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저 들꽃을 모아
연인에게 안겨 줄 꽃다발을 만들 듯
우리도 이 세상에 태어나
보람된 일을 하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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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집을 짓는 자여! 부처님의 오도송 빠알리어 챈팅
깨달음의 순간을 노래한 것이 오도송(悟道頌)이다. 주로 선사들이 오도송을 많이 남겼는데 그 중 경허선사의 오도송이 가장 유명할 것이다.
경허선사는 화두를 붙잡고 용맹정진을 하던 중 ‘소가 콧구멍이 없다’는 말에 활연대오(豁然大悟)하였고 한다. 그래서 오도송을 남겼는데 다음과 같다.
홀문인어무비공(忽聞人語無鼻孔) 홀연히 콧구멍 없다는 말을듣고
돈각삼천시아가(旽覺三天示我家) 비로소 삼천대천 세계가 내집임을 깨달았네
유월연암하산로(有月淵岩山下路) 유월 연암산 아래길에서
야인무사태펑가(野人無事太平歌) 나 일없이 태평가를 부르노라
이처럼 어떤 기연에 의하여 돈오 하는 경우가 많은 데 부처님 당시에도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해탈한 아라한이 있었다고 한다. 마치 무르 익은 감이 건드리면 “톡” 떨어 자듯이 수행자들의 깨달음 역시 하나의 계기가 되어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는 경우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일은 없다, 석가모니가 6 년여 수행한 것과 같이... 원리를 알고 일념수행으로써 그 길을 갈 수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세상에 진실로 올바르게 깨달은 자가 단 하나도 없는 것이다)
선사들이 깨달음에 대한 오도송을 남겼다면 부처님의 오도송은 없었을까. 일반적으로 가장 오래된 경전이라는 ‘법구경’의 게송 중의 하나를 부처님의 오도송으로 보고 있다.
법구경의 게송 153번과 154번을 부처님의 오도송으로 보는 이유는 무명과 갈애를 타파 하여 더 이상 나고 죽는 일이 없는 ‘불사의 진리’를 발견한 것에 대한 선언이기 때문이다. 그런 부처님의 오도송을 음악동영상으로 만들었다.
법구경 153
Anekaj?tisa?s?ra? 아네까자-띠삼사-랑
sandh?vissa? anibbisa? 산다-위쌍 아닙비상
gahak?ra? gavesanto 가하까-랑 가웨산또
dukkh? j?ti punappuna? 둑카- 자-띠 뿌납뿌낭
한량없는 세월의 생사윤회 속에서
집을 짓는 자가 누구인지 알려고
찾아 헤매다 헤매다 찾지 못하여
계속해서 태어났나니 이는 둑카였네.
(거해스님)
법구경 154
Gahak?raka di??hosi 가하까-라까 딧토시
puna geha? na k?hasi 뿌나 게항 나 까-하시
sabb? te ph?suk? bhagg? 삽바- 떼 빠-수까- 박가-
gahak?ta? visankhata? 가하꾸-땅 위상카땅
visankh?ragata? citta? 위산카라-가땅 ?땅
ta?h?na? khayamajjhag? 딴하-낭 카야맛자가-
아, 집을 짓는 자여! 나는 이제 너를 보았노라!
너는 이제 더 이상 집을 짓지 못하리라!
이제 모든 서까래는 부서졌고
대들보는 산산이 조각났으며,
나의 마음은 닙바나에 이르렀고,
모든 욕망은 파괴되어 버렸느니라.
(거해스님)
영어
153
Through many a birth in samsara have I wandered in vain,
seeking in the builder of this house (of life).
Repeated birth is indeed suffering!
154
O house-builder, you are seen!
You will not build this house again.
For your rafters are broken and your ridgepole shattered.
My mind has reached the Unconditioned;
I have attained the destruction of craving.
(Buddharakkhita)
한문
153
多生輪?中,探尋造屋者(貪),
而未得見之,再生實是苦。
154
造屋者已見,不再造新屋(色身),
椽柱均斷折(煩惱),棟樑亦??(無明),
我心證無?(涅槃),一切愛欲滅。(153,154兩偈合誦)
(法增比丘譯)
일어
153
なぜ生まれたのか?
答を探して
何度も輪廻を
繰り返したよ
苦しかったよ~♪
154
?愛よ!
見破ったぞ
心は闇を開き
お前を滅ぼした
もう輪廻しないよ~♪
(Dhammapada 意?, 西津紘一)
부처님의 오도송에 대한 해설
부처님의 오도송에 대한 해석은 일반적으로 서까래는 모든 ‘번뇌’와 ‘오염원’을 말하고, 대들보는 ‘무명’을 의미한다. 마치 대들보가 모든 서까래를 받치고 있듯이 무명이 모든 번뇌를 지탱해 주고 있는 오염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지혜에 의하여 갈애라는 ‘집짓는 이’를 발견하고 서까래라는 모든 오염원을 부수었을 뿐만 아니라 무명이라는 대들보도 제거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마침내 마음의 형성작용이 멈추어서 ‘닙바나(Nibbana, 열반)’를 성취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윤회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왜냐 하면 더 이상 ‘집’이라는 몸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분명히 갈애(tanha, 딴하)와 무지(avijja, 아윗자)가 윤회의 원인이라고 밝히셨다. 따라서 갈애와 무지가 있는 한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생사윤회의 수레바퀴는 계속 굴러간다. 하지만 갈애를 위시한 모든 번뇌를 쳐부순 아라한에게는 더 이상의 윤회가 없다는 것이다.
윤회는 갈애와 무명에 휩싸여 치달리고 흘러가는 중생들의 생생한 모습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윤회(苦)’를 설하셨고, 윤회의 원인(集)인 ‘갈애’를 설하셨고, 윤회가 다한 경지(滅)인 ‘열반’을 설하셨고, 다한 경지를 실현 하는 방법(道)인 ‘팔정도’를 설하셨다.
아상가 교수의 강의에서
오도송에서 집짓는 이는 갈애를 말한다. 그런데 갈애가 일어 나는 원인은 ‘나(我)’가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불교TV의 스리랑카의 ‘아상가 교수’의 강의를 참고 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무언가를 보았을 때 보면 본대로 받아 들이고, 무언가를 들으면 들으면 들은 대로 받아 들이면 그만인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반드시 거기에다 어떤 ‘의미’를 부여 하고 ‘개념’적 해석을 하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이 일어 나는 것이다.
연기법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이 ‘갈애’ 때문이고, 그 갈애는 ‘무지’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만 우리가 지혜를 통해 이를 꿰뚫어 볼 때 그 연기의 사이클은 그친다.
그 연기의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면 ‘나(我)’나 ‘나 자신’이 없다는 것을 이해 할 수 있다. 즉, ‘나(我)’나 ‘나 자신’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비로서 욕망의 근원적 이유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나(我)’나 ‘나 자신’이 있는 것이라고 볼 때 모든 것은 조작 된 것이고, 거기 없었던 것이 보인다. 그런데 ‘나(我)’나 ‘나 자신’과 같이 중요하게 생각 하는 것이 증발해 버린 다면 어떻게 될까. 그 때는 모든 것을 놓아 버리게 될 것이다.
나(我)를 기반으로 건설한 우주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我)’나 ‘나 자신’을 기반으로 하여 ‘우주’를 건설한다. 그 우주에는 남편이나 아내, 자녀, 부모, 친척, 동료등 모든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자신이 건설한 우주는 깨달았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우주의 성격이 달라진다. 그리고 그의 태도도 달라진다. 따라서 그는 더 이상 우주를 건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을 때 즉각 다음과 같이 말씀 하신 것이다.
“ 나는 이 집을 짓지 않겠다.
나는 집을 지은 건축가를 보았다.
다시는 이 집을 짓지 않겠다”
이 말은 우리가 나(我)를 중심으로 집을 짓고 있다는 것이다. 연기의 법칙을 이해 하면 이 나(我)는 사라진다. 중요한 것은 나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 나가 사라지면 나를 중심으로 하여 지은 우주도 사라진다.
이는 우리가 왜 이 중요한 단계로 갈 수 없는지를 설명해 주기도 한다. 적어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아는 사람들은 그 어려움을 알고 있다. 그러나 실천 할 수 없는 이유는 나의 우주가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건설해온 우주가 사라지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 단계가 중요한 것이다. 적어도 우리는 이것이 윤회를 탈출 할 수 있는 궁극적 길임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초월적 존재는 없다
누가 집을 짓는가? 이해가 부족해서 그렇다. 갈애에 예속된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 것이 문제에 접근하는 연기적 방식인 것이다. 그 방식은 나와 이 우주를 포함한 전체가 서로에게 의존하고 상관하여 일어남을 이해 할 때 가능하다.
그리고 이 이해를 분명히 하면 이 과정에서 의존할 신이나 그 누구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실재가 관계적(의존적, 연기적)으로 일어난다면 우리를 도와 줄 초월적 존재는 없다는 것이다.
위의 내용들... -진흙속의연꽃- 에서 옮겨온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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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위의 기록들... 모두 올바른 앎이 겨자씨 만큼도 없는 자들의 말로써 단지 언술이 뛰어난 자들의 헛소리들이다. (예수가... 나의 말을 옮기는 자가 그리스도의 적이라고 한 것과 같이... )
사실... 불경, 셩경은 싯다르타와 예수의 진언, 진실된 말이 아니라, 단지 언술이 뛰어난 자들에 의해서 왜곡된 말이며, 위의 설명들 또한 그러하다.
왜냐하면 '일념수행자'가 '생각의 윤회현상'을 '스스로 깨달아 아는 앎'이 없다면, 이곳의 여러 방편 설명들을 알아들을 수 없는 것과 같이, 그들의 말은 인간의 관념을 초월한 말이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인간은 누구나 '육체가 나다'라는 고정관념으로써 '내가 태어나고, 내가 살고, 내가 죽는다'고 알지만....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본다면... '나, 자아'가 근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원인에 대해서 여러 방편설로써 수 차례 반복 설명 되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한다)
불경과 위의 여러 해석들... 모두 근본이 왜곡된 것이다.
왜곡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간은 무슨 말이든지 남들로부터 듣고 배워서 익힘으로써 이해 할 수 있다고 여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도, 진리, 깨달음' 또한 다른 지식들과 같이 듣고 배우고 익힐 수 있다고 믿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그들 즉 예수와 석가모니의 진언들이 올바르게 전해질 수 없었던 것이며, 신앙의 대상으로 전락된 것이다.
진리란... 남들로부터 듣고 배우고 익혀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스스로 깨달아 아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 원리를 선 이해한 연후에.... 비로소 수행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인간의, 지식의, 지성체들의... "진리, 도, 깨달음" 에 대한 지식(경험)에 바탕을 둔 관념의 오류
첫째...
인간세상에 깨달은 자란 없으며... 특히 옛 선사라는 자들의 "어떤 말 한마디에 깨달았다" 는 말, 말, 말들은 모두 헛소리들이다. 왜냐하면... 이곳에 설명된 것과 같이 그 원인, 원리를 알고, 싯다르타가 6년여 동안의 고행 끝에 깨달아 알았듯이, 일념법 수행으로써 일념의 무념처에서야 비로소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이며.. '육체가 나다'라는 착각... 즉 "환각"에서 깨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돈오돈수, 돈오점수... 모두 헛소리 라는 뜻이며, 일념수행으로써 '생각의 생멸의 윤회 현상'을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만 지적으로나마 '진리, 도, 깨달음'이라는 말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글들 또한 우이독경이 아닐 수 없다)
둘째...
사성제, 팔정도, 윤회, 연기, 기도, 보시, 가피, 공덕... 육바라밀, 참선, 염불선, 간화선, 윗빠사나, 관법... 등의 불교의 주요 낱말들, 용어들... 모두 올바른 앎이 아니라 헛소리이다. 책에 그리고 이곳에 이미 충분히... 그리고 여러차례 반복된 설명이기 때문에 간략하게 '사성제'에 대해서만 요악하자면...
'사성제'는 본래 사성제가 아니라... "고집멸도" 라는 말은... 인간들의 삶에서 생겨나는 늙음, 병듦 죽음 등의 "모든 고통을 소멸하는 방법이 있다" 는 말이며, "무고집멸도" 라는 말은... 일념법 수행으로써 스스로 깨달아 알고 보면... "고집멸도" 또한 본래 없다는 뜻이며, 고통이 본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고통을 소멸하는 방법' 또한 본래 없는 것이다는 뜻이다. 다만... 하근기 중생들에 의해 왜곡되면서... 말, 말, 말만 무성해진 것들이... 사성재, 팔정도, 육바라밀 등의 헛소리들이다.
간략히 요약하지만... "일념의 무념처"에서 일어나는 최초의 한 생각이... '육체가 나라는 생각일 뿐, 나가 아니다' 라는 자각(自覺)과 더 나아가... 더 나아가 '육체가 나다'는 앎도 양 극단 중의 하나인 편견이며, '육체가 나가 아니다'는 앎 또한 편견이라는 사실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깨달아 앎으로써... '이다, 아니다, 있다 없다, 크다 작다, 나와 너, 선과 악' 등의 양 극단... 즉 이분법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중도에서 보는 경지'라는 말로 표현되는 올바른 앎을 뜻하는 말이다.
그때, 비로소... '고통의 원인'을 알게 되는 것이며, '고통의 소멸'을 보는 것이며, 고통이 본래 없다는 사실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보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몸이 나다, 내것이다, 내가 사람이다' 라고 알지만... 그것은 단지 "육체가 나(我), 라는 생각", 즉 '이다, 아니다' 의 (양 극단의...) 분별된 생각이 '고착화되어 '고정관념'화 된 것이며... 그런 고정관념이 착각이라는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알아차림을 뜻하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성제라는 말, 윤회라는 말... 등의 불교 용어들 모두 그 본질이 왜곡된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셋째...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집 짓는 자, 대들보와 석가레가 부서지고... 라는 말들이다.
사실, "집 짓는 이" 라는 말의 본래의 뜻은... "우주, 천지만물을 창조한 자" 라는 뜻과 함께 '육체 즉 몸을 창조한 자' 라는 뜻이며... "일체유심조의 더 깊은 뜻"에 설명된 바와 같이... "一切, 一體'" 가 "나 라는 생각'으로써... '생각의 환상물질'이라는 뜻이다. 앞서 과학의 양자물리학에 대한 비유 설명과 같이... 우주 또한 근본원인물질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인간들의 모든 질병의 원인과 치유 원리에 대한 설명과 같이"... '히포크라테스의 인간은 유기체' 라는 말에 대한 설명과 같이... 인간의 몸, 육체 또한 근본원인물질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지를 아는 것이 철학의 시작이며,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과 같이... '스스로 깨달아 아는 앎'으로써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 싯다르타 고타마의 진언이며, 이런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인간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예수는... '하늘에서 본다는 뜻'으로써... 나의 말은 하나님 말씀이지만, 네 안에 하나님, 성령이 있다'는 방식으로 설명하게 된 것이다.
복권 당첨 되듯이... 그런 실수로써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원리에 대하서 이해 한 연후에 비로소 '일념수행방법'으로써의 수행으로서 '스스로 깨달아 알라'는 뜻이며, 스스로 승리하는 자가 되라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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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더 이야기 하고 마감하자.
법구경 제 53 편의 내용을 보니...
저 들꽃을 모아
연인에게 안겨 줄 꽃다발을 만들 듯
우리도 이 세상에 태어나
보람된 일을 하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는 말이 있는데... 인간세상 수십억 인간들 중에서 과연 어떤 인간이... 이 세상에서 보람된 일을 하고 가는가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보라는 뜻이다.
지금 이 글을 보는 그대는... 과연 어떤 일로써 보람을 느끼는지, 과연 진실로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보람된 일을 하는지... 또는 진실로 남들을 위해서 보람된 일을 하는지... 또는 진실로 남들을 사랑할 수 있는지... 또는 진실로 부모나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지... 진실로 인간류 전체를 위해서 가치 있는 일을 하는지... 지금의 삶이 후회 없는 삶일 수 있는지...
진리를 안다는 것은 자신에 대해서...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아는 것이며, 그때 비로소 가치 있는 삶일 수 있는 것이며... 깨달아 앎으로써 검증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 그들이 인간세상의 길 잃은 인간들...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체 투쟁을 일삼는 인간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이며, 오직 진리를 앎으로써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과 같이... (그대의 두뇌에 저장된 모든 생각(지식, 언어)들은... 남들을 의존하여 얻어진 남들의 생각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대의 생각, 마음이 아니라... )
진리와 인연있는이에게 영원한 평화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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