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인간은 인간이 무엇인지 모른다.
인간은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 절대자, 또는 신의 피조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마음이 본래 있는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 마음에 의해서. 지식에 의해서... 인간은 누구나... 내가 존재한다, 내가 사람이다, 내가 나이를 먹었다 또는 나는 중생이다, 나는 피조물이다, 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다. 그것이 그대의 '나는 이런 사람이다'는 자기 주장이다.
고정관념은.
-우주가 본래 있는 것이며, 천지가 본래 있는 것이며, 그리하여 사람이 있는 것이며, 그런 인연에 의해서 내가 있는 것이며, 내가 있기 때문에, 내가 사는 것이며, 내인생이 있는 것이며, 내가 잘살아야 하는 것이며, 내가 있기 때문에 내가 죽는 것이다- 는 앎에 대해서 당연하게 여기게 된 것이며, 그런 모든 앎들에 대해서 '지식'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지식을... 쫒다가, 행복,자유, 평화를 쫒다가 죽음으로써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것들을 경험하지 못한채, 행복, 자유, 평화가 무엇인지도 모르는채.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다.
인생이 무엇인지도, 자신이 왜 태어난 것이며, 왜 죽는 것인지 이해 조차 하지 못한채 말이다.
고정관념이라는 지식의 한정된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죽음으로써 우주와 함께 동시에 사라지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 인생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생이 무엇인지도 모르는채 사라지는 것이다.
삶이 무엇인지도 모르는채,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채...
가치있는 삶이 무엇이며, 가치 없는 삶이 무엇이며, 행복이 무엇인지, 자유가 무엇인지, 평화가 무엇인지,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채. 자신의 마음, 지식을 주장하다가... 논쟁, 경쟁, 투쟁을 일삼다가... 병들고 늙고...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망연자실, 포기하는 것이다.
올바른 앎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들의 존재, 삶 자체가 경쟁이며, 투쟁이며 전쟁이다.
그리고 지식은 그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고정관념"이 있다는 말은. 단지 고정된 생각이 있다는 말이다. '볼 관'자와 '생각 념' 자로 구성된 말이며, 보고 듣고 배운 지식의 범주 이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런 인간의 고정관념에 대해서 '아상, 인상, 수자상, 중생상' 이라고 표현했던 인물이 석가모니이다. - '너희가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고정관념이 생겨난 것이다- 라고 말했던 인물이 나사렛 예수이다. 그렇기 때문에 -너 자신을 알라-고 했던 인물이 소크라테스이다.
'아상(我想)' 이라는 말은 '나라는 생각, 즉 내가 있다,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이며, 고정관념이다.
'인상(人想)' 이라는 말은 '내가 사람이다'는 생각이며, 고정관념이다.
'수자상' 이라는 말은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이며, 고정관념이다.
'중생상' 이라는 말은 '나는 중생이며, 나는 피조물이다'는 생각이며, 고정관념이다.
사실. 이 모든 말의 바탕은 '내 마음이 있다'는 고정관념이다.
'마음이 있다'는 말은 '마음이 없다'는 말과 상대적인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모든 고정관념들이 절대적인 앎이 아니라, 상대적인 앎에 대한 주장이며, 그 주장에 대해서 사실적인 것으로써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그것이 지식의 한계이며, 그 지식의 한계를 벗어나는 앎에 대해서 '여래' 라는 말로 표현했던 인물이 석가모니이며,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표현했던 인물이 예수이다.
사실. 명상이란 본래 그런 고정관념에서 깨어나기 위한 방편설들이 언술이 뛰어난 자들에 의해서 왜곡되어 창조된 말이며, 모든 기도행위들 또한 그러하며, 위빳사나를 비롯한 모든 명상집단들의 행위들 또한 그러하다.
진리란 그런 고정관념이 허구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하는 앎이다.
마음이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은, 마음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상대적인 주장일 뿐, 올바른 앎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의 지식은 상대적인 지식에 바탕을 둔 고정관념에 대한 자기 주장이며, 절대적인 앎이 아니라, 상대적인 앎에 대해서 주장하는 것으로써 논리적으로 보더라도, 육하원칙에 따른 법칙으로 보더라도 옳바른 앎에 대한 주장이 아니다. 지식이 올바른 앎이라면 논리적으로써 어긋남이 없어야만 하는 것이며, 육하원칙이라는 법칙에 적합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아상과 인상' 이라는 말은, 내가 있다는 말이며, 내가 사람이다'는 말이다. '내가 있다'는 말은 '내가 없다'는 말과 상대적인 말이며, 내가 있다는 말은 너가 있다는 말과 상대적인 말이며, 내가 있다는 말은 우주가 있다는 말과 상대적인 말이며, 더 나가가 '내가 사람이다'는 말 또한 '내가 사람이 아니다'는 말과는 상대적인 말로써 올바른 앎이 아닌 것이다. 올바른 앎이 아니기 때문에 지식은 결코 진리일 수 없는 것이며, 진리를 깨달은 인물들의 말이 지식에 의해 왜곡된 것들이 종교들이며, 명상집단들인 것이다.
사실. 중요한 것은, 마음이 있다는 앎이 사실적인 앎이 아니라 허구적인 앎이라는 뜻이다.
인간은 누구나 '내 마음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마음이 무엇인지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에 마음의 행복, 자유, 평화를 원하지만, 결코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인간이 지식을 추구하는 이유는, 지식으로써 행복, 자유,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마음이 있다'는 생각과 마음이 없다는 생각은 상대적인 생각이며, 이분법적 사고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의 '마음이 있다'는 고정관념은 사실적인 앎이 아니며, 절대적인 앎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의 지식에 대해서 모두 허구적인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인간이 행복한 삶과, 평화로운 삶, 자유를 갈망한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진리를 갈망하는 것이다. 그리고 진리는 지식으로써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식은 위의 설명과 같이 논리적이지 않은 앎으로써 근거가 없는 (마음이 본래 있는 것이다는)앎에 바탕을 둔 자기를 주장하는 것이며, 진리는 인간세상의 모든 지식들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이라고 아는 앎을 이르는 말이다.
사실. 인간은, 지식으로써의 상대적인 앎에 대해서 진리인냥 주장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노자의 도관' 그리고 석가모니의 중도에 대한 가르침, 그리고 예수의 '하나님 말씀' 이라는 말,말,말들에 대해서 신비의 문, 또는 신비의 세계, 깨달음의 세계라는 방식으로 오해 하는 것 같다. 물론 마음이 본래 있는 것이다'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대도무문'이라는 말까지 생겨난 것이다. 마음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는 사유로써 '진리'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말, 말, 말들... 신비의 세계를 조장하는 말들, 모두가 단지 '마음이 있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의 환상에서 비롯된 말들이며 자기주장들일 뿐, 사실적인 말이 아니다. 사실 인간들의 모든 고통의 원인은 다른 것들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내마음이 있다'는 고정관념이 원인이라는 말이며, 그 고정관념에서 벗어났을때, 비로소 모든 고통이 함께 사라진다는 말이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난다면, 삶과 죽음 또한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명상은 일념법을 일컷는 말이며, 삼매와 해탈은 '마음이 본래 없는 것이다'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올바른 앎이며, 이에 대해서 진리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그대의 모든 지식들... 아니. 인간세상의 모든 지식들, 철학, 문학, 인문학, 종교학, 신학을 비롯하여 의학, 생명공학, 우주공학, 과학, 생물학.. 등의 모든 지식은 "마음이 본래 있는 것이다"는 상대적인 앎에 바탕을 둔 자기 주장들일 뿐, 올바른 앎이 아니라는 말이며, 그렇기 때문에 단견이며, 소견, 편견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은 진리가 아니라는 말이며, 오직 진리만이 자유와 평화, 행복한 삶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고 하는 것이다. 생명의 비밀에 대해서 아는 앎이며, 우주의 근본원인에 대해서 이해 하는 앎이기 때문이다.
사실. 새로운 '도가'의 터전을 마련하게 된 까닭 또한 그런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몇 몇 공부인들의 권유에 따른 것이며, 그들의 노력의 결과이다. 그들이 새로운 도가의 설립을 위해서 흔쾌히 자금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인물들이 있기 때문에 올바른 앎에 바탕을 둔 새로운 세상, 진리의 세상이 열릴 수 있는 것이다.
전혀 논리적이지도 않은, 근거도 없는 지식에 세뇌당하여 고통을 겪어야만 하는 인간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가치 있는 삶의 길, 진리의 길을 전하기 위한 목적이다.
진리에 대한 올바른 앎은 오직 자신에게만 이익되는 일이 아니라 인간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이 따르는 일이기 때문이며, 인간세상을 이루는 개기인들 모두가 평화로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생로병사의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법이기 때문이다.
현시대는 지식으로써도 진리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을만큼 지식수준이 높아진 시대이기 때문이다. 사실. 지식은 근거 없는 주장들이며, 상대적인 것들에 대한 자기주장들이며, 논리적이지 않은, 논리적일 수 없는 자기주장들로써 해답이 없는 삶에 대한 대한 자기주장들 뿐이다. 반면에 진리는 지극히 논리적이며, 근거가 분명한 앎이며,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절대적인 앎으로써 다툼이나 갈등이 있을 수 없는 앎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는 평등하게 화합할 수 있는 평화라고 하는 것이며 인류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유일한 길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인간세상이라는 경쟁사회속에서 가치 있는 삶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상대적인 앎일 수밖에 없는 지식에 바탕을 둔 삶으로써의 삶은, 인간이면서 인간들과의 인간들 끼리의 경쟁이며, 투쟁이며, 전쟁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며, 삶의 결론은 두려움과 공포를 동반한 죽음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류가 원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진리이다.
진리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에... 지식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을 초월한 진리의 길이 있는 것이며, 그 길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새로운 도가는 인류에게 지식을 넘어선 진리의 길을 안내하는 인류의 역사이래 최초의 장소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와 석가모니, 노자와 소크라테스 등이 존재하던 옛시대의 지식으로써는 진리에 대해서 지적으로 이해가 불가능한 시대였기 때문에 올바르게 전파될 수 없었던 것이며, 현시대에는 지식으로써도 진리에 대해서 이해가 가능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논리적이라는 말과 같이 논리체계에 적합한 앎이 곧 진리이기 때문이다.
지식은 논리적이지 못한 반면에 진리는 지극히 논리적이며, 절대적인 앎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가 가능한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지식은 복잡다양하되 해답이 없는 것이며, 진리는 단순한 것이며, 지극히 논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도가'의 새로운 터전을 회원들에게 공개하는 이유는, 진리를 이해 하여, 그 길에 동참하는 이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도가'의 발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도가의 영리를 위한 목적이 아니라 인간세상에 진리를 전파하기 위한 목적이며, 인류의 행복과 자유, 평화를 알리게 하기 위한 유일한 장소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진리를 갈망하는 모든이들에게 그 길을 전하기 위해서이며, 더 나아가 인간세상의 모든 교육이 진리가 바탕이 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진리를 이해 하는 인물들과 더 나아가 그 길에 동참하고자 하는 이들의 지혜를 모으기 위해서 주말 모임을 갖고자 하는 것이다.
만약에 인간세상에서 진정 가치 있는 삶이 있다면 오직 '진리'와 함께 하는 삶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며, 궁극에는 진리와 하나됨으로써 삶과 죽음이 없는 이치를 깨닫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대와 인류에게 영원한 평화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에서--->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