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 선사(臨濟禪師) 선시(禪詩)』
是是非非都不關 시시비비도부관
山山水水任自閑 산산수수임자한 ---> 맡길 任. 스스로 자. 한가할 한.
莫問西天安養國 막문서천안양국
白雲斷處有靑山 백운단처유청산
옳다, 그르다 도무지 관계없고
산산, 물물이 스스로 한가하네
서방 극락세계 어디냐고 묻지를 말게
흰구름 걷히면 그대로 청산인 것을.
임제의현선사(臨濟義玄禪師)(?~867, 당나라)는
임제종(臨濟宗)의 개조(開祖)로서
임제종은 한국불교 조계종(曹溪宗)의 전신이 된다.
조계종은 한국불교 26개 종단의 하나로 한국불교의 최대종단으로
화엄종, 법상종등의 교학(敎學)을 중시하는 교종(敎宗)에 대하여,
직관적인 종교체험으로써 선(禪)을 중시하는 선종(禪宗)의 불교종파이다.
선종의 종지(宗旨)는 이심전심,불립문자(以心傳心 不立文字)로서
가르침(敎)보다는 깨달음(禪)에서 득도(得道)에 이름을 중시한다.
중국남북조시대때 남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달마(보리달마)대사가 中國선종의 창시자이고
중국선종은 보살행을 중시하는 대승불교형태로 우리나라에 전파 되었다.
임제(臨濟)의 선(禪)사상은 임제록(錄)에서
일체의 권위와 형식을 초월하는 막힘이 없는 경지에 오른
참된 해탈인으로서의 무위진인(無位眞人, 부처, 참사람)이며,
일체의 망념 경계를 초월한 무심(無心)의 경지에서
자신의 삶을 지혜롭게 사는 법문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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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에서 퍼온 글이다.
사람들은 흔히 '막힘이 없는 경지'라는 말을 쓰곤 하는 것 같다.
그 말. '막힘이 없는 경지'라는 말의 뜻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 말, 말을 듣고 그 말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이다. 일체의 망념경계를 초월한 무심의 경지... 그 방법은 무엇일까?
'막힘이 없는 경지'라는 말과 '무위진인'이라는 말이 있지만.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이 역시 말, 말, 말에 대해서 지멋대로 상상하는 것일 뿐, 그런 말들이 어떤 연유에 의해서 생겨난 말이며,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채 서로가 옳다는 주장만 무성하다는 것이다.
사람들 흔히 쓰는 말이 '무아의 경지'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하여 '무아'라는 말의 뜻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관념으로 이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며, 결코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대가 깊이 잠들어 있거나, 마취를 당하거나, 마약으로써 정신이 몽롱한 상태거나, 술에 만취되어 이성을 잃는 일, 필름이 끊어져서 기억할 수 없는 상태' 등에 대해서 '무아의 경지'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겠지만.... 그런 뜻은 아니다.
일념명상법으로써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 경험할 수 있는 '유상삼매'가 있다. 그것에 대해서. 일념구절만이 생각생각에 틈이 없이. 끊이지 않고 지속되는 상태에 대해서 '무아의 경지'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위의 선시에서 중요한 말은" 山山水水任自閑 산산수수임자한 ---> 맡길 任. 스스로 자. 한가할 한. 이다.
사실. 산산수수임자한이라는 말은 '수처작주 입체개진'이라는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수처작주 입체개진.
머무는 곳, 가는 곳마다 '내가 잘났으며, 내가 주인공'이라고 주장하라는 말이 아니라, 물과 같이 산과 같이 머무는 바 없이 머물라는 말이며, 흔적을 남기지 말라는 말이다. 세상이 변해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변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인간의 관점으로 불때, 그때에만 산, 물 이 있는 것이며, 산과 물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것들에게는 '내가 산이다, 내가 물이다'는 말, 뜻, 느낌, 의미 등의 관념이 없다는 뜻이다.
사실 인간은 산을 산으로 볼 수 없으며, 물을 몰로 볼 수 없다.
아름다운 산. 높은 산. 낮은 산... 돌 산, 나무가 많은 산, 꽃이핀 산, 낙엽이 싸인 산 등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분별로써 그것을 보는 것이며, 물 또한 깨끗한 물, 더러운 물, 바닷물, 강물, 샘물, 흐르는 물, 고인물... 등의 기억세포에 저장된 말들과 비교 분별된 생각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너 분별심에 대해서 망상이라고 하는 것이며, 그런 분별심 없이 보는 것에 대한 비유가 '선시' 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산과 물, 자연. 그것들은 인간들과 같이 '나'라는 주체가 없다.
그것들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그들 자체는 변한다는 생각이 없다.
그것들은 인간과 같이 스스로 '내가' 행위한다는 생각 없이 행위한다는 뜻이며, 한가하다는 생각 없이 한가하다는 뜻이다. 그런 말이 본래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흰구름이 걷히면 그대로 청산이라는 말은. 인간의 모든 사념. 망념. 상상 등의 모든 분별심이 사라졌을때, 그때 비로소 올바른 앎으로써의 무위자연과 같은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말이다.
산. 물. 자연은 스스로 내가 잘났다는 생각도 없으며, 내가 있다는 생각도 없다.
위의 선시 역시 자연과 같이 행위자가 없는 '나'로서 존재하라는 뜻이다.
사실 인간은 인간의 기원을 모르기 때문에 인생이 있다고 주장만 할 뿐, 해답이 없다.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 조차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허구적인 것이다.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그들의 말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고 주장하니... 무한한 어리석음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라면, 산은 산이 아니다, 라고 알며, 물은 물이 아니다 라고 아는 것이며, 더 나아가 이치가 밝아지게 되면. 그때 비로소 말, 말, 말이 있기 때문에 산. 믈, 자연이 있는 것일뿐, 존재계의 모든 것들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알게 되는 올바른 앎에 대한 비유법이 '선시, 게송, 오도송...' 등으로 표현된 것이다.
더 나아가 석가모니의 가르침과 같이.
'나는 나가 아니다'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육체는 나도 아니며, 내것도 아니며, 나와 비슷한 것도 아니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언어로써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본래 있던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무, 본래무일물'이라고 한 것이다.
존제계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대의 '나 아닌 나' 그것이 존재계의 모든 것이며 모든 것의 기원이라는 뜻이다.
이에 대해서 만법이 하나며, 하나가 모든 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해탈. 깨달음이란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마음이 본래 없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아는 앎을 이르는 말이며, '통찰'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다.
그런 사람에 대해서 명색이 '부처' 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며, '무위진인'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며, 도와 간격이 사라진 사람 또는 '이를 지' 자의 '지인' 등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일념법이 진리이다.
그대 마음의 근원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대에게 평화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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