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인간은 누구나, "제잘난 맛에 사는게 인생인데..." 라는 옛 노래가락처럼... 그렇게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게 살아서 행복하고 평화로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만은. 종교들이나, 명상집단들이나, 여타 세상에 나타나 있는 모든 이합집산들을 보면... 서로가 못잡아먹어서 안달하는 것 같다.
지식의 한계이다.
사실. 올바른 앎이 겨자씨 만큼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올바른 앎이란 어떤 앎이며, 지식의 앎과 무엇이 어떻게 다르기에 그따위 소리를 하는가? 라며, 주먹이라도 휘드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헛소리 말라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인물들이라면... 빙긋이 웃어버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지식을 초월한 지식' 즉 올바른 앎이란...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절대로 이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말은 같은 말이지만, 인간의 지식으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기 때문에 '마이동풍'이라는 말이 창조된 것이며, 우이독경이라는 말까지 생겨난 것 같다.
왜냐하면... 말은 같은 말이지만 '올바른 앎을 '모르는 인간들의 지식은... 올바른 말들에 대해서 '말이나, 소, 개, 어린 양 등의 축생들과 같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인간들에 대해서 '길잃은 어린 양새기'에 비유한 것이며, 석가모니는 인간들에 대해서 축생과 다름이 없다는 뜻으로 '중생'이라고 한 것이다.
석가모니의 말이나, 예수의 말, 그리고 노자의 말이나, 소크라테스의 말들에 대해서 단 한구절만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있다면.... 정녕 단 한구절만이라도 이해 할 수 있다면, 인간들.... 서로가 자기가 옳다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이며, 종교나부랭이들이나, 명상집단들의 하수인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들의 말들... 올바른 방평설들로써, 또는 올바른 비유로써... 지식으로써도 이해가 가능하다는 말이며, 논리적인 말이며... 지극히 당연한 말이라는 것이다.
그대가 처음 이곳의 글들을 접한다고 하더라더... 적극적인 자세로 자세히 설명을 듣는다면, 지식으로써도 이해는 가능한 말이다. 왜냐하면 이치에 어긋날 수 없는 말이며, 지극히 논리정연한 말이기 때문이며, 모르면 깜감하겠지만... 알고보면... 너무나도 당연하여 웃어버릴 수밖에 없는 말이며, 더 나아가 그대의 삶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 될 수 있는 올바른 앎이며, 지혜이며, 참된 이치이기 때문이다.
사실. 석가모니의 12연기법에 나오는 말이며, '명색'이라는 말에 대한 올바른 앎이다.
사실 '연기법'이라는 말은 인간들의 어리석음에 의해서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다'는 방식으로 해석되면서 무수히도 많은 헛소리들이 창조되지만... 인간들의 지식으로 이해하는 앎과 석가모니의 뜻은 그야말로 적반하장격이다. 전혀 다른 뜻이다. 인간들의 서로가 잘난체 하는 해석들...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사실 연기법이란. 인간의 지식이 언어이며, 모든 낱말들이 '명색의 동일시' 로써 올바른 앎이 아니라는 말이 '명색'이라는 말의 본래의 뜻이기 때문이다. 사실. 연기법이란, 사성제가 진리라는 '고집멸도' 라는 말과 같이 고통을 멸하는 도리가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고통이 다른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앎(識)이며, 그 앎이 '명색의 동일시'로써 올바른 앎이 아니기 때문에 '고통'이며, 모든 고통의 원인이 '명색의 동일시에 대한 착각'이라는 말이다.
연기법에 나오는 '명색'에 대한 설명이며, 언어, 지식, 말이 모든 고통의 원인이라는 말에 대한 설명이며, 인간들의 말, 언어가 어떤 방식이기에 고통의 원인인지에 대해서 사례를 들어 설명하려는 것이다.
지근 설명하고자 하는 말이 '명색의 동일시'에 대한 비유이며, 고통의 원인을 밝히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의 요지이다. 말을 배워서 아는 앎에 대해서 '識'으로 표현된 것이며, 그 앎이 '명색의 동일시'로써의 앎으로써 올바른 앎이 아니기 때문에, 그 앎, 지식이 모든 고통의 원인이다'는 설명이... 12연기법으로 설명된 것이다.
그들의 말, 말, 말들이 언술이 뛰어난 중생무리들에 의해서 우상숭배사상으로 전락되면서... 그 본질이 훼손된 것이며, 그에 대한 설명이다. 물론 이곳에 여러차례 반복 설명되었으니... 여러차례 반복해서 보게되면, 지적으로도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에 반복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명색의 동일시에 대한 착각에서 깨어나는 일에 대해서 명색이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이며, '부처'라고 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영혼이 있다고 알며, 시간과 공간이 있다고 알며, 내가 있다고 알며, 마음이 있다고 안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것을 별이라고 하며, 어떤 과일에 대해서 '사과' 라고 인다. 그러면서도... '달이 뭐라카드나' 라는 방식으로써 '달'이 스스로 '내가 달이다'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달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방식으로 이해 하기도 하는는 것 같다.
'달'은 '내가 달이다'고 말하지 아니한다. '내가 밝은 달'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그렇게 생각, 착각하는 것이다. 명색 즉 이름과 형상은 '둘'이지만, 그것을 하나로 보기 때문에 고통이 생겨났다는 말이 12연기법이다.
사실 '도가'의 일념법강좌에서 '화원'의 설명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있다면... 영혼이나 귀신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할 수도 있다.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종교에 세뇌당한 사람들이 이런 방식의 교육으로써 논리적으로 이해 할 수 있다면... 큰 시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며, 각종 명상단체들의 주장들에 대해서 '헛소리, 개소리' 쯤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앎이란, 자신이라는 존재가 스스로 본래 '그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지적으로써도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일념법명상으로써, 그런 사실에 대해서 확인해 나가는 과정인 것이며, 더 나아가 자신의 마음을 이해 하므로써... 남들과의 다툼이 사라지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이해 하는 만큼, 타인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앎으로써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만약에 그대가 광신자거나 맹신자라면... 이런 글들, 보고싶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런 설명을 다시 반복하는 이유는... 세간에 하도 많은 자들이 서로가 깨달았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사실 스스로 내가 깨달았다거나, 진리라고 주장하는 자들... 나는 없다, 마음이 없다, 성불했다고 주장하는 자들... 정신 나간자들이다.
광신자나 맹신자들보더 더 깊은 정신질환을 앓는 것이며, 빙의에 걸리거나, 신에 씌인 것들보다 더 한심한 것들이다.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허수아비보다 못한 것들이며, 무용지물들이다. 인간으로써는 쓸모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자신의 마음이 본래 자신의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니... 누구나 올바른 앎으로써... 다시 깨어날 수 있는 것이다.
'명색(名色)'이라는 말은 '이름 명' 과 '빛 색' 으로써.... 소리, 이름, 명칭... 과 모양, 형상, 동상... 등의 물질을 이르는 말이다. 가령 소리와 형상으로 여래를 볼 수 없다는 말과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말이며... 금강경사구게의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라는 구절에서의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또한 '아상, 인상, 수자상, 중생상'이 있으면 여래를 볼 수 없다는 말과도 같은 뜻이다.
도가의 화원의 강의 내용을 조금 다른 방법으로 요약하자면.
밝은 대낮에 "여기 별이 있어요" 라고 말한다.
낮에 별이 있다는 말은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이 말에 어떤 사람은 아이들의 방에 걸려있는 별의 모양을 생각할 것이며, 어떤 사람들은 밤하늘의 별들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런데...
'별'이라고 쓰여 있는 종이 한장을 내보인다면... 사람들은 웃어버릴 것이다.
종이에 쓰여진 글자... 별
말로 하는 소리... 별
밤하늘에 반짝이는 물질... 별
어떤 것이 진짜 '별' 일까?
이런 설명들...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에게는 지극히 상식적인 말이다. 그들은 '별은 별이 아니다'는 말에 대해서 당연한 말이라고 이해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영혼은 영혼이 아니다. 신은 신이 아니다, 귀신은 귀신이 아니다, 하늘은 하늘이 아니다. 부처는 부처가 아니다. 법은 법이 아니다, 깨달음은 깨달음이 아니다, 성령은 성령이 아니다, 불성은 불성이 아니다, 윤회는 윤회가 아니다.... 라는 방식으로 이해 하기 때문이며,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 올바른 앎을 아는 사람들이 어찌 명상집단들이나, 종교나부랭이들의 말에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겠는가 말이다. 더 나아가 삶은 삶이 아니다, 죽음은 죽음이 아니다 는 말과도 같은 맥락이기 때문이다.
'별'이라고 쓰여진 종이와 '밤하늘에 반짝이는 그것'은 같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종이에 쓰여진 글자는 '어떤 것'의 이름일 뿐, 그 글자가 '별'은 아니라는 말이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그것에 대해서 별이라는 이름을 붙이든지, 뱔이라는 이름을 붙이든지.... 밤하늘에 반짝이는 그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과라는 과일 또한 그러하다.
어떤 과일의 이름이 '사과' 이다.
'사과'라는 글자를 쓴 종이와, '사과'라는 괴실을 함께 책상위에 올려 놓는다면... 어떤 것이 진짜 사과이겠는가? '그 과실의 이름을 '과사'라고 붙인다고 하더라도... 과실은 그져 과실일 뿐이다. 그것에다가 '강아지'라고 이름을 짓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변치 않는 과실이다.
말, 말, 말.... 이름이 없더라도 그것은 있다는 말이며, 어떤 이름을 붙인다고 하더라도... 이름, 명칭, 낱말들만 따로 있을 뿐, 그것은 여전히 그것이라는 말이다.
그대의 이름 또한 그러하다.
개똥이라고 부르던, 사람이라고 부르던, 부처라고 부르던, 하나님이라고 부르던.... 그대 자신의 몸이 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이런 사실. 즉 명색의 동일시에 대한 올바른 앎이라면... 어느 누가 뭐라든지, 설령 당신 짐승같아... 라고 하더라도, 빙긋이 웃으며, '그래 나 짐승 맞어' 라는 방식으로 미소지을 수 있다는 뜻이다. 사실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라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대는 어떠한가?
옛날 어떤 선사가 있었는데, 그나마 그는 일념을 깨달은 인물이다.
대중들 앞에서 강연을 하는데, 그시대에 유명한 명필가를 초빙하여 글자를 쓰게 하였는데, 그 글자가 '콩 豆' 자였단다.
그 '콩 두'자를 쓴 커다란 종이 한장을 마루 한켠에 놓아 두고, 마루 한켠에는 노란콩을 한되쯤 가져다고 쏟아 놓은 다음에.... 들여 보내거라, 라고 소리 지르니. 마부가 말 한필을 끌고 들어오더라는 것이다.
대중들은 대체 무엇을 하는 걸꺼? 라며... 지켜 보는 가운데, 끌고온 말이 '豆' 자가 쓰여있는 종이에는 관심이 없고... 콩을 먹더라는 것이다.
그 한필의 말은 진짜 콩을 찾아서 먹는데...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하여 무슨 듯인지 이해 조차 못하더라는 것이다.
말, 짐승들, 동물들은 그런 '이름, 명칭, 말'에 구속됨이 없다는 말로 이해 한다면, 참으로 올바른 앎이다.
말, 소... 등의 축생은 (그대의 '내가 사람이다'라는 주장과 같이) '내가 말, 소...다' 라고 안다는 생각, 말, 마음이 없다는 뜻이며... '콩'이라는 낱말에 이끌려 다니지 않지만... '진짜 콩'은 알기 때문에 콩을 먹는다는 뜻이다.
영혼, 신, 부처, 하나님... 등의 말, 말, 말들 또한 그러하다.
'콩'이라는 이름을 먹는 것이 아니라, 진짜 콩을 먹는 말(馬)과 같이... 영혼이나 귀신이 '내가 그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그런 말, 이름, 낱말... 을 창조한 것이며.....자신들이 창조한 말, 말, 말에 대해서 찾아 헤맨다는 뜻이다. 그대의 '내가 있다, 내가 사람이다'는 말 또한 그러하다.
사실 지식으로 무장된 사람들은 이해 조차 쉽지 않은 말이겠지만... 일념을 깨닫고 나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기 때문에 그저 웃어버리는 것이다. 고통이 본래 고통이 아니라... 말, 말, 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며, 언어의 함정에 구속 매몰되어 그 함정에서, 언어의 윤회에서, 생각의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고집멸도, 라는 말로써... 명색의 동일시에 대한 착각에서 벗어나게 되면.... 고통이 본래 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통을 소멸하는 법' 또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니. 법은 법이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이며, 부처는 부처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며, 깨달음은 깨달음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윤회'라는 말에 세뇌당한 사람들.... 하나님 말씀이라는 말에 세뇌당한 사람들... 하늘의 뜻, 천성... 이라는 말에 대해서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 영혼이나 귀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 조상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 운명의 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 절대자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 진리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 순수의식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 참나, 진아가 있다고 주절거리는 사람들... 무아가 있다고 주절거리는 사람들... 천도제를 지내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모두가 올바른 앎이 겨자씨 만큼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의 모든 앎에 대해서 겨자씨 만큼도 올바른 앎이 없는 무지이며, 무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 하나만이라도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있다면...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 고통이라는 생각이다. 생각으로 이루어진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라는 '도가의 일념문구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에 대해서 무용지물이 아니라, 무용지용이라고 하는 것이다.
지식의 앎과 깨달음의 앎의 차이이다.
원죄는 원죄가 아니라고 아는 앎이 참다운 앎이며, 구원은 구원이 아니라고 아는 앎이 올바른 앎이다.
윤회는 윤회가 아니다고 아는 앎이 올바른 앎이며, 스스로 깨달아 아는 앎이기 때문에 의심이 없는 앎이며... 인간들의 모든 주장들에 대해서 웃어버릴 수밖에 없는 앎이니.... 올바른 앎인 것이다.
타인들로부터 끌어모은 정보들... 그 지식과 스스로 깨달아 아는 앎의 차이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의 깨달아 아는 앎은 이와 같이 스스로 깨달아 아는 앎이기 때문에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지 않는 앎이며, 너무나도 당연한 앎으로써 의심의 여지가 없는 앎이다. 하지만 그대의, 아니, 인간들의 지식으로써의 아는 앎은 어떠한가?
죽는 날까지 서로가 옳다고 주장만 할 뿐이다.
반면에 올바른 앎이란... 주장해야 할 까닭이 없는 앎이다.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앎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다툼이나, 논쟁이 있을 까닭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평하게 화합할 수 있는 것이며,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별은 별이 아니다'는 말과 같이 '나는 나가 아니다, 죽음은 죽음이 아니다' 라고 아는 앎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말, 삶이라는 말과 상대적인 말이 있기 때문에... 그 말, 말, 말에 의해서 죽음을 두려워 하는 것이다. 죽은자들에게 들어서 아는 말이 아니라, 죽음을 경험할 수 없는 자들에게 들어서 알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죽음 또한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가... 산 자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대가 깊이 잠든 동안, 꿈도 없이 깊이 잠들어 있는 동안과 죽음과의 차이는 없다. 최소한 그대 자신에게는...
지식으로 이해 한다는 것.... 올바른 앎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앎을 위해서는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이해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실. 옛 선사라는 자들의 법거량이나 선문답을 보면... 밤하늘의 별을 주제로 하는 법거량이나 선문답들이 있다. 사실. 인천의 용화사라는 절간을 창건했다는 '전강선사'라는 중생이 '깨달음'을 인가 받기 위해서 먼져 깨달았다는 여섯 명의 중생들을 찾아다니면서 법거량을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불가에서는 그런 중생들을 자랑스럽게 여기기 때문에 공개 했겠지만... 또한 남진제라는 중생의 법거량에 대한 신문기사 또한 가관이 아니지만... 모두 이와같이 일념조차 깨닫지 못한 하근기 중생들의 말재간들이다. 일념을 깨달은 인물들이 본다면, 기가막혀 박장대소할 수밖에 없는 말재간들이다.
사실, 옛 말에 하근기 중생은 '올바른 앎'에 대한 '도의 언어'에 대해서 박장대소하며, 중근기는 반신반의 하며, 상근기는 깊이 사유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참으로 신비스러운 일은... 법거량을 한다는, 그런 하근기 중생들의 말재간들을 보면서 그야말로 박장대소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며, 그들이 곧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말재간을 부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며, 앵무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부처님을 모신다는 중생들이, 일념을 깨닫는다면... '부처님'이라는 말조차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처가 본래 부처가 아닌데...' 커다란 인형을 가져다 놓고서... '부처님' 이라고 모시며... 무릎꿇고 절까지 해 대니...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린아이들이... 자기 부모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서.... 이순신장군의 동상 앞에... 엄마가 불상앞에서 108배를 하듯이... 절을 한다면... 그 부모들은 뭐라고 할까?
어디 그 뿐이겠는가?
엄마나 아빠가 예수의 십자가 상이나, 또는 성모마리아 상 앞에서 무릎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본, 어린아이들이... 병정놀이하던 장군들의 동상을 책상 위에 올려 놓고... 두손 모아... 장군님 저 좀 살려 주세요, 저좀 도와 주세요... 라고 기도한다면... 그 부모들은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자신들의 놀이와 아이들의 놀이는 그 차원이 다른 것이라고 생각할까?
그러니... 일념을 깨닫고 나면... 세상이 달리 보이는 것이며, 인간들의 삶이 삶이 아니라, 아귀다툼이라고 보기 때문에... 여여하게 스스로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몸은 그곳에 있으되... 마음은 욕망, 탐욕, 집착과 멀리 있으므로... 물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진흙탕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나... 스스로는 맗고 밝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가지고 노는 '불상'이라는 인형이나, '예수상이나, 성모상'이라는 인형이나... 아이들의 병정놀이 하는 인형들이나... 무엇이 다를까?
왜, 하필이면 죽은 자들 앞에서 구걸하는 것일까?
어차피 죽은 자들 앞에서 구걸하려거든... 차라리, 어차피 이미 죽고 사라져 없는 외국인(예수, 석가모니) 등의 죽은자들에게 구걸하지 말고... 차라리 자신의 조상들에게 구걸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왜냐하면 그나마, 자신들의 부모를 끔찍히 모신다면.... 그런 행위를 보고 자라는 자신의 아이들 또한 자기 부모를 보고 배우는 것이니... 최소한 불효자가 되지는 않을 터이니...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그렇지 아니한가?
이 글을 통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었는가?
생각 속에서는 해답이 없는 것이다. 스스로 확인하고, 생각을 글로 표현 할때, 더욱 더 사실적으로 이해 될 수 있는 것이며, 실천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생각을 정리하여, 일상에서 말로 표현하고, 댓글로써 마음을 전하는 일... 진리를 향한 거룩한 인물들의 일상이어야 하는 것이다.
지식을 초월한 올바른 앎, 그것이 본래 그대 자신이기 때문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이 진리이다.
그대의 굳게 닫힌 마음을 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인연있는이여. 그대에게 영원한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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