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과 중도 · 방편설 - 말변사

인연/ 일체유심조에 대한 지적 이해와 깨달음의 이해와 올바른 앎과 진리에 대한 비유/ 사유

일념법진원 2014. 10. 10. 07:34

아마도 이곳의 글들에 대해서 지적으로나마 이해 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체유심조' 가 아니라, '일체유생각조' 라는 말로써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며,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에게는 '일체유심조거나, 일체유생각조거나... 말변사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료 이해 할 수 있는 말이다.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 일념법, 일념명상법을 잘 이해 하고 실천하여 '생각의 원리, 생각의 윤회현상'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사람들만이 사실 '도'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며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며,  더 나아가 검증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지식으로써 '일체유심조'라는 말에 대한 이해는 이해가 아니라 오해이다.

사실 현시대에는 초등학생들의 지식으로써도 일체유심조라는 말에 대해서 원효대사의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의 이야기에 대해서 아는 것 같다. 아이들의 '일체유심조'라는 말에 대한 이해의 정도나 젊은이나 중년이나 노인들의 일체유심조라는 말에 대한 이해에는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런 앎에 대해서 지식이라고 한다.

 

 

 

일체유심조 라는 글자를 잘 쓰는 명필가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 또한 '일체유심조'라는 말에 대한 이해의 정도는 초등학생들의 이해의 정도와 다를 바 없다. 

 

'일체유심조의 더 깊은 뜻'에 대해서는 카페의 '전체공지'에 설명되었으니, 여기서는 생략한다.

 

 

 

가령.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일체유심조'라는 말을 가르치게 된다면, 그 아이들 또한 동화를 부르듯이 '일체유심조'라는 말을 잘 하게 될 것이며, 앵무새에게 말을 가르치더라도 '일체유심조, 일체유심조, 일체유심조....'라는 말을 반복할 것이며, 유치원생들보다 말을 더 잘 할 수 있다. 

간혹 절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일체유심조' 라는 말과 '말변사' 라는 말들이다. 

 

하지만, 인간의 지식으로써의 말변사라는 말에 대한 이해는... 앵무새가 말을 배워서 '말변사, 말변사'라고 지저귀는 소리와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그 말, 말, 말을 알 뿐이며, 앵무새 또한 그 말, 말, 말... 소리를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의 지식과 초등학생의 지식, 그리고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의 지식, 그리고 절간에서 하루종일 일체유심조, 말변사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지식 수준에는 어떤 차이기 있을까? 

 

사실. 유치원 아이들과 초등학생들의 '엄마'라는 말에 대한 이해와 엄마가 아닌 사람들의 엄마라는 말에 대한 이해 그리고 스스로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엄마들의 엄마라는 말에 대한 이해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사실. 별반 차이는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지식이라는 것은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웟던 말, 말, 말들에 대해서 자신의 마음대로 상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마음 또한 타인들로부터 배웠던 말, 말, 말들이 유기적인 작용에 의해서 창조된 말, 말, 말이다.

 

 

일체유심조라는 말에 대한 이해 또한 그러하다.

사실 도토리 키재기라는 말과 같이 대동소이하다. 서로가 다르게 이해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다른 점이 있다면... 전에, 살아오는 동안에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웠던 말, 말, 말들... 다른 말들로써 일체유심조라는 말에 대해서 설명할 것이며, 자기주장을 위한 지식을 총 동원하겠지만, 그 동원되는 말들 또한 타인들로부터 듣지 않고 아는 말은 단 하나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원효대사가 밤중에 목이말라서 마셨던 물이 갈증을 해결해 주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꿀맛으로 느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그 물이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구토를 했다는 말이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

이런 사실에 대해서 비유를 드는 사람들이 초등학생들의 지식이며, 세상 사람들의 모든 지식들 또한 이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다만 원효대사는 체험을 통해서 일체유심조라는 말에 대해 좀더 깊은 이해에 도달한 것이다. 

 

사실 술에 만취한 사람이 맥주병에 담긴 오줌을 마시는 일은 장난끼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간혹 있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술에 취했기 때문에 맥주 맛이나 오줌의 맛을 분간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사람 또한 정신을 차리고 나서 자신이 마신 물이 물이 아니라, 오줌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확인 한다면, 토악질을 할 수도 있겠지만, 세월이 지나고 나면... 지난 날의 끔찍한 추억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절대로 그런 실수를 다시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수 있을 뿐, 그런 실수를 다시 할 가능성은 배제될 수 없다. 술을 끊지 못하는 한. 

 

 

사실. 원효대사만큼 일체유심조라는 말에 대해서 깊이 이해 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하는 일은 일상에서도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원효의 일체유심조에 대한 이해는 '마음의 작용에 대한 극히 작은 일부분에 대한 자신만의 깨달음'이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하는 까닭에 대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흑백갈등을 그린 영화에서도 그런 일이 있는데, 흑인 하녀가 미워하던 백인 여인에게 똥을 넣은 케익을 만들어 주는 경우가 그러하다. 백인 여인은 그 케익을 맛있게 먹었고 그 맛에 반해서 그녀의 요리솜씨를 칭찬하였으나, 나중에 똥을 넣었다는 말, 말, 말, 단지 그 말 한마디에 의해서 구토를 하는 일과 유사하기 때문이며, 침을 뱉은 음식을 맛있게 먹고나서... 침을 뱉은 음식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구토하는 일 또한 그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해골바가지의 물을 마시거나, 침뱉은 음식을 먹거나, 똥을 넣은 케익을 먹거나... 몸의 건강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알았기 때문에 병이 된 것이다. 다만 마음의 작용이 그러하기 때문에 구토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세월이 지나고 나면... 아니 세월이 지나더라도 결코 웃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절대로 기억하고 싶지 않을지라도... 그 기억은 죽는 날까지도 그를 괴롭힐 수밖에 없다. 

 

지금 이 글을 보는 그대 또한... 그런 일과 유사한 경험이라거나, 또는 타인들로부터 과거에 들었던 말 한마디에 대해서 평생 동안 분노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며, 평생동안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말, 말, 말, 말들에 대해서 사실적인 것이라고 생각, 착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말은 본래 말이 아니라, 생각의 표현일 뿐이며, 허구적인 것이라고 아는 앎에 대해서 '올바른 앎'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며, 깨달음, 진리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한생각의 차이이다. 

깨끗함과 더러움, 아름다움과 추함, 좋은 것과 나쁜 것, 큰것과 작은 것, 선함과 악함, 지식과 깨달음이 모두 그러하다. 

 

 

더 깊은 한생각의 차이... 인간의 관념으로 볼때에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여길 수밖에 없는 한생각의 차이가 있다. 

 

생각은 모두 돋일한 생각이지만... 그 한생각의 차이가 곧 삶과 죽음의 차이이며, 하늘과 땅의 차이이며, 고통과 즐거움, 천국과 지옥의 차이이다. 

 

마음이 있다는 생각과 마음이 없다는 생각 또한 한생각의 아치이다. 하지만 '나는 마음이 없다'라고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삶이 있으며, 죽음도 있으며... 내가 있으며, 남들이 있으며, 세상이 있으며, 우주가 있으며, 순수의식이 있기 때문이며, 영혼과 성령, 불성이 있기 때문이며, 깨달음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육체가 나다는 생각과 육체가 내가 아니다는 생각 또한 한생각의 차이이다. '육체가 나가 아니다'는 생각과 '육체가 나다'는 생각은 분명히 한생각의 차이이다. 만약에 '육체가 내가 아니라면...' 이라는 생각에 대해서 몰두해 보더라도.. 해답은 없다. 육체가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더라도 그 생각을 하는 자는 자신이기 때문이며, 자신의 생각이기 때문이며, 오직 자신만의 고유한?? 생각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그 한생각의 차이, 즉 마음의 갈등에 의해서 자살을 하기도 하며, 살인을 하기도 하며, 분노를 느끼기도 하며, 즐거움을 느끼기도 하며, 질투를 느끼기도 하며, 고통을, 외로움을 경험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내가 산다는 생각도 하나의 기억된 생각이며, 내가 죽는다는 생각 또한 기억된 한조각의 생각에 불과한 또 다른 생각이다. 이와 같이 마음이 생각에 불과한 생각들로 이루어진 것들이지만... 그런 말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밀려오는 생각을 스스로 잠재울 수 없다.

 

 

물론 깊이 잠들 수 있다면.. 그 동안 만큼은 생각이 끊어진다. 누구나 깊은 잠을 경험하지만... 생각의 끊어짐(생각의 휴식)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다. 소위 '텅 빔, 공, 무, 아무것도 없는 것의 완전함' 이라는 말로 표현된 말이다. 두권의 책과 이곳의 글들에... 

 

 

 

 

인간세상... 깨달았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많으며, 서로가 진리라고 주장하는 자들 또한 무수히도 많은 세상이다.       

 

그들이 깨달았다고 생각하든, 아니라고 생각하든 한생각의 차이이다. 일체유심조라는 말에 대해서 이해 한다고 생각하든, 이해 할 수 없다고 생각하든 그 또한 한생각의 차이이다. 그리고 그 모든 생각들은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어린아이시절부터 타인들에게 들었던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며, 그 생각들이 조각조각 그대의 기억세포에 저장된 생각(말, 말, 말들, 낱말들)들이다. 그 기억된 생각들에 의해서 '내가 사람이다, 아니다, 내가 깨달았다, 아니다' 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사실 인간의 사고방식이라는 것들... 지식들... 모두가 그러하다.

다만 인간은 자신의 어린아이시절,즉 타인들로부터 말을 배우던 시절들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 대해서 사실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내가 있다는 말에 대해서 사실적으로 여기는 것이며, 내가 사람이다는 말에 대해서 사실적으로 여기는 것이며, 내가 죽는다는 말에 대해서 사실적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서 두려워 하는 것이다.

 

죽음은 경험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대가 태어남을 경험 할 수 없었듯이...

 

 

 

언어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으며, 내가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그 또한 자신의 기억세포에 저장된 말, 말, 말들.... 타인들로부터 들어서 배웠던 말, 말, 말들을 조합하여 '내가... 이런 사람이다, 내가 깨달았다' 고 주장하는 것이다.

 

사실 인간들의 모든 앎이 그러하다. 자신의 앎이 아니라, 타인들의 말,말,말들을 끌어 모아서 그것들에 대해서 '나다, 내가 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사실. 이런 말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사람들... 그들이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다.

 

 

 

 

'도' 를 만나는 일에 대해서 백천만겁난조우의 인연이라는 말이 있으며, '도'를 이해 하는 일에 대해서 '신비의 문을 여는 일'이라는 말이 있다. 전자는 석가모니로부터 전해지는 말이며, 후자는  '노자'의 도뎍경 해석에 나오는 말이다.

 

사실. 인간의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써 '도'를 이해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천만겁난조우라는 말과 같이 귀하고 귀한 인연이 있는 사람들만이 '도'를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며, 신비의 문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곳의 글들에서 항상 반복되는 말이 '일념법, 일념명상법, 도가의 약식' 이 진리'라는 말이다.

 

그리고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사람들이 도가를 이루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오직 그들만이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하는 인물들이며, 오직 그들만이 '일체유심조'라는 말이 '일체유'생각'조' 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지식이란 타인들로부터 끌어모은 것(말, 말, 말)들이며, 타인들의 말, 말, 말에 의해서 가공된 것들이며, 그대의 기억세포, 생각세포, 기억창고에 저장된 말, 말, 말... 낱말들에 불과한 것들이다. 그 낱말들은 모두 상대적인 것들로써 올바른 앎이란 겨자씨 만큼도 없는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논란만 있을 뿐, 인생에 해답이 없는 것이다. 

 

 

 

올바른 앎에 대한 비유를 든다면, 소크라테스의 '유일한 선은 앎이며, 유일한 악은 지식'이다는 말이다. 지식으로써의 모든 앎은 선함과 악함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과 같은 분별로써 결코 올바른 앎일 수 없다는 말이며,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언어가 상대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할 수 있는 앎에 대해서 올바른 앎이라고 하는 것이다.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 있다.

그들의 앎들 중에서 가장 기본적이며, 사소한 상식과도 다르지 않은 앎, 하나는... 자신의 몸이 유기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한다는 것이며, 그런 올바른 앎으로써의 지식은 최소한 자신의 몸만큼은 현대의학이나, 기타 모든 하문, 의학 등의 지식에 대해서 쓸모 없는 지식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며, 그런 지식 따위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모든 질병에 대해서 스스로 온전하게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최소한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생각의 원리를 이해 하는 사람들,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은 자신의 몸을 자연계의 야생동물들과 같은 건강한 몸으로 재창조할 수 있는 능력, 권리, 권능을 얻게 되므로써 죽는 날까지 야생동물들과 같은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며, 더 나아가 '육체가 나다, 육체가 나가 아니다'는 분별을 떠난 '깨달음'을 증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념법, 일념명상법이 진리라고 하는 것이다. 

그대의 마음의 실체, 마음의 근원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진리. 오직 그것이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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