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들이여, 물질은 무상하고 느낌은 무상하고
인식은 무상하고 심리현상들은 무상하고 알음알이는 무상하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인식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의도적 행위들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알음알이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빛바래고, 탐욕이 빛바래므로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으며,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고 꿰뚫어 안다.”
(상윳따 니까야 무상 경(S22:12) §3 등)
“‘염오(nibbidā)’란 염오의 지혜(nibbidā-ñāṇa)를 말하는데
이것으로 강한 위빳사나(balava-vipassanā)를 드러내고 있다.”
(SA.ī.53 ― 의지처 경(S12:23) §4의 주해)
“‘탐욕의 빛바램(이욕, virāga)’이란 도(magga, 즉 예류도,
일래도, 불환도, 아라한도)이다. ‘탐욕이 빛바래므로 해탈한다’는
것은 탐욕의 빛바램이라는 도에 의해서 해탈한다라는
과(phala)를 설하셨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라는
것은 여기서 반조(paccavekkhaṇā)를 설하셨다.
(MA.ī.115 = 맛지마 니까야 뱀의 비유 경(M22) 29에 대한 주석)
또 다른 주석서를 인용하자면, “‘염오(nibbidā)’는 강한 위빳사나 (balava-vipassanā)이고 ‘탐욕의 빛바램(virāga)’은 도이다. ‘해탈지견(vimutti-ñāṇadassana)’은 과의 해탈(phala-vimutti)과 반조의 지혜를 뜻한다.”(AA.īi.228) 이 주석서에서는 있는 그대로 알고 봄[如實知見]을 얕은 단계의 위빳사나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과거/현재/미래 경1(S22:9) 등 온 상윳따(S22)의 도처에서는 오온의 무상/고/무아를 통찰하여 염오-이욕-소멸을 실현하는 것을 설하고 있다. 여기서도 당연히 염오는 강한 위빳사나요, 이욕은 도요 소멸은 아라한과라고 주석서들은 밝히고 있다 --------------------------------------------------
사실. 인간세상에 죄와 벌이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큰 죄를 짓는 자들이 있다면. 예수의 말과 석가모니의 말을 해석한 자들이며, 그들의 말을 왜곡시켜서 서로 다른 종교들을 창조한 자들이다. 소위 학자라는 자들의 주석서들 또한 그러하다. 사실. 석가모니의 원음은 없다. 왜냐하면 석가모니 입적 500년 이후에 쓰여진 글들이 전해져 오는 것이며, 특히 불경이라는 경전은 이미 우상숭배사상으로 왜곡된 채, 삼장법사라는 중생에 의해서 한자로 번역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의 말과 석가모니의 말은 한치의 어긋남도 용납될 수 없는 말로써 완전하게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다만 서로 다른 시대와, 서로 다른 지역의 언어로써 표현된 것일 뿐, 소위 한글로 '깨달음'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진리는 시공간의 초월하여 한치의 오차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소위 깨달음의 앎. 즉 진리란, 시간과 공간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이며, 더 나아가 우주의 근본원리에 대해서 이해 하는 앎이며, 생명의 기원, 생명의 비밀, 생명의 원리에 대해서 완전하게 이해 하는 앎으로써 인간의 관념(지식. 마음)으로써는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앎에 바탕은 둔 말들이다. 소위 이런 앎에 바탕을 둔 말들에 대해서 진리, 진언, 진리의 말, 부처님 말씀, 하나님 말씀이라고 하는 까닭은... 그들의 가르침이 어리석은 자들에 의해서 종교들로 나뉘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세상의 모든 종교들, 경전들은 진리를 추구하는 자들이 아니라, 진리를 배척하는 자들이다. '소위 진리의 전당'이라는 간판들 또한 진리를 추구하는 자들이 아니라, 진리를 배척하는 자들이며, 진리에 대해서 논쟁하고자 하는 자들이다. 진리는... 인간의 관념을, 지식을, 마음을 초월한다. 인간의 지식 따위로써 진리를 논할 수 없는 까닭은 진리 또한 '까마귀'의 이름짓기와 같은...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에 대해서 지적으로나마 이해 하는 인물들... 그들에 대해서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반야심경이라는 경전에 기록된... '오온'이라는 말의 뜻 조차 이해 할 수 없는 것 같다. '오온'이 공이라는 말은 사실. 다른 뜻이 아니라 다섯가지의 감각기관을 뜻하는 말이며, 오관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하는 눈과 귀, 코화 혀, 신체를 말하는 것이다. 감각기관 또한 지식으로써, 말을 배움으로서 아는 앎(識)이라는 뜻이다. 오온은 무상한 것이며, 무상한 오온이 모든 고통의 원인으로써 '무아'를 증득함으로써 비로소 마음으로부터 해탈할 수 있다는 말이 요점이다. 사실. '무아'를 증득한다는 말 또한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이해 할 수 없는 말이다. 인간의 지식이란... 낱말의 뜻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낱말에 대해서 상상하는 일에 대해서 이해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육체가 나가 아니다' 라고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육체가 내가 아니라고 단정짓는생각 또한 자신의 '나의 생각'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오온이 공이라는 말은, 본래 다섯가지의 감각기관이 없었다는 말로 이해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순수의식의 어린아이시절에는, 즉 말을 배우기 이전의 아이의 입장에서 본다면, 눈, 귀, 코, 혀, 몸... 이 있다는 앎(識)이 없기 때문이며, 사람들 또한 그런 말에 대해서 이해는 가능할 수 있는 말이다. 사실은 동물들에게도 그런 생각, 관념, 마음이 없다. 위의 내용들... 초기경전의 내용들 모두가 어리석은 중생들의 견해일 뿐, 석가모니의 말이 아니다. 그 이유는 위 내용의 마지막 구절에 대한 설명으로써 소위 '위빠사나'라는 수행의 오류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석가모니의 사상에 대해서 '공사상'이라고 주장하거나 '허무한 나그네'라는 말로 이해(오해)하여... 세상을 회피하는 방랑자가 되거나, 삭발하고 절간에 들어가라는 말은 아니라는 뜻이다. 단지 올바른 앎으로써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유일한 방법론이라고 이해 한다면, 참으로 올바른 앎이며,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이다. 진리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인류 모두가 자유와 평화로운 삶을 위한 유일한 길이며, 방법론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 해야만 한다. 진리를 이해 할 때, 그때 비로소 인간으로써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진리를 이해 한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삶을 즐길 수 있는 올바른 앎을 이라는 말이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완전하게 치유할 수 있는 지혜를 얻는 것이며, 더 나아가 죽음 앞에서도 한치의 후회나 여한이 있을 수 없는... 올바른 앎으로써의 검증된 삶을 이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오온의 무상/고/무아를 통찰하여 염오-이욕-소멸을 실현하는 것을 설하고 있다. 여기서도 당연히 염오는 강한 위빳사나요, 이욕은 도요 소멸은 아라한과라고 주석서들은 밝히고 있다] ------------------------------------------------- 그렇다. 모든 경전들... 초기경전이라는 책자들에 대해서 진실된 앎이 아니라, '잡서'라고 단정짓는는 까닭은. 기록된 모든 문자들이, 석가모니와 예수의 진언이 아니라, '주석서'들이며, 주석서라는 말은 깨달은 자의 앎이 아니라, 중생들의 단견, 편견, 소견으로써 해석되거나 번역된 말, 말, 말들... 거짓된 말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주석서들... 그런 언술이 뛰어난 자들에 의해서 예수와 석가모니가 전혀 다른 '진리'로 둔갑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종교전쟁의 주범들이기 때문이다, 식자우환의 뜻 조차 이해 할 수 없는 지식인들... 각성해야만 한다. 인간들... 지식의 무한한 어리석음이란 여기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란 시공간을 초월하는 앎이기 때문에 '불변의 진리'라는 말을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예수와 석가모니를 서로 다른 진리라고 주장함에 대해서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니, 소위 학자라는 무리들.... 어찌 세상에서 가장 무식하고 어리석은 선동자들이며, 종교로써 인간세상을 편가르는 무리들이니. 어찌 악한 무리들이라고 아니 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식자우환이라고 하는 것이다. 인류 지식의 총체적 무지는 인간세상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세상사 모두가 그러하다. 항상 지난 일들에 대해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들... 그런 짓들에 대해서 삶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석가모니와 예수의 말에 대해서 서로가 옳다는 종교나부랭이들의 주장들이 그러하며, 주석서들이 그러하며, 현시대 정치인들... 인간들 또한 그러하다. 미래를 주장하지만... 지난 일들에 대해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들이 고작이기 때문이다. 지식이 많아지면 많아지는 만큼, 규제하는 법도 많아지는 것이며, 말만 무성할 뿐, 여전히 해답은 없는 것이다. 아니. 영원히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식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리가 모든 것이며, 또한 모든 것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 안에서는 문제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인간의 관념으로써의 '통찰'이라는 말에 대한 이해는 올바른 이해가 아니라, '통찰'이라는 말, 말, 말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이이 고작이다. 사실. 인간들은 '진리'를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해서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어하는 것 같다. '진리'라는 말을 놓고서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들이 소위 '지식'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에게 생겨나는 불치병이나 난치병을 치료하겠다면서 인간의 몸을 해부하는 짓들과 똑 같은 어리석은 짓들이다. 인간은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인간들의 그런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논쟁으로써, 그런 지식 따위들로써 '진리'를 볼 수 있었다면, 현시대는 인류 모두가 평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초기경전들을 보다 보니. 그나마 초기경전에는 '진리'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 딱 한구절이 있었다. 그 방법에 대해서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 설명한 것이며, 현시대의 지식으로써도 이해가 가능할 수 있도록 '생각의 원리'에 바탕을 두고 설명했으며, '두권의 책'과 이곳에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 그 내용은... 비구여. '무상한 것은 나가 아니다, 수상행식도 이와 같다. 그러니 그것을 관찰하라'는 말이다. '위빠사나'가 아니라는 말이다. [오온의 무상/고/무아를 통찰. 염오. 이욕. 소멸. 실현. 강한 위빠사나] 라는 말, 말, 말들, 말재간들 모두 쓸모 없는 주장들이며, 아상이며, 인상이며, 중생상 수자상의 뜻 조차 이해 할 수 없는 무식하고 어리석은 자들... 중생들의 소견이며, 단견이며, 편건으로써의 주장들이 아닐 수 없다. 진리는 단순하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 자유, 평화를 갈망한다. 사실 행복과 자유, 평화를 감지하는 일은 마음의 작용이며, 불행과 고통, 근심과 걱정, 초조와 불안감 또한 '마음의 작용'이다. 그리고 마음은 말을 배워서 아는 지식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지식은 근거가 없는 말, 말, 말에 바탕을 둔 이원성이나 다양성의 수많은 '다른 말들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인간세상의 모든 지식은 근거 없는 주장이다. 근거가 전무한 주장이다. 사실. 근거가 없을 뿐만이 아니라, 논리적이지도 않은 주장들이 지식이다. 이런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앎이 진리를 이해 하는 앎이며, 진실된 이해로써의 진리이며, 올바른 앎이다. 종교들간의 갈등과 논란, 투쟁, 전쟁은... 단지 "예수와 석가모니를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의 그릇된 앎에 대한 주장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간들의 삶을 위한 경쟁, 투쟁, 전쟁들 또한 그러하다. 자신이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는 완전하게 무지하기 때문이다. 설령 일념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더라도 도가를 방문했던 사람들이라면 최소한, 최소한... 석가모니와 예수에 대한 편견은 말끔히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대의 삶 또한 그러하다. 올바른 앎이 겨자씨 만큼이라도 확고하다면... 근심과 걱정, 두려움, 초조 긴장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체유심조의 더 깊은 뜻'에 대한 설명과 같이, 그대와 세상 모든 것들이 마음의 환상물질이기 때문이며, 생각의 환상물질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도가의 창조는, 진리에 바탕을 둔 새로운 인간세상 창조의 바탕이 될 것이다. 진리를 묻는 사람, 진리를 갈망하는 이들, 진리를 탐구하는 이들의 영원한 쉼터로 남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진리를 이해하는 이들, 진리를 갈망하는이들... 그들이 곧 '도가'의 주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대와 인류에게 영원한 평화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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