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사전적 의미를 보면.
이-성 (異性)【명사】
1. 성질이 다름. 또는 다른 성질.
2. 남녀·암수의 성이 다름. 또는 다른 것.
3. 남성이 여성을, 여성이 남성을 가리키는 말.
¶ ∼ 간의 교제. ↔동성(同性).
감-성 (感性)【명사】
1. 자극에 대하여 느낌이 일어나는 능력. 감수성(感受性).
2. 『철』 대상으로부터 감각되고 지각되어 표상(表象)을 얻게 되는 수동적인 능력. ↔오성(悟性).
본-능 (本能)【명사】
1. 『생』 생물이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동작이나 운동.
¶ 보호 ∼이 발동하다.
2. 『심』 동물이 후천적 경험이나 교육에 의하지 않고 외부의 변화에 따라서 나타내는 통일적인 심신의 반응 형식.
¶ ∼을 자극하다.
심성 (心性)【명사】
1. ‘심성정(心性情)’의 준말.
¶ 고운 ∼.
2. 『불』 변하지 않는 참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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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성'이라는 낱말의 뜻을 보니.
'심성'은 '심성정'의 준말이며.... 불교는, '변하지 않는 참된 마음'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한자의 뜻'으로 보니. '성품 성' 자와 '뜻 정(情)' 자로써 '뜻이 있는 성품'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심성'이라는 말은... 마음이 있으되, 뜻이 분명한 앎으로써, 그 뜻이 변하지 않는 마음, 즉 그 뜻이 너무나도 분명하여, 영원불변한 앎을 이르는 말인 것 같다. 그렇다면... 그것은 마음을 초월한 '진리'라는 말과 통하는 말이며, 진리이며, '도, 깨달음'을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의 지식으로써는 어떤 앎이라고 하더라도 '진리' 일 수는 없다. 진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진리란 원리를 이해 하는 앎이기 때문이며, 원리를 이해 한다는 것은... 언어의 기원을 이해 하는 것이며, 인간의 기원을 이해 하는 것이며, 우주의 근본원인을 이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모든 것들에 대해서 다 아는 것 같지만, 정작 자신들의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무지한 것들이다. '이성'이나, 감성이라는 말은 있으되, 그런 감정이나 느낌들이 왜 생겨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이성' 이라는 말과 '감성'이라는 말, 그리고 '본능'이라는 말을 창조했지만... 이성적인 것도 아니며, 감성적인 것도 아니며, 본능적인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하여 '사이보그 같은 것'도 아니다.
그대는 그대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이성적인 사람인가?
지적인 사람인가?
감성적인 사람인가?
본능적인 사람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기계화된 로봇인가? 아니면, 인조인간인가?
사실. 내가 보기에는 인간들의 천태만상으로 드러나는 행위들을 보노라면, 다분히 인조인간들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가공되는 과정에서의 메인서버의 오작동으로 인하여... 정신이 있는 듯 하지만, 정신이 없거나, 또는 정신이 없는 듯 하다가, 간혹 정신을 차리기도 하는..., 방식으로써 본래 일관성이 있어야만 하는 것임에도 불고하고 일관성이 결여된 채로 가공된 것들임에 틀림이 없다.
아마도 인간이 인조인간을 가공조립한다면... 일관성이 있도록 규정짓겠지만, 그 또한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일관성이 없는 것들이 주체가 될 수밖에 없으니... 만들어지는 것들 또한 일관성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갈등, 그리고 충돌.... 갈팡질팡 가야할 길을 잃은 것이다.
사실. 인간들의 삶, 자체가 '혼돈'이다.
왜냐하면... 분명한 해답이 없기 때문이며, 인생에 딱히 해답이 없는 줄 알면서도... 죽는 날까지 서로가, 자신만이 옳다는 주장은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사실. 인간에게는 선함도 없으며 악함도 없다. 아니. 선함이라는 말로 포장한다면, 모두가 선함이겠지만, 악함이라는 말로 포장한다면... 모두가 악한 인간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선과 악을 주장하지만... 오직 자신에게 이익이 따르거나 두려운 것이 아닐때,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며, 자신에게 이익이 따르지 않거나, 두려운 일들에 대해서 악이라고 단정짓는 이중성을 보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들, 각자의 주장을 들어보면, 무두가 선한자이다. 자기를 주장하는 일에 대해서는 신게 맹세하듯 하지만.... 그 보여지는 선함의 바탕에는 선함이 없다.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지금 이 글을 보는 그대는?
선한 사람인가? 악한 사람인가?
선한 사람이라면, 어떤 면에서 선한 사람인가?
악한 사람이라면, 어떤 면에서 악한 사람인가?
어떤 입장에서 보는가에 따라서 달라지지만... 자연의 입장에서 본다면, 모두 악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하늘에서 보니. 부패하고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고 한 것이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마음에 꼭 드는 사람, 자신의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을 원하지만, 단 한사람도 만날 수 없다. 그대 뿐만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 모두가 그러하다. 그런 사실에 대해서 직시할 수 있다면, 나름대로 현명한 사람이다.
만약에 그대가 살아가는 동안 내내, 단 한사람만이라도 온전하게, 완전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대의 삶은 성공한 삶일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살아갈 가치도 없는 삶이다. 또한 그대를 완전하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사람만이라도, 있다고 하더라도, 그대의 삶은 성공한 삶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가치 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왜냐하면 결코 후회없는 삶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제 죽든, 일찍 죽든, 오래오래 살다가 죽든지간에 회한만이 가득 남겨질 수밖에 없는 삶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아득한 옛날부터 올바른 앎으로써 인간세상에 그 길을 전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 한사람이 '무선무불선'을 주장했던 '고자' 라는 인물이다. '맹자'가 성선론을 주장하고, '순자'가 성악론을 주장했다는데, 모두가 언술이 뛰아난 자들이며, 올바른 앎은 겨자씨 만큼도 없는 자들이다. 오직 '무선무불선'을 주장했다는 '고자'의 비유법이 참으로 옳은 말이며, 진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설명하려는 것이다.
고자는 사람의 性은 기류(杞柳: 버드나무이름)와 같은 것으로, 이 나무를 휘고 엮어서 여러 가지 용기를 만들듯이 性으로써 仁·義를 만들어 낸다고 한다. 또 性은 물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동쪽으로 터놓으면 동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터놓으면 서로 흐르는 것이지, 물에 동서의 분별이 있어서 동으로 흐르고 또 서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처럼 人性도 善이나 不善의 분별이 있는 것이 아니며[人性是無善無不善]이다' 는 말.... 사실은, 언어가 있기 때문에 있을 뿐, 성 또한 본래 없던 것이라는 말이다.
인간은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성, 성품에 대해서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라는 방식으로써 서로가 주장할 수밖에 없다. 성품이라는 것이 본래 있던 것이 아니라...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써 먼저 '말, 언어'를 알던 사람들에 의해서 그렇게 듣고 배워서 알게된 것들이다. 그것에 대해서 '지식'이며, 앎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앎들 모두가 상대적인 주장이 아닐 수 없기 때문에 인생에, 삶에... 해답이 없는 것이다.
인간들의 그런 어리석음에 바탕을 둔 주장들... 올바르지 않은 앎이 있기 때문에, 양변을 떠난 올바른 앎이 있는 것이다. 이원성이나 다양성을 떠난 앎이 있는 것이며,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한계를 초월한 앎이 있는 것이며. 그런 앎에 대해서 '진리'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물론 진리라는 말이 창조되기 이전에는 '도' 라는 말로 표현되었던 것이며, 석가모니는 그것에 대해서 '중도' 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며, 방편설로써 그 뜻을 전하고자 했던 것이다. 예수의 모든 말들, 방편설들 또한 그러하다.
우연의 일치일까?
세계 4 대 성인 중에 소크라테스가 있는데. 그의 말은 왠지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인 것 같은데, 사실 아무도 올바르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다. 그 하나가 '너 자신을 알라' 는 말이며, '너 자신을 알라'는 말에 바탕을 둔 직접적인 표현의 말이. '유일한 선은 올바른 앎이며, 유일한 악은 지식이다'는 말이다.
이 말은, 그대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스스로 이해 할 수 있을때, 그때의 앎이 올바른 앎이며, 올바른 앎으로써의 유일한 '선함' 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또한, 인간이 자신의 마음을 모른다면... 모두가 악한 존재들이라는 뜻이며, 그런 악한 존재로써는 살아갈 가치도 없다' 라고 단정짓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글을 보는 그대는.
살아가야 할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
그대는.
악한 사람인가? 선한 사람인가?
가치 있는삶을 사는 사람인가? 살아갈 가치도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인가?
잘... 모르겠는가?
그렇다면, 항상 두가지 길이 있다.
가치 있는 삶을 사는 방법이 무엇인지 이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삶 자체를 어린아이들의 소꿉놀이처럼 즐거운 놀이로 여길 것이며, 그런 이치 조차도 이해 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살아갈 가치도 없는 삶이다. 하지만 실망할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세상에 오직 이곳에만 그 길,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이며.. 이곳의 모든 말들.... 일념법에 바탕을 둔 방편설들이다.
그러니... 어찌 해야 하겠는가?
가치 없는 삶이라면, 왜 살아야 하는 것인가?
누구를 위해서인가?
그대를 위해서인가?
타인들을 위해서인가?
사실. 그대 자신과 타인들 모두 다를 위해서 사는 방법이 있다.
그런 삶에 대해서 가치 있는 삶이라고 하는 것이며, 검증된 삶이라고 하는 것이며, 올바른 앎의 유일한 선을 행하는 삶이라고 하는 것이며, 진정 가치 있는 삶이라고 하는 것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그릇된 나, 타인들로부터 가공된 마음의 실체를 깨달아 아는 앎으로써 존재하는 삶 만이 가치 있는 삶이며, 일말의 후회도 없는 삶이라는 말이다.
사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과 '예수의 '네 안에 하나님이 있다'는 말과 석가모니의 '네 본래마음이 부처다'는 말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의 허구를 깨달아 알라는 말이다. 책과 카페에 기록된 바와 같이... 그대의 마음이 본래 마음이 아니라, 말을 배우던 어린아이시절부터 타인들의 말, 말, 말에 의해서 억지로 길들여진 것이며, 억지로 가공조립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올바른 앎이라면, 죽음에 대해서 두려워 할 까닭도 없는 것이며, 타인들의 말재간들 따위에 이끌려 다닐일도 없는 것이며, 남들의 이목 따위에 관심둘 일 조차 없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에 남들의 마음에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는 것이며... 끊임없는 갈등과 근심 걱정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인간들의 삶이 참으로 신비스럽기만 한 것 같다.
항상 바삐 달려 나가기 때문이다. 수많은 학문들, 수많은 종교나부랭이들, 수많은 명상집단들, 수많은 행사들, 수많은 오락들, 수많은 축제들, 수많은 문화예술이라는 것들, 수많은 치유법들, 수많은 명상법들, 수많은 건강비법들, 수많은 장수법들, 수많은 음식들, 수많은 약물들, 수많은 건강식품들... 그리고 정치권의 논란과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무리들의 끊임없이 일어나는 논쟁, 투쟁들... 이웃간의 수다들에 이르기 까지... 해답이 없는 논란과 투쟁만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혼돈'이라고 한다.
그 속 어딘가에 진실이 있을까? 거짓이 있을까?
분명한 것은 그 모든 것들은 절대로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며, 진리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사실. 그대는. 이성도 아니며, 감성도 아니며, 본성, 본능도 아니다.
이성적이다, 감성적이다, 지적이다, 지성인이다. 착한 사람이다, 아니다, 아름다운 사람이다, 추한 사람이다, 괜찮은 사람이다, 아니다... 영적이다, 지능이 있다, 없다... 등등.... 모두 아니다. 그렇게... 그런 말들로 가공된 것이며... 다만 이기적인 것이며, 타인들의 말들로써 그렇게 꾸며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항상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다.
인위적인 모든 것들이 그러하다.
사실 인간에게 본성이란 없는 것이다.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든, 나타나든, 다르게 보이든, 성스럽게 보이든, 추악하게 보이든, 그렇게 다른 말, 말, 말들로써 꾸며진 것이다. 명색이 인간일 뿐, 본래 인간이라는 것은 없는 것이다.
어린아이시절부터... 말, 말, 말... 근거 없는 언어, 뿌리 없는 말, 말, 말들로써, 그렇게 길들여진 것이며, 가공된 것이기 때문이다.
'본능'이라는 말이 있다.
인간은 자연상태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서 본능적인 것이라고 하며, 후천적인 것들이라고 하는 것 같다. 선천적인 것도 없는 것이며, 후천적인 것도 없는 것이다. 오직 인간들만이 과거에 집착하는 것이며, 기억할 수 없는...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사실 본능이 있다면.... 그것은 본능이라는 관념, 앎, 생각, 마음이 없는 것이며, 무위자연이 본능이다. 설령 야생동물들이 인간들에게 길들여져서 야생본능을 잃는다고 하더라도, 그 동물, 짐승들에게는 '내가 본능이 있다, 없다, 변한다, 아니다... 는 등의... 말, 언어, 나라는 생각, 관념, 통념, 마음... 등이 없다. 그것들에 대해서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 또한 그것들의 생각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가공된 인간들의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착각, 원리전도몽상에서 깨어나라고 하는 것이다. 진리로 거듭나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말들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렇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지...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며, 근심하지 말라는 말이며, 두려워 하지 말라는 말이다. 근거도 없으며, 원인도 없으며, 시작도 끝도 없는, 그렇기 때문에 해답도 없는 지식이라는 무지, 무명, 무식... 혼돈으로부터 탈출하라는 뜻이다.
완전하게 책임질 수도 없는 책임감, 완전하게 지켜질 수도 없는 의무감, 사명감... 등에서.
무엇인가 꼭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들..... 원인도 없는 것이며, 근거도 없는 것이다.
그대가 꼭 해야만 하는 일이란 없다.
그대 삶에 있어서, 굳이 중요한 일이 있다면... 꼭 해야만 할 일이 있다면, 그대의 마음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다.
만약에 인간에게 가치 있는 삶이 있다면, '너 자신을 알라'는 말과 같이 자신을 이해 하는 것이며, 그것이 가장 우선적인 것이다. 그것이 곧 진리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다. 그대가 본래 그것이기 때문이다.
인간들의 모든 갈등, 고뇌, 괴로움 등의 고통들... 대상(세상, 다른 사람들)이 문제가 아니라, 대상을 보는... 자신의 지식과 자신의 순수의식간의 갈등이다. 왜냐하면 대상들이 본래 있었던 것들이 아니며, 그대의 마음 또한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올바른 앎이 아니기 때문에 온갖가지의 갈등(삶, 죽음, 고통, 두려움, 욕망... 등)들이 빚어지는 것이다.
지금. 그대의 나가 아니라, 본래의 그대의 나가 있다.
'그 본래의 나(我)' 그것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의 기원이다.
'그것' 이 진리이다.
그 '원리'를 이해 하는 것이 또한 '진리'이다.
'그것' 에 대해서 '도, 깨달음, 부처, 신, 절대자, 유일자, 영혼... 등' 라고 하는 것 같다.
그 길이 있다.
일념법. 일념윤회법이 진리이다.
'그것'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깨닫기 위한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진리'이다.
인연있는이에게 영원한 평화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에서...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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