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의 존재란 그토록 무지몽매한 것이다.
왜그럴까?
왜, 사실이 아닌 것들에 대해서 서로가 사실인냥 옳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왜 인간들은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들까지도 '내가 안다'는 방식으로 주장하는 일에 대해서 당연하게 여기는 것일까?
이런 글을 쓰다보니. 어떤 중생들의 '오직 모를 뿐' 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물론 '오직 모를 뿐'이라고 이해 한다면,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또 떠들고 다닌다. '오직 모를 뿐'이라고 아는 앎이 올바른 앎이라고 주절거리는 것이다.
부처님 말씀이 진리라고, 하나님 말씀이 진리라고.... 아니 서로가 진리라고 주장한다.
사실 진실도 없으며, 거짓도 없다.
사실 인간들의 모든 언어들, 말들, 지식들... 원리전도몽상에서 비롯된 헛소리들이다.
그 속내를 보면, 올바른 앎이란 겨자씨 만큼도 없다.
인간은 인간이 본래 인간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사실. 인간은 본래 인간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본래 인간이라는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지능이 뛰어난 동물이 인간이 아니라, 지구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주자연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간은 한낱 자연의 생태고리현상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가장 낮은 단계의 하등동물다.
사실 인간이 인간의 척도로써 본다는 것, 그 자체가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의 오류이다. 왜냐하면 자연의 입장에서 볼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인간의 입장에서도 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직 인간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보기 때문에 단견이며, 소견이며, 편견이 아닐 수 없는 것들이 소위 인간들의 지식이라는 허구적인 것들이다.
진리는 단순하다는 말과 같이 인간의 '우리가 인간, 사람이다'는 말... 그 자체가 단순한 착각에서 비롯된 몽상이며, 환상이며, 착각이다. 왜냐하면.... 무의식. 잠재의식. 순수의식 등으로 표현되는 (언어를 습득하기 이전의) 어린아이에게는 '내가....' 라는 '자아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은 언어가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니다는 말이 옳은 표현이다.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들 모두가 허구적인 것이다. 왜냐햐면,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은 경험이전의 '사고(생각)'에 대해서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지식은 우주를 여행하는 일에 대해서 대단하고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실 꿈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대가 살아온 날들 모두가 희미한 꿈과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꿈이거나 과거의 일이거나.... 모두 모두 기억세포에 저장된 '생각의 조각들'이기 때문이다. 생각의 조각들이 모아져 주절거리는 말, 말, 말들이 곧 그대의 자신의 나를 구성하는 구성요소들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사실 새로운 것은 없다.
인간이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까닭은, 새로운 것을 찾거나 발전을 위해서거나, 자신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만족하여 평화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은 자신의 나에 대해서 신뢰할만한 앎,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며,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잠재의식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죽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해답이 없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욕망을 모두 채울 수 없기 때문이며, 채워질 수 없는 것이 욕망이기 때문이다. 욕망이 채워질 수 없는 까닭은, 그 욕망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의 나 또한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꿈의 해석' 이라는 말 자체가 무한한 어리석음의 소치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꿈이 무엇인지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꿈은 잠재의식이나 무의식 상태와 유사한 것이며 '깊이 잠든 시간 동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듯이 경험이지만 경험자가 없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험의 오류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다. 사실 '깊이 잠든 동안과 꿈'은 그 상태 자체가 현실이다. 꿈속에서는 꿈이 현실이며, 일상에서는 일상이 현실이다. 그대가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하게 된다면... 생각의 윤회현상에 속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알게된다.
일상에서는 꿈을 경험할 수 없으며 이와 같이 꿈속에서는 일상을 경험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전자와 후자 모두... 기억세포에 저장된다는 것이며, 언어로 저장된다는 것이며, 기억된 생각들로써만 남겨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은 그 무수히 많은 생각들 중 어느 한 생각도 지속적으로 붙들어둘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이 스스로 만족하여 평화로울 수 없는 이유는 '생각'을 스스로 통제하거나 더할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구나 생각하지만, 누구나 생각에 대해서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 생각은 실체가 없는 것이라서, 붙들어 둘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법이 있다.
그 법,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려는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반드시 해답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을 잘한다는 생각' 도 '하조각의 생각'이며, '생각을 못한다는 생각' 또한 기억세포에 저장된 '한조의 생각'이며, '생각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 또한 '기억된 생각들 중의 한조각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생각이 없다는 생각' 도.. '기억된 생각들 중에 하나의 생각'이며, '생각이 있다'는 생각 또한 그러한 것고 같다.
그렇다면, '생각이 무엇일까' 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생각이 무엇일까' 라고 생각하는 순간. '생각이 무엇일까'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그 생각 또한 '기억세포에 저장된 한조각의 생각'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인간이 '생각이 무엇일까'라는... '기억세포에 저장된 수많은 생각들 중 한조각의 생각인'.... '한생각'만을 단 한시간 동안만이라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면... 생각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 생각은 시작도 중간도 끝도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대가 생각을 하고 싶거나 하고싶지 않거나... 생각은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며, 스스로 생멸을 반복순환하는 매우 신비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의 주체가 그대가 아니라, 그대의 주체가 생각이라는 뜻이다.
그대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듯이... 그대가 살고 싶은데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듯이... 그대가 죽고 싶다고 하여 죽어질 수 없듯이... 그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꿈을 꾸듯이... 그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대의 삶이 그러하듯이... 그대의 생각 또한 그대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스스로 생멸을 반복순환하는 것이며, 다만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써는 그런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는 것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삶에는 해답이 없는 것이며... 인간들의 서로간의 주장은 끝이 없는 것이다. 그 주장들이 자기의 주장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들의 삶들 모두가 '꿈꾸는 사람들'인 것이며, 무지몽매한 것이다.
사실 인간은 본래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 본래 인간이라는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을 창조했다고 믿는 절대자나 신 또한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우주 또한 본래 있는 것이 아니며, 자연 또한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적인 것들 또한 사실적인 것이 아니며, 허구적인 것들 또한 허구적인 것이 아니다.
사실. 인간이라는 것이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참도 없는 것이며, 거짓도 없는 것이며, 진실도 없는 것이며 진리도 없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이 일어났기 때문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아니. 사실은 생각의 윤회현상에 의해서 있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 착각, 몽상 또한 그대의 뜻이 아니라.... 스스로 생멸하는 생각에 의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현상이라는 생각' 또한 '기억세포에 저장된 한조각의 생각'에 불과한 또 다른 생각이다. 그대가 어떤 생각을 하든 말든... 그 생각들 또한 그러하다.
'본래 없는 것'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것' 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도 있겠지만... 그 또한 그런 생각이며, 이미 저장된 생각들 중의 한생각에 대해서 말, 말, 말... 언어로 표현되는 것들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인간들의 삶이라는 것들 모두가 그 '생각의 유희' 현상에 속수무책으로 속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지몽매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삶' 이라는 생각과 '죽음'이라는 생각이 있다.
'삶'이라는 생각도 '기억세포에 이미 저장된 생각들 중의 한조각의 생각이며, 죽음이라는 생각 또한 그러하다. 그대가 기억할 수 없는 '잠재의식, 무의식'의 바탕에 이미 저장된 생각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다만 그 생각들에 의해서... 존재한다고 생각, 착각하는 것이다.
사실. 인간세상의 인간들의 삶은 가상현실이다.
절대자나 신이 있다고 가정한 것이며, 인간의 삶이 있다고 가정한 것이며, 존재의 이유가 있다고 가정한 것이다. 그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들의 모든 주장들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설령 '내가 사람이다'고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육십억, 칠십억 인류 모두가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옳다고 주장하더라도... 사실상 아무런 근거가 없다. 모두가 다른 타인들로부터 들었던 말, 말, 말들에 대해서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타인들 또한 다른 타인들로부터 들었던 말, 말, 말들에 대해서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만약에 선함과 악함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인간들의 삶 자체가 모두 악함이다.
왜냐하면 완전히 허구적인 지식들로써 서로가 더 잘났다는 주장들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며,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의 지식은 다툼이나 경쟁을 위한 도구들에 불과한 것들일 뿐, 인간들의 행복이나, 평화로운 삶을 위해서는 쓸모 없는 것들이다.
왜냐하면, 가령 프로이트의 꿈에 대한 해석과 같이 사실이 아닌 것들에 대해서... 자신이 경험한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망상에 대해서 옳음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이... 인간들 모두가 올바른 앎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며, '내가 안다'는 방식으로 죽는날 까지 자기를 주장하기 위해서 살기 때문이다.
만약에 인간세상에 행복이나 평화 자유가 있을 수 있다면... 그런 어리석은 짓들이 포기될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그대의 삶 또한 그러하다. 사실 자신의 모든 앎이 이토록 허구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다만 이해라도 할 수 있다면... 행복이나 평화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진리는 단순하다는 말과 같이, 그 그 방법 또한 아주 단순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누구나 '인생이 무엇인지, 우리의 삶에 대해서는 누구도 그 해답을 모른다'는 사실에 대해서 인정하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대의 가족이든, 이웃이든, 형제든, 자매든, 부모든, 자식이든, 친구든, 친척이든, 지인이든, 그저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그대와 인연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는 모두 인생의 해답을 모르는 사람들이다"는 앎(말, 마음, 생각)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사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다툼이 있을 수 있겠는가말이다.
"우리는 인생의 해답을 모르니.... 서로가 물어가면서... 즐겁게 노닐면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프로이트가 그렇듯이.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경험에 바탕을 둔) '기억된 생각(=마음, 느깜, 감정, 학습된 언어)의 범주이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며, 오직 자신만의 생각의 세상을 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른은 아이의 입장에서 볼 수 없는 것이며, 아이들은 어른의 입장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대 또한 그대의 입장에서 보는 것일 뿐,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볼 수 없는 것이며, 다른 사람들 또한 다른 각각의 사람들의 입장에서 대상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언어가 있으나, 소통될 수 없는 것이다. 소통될 수 없다는 것은 곧 다툼이 있다는 말이며, 다툼이 있다는 말은 평화로울 수 없다는 말이다.
인간세상이 평화로울 수 없는 첫번째 이유는, 누구나 자신의 마음이 있다고 믿지만...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자신이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자신의 마음조차 이해 할 수 없는 사람이, 타인들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있다는 생각자체가 망상이며, 몽상이며, 착각인 것이다. 인간이 평호롭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일이 있다면... 오직 하나.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우선 이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은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에 생로병사의 고통을 겪는 것이다. 사실 생로병사의 고통 또한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 경험의 오류에 의해서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그 생각 또한 그대의 생각이 아니라, 스스로 명멸하는 생각에 의해서 속수무책으로 이끌려 다니는 것이다.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워썬 말, 말, 말들에 대한 기억에 의해서, 기억된 생각들의 스스로 일어나는 행위에 의해서...
사실. 두권의 책과 이곳의 모든 글들... 그 해답을 찾는이들을 위해서 쓰여지는 것이며, 가치 있는 삶, 검증된 삶을 위한 유일한 방법에 대해서 전하려는 것이다. 귀하고 귀한 인연있는자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신을 찾을 능력이 있다. 다만 그런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에 삶과 죽음의 고통을 겪는 것이다.
인간은 본래 자신의 나를 보는 일에 대해서 '원리'라고 하는 것 같다.
인간의 근원이나, 우주의 기원에 대해서 '원리'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하는 지식에 대해서 '진리'라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어떤 이름을 부여하든 상관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근거조차도 불분명한 앎들... 그 앎들의 근원인 '내가 사람이다'는 말(앎, 지식, 생각)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지식을 초월한) 또 다른 '지식'을 발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대의 '나'를 구성하는 언어가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아는 앎을 이르는 말이다. 사실 인간의 사고방식으로써는 '깨달아 아는 앎'과 '지식으로써 아는 앎'과의 차이에 대해서 조차 이해 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식으로써 아는 모든 앎들은 자신의 의지나 또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알게된 것들이며, 특별한 것이든 아니든... 모두가 타인들로부터 듣거나 보고 배워서 하는 앎으로써 사실 자신의 앎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앎이다. 반면에 스스로 깨달아 아는 앎은 타인들로부터 듣고 보고 배웠던 모든 앎들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을 이르는 말이다.
사실 인간들의 지식에는 확고부동하여 흔들리지 않는 앎은 있을 수 없다. 인간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그러하며, 멈출 수 없는 욕망이 그러하다. 인간들의 끊임없이 노력하는 이유는, 현실에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들의 더 좋은 것들과 새로운 것들을 찾아 헤매는 이유가 자신들의 앎으로써는 결코 만족하여 평화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깨달아 아는 앎은 확고부동하여 인간들의 지식 따위에 흔들림이 없는 앎을 이르는 말이다.
마음이 갈대와 같이 흔들리는 이유 또한 스스로 깨달아 아는 올바른 앎이 아니라,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워서 아는 분명한 앎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두려움과 고통들, 번뇌와 망상들... 끊임없는 작은 다툼과 갈등들, 모든 근심과 걱정들 또한 스스로 깨달아 아는 올바른 앎이 아니라,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워서 아는 지식들로써 근거가 불분명한 말들에 대한 앎이기 때문이다. 그 지식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의 꿈에 대한 해석은 모두 엉터리이다. 오직 자기만의 주장이기 때문에 가치 없는 것이다. 그런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하고 싶다면... '책 비밀의 언어'에 기록되어 있다. 그대의 어린아이시절들... 아이가 말을 배우는 과정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되었기 때문이며, 경험이전의 사고에 대해서 누구나 이해 할 수 있을 만큼 사실을 사실 그대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과 이곳 모든 글들 또한 '경험이전의 사고'를 경험한 사람이다.
몰론 인간의 관념으로 볼때 사람이겠지만... 나는 내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신도 아니며, 사람도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적인 언어로써 표현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인간의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써는 이해 할 수 없는 말이다. 그러너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이 말이야말로 진실된 말이다. 옳고 옳지 않음 또한 진정한 옳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한 옳음이란, 옳음이 없는 것이다.
그대 또한 그것을 깨달아 알기 위한 방법이 있다.
사실 인간세상에 그것을 전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대 자신을 아는 방법이 있다.
그대의 타인들에 의해서 닫혀버린 마음의 문을 여는 벙법이 있다.
남들에게 묻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에게 묻는 방식이다.
명색이 '일념법이며, 일념명상법'이다.
귀하고 귀한 인연있는 자만의 몫이다.
귀하고 귀한 인연으로... 그대에게 영원한 자유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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