언어가 본래 근거가 없는 허구적인 말에 바탕을 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진리는 새들의 단순한 소리들과 같이 단순한 것이다.
지극히 논리적인 말이며, 단지 올바른 앎이다.
요즘 쓰여지는 댓글들을 보니, 진리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이정표가 될 것 같다. 진리를 이해 한다는 것은, 이웃과의 다툼이 사라지는 것이며,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경쟁이나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존재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진리를 이해 하는 사람들의 댓글이 곧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과 같이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기본적인 행위여야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진리를 실천하는 삶이라야만 진정 가치 있는 삶일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결국 검증된 삶으로써... 죽음 앞에서도 여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 또한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나, 절대자, 신이 있다고 주장하든 없다고 주장하든, 그 주장은 근거 없는 말, 말, 말들에 대한 상대적인 앎에 대해서 주장하는 것이며, 또한 절대자, 신, 하나님의 주장이 아니라, 오직 인간들의 주장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면, 그대는 진리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다.
사실. 인간들이 '행복'이라는 말을 창조한 까닭은 인간세상 인간들의 삶이 '행복'이 아니기 때문이다. 삶이 불행이기 때문이다. 삶의 결과가 죽음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이라는 말을 창조하게 된 것이다.
근거가 없기 때문에 해답이 있을 수 없는 지식이 있기 때문에 진리가 있는 것이다.
삶과 죽음이 있는 세상이 있기 때문에 삶과 죽음이 없는 세상이 있는 것이다.
생로병사의 고통이 있는 세상이 있기 때문에 모든 고통이 없는 세상이 있는 것이다.
지옥이 있기 때문에 천국이 있는 것이다.
중생이 있기 때문에 부처(깨달음)가 있는 것이다.
중생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있는 것이다.
진리로 가는 유일한 길, 방법이 있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이다.
그대가 원하는 것, 찾는 것이 진리이다.
'그것'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진리가 곧 자유, 평화, 행복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인연있는이에게 영원한 평화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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