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에 대한 정의" 라는 말이니... 어불성설인 것 같다.
사실. 그들의 가르침의 요지는 단순하며, 단순하기 대문에 진리이며, 진리는 논리에 바탕을 둔 말들이며, 반면에 지식은 비논리적이며, 절대적인 앎이 아니라 상대적인 앎에 대해서 주장하는 모순이다.
정의에 대해서 정의하기 이전에 '진리론'에 대해서 한가지 생각해야 할 점에 대해서 말해 두려고 한다. 사실 인간들의 지식이, 지식으로 가공된 마음이... 겨자씨 만큼이라도 올바른 앎으로 채워질 수 있다면, 종교들간의 분쟁, 논쟁, 전쟁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에 그대가 광신자거나, 맹신자거나, 마음의 평화를 원한다면... 근거가 전무한 지식을 떠나 올바른 앎으로써 거듭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면... 상근기 인물이며, 가히 '현시대에 있어서 지식이 가장 뛰어난 지성인' 이라고 자부할만 한 것이며,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정의' 라는 낱말의 사전적 의미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들의 지식의 한계를 이해 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전'의 설명부터 올바른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터무니 없는 주장이 아니라, 근거가 분명한 말이며, 논리적인 말이며, 한치의 어긋남도 없는 올바른 말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어
- 뜻. 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
정의 [definition, 定義]논리학 브리태니커 - 낱말의 의미를 규약하는 것. 넓게는 기호의 의미에 대한 규약도 포함한다. 한 낱말의 의미는 그 낱말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하자고 동의하는 사람들에...
'정의' 라는 낱말의 한자의 뜻 그대로는, '바를 정', 그리고 '옳을 의' 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어사전의 사전적 의미가... '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 이다.
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올바른 도리...
'정의'의 반댓말이 '불의' 또는 '불정의' 일텐데, 어딘가에는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 라는 말도 있다.
사실 '정의' 라는 말은... 더 큰 욕망을 채우기 위한 무식하고 어리석은 자들의 망상에서 비롯된 말이다. 인간세상에 정의로운 인간은 있을 수 없다.
사실. 인간류의 어리석음이란, 욕망으로써는 결코 만족하여 평화로울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조차 이해가 불가능 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에 대해서 무한한 어리석음이라고 하는 것이며, 미신과 같다고 한 것이다. 결코 욕망으로 만족할 수 없는 욕망을 채우려는 어리석은 자들의 망상에 의해서 생겨난 말이 '정의' 라는 상대적인 말이다. 그러니, 정의할 가치도 없는 말이 '정의' 라는 낱말이다.
사실. 인간의 기원에는 인간이 없다.
언어의 기원에는 언어가 없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 그것 또한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는 인간의 마음에 대해서, 부폐하고 부폐한 것은 오직 인간의 마음이다 라고 단정 짓는다.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에게 '진정한 정의'가 무엇이며,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가' 라는 말로써...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이겠는가? 라는 방식으로 젊은이들에게 진리를 전하고자 했던 것 같다.
사실. 인간세의 모든 언어들, 행복이나 자유, 평화 그리고 '정의' 라는 말, 말, 말들... 그것이 어떤 말이든간에 해답은 없다. 인간이 끊임없이 다른 언어를 창조하는 까닭은 사실. 욕망이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집착이며 욕망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왜나햐면 '나 아닌 것'에 대해서 '나(자아)' 라는 사고방식으로 가공되므로써 시작된 것이 '내가 있다, 내가 사람이다'는 방식의 상대적인 언어로써 세뇌당한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끊임없이 환상을 쫒는다.
세상 어딘가에는 '지상낙원'이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환상이다.
세상 어디엔가에는 '행복한 세상'이나, 평화로운 세상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환상이다. 다른 어떤 사람들 중에는 행복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착각이며, 망상이다. 왜냐하면... 세상 어떤 인간이라고 할지라도 정작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인간이 행복할 수 있다면... 말은 말이지만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왜냐하면, 행복은 마음의 작용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며, 그 마음 또한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복을 가장하는 사람들, 행복한 척 하는 사람들... 사실은 그들이 가장 불행한 사람들이며,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항상, 끊임없이 거짓으로 자신을 꾸미기 때문이며,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사람들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세상은 없다.
단지 인간은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찾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리고 뭔가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하는 것 뿐이다. 그것 또한 남들에게 어떻게 보여질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며, 근본원인은 지식이다. 지식이 왜, 그 끝이 없는것인지 조차 이해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식을 추구하는 까닭은, 지식이 사실적인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믿고 싶어서 믿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그런 사고방식으로 학습되어졌기 때문이며, 길들여졌기 때문이며, 습관되었기 때문이며, 세살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과 같이... 버릇이다.
인간이 끊임없이 언어를 창조하고, 그 언어에 집착하는 까닭은 스스로 편안할 수 없기 때문이며,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의 가르침, 말, 말씀... 등으로 표현되는 경전들은 진리가 아니라, 방편설들이다.
소크라테스, 예수, 석가모니, 노자... 그들의 방편설은 오직 인간들에게 자신의 마음의 실체를 찾으라는 말이며, 오직 그 길만이 진리이며, 오직 진리에 의존하므로써만 무위자연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말이다. 만약에 그들의 가르침이 애초에 한글로 번역되었더라면, 최소한 수많은 종교들이 생겨날 수 없었을 것이며, 조금은 혼란스럽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정의 라는 말은 정의할 가치가 없는 말이다.
사회라는 것이 있고, 국가라는 것이 있다면... 국가를 위해서는 필요한 것일 수 있겠지만, 인간들은 오직 다른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신과 또는 같은 부류들에게 이익이 따르는 일들에 대해서만 투쟁하는 것들이며, 거짓된 말로 다른 사람들을 선동하기 위한 목적으로 창조된 말이 '정의'라는 말인 것 같다.
그만두자.
현시대, 우주를 여행하는 시대라면 이미, 말세시대이다.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감히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겠지만, 아득한 옛날옛날에도 우주를 여행하던 시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은 인류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이며, 인간들은 그때서야 비로소, 지식이 쓸모 없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인식하게 되는 것이며, 지식이 쓸모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인식하면서 비로소 진리에 눈뜨게 되는 것이며, 진리를 갈망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이 그 시대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사람이 그 '진리'에 대해서, 그대가 갈망하는 것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사실. 현시대에 이런 글들에 대해서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지식이 그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며, 이런 글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인간세상에서는 가장 현명한 사람들이며, 지혜로운 사람들이다. 더 나아가 일념을 깨달아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 그들만이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인물들, 인간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들, 현명한 인물들을 위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
사실. 인간세상의 모든 언어들... 언어로써 무엇인가를 규정한다는 일 자체가 모순이다.
언어는 의사소통을 위해서 창조된 것이지만, 논리적이라는 말이 있지만, 논리적일 수 없는 것이 언어이기 때문이다. 사실 논리적이라는 말의 본래의 뜻은, 언어의 이치에 대해서 이해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언어의 이치에 대해서 이해 한다는 것은, 언어의 기원에 대해서 이해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인간은 언어의 기원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언어의 기원에는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본래 언어가 없었다.
언어가 본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언어의 기원에는 언어가 없다.
그런데, 언어가 생겨난 것이다.
천지만물들 중에 오직 인간들에게만 상대적인 언어가 생겨난 이유는, 사실 인간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지능이 뛰어난 동물이어서가 아니라,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자연상태에서 적응하기에는 나약한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동물들 또한 본래에는 언어가 없었으며, 본능이라는 생각도 없는... 자연의 생태고리 현상과 같은 본능적인 것이었다. 생존본능이 있었으나, 다른 동물들보다 나약하다보니, 꾀를 부리기 시작한 것이며, 서로가 화합하므로써 생명활동을 영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인간들의 언어 또한 본래에는 단순한 소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야생동물들에게도 또한 소통을 위한 언어가 있으나, 그 언어는 '나와 너' 또는 '너와 나' 라는 방식의 상대적인 관념에서 비롯된 '언어'가 아니라 단순한 '소리'들이듯이... 인간동물들 또한 본래에는 '소리' 로써 생명활동이 시작되었던 것들이며, 자연상태에 적응하기에는 다른 동물들보다 나약했기 때문에... 서로가 협력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활용하던 단순한 소리들이 현시대의 문명, 문화 라는 방식으로써 '언어화'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언어의 시작은, 그대가 기억할 수 없는 어린아이시절부터 듣고 배웠던 말들과 같이 '내가 있다' 그리고 '내가 사람이다'는 방식으로 출발된 것이다.
그 '언어'의 시작은 '아상(我想)' 즉, '나라는 생각'이며.
'나-라는 생각'은 '육체=나' 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나는 사람이다'는 생각이 일어나게 된 것이며, 타인들로부터 말을 배웠기 때문에 인식하는 것이며, 그에 대해서 '人想' 이라는 말로 표현했던 인물이 '석가모니'이다.
물론 석가모니의 말이 한자로 번역된 말이 '인상'이며, 한글로 표현한다면... '사람이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예수의 말은, '너희가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삶과 죽음의 고통을 겪는 것이다'는 말이며, 인간의 모든 고통은... 육체가 나다'라는 착각이 원인이며, 지식이 모든 고통의 원인이다'는 가르침이 소위 명색이 '성인'이라는 사람들의 '말, 말씀'이라는 말로 전해지는 것들이며, '경전'이라는 종교들이 숭배하는 잡서들이다.
사실. 동물들과 같이 인간들 또한 본래에는 '나와 너' 라는 분별된 언어가 없었다.
이는 어린아이들에게는... '내가 있다, 내가 사람이다, 내가 태어났다, 나의 삶이 있다, 나의 죽음이 있다, 나의 행복, 나의 불행, 나의 고통, 나의 마음, 나의 느낌' 따위의 '나'의 책임감이나, 나의 의무감' 등의 생각, 생각, 생각에서 비롯된 언어, 말, 말, 말이 없었던 것과도 같다.
본래에는, 나와 너' 라는 방식의 상대적인 개념인 언어가 없었다. 그런데, 나와 너 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이며, 그것이 발전(퇴보)하여 언어가 된 것이며, 지식이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은 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이며, 그런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앎에 대해서 '진리'라는 또 다른 말로 표현되는 이다.
그대 또한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으나, 그런 방식으로 지식을 쌓아온 것이며, 그 지식에 의해서 '나' 라고 하는 것이며,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지식들은 근거가 없는 것이며, 근본원인 조차 없는 것이다. 다만 인간의 지식의 시작은 '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너가 있다'는 방식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며, 근본원인이 없는 것들에 대해서 '있다, 없다'는 방식으로 발전(퇴보)된 것이기 때문에 해답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인간들은 근본원인이 없는 것들에 대해서 '있는 것'이라는 착각으로써, 언어에 세뇌당한 것이며, 그것에 대해서 지식이라고 한다. 인간의 관념, 지식이 없다면 즉 인간의 인식작용이 없다면... 우주, 하늘, 땅, 삶, 죽음, 영혼, 신... 등의 천지만물이 없는 것이다. 없는 것이라는 말, 말, 말도 없는 것이다.
지식, 즉 스스로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지성체들의 생활습관에 대해서 '무지몽매한 것'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짐승들이 인간들에게 길들여지듯이, 인간들 또한 다른 타인들로부터 들어서 배운 지식들에 의해서 죽는 날까지도 서로가 자기만이 옳음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지성체들의 가장 어리석은 짓들의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면,,, '종교들간의 갈등'이며, 투쟁이며, 전쟁들이다. 종교나부랭이들... 그것들의 전쟁을 보노라면, 잔악한 인간들에 의해서 길들여진 짐승들, 투견들의 싸움을 보는 것과 똑 같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주인에게 길들여진 개들이 피를 흘리면서도 죽을 때까지 목숨걸고 싸우는 것과 똑 같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대가 '생각의 원리' 즉 진리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다면... 그대 또한 광신자들이거나 맹신자들과 같은 방식으로 '지식'에 대해서 맹신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을 탓할 수도 없는 것이다. 짐승보다 더 뛰어날 것이 없는 것들이 '진리'에 대해서 이해 조차 불가능한 인간무리들이기 때문이다.
지식의 결론은 전쟁이며, 진리는 평화이다.
지식은 갈등이며, 다툼이며, 논란인 반면에 진리는 자유이며 평등이다.
마음은 다른 것이 아니라,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웠던 지식이다.
지식은 상대적인 것이며, 명색의 동일시에서 비롯된 착각이며, 환상이다.
반면에 진리는 절대적인 것이며, 명색의 동일시에 대한 착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육체가 나다, 라는 앎도 지식이며, 육체가 나가 아니다'라는 앎 또한 지식이다.
'마음이 나다' 라는 앎도 지식이며, 마음이 나가 아니다'라는 앎 또한 지식이다.
둘 다 상대적인 앎이기 때문이며, 둘 다, 명색, 즉 이름과 형상에 대한 동일시에 따른 착각이기 때문이다. '나' 가 아닌 것에 대해서 '나' 라고 아는 앎이 최초의 지식이며, 상대적인 앎이다.
[나(我)=몸, 육체] 라는 앎... '나' 는 '이름(名)이며, '육체'는 '형상, 모양(=色)으로써 '이름과 형상'과의 동일시로써 아는 앎으로써 올바른 앎이 아니다. '별은 별이 아니다,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 나는 나가 아니다' 라는 방식의 '도가의 일념법강좌, 일념명상법 교육'에서 설명되는 내용들이다.
'노자와 예수, 석가모니와 소크라테스' 그들은 둘이 아니다.
그들과 나는 하나이다. 둘로 나뉠 수 없는 것이며, 나는 항상 그들과 함께한다.
그들의 삶이 괴팍한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삶이 기기묘묘한 것이다.
천지만물들 중에... 얼굴의 모양을 뜯어 고치고, 화장하고, 보기 흉한 몸뚱아리를 값비싼 의복으로 포장하여 겉모습을 자랑하는 것들... 거짓된 지식으로 자기를 위장하는 것들은 오직 오직 인간동물들 뿐이다.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누구에게 잘 보이려는 것일까? 왜, 타인들의 시선을 두려워 하는 것일까? 왜, 타인들의 말에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는 것일까?
그렇다. 사실은 자신의 본래 마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사고방식으로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올바른 앎이 겨자씨 만큼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치 없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치 없는 삶이 있기 때문에 가치 있는 삶이 있는 것이다.
삶과 죽음이 있는 세상이 있기 때문에, 삶과 죽음이 없는 세상이 있는 것이다.
지 수 화 풍이 있는 세상이 있기 때문에 하늘과 땅이 없는 세상이 있는 것이다.
그대의 그릇된 나가 있기 때문에, 그대의 그릇된 나가 없는 세상이 있는 것이다.
상근기 인물들만이, 지혜로은 인간들만이 지적으로나마 이해 할 수 있는 말이며,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만이 그들의 언행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며, 올바른 앎으로써 자신의 삶에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도, 진리, 깨달음... 그것이 사실적인 것이며, 인간들의 지식이 허구적인 것이며, 환상적인 것이다.
올바른 앎일때, 그때 비로소 자연계의 동물들과 같이 건강할 수 있는 것이며, 무위자연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마음으로 재 창조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대가 본래 지식이 아니라, 진리이기 때문이다.
인연있는이에게 영원한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