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士)【명사】
1. 도를 닦는 사람.
2. 도교를 믿고 수행하는 사람.
3. 『불』 불도를 닦아 깨달은 사람. 또는 승려.
4. <속어> 무슨 일에 도가 트이어서 썩 잘하는 사람.
¶ 그는 연예 정보 수집에 ∼이다.
(백과사전) 도사 (도교) [道士, Master of Taoist Community] 브리태니커
중국 도교 용어. 원래는 도술(道術)을 지닌 사람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의미로 쓰였으나, 나중에 도교신도를 가리키는 말로 변했다. 한대(漢代) 동중서(董仲舒... 등)
옛 말에는 '도술'을 부리는 사람 등으로 표현되는데, 한글을 사용하는 현시대에는, 사주팔자나 관상을 보는 사람들로 이해 되거나 또는 '머털도사, 산신령, 산신도사, 돌도사' 등으로써 주료 여담이나, 농담, 에피소드로 사용되는 말이며, '도를 아십니까' 라는 유사종교들의 용어로 전락된 것 같다.
그렇다면 '도'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말이며, 무엇을 어떻게 깨닫는 것이며, 왜 깨달아야 하는 것이며, '도사'는 어떤 능력이 있는 것일까?
1. '도' 의 어원
사실. 현세상에는 '도' 를 이해 하는 사람도 없으며, 도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아니, 이며 '도'의 자취가 사라진지 2000 여 년이 지난 것 같다.
세간에 '노장사상'으로 알려진 '노자'의 '도덕경'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보니. 나는 '그것'의 이름을 '도' 라고 짓겠다'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중국에서는 노자가 '도'의 시조인 것 같다. '노자'는 기원전 6세기 경의 인물로 전해진다. 노자의 '도관'을 보니.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라는 말로써 '도'를 '도' 라고 본다면 그것은 항상할 수 없는 도' 라는 말로써 즉 '도는 도가 아니다'는 말로 표현하므로써 '신비의 문'이라는 말로 표현되는데. 사실 도의 실마리 즉 '도를 깨닫는 방법'은 찾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불교'라는 종교를 통해서 '싯다르타 고타마'가 '석가모니 부처, 불타'라는 말로써 명실상부한 '도사'로 전해져 오는 실정이며,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인간들에 의해서 우상숭배사상으로 왜곡된 것이 불교사상이다.
사실. '싯다르타' '도사'의 말의 본질이 왜곡되면서 우상숭배사상으로 전락되었으나, 그의 말의 본질은 초기경전을 통해서 잘 표현되고 있다.
도를 잘 깨달은 자의 주 요지는.
하나. '나는 하늘의 용도 아니며, 바다의 용도 아니며, 땅의 용도 아니며... 더 나아가 나는 사람도 아니다'는 말이며.
둘. '무상한 것은 나가 아니다, 수상행식도 이와 같다' 그러니 그것을 관찰하라' 는 말로써 '도'를 닦는 방법에 대한 언급이다. 이런 말들에 대해서는 '일념법. 일념명상법'이라는 말과 '생각의 원리' 라는 말에 바탕을 둔 비유법들로써 두권의 책과 이곳 카페에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2. 그렇다면 무엇을 '도' 라고 하는 것인가?
사실. '언어도단' 또는 '불립문자'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으로써 언어로 표현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방편설들로써 설명하는 것이며, 동전의 비유와 '낮과 밤'의 비유 등으로써 설명하므로써 지적으로나마 이해는 가능한 것이며, 숫자 '제로' 의 비유로써 설명된 바와 같다. 언어가 상대적이기 때문에 언어로 표현될 수 없다는 뜻이다. 숫자 '0' 는. 숫자로 볼때에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숫자 '0' 가 없다면, 다른 숫자들은 쓸모 없는 것으로써 무용지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없는 것'이지만 분명히 '있는 것'이며, 모든 것이며 또한 모든 것의 기원이기 때문에 숫자 '제로'를 비유로 들어 설명하는 것이다.
사실. '도'는 모든 것이며, 모든 것임과 동시에 모든 것의 기원이다. '도' 와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 있다면... '우주'라는 말로 표혀될 수 있다. 그 이유는, 인간관념으로써는 '나와 우주'라는 방식으로 이해 할 수밖에 없겠지만. 우주의 입장에서 본다면... 안과 밖 등의 분별할 것이 없기 때문이며, 인간과 천지만물... 모두가 우주이며, 우주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
3. 무엇을 깨달아 아는 사람에 대해서 '도사'라고 하는가?
사실. 싯다르타 고타마의 초기경전의 방편설로써 이해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언어가 상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해라는 말과 오해라는 말은 같은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적으로써의 온전한 이해는 불가능한 일이며, 단지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도는 도가 아니다' 는 말과 '싯다르타'의 '나는 사람도 아니다' 는 말은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며, '별은 별이 아니라'는 말로써 '깨달음'을 표현했던 싯다르타의 말 또한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이 말은 또한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는 말로써...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소리이며, 한자로써의 표기는 '어불성설' 이라는 말이다.
'도사' 라는 말은 본래 '자신의 마음의 근원(의심의 근원)을 본 사람'을 일컷는 말이며, '道士'라는 말의 '士' 자는 '선비 사' 자로써 옛 '선비'로 표현되는 것 같다. 노자의 도덕경에는 이에 대해서 '도를 잘 깨달은 선비' 라는 말로 표현되며, '하사, 중사, 상사'라는 말로써 '불교'라는 종교로 전해지는 '하근기, 중근기, 상근기' 라는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이곳에는.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잘 이해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상근기 인물'이라는 말로 표현되며, 또한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4. 도사, 도인, 지인, 무위진인, 전식자, 부처, 붓다, 불타, 전식자, 전능한 자, 전지전능한 자의 앎은 지식과 무엇이 다른 앎인가?
노자의 도덕경을 해석하다 보니. '道' 를 잘 깨달은 선비' 라는 말로 표현되는 말들이 위와 같이 많고도 많다. 물론 싯다르타의 이름들 또한 10 여개로써 다양하기만 한 것 같다. 예수의 가르침 또한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는 말로 왜곡되면서 '종교'가 되었듯이 인간들의 뛰어난 언술에 의해서 그들의 참된 이치에 대한 가르침들이 신앙으로, 우상숭배사상으로 전락된 것이다.
'도'는 신비스럽거나 성스럽다는 말로 표현되기도 하는 언술들로써의 말재간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마음을 이해 하는 일에서 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일념의 무념처에서 의심의 근원, 마음의 근원을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육체가 나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으로써 '나와 너' 라는 분별, 선과 악이라는 분별심이 사라진 앎을 이르는 말이다.
두권의 책과 이곳으 모든 글들이 '마음 이전의 마음' 즉 마음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아는 앎에 바탕을 둔 방편설들이다. 인간의 삶에는 해답이 없으며,... 삶의 고통과 함께, 죽음 앞에서는 두려움과 공포, 여한만이 남겨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성체들의 삶에는 절대로 가치 있는 삶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이며, 그런 사고방식으로써의 지식에 의해서 '내가 사람이다'라고 알게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 대해서 '지성체'라고 하는 것이다. 지성체라는 말은 '지식으로써 구성된 몸, 신체'라는 말이다.
세상사람들. 인간이라면 누구나 '내가 존재한다, 내가 사람이다'는 앎(지식)이 있으며, 공통적인 동등한 지식이다. 이것이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써의 최초의 앎이며, 죽는 날까지 변할 수 없는 고정관념이다. 하지만 '내가 사람이다'는 고정관념은 '내가 사람이 아니다'는 관념과 상대적인 관념(생각)이다. 논리적으로 보더라도, '내가 사람이다'는 주장은 절대로 논리적일 수 없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험의 오류' 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다.
사실. '내가 사람이다'는 앎(말, 뜻, 마음, 감정)도 올바른 지식 아니며, '내가 사람이 아니다'는 말(앎) 또한 '올바른 지식이 아니다' 라고 아는 앎이 '올바른 앎'이다. 이런 방식의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앎에 대해서 '도를 깨달아 아는 앎'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며, 지성체는 이에 대해서 '원리(原理)' 라는 말로 이해 하며,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하는 앎에 대해서 '진리'라는 말로 표현 하는 것... 이라는 방식으로 이해 하는 것 같다.
5. 도를 깨닫는 것, 마음을 이해 하는 것은 인간 삶에 어떤 이득이 따르는가?
1) 가장 큰 이득이 있다면, 가치 있는 삶과 더불어 일념수행을 주요 목적으로 하는 삶을 통해서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첫째이며, 둘째는 일념이 깊어지므로써 결국에는 삶과 죽음의 한계를 초월하는 것으로써 '죽음이 없는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2) '도가의 약식'에 대한 설명과 '도가의 단식'에 대한 설명과 같이 일념을 깨달아서 아는 '올바른 앎'은 자신의 몸을 스스로 온전하게 치유할 수 있는 앎으로써 모든 질병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며, 삶 자체를 어린아이들의 소꿉장난가 같이 즐거움으로 재 창조할 수 있는 능력, 권리, 권능을 얻는 것이다.
3) 인간들 즉 지성체의 모든 지식들, 모든 학문들... 특히 과학이나 의학, 심리학, 정신과학, 인지학, 정신분석학, 신학, 종교학 등의 모든 학문들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닫는 앎으로써 지식의 한계를 초월한 지식을 얻는 것이다. 인간의 지식은 모두 편견이며, 단견이며 소견으로써 진실된 앎이 아니라 거짓된 앎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이다.
사실. 인간들의 모든 지식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들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내가 사람이다'는 단견, 소견, 편견에 바탕을 둔 앎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이다'는 말은 '내가 사람이 아니다'는 말과 상대적인 말이다.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의 경험의 오류가 그 원인이라고 설명한 바와 같다.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은 경험이전의 사고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순수의식의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며, 순수의식의 어린아이시절에는 누구나 '내가 사람이다' 거나 또는 '내가 사람이 아니다'는 분별심이 없었다. 물론 '없었다'는 생각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성체들의 모든 주장에 대해서 올바른 앎이 겨자씨 만큼도 없는 주장들일 뿐, 가치 없는 것이며, 모두 거짓주장이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라는 말, '사람' 이라는 말, '이다' 는 말, '아니다'는 말, '있다'는 말, '없다'는 말, '인간'이라는 말, '여자' 라는 말, '남자' 라는 말, '아이' 라는 말, '어른' 이라는 말, '노인' 이라는 말, '지식' 이라는 말, '진리' 라는 말, '깨달음' 이라는 말, '도' 라는말, '귀신, 영혼' 이라는 말, '하나님, 부처님' 이라는 말, '마음' 이라는 말, '느낌, 감정' 이라는 말, 말, 말들... 그보다 더 많은 낱말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각각의 낱말들... 무수히도 많은 낱말들, 바닷가의 잔 파도와 같이 밀려드는 생각들...
그대의 '뇌, 머리, 두뇌' 라고 생각하는 '기억창고, 기억저장창치' 에 저장된 각각의 낱말들이다.
그 많고도 많은 낱말들의 유기적인 활동은 뇌세포의 신비한 작용으로 모이고 흩어지면서 언어, 문장, 문구, 구절들... 말을 창조해 내게 된다.
그 말들 중에. '나는... 사람... 이다' 는 '말'이 있으며... '나는... 사람... 이... 아니다' 는 말이 있다.
인간은 누구나 '나는 사람이다' 라는 말, 말, 말에 대해서만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억할 수 없는 어린아이시절부터 그렇게 들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나는 사람이 아니다' 라는 말과 동시 다발적으로 듣고 배웠다면... '나는 사람이다' 라고 고집할 까닭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상대적인 말, 말, 말... 언어에 세뇌 당한 것이다. 광신자 맹신자들이 자신들이 믿는 신만이 유일신이며, 진리라는 방식으로 세뇌당한 것과 똑 같은 이치이며, 의학에 세뇌 당하거나, 한의학에 세뇌 당하거나.... 여타 다른 사람들의 말에 세뇌 당하는 것이... 지금 그대의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며, 개개인들 모두가 주장하는 '자신의 나' 이다.
'도가' 와 인연있는 사람들이 '도가'를 이루는 사람들이다.
도가의 가족들에게는 작은 다툼 조차도 있을 수 없다.
서로가 자신의 나를 주장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나' 가 '본래 자신의 나'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목한 것이며, 불평불만이 없는 것이며, 평화로운 것이다.
인간들, 인간세상... 서로가 올다고 주장하는 세상이다.
그 자존심들, 허구적인 앎으로써 어찌 소통이 될 수 있겠는가?
서로가 옳다는 주장들 속에서 어찌 행복이나 평화 자유를 구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자유와 평화, 행복을 원한다면 진리의 길을 가라고 하는 것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이 진리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마음의 실체를 깨닫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도가의 약식이 진리이다.
왜냐하면 인간생명체의 근원에 바탕을 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대와 인류에게 영원한 자유와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
'깨달음과 중도 · 방편설 - 말변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비의 문 / 지식과 지혜와 진리 - 깨달음에 대한 올바른 앎이란? / 도가도비상도 - 말변사 (0) | 2014.10.15 |
---|---|
인연/ 일체유심조에 대한 지적 이해와 깨달음의 이해와 올바른 앎과 진리에 대한 비유/ 사유 (0) | 2014.10.10 |
나는 착한 목자다 / 생각하는 자와 생각에 지배 당하는 자 - 예수의 말변사 / 진리란? (0) | 2014.10.02 |
인생. 인간 삶의 허구 / 너 자신을 알라 그렇지 않다면, 살아갈 가치도 없다 - 연극... (0) | 2014.09.29 |
내마음의 문 / 그 닫힌 문을 여는 법 / 일념법. 일념명상법이란? / 무엇을 진리라고 하는가? (0) | 2014.09.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