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언어 · 불이일원론

'불멸론'/ 붓다 예수 소크라테스 노자. 그들의 깨달음/ 비밀의 언어- (2) 불멸. 진리. 자유. 정의.사랑... 중에서 '불멸'이란?

일념법진원 2014. 11. 15. 10:03

불멸이라는 말이 있다.

'아닐 不' 자와 '멸망할 滅' 자로써의 불멸이다.

'없을 無' 자의 '무멸'이 아니라, 아닐 무 자의 불멸로써, 멸함이 있지만 멸함이 아니라는 뜻이다.

 

인간세상이 있다는 가정하에서 설명하는 것이다. 

인간이 있다, 어떤 개체적 자아가, 아니 그대가. 살아있다는 가정하에서 본다면. 사실 인간들 누구에게나 멸함 즉 죽음이 있다.

 

그런데 사실상 인간은 태어남을 경험할 수 없듯이 죽음 또한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인간은 그것이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사실은 왜, 죽음이 있다고 믿는 것이며, 왜, 태어남이 있다고 믿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올바르게 아는 사람이 없다.

 

누구나 "내가 태어났기 때문에 죽는다"는 사실에 대해서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그 믿음.

'내가 태어났기 때문에 죽는다'는 믿음. 올바른 앎이 아니라, 허구적인 앎이며, 사실적인 앎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설명하려는 것이다.

 

 

사실. 그 믿음(信念)에 대해서 믿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소위 인류의 성인 또는 '인류의 스승'이라는 인물들이며, 그들의 말이 왜곡되면서 전해져 오는 말들이... 불생불멸, 하나님 나라, 하늘나라, 재생, 환상, 재림, 육도윤회, 윤회, 거듭남, 다시 태어남... 등이며, 불멸의 신... 등이다. 그리고 그들의 말이 언술이 뛰어난 자들에 의해서 왜곡되어 기록으로 전해져 오는 것들이 소위, 경전이라는 종교무리들의 우상숭배를 조장하는 학습서, 교육서, 인간들을 그것들의 노예로 세뇌시키기 위한 잡서들이다.

 

 

사실. 그들의 말은 인간들의 '신념체계'의 바탕을 뒤집는 말들이며, 인간들의 지식에 대해서 완전하게 무시하는 말들이다. 왜냐하면 인간들의 '내가 태어났으며, 내가 사는 것이며, 내가 죽는다'는 신념체계가 절대적인 앎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보더라도 상대적인 편견일 뿐, 결코 올바른 앎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하는 인물들이,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다.

 

나는 현시대 지성인들에게 그런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지극히 논리적인 언어로써 설명하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들의 최초의 신념체계가 올바른 앎이 아님으로 하여 생로병사의 고통을 겪는 것이며, 더 나아가 인간들의 삶이 행복이나, 자유 평화가 아니라... 다툼, 경쟁, 투쟁, 전쟁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그릇된 신념체계에 바탕을 둔 그릇된 앎에 의해서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인간세상의 모든 교육이 경쟁을 당연하게 여김으로써... 죽는 날까지 한시도 평화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문명발전의 결과, 결론은... 인류의 스스로의 자멸, 멸망을 위한 지름길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시대 인간들의 오직 자기 중심적이 아닐 수 없는, 삶의 모습들, 경쟁, 투쟁, 삶을 위한 전쟁들이 그러하듯이...

 

 

사실. 인간의 신념체계의 바탕에는 '내가 태어났다'는 것이며, '내가 산다'는 것이며, '내가 죽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죽기 전에...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교육으로 받았으며, 그 결과는 인간이 인간들끼리 서로가 서로를 위한 삶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로부터 싸우고 이겨서 승리해야만 한다는 사고방식으로 길들여진 것이다. 

아니. 사실은 그런 사고방식으로 세뇌 당한 것이다.

인간세상의 여러... 모든 교육들에 의해서...  

 

 

중요한 것은... 인간들의 사고체계, 즉 신념체계의 바탕이 '나의 태어남과 나의 삶과 나의 죽음'에 바탕을 둔 것이며, 그런 신념체계가 경험의 오류일 뿐, 사실적인 앎이 아니라, 허구적인 앎이라는 뜻이다.

 

 

사실. 두권의 책과 이곳, 모든 글들의 요점이 있다면, 인간들의... 개체적 자아의 존재 즉 태어남과 삶과 죽음이라는 것은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경험의 오류'에 바탕을 둔 허구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방편설들이며, 그런 사실 즉, 태어남과 삶과 죽음이라는 말이 사실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할 수 없는... 체험할 수 없는 허구적인 것이며, 허구적인 말, 말, 말들에 대해서 사실적인 것이라는 착각, 몽상, 환상에서 깨어나라는 말이며, 뜻이며, 올바른 앎으로 거듭나라는 말들이다.  

 

   

사실 인간들의 신념체계의 바탕이 "내가 태어났기 때문에. 내가 사는 것이며, 내가 죽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내가 죽는다'는 제한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며, 매사 조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항상 전전긍긍.... 근심과 걱정, 초조와 긴장,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삶은 행복, 평화, 기쁨, 즐거움 등으로 가장하지만, 고통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죽음은 공포의 대상이 아닐 수 없으므로 하여... 사후 세계에 대한 논란이 아니더라도 삶에 있어서 죽음은 가장 큰 두려움과 공포를 동반한 고통이 아닐 수 없다. 

 

한시절... 잘 살아보세... 에서, 현시대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고 주장하지만... 행복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는 말은 끊임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지금 이 글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백천만겁난조우 라는 말과 같이... 진리, 도, 깨달음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다. 더 나아가 이런 설명들에 대해서 '편협한 사고방삭'으로써의 상대적인 주장이 아니라, 사실적인 것들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면 말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진리는 단순한 것이며, 상대적인 주장이 아니라, 절대적인 앎이며, 지극히 논리적인 것이며, 지식은 논리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장만 무성할 뿐, 해답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진리가 아니라고 했다. 

 

 

[경험의 오류] 

 

하나. 그대는. 아니 인간들은 누구나....  '내가 태어났다' 고 생각한다.

둘. 인간들은, 아니 그대는... '내가 죽을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    

 

 

두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하자.

그 하나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는 방식으로써. 인간들의 '내가 생각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올바른앎이 아니라, 경험의 오류서 비롯된 착각이라는 사실과.   

 

둘째는... 지식의 앎, 즉 언어를 배우고 익힘으로써의 모든 지식의 앎이 절대적인 앎이 아니라 상대적인 앎이라는 사실에 대한 설명이다.

 

사실. 이런 사실은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에게는 지식이며, 상식적인 말들로 여길 수 있는 말로써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말이다. 하지만 다시 설명하는 이유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낯선 말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런 말들에 대해서 이해 하려는 노력 조차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예수의 말과 같이 '길잃은 어린 양새끼'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며, 석가모니의 말과 같은 '중생'이며, 노자의 말과 같이 '짚으로 만든 개처럼' 취급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하근기 중생'이라고 하는 것이며, 우상숭배를 조장하는 자들과, 광신자 맹신자들에 대해서 '짚으로 만든 개처럼 취급해야 한다'는 말은.... 현시대의 종교지도자들이거나, 명상 요가 등에 대해서 서로가 진리인냥 주장하는 자들이다. 사실 의학이나 생명공학을 주장하는 자들이거나, 과학을 주장하는 자들, 그리고 그것을 신뢰하는 자들 또한 어리석은 자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 누구나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타인들의 마음을 유린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며, 그런 짓들로써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무지몽매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첫째. 만약에 인간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과 같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내가 죽는다'는 고정관념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왜냐하면... 자신의 생각을 자유자재할 수 있다면... 나에게는 죽음이 없다' 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이 있다" 는 생각은 '죽음이 없다'는 생각과 상대적인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죽음이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두려움과 고통이 따른다면... '죽음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할 수 있다' 고 주장하는 사람이, 어찌하여 '죽음이 없다'고는 생각할 수 없느냐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는 동물이 아니라, 생각에 이끌려 다니는 물건이라는 말이며,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생각'의 윤회작용(마음의 작용)에 의해서 생로병사의 고통을 겪는 것일 뿐,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둘째. '내가 태어났다고 단정짓는 생각과 '내가 죽는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의 문제이다.

사실. 인간의 '내가 태어났다'는 앎, 주장들이 경험의 오류로써 스스로 경험한 사실에 대한 앎이 아니라, 타인들로부터 들어서 아는 앎으로써의 지식이라는 사실이다. 사실 그대의 모든 앎들이 그러하다. 누군가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워서 아는 앎들에 대해서 자신의 나, 라고 주장하는 것이며, 내마음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며,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사실. 그대는 태어남을 경험한 적이 없다. 태어남을 기억할 수도 없다.

단지, 그대의 부모로부터 그렇게 듣고 배워서 알게된 앎에 대해서 불변의 진리인냥 사실적인 경험으로 여기는 것이며,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대 뿐만이 아니라, 그대의 부모 또한 그러하다. 그대의 보모의 부모, 그 부모의 보모, 부모의 부모  또한 그러하다. 그들 스스로가 태어남을 경험한 것이 아니라... 아득한 옛날부터... 그 부모들로부터 듣고 배워서 알게된 앎, 지식에 대해서 '내가 태어났다'는 확고부동한 앎이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 깨닫거나, 자신 스스로가 경험한 앎이 아니라...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워서 하는 앎에 대해서 확고부동한 앎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고정관념화된 것이다.

 

그 부모에 부모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단군신화거나, 곰이 마늘을 먹어서 사람이 된 것이라는 신화, 우화, 동화, 미신이 아닐 수 없다.

 

 

중요한 사실은.

그대는 태어남을 경험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며, 죽음 또한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간은. '사실적인 것이 아닌 앎에 대해서, 사실적인 앎이라는 착각에 의해서 생로병사의 고통을 겪는 것이다'는 말이다. 사실. '事實' 이라는 말은... 여러가지 의미로 사용될 수 있겠지만, '과실'과 같이 실제로 보고 만질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 그대가 이런 글을 보고 있는 상태에 대해서 '사실'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다. 그리고 아침에 '도가의 약식'을 먹었다면, 그 또한 분명히 기억할 수 있는 현실이며, 사실에 바탕을 둔 기억이다. 그런 사실적인 경험들 또한 수십년이 지나고 나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한 일이다.

 

그런데, 그대는. 아니 인간들은 "자신의 태어남" 에 대해서 사실적으로 여긴다는 것이며, 자신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서 죽는 날까지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죽음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분명히 안다면... 근심과 걱정이 모두 사라질 뿐만이 아니라, 남들과의 다툼이 있을 까닭이 없는 것이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그대가 태어남을 경험한 것이 아니듯이, 그대에게는 '태어남이 없다는 것'이며, 태어남이 없기 때문에 '죽음 또한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대가 태어남을 경험할 수 없었듯이, 죽음 또한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생불멸이라라고 하는 것이다. 

 

 

그대는 본래 그대가 아니다.

기억할 수 없는 어린아이시절부터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운 것들... 그 지식들에 대해서 '내마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내가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내 생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내 뜻, 내 느낌' 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주가 있다는 생각도 우주의 생각이 아니라, 인간이 생각이며, 하늘이 있다는 생각 또한 그러하다. 하물며, 하나님이 있다는 생각이나, 부처님이 있다는 생각, 그리고 불성이나, 성령이 있다는 생각과 영혼이 있다는 생각은 누구의 생각이겠는가?

 

 

여기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 따위에 대해서 논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그대의 생각이나... 모두가 자신들이 기억할 수 없는 어린아이시절부터. 서로가 다른 또다른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워서 아는 말, 말, 말들에 대해서 주장하는 것들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행복과 자유, 평화는 그대의 마음밖의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그대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을때, 그때 비로소 근심가 걱정, 두려움의 원인에 대해 깨달아 아는 앎으로써 지식을 초월한 올바른 앎으로, 진리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념법, 일념명상법' 만이 유일한 길이며, 진리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세상에는 오직 나의 말만이 진실된 말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이기 때문이다.

 

이사람이 존재 하는동안, '일념명상의 집 '도가'의 문은 항상 열려 있는 곳이다.

다음 편에는 '진리'에 대해서 다시 정리할 것이며, 자유, 정의, 사랑... 이라는 말에 이르기 까지 다시 요약하여 정리해 나갈 것이다. 

 

인류의 영원한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이다. 

인류의 영원한 자유와 평화를 위한 유일한 길이며,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논리체계에 어긋날 수 없는 올바른 앎에 바탕을 둔 교육으로써만 인간세상이 평화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식으로써 진리를 이해 할 때, 그때 비로소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주장이 옳다면, 대상의 주장 또한 똑 같이 옳은 것이다. 

자신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대상의 입장에 보는 자가 현명한 자이며,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다. 그들만이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검증된 삶으로써, 죽음 조차도 기꺼이 맞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일념수행자들의 댓글들... 

댓글로써의 요약설명들... 많은 이들에게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될 것이다. 

 

그대에게 영원한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