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아상이라는 말은 '내가 있다, 내가 존재한다' 라는 생각이며, 인상이라는 말은 '내가 사람이다'는 생각이며, 중생상이라는 말은 '내가 중생이다'는 생각이며, 수자상이라는 말은 내가 나이가 있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사실. 중생상이라는 말은 자연상태에서 벗어나지 않은 생물들과 자연상태에서 벗어난 인간류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인간은 다른 동물이나 모든 생명체들과 다르지 않다는 뜻으로써 '중생 무리들'이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다. 사실, 예수의 '길잃은 어린 양'이라는 말 또한 중생무리들과 인간이 다르지 않다는 뜻으로써 인간들의 삶에 대해서 길잃은 동물이라는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이해 할 수 있다면,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이다.
사실. 인간들의 삶은 짐승들의 삶 보다 더 뛰어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입장으로 본다면, 인간이 지구상에서 가장 지능이 뛰어났다는 방식으로 생각하겠지만, 자연계의 동물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간들이 가장 잔악무도한 동물들이며 천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연의 입장에서 본다면, 또는 하늘의 입장에서 본다면, 또는 우주의 관점으로 본다면... 자연계 생명들은 자연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들이지만 인간동물들의 발전행위는 모두 자연을 파괴하는 짓들이 아닐 수 없다. 더 나아가 인간들의 지식은 인간들끼리의 자유와 평화,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서로간의 경쟁을 위한 것들이며, 서로간의 투쟁과 전쟁을 위한 도구들일 뿐이다.
만약에 인간들의 지식이 올바른 앎, 즉 진리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지식이 풍부한 현시대는 누구나 행복과 자유, 평화를 누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 그러한가? 문명발전의 최고지점이 현시대이다. 하지만 지식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불치병이나 난치병은 문명발전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발전되었으며, 마약과의 전쟁, 범죄와의 전쟁들... 사회 문제들 또한 그러하다.
그렇지 아니한가?
인간세상... 문명발전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길 잃은 중생들이다.
그렇다 보니, 발전과 비례하여 늘어가는 것들 또한 수많은 종교나부랭이들, 그리고 사이비라는 집단들, 명상이라는 집단들, 심지어 빛을 본다는 집단들, 하늘사람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 과학명상이 옳다고 주장하는 자들.... 무수히도 많은 유사집단들이 불치병, 난치병들의 숫자들보다 더 많은 것 같다. 병원이 늘어나고 정신병자가 늘어나고, 노인요양센타가 늘어나고... 불치병, 난치병 등의 병명들 또한 그보다 더 늘어만 간다.
하지만 해결방법은 없다.
지식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식으로서 해결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지식으로써는 진리에 대해서 이해 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지식에 매몰된 인간세상에 종교나 유사종교들, 명상이라는 이름의 수많은 집단들이 끊임없이 더 많이 늘어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사실. 지식이 추구하는 것이 지식이 아니라 진리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지식은 지식의 최고의 경지에 다다랐을 때, 그때 비로소 진리에 대해서 조금, 아주 조금 이해가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들이 갈망할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진리이기 때문이다.
인류 4대 성인중에 '공자'라는 중생이 있었단다. 맹모삼천지교라는 말로 알려진 맹자 또한 공자와 유사한 것 같다. 공자의 말 중에... 내가 아침에 도를 깨닫는다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라고 했다고 한다. 그 또한 하근기 중생이다. 현시대 소위 '학자'라는 자들과 똑 같은 하근기 중생이다.
구하라 구할 것이며,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영문을 보니. "Now You See Me" 이다.
'직역한다면 -너는 지금 나를 볼 수 있다- 는 말이다.
석가모니의 말이 한자로 번역된 말로 본다면, '즉견여래' 라는 말이다. 금강경에 기록된,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에서의 '아'를 이르는 말이다. 모든 형상이나 모든 소리나 말들로써 '나(我)'를 보려고 한다면... 삿된 도리를 행하는 자, 라는 말이며, '여래'를 볼 수 없다는 말이다. '자신의 나'를 보려고 한다면... 다른 소리들이나 다른 형상들로써는 결코 볼 수 없다는 말이다. '자신의 나'를 보는 것이 '여래' 라는 말이며, '부처'라는 말이다.
구하라, 얻을 것이며,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는 말... 일념법으로써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라는 뜻이다.
'네 안에 하나님이 있다' 는 말이며, 부처 또한 네 안에 있다는 말이다.
밖으로 향한 마음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은 마음, 즉 마음이전의 마음이 곧 그것(성령, 불성)이다는 말이다. 물론 인간관념으로써는 이해 불능이다. 그렇기 때문에 순수의식의 어린아이에 대해서, 그리고 깊은 잠에 비유하여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다.
사실. 명상이라는 낱말의 뜻, 삼매라는 낱말의 뜻 조차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지식이다. 명상이라는 말, 말, 말에 대해서 상상하라는 뜻이 아니다. 일념법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보라는 뜻이다. 삼매에서 빛을 본다는 어리석은 자들이 명상, 참선을 통해서 '빛'을 봤다고 주장한다. 빛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사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말에서의 '색'이 '빛 色' 자이다. 그렇다 보니, 광명의 빛을 본다는 말이 창조된 것이며... 어떤 빛을 보는 일에 대해서 삼매, 또는 깨달음이라는 말이 창조된 것 같다. 그런데, 소위 인도의 스승이라는 자들 또한 '빛'이라는 말로써 어리석은 중생이 다른 어리석은 중생들을 현혹하는 것 같다.
하늘의 영광, 광명의 빛... 그 따위 말들에 이끌려 다닌 일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의 실체를 빍힘으로써 '명색의 동일시의 착각에서 깨어나라'는 말이다. '名色' 이라는 말은 12연기법에 나오는 말로써 '이름과 형상과의 동일시'로써 이루어진 말, 말, 말들... 즉 지식이 명색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말이다.
석가모니의 초기경전에 기록된 "별은 별이 아니다" 라는 말이 있다. 사실. 깨달음을 증거하는 말로써 명색의 동일시인 지식의 앎에서 벗어났다는 말이며, 해탈이라는 말로써 지식의 그릇된 앎을 이해 하여 지식에서 탈출했다는 말이며, 진리를 증득했다는 말이다.
사실. 일념을 깨친 인물들이라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알아차림의 앎이 '별은 별이 아니다'는 말과 같은 맥락으로써의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 달은 달이 아니다, 부처는 부처가 아니다, 하늘은 하늘이 아니다, 라는 말에 대해서 이해 하는 앎이 드러난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나이며, 부모는 부모이며, 돈은 돈이며, 가족은 가족이다는 '지식'에바탕을 둔 욕망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자칫 언술이 뛰어난 자로 전락될 수밖에 없다.
올바른 앎이라면, 언행이 일치될 수밖에 없는 것이며, 또한 수행자라면 진리를 갈망하는 자라면... 진리와 하나 되리를 원한다면... 런 일에 힘써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석가모니의 '별은 별이 아니다'는 말은... '나는 나가 아니다'는 말로써 비아경에 기록된 것과 같은 말이다. 이 말은 또한 '육체는 나가 아니다' 는 올바른 앎이며, '마음은 마음이 아니다'는 분명한 앎인 것이다. 물론 더 나아가 '본무'를 깨닫는 앎에 대해서 '道 깨달음. 진리' 라는 말, 말,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 또한 '명색'으로써의 표현 방법일 뿐, 사실적인 것은 아니다.
사실. 물질세계가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신, 즉 마음에 의해서, 마음에 의존하여 드러나는 것들, 관념으로 보이는 것들, 감각기관의 작용으로써 보고 느끼는 것들이 현상계이며, 색계, 욕계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없다면 세상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엇그제 방문했던 인물들이 '빛과 소리명상'이라는 집단을 통해서 인도까지 다녀왔던 인물들이란다. 우연히 이 카페를 발견하게 되었다는데, 카페 방문횟수로 본다면 초보자이다. 그들이 방문하기 전에 일념법교육을 받고 싶다는 사람들을 정중하게 거부했던 '도가의 화원'은... 그들이 새로운 도가의 터전에 관련된 모임에 참석하겠다는 말에 의아심을 표현했고, 그들의 답변으로써 그들을 반가이 맞이했다.
잠시 동안이지만 그들과의 대화로써 그들이 곧 상근기인물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이해의 정도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오후 일찍 도착하여 여섯사람이 모여 여러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저녁 12시 가까이 까지 대화가 이어졌다. 그리고, 다음 날 도가의 새로운 수행터 예정지까지 다녀왔다. 물론 도가를 방문했던 사람들이라면 그 시간동안 무슨 말들이 오갔는지에 대해서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겠지만... 그리고 그들은 기쁨을 가득 안고 떠났다. 12월 말경에 부산과 거제에서 진리를 갈망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갖기로 하고...
어제 아침. 아궁이에 불을 지피기 위해서 재를 펴내려는데.
아궁이에 조그많고 앙증맞은 '복주머니' 하나가 버려져 있었다.
오색 빛깔의 실로 묶여있는 빨강 색깔의 복주머니였다. 복주머니 한편에는 '석가모니불상'이 금빛으로 그려져 있었고, 뒷면에는 '복'이라는 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동안 복을 기원했던 여인들... 진리를 갈망했던 여인들이, 도가에서의 대화만으로써도 그런 짓들, 복을 구하는 일들이 허구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분명히 깨달아 알았다는 첫번째 증거가 '불상'이 그려진 복주머니를 버리는 일이었다.
그렇기 대문에 '상근기 인물들'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지식은, 종교에 대해서 당연하게 여기듯이, 미신과 같이 신을 믿는 것이며, 인간들 또한 하늘의 뜻, 하늘의 신, 절대자, 영혼, 불성, 성령을 믿는 것이며, 하늘의 영광.. 광명의 빛 이라는 말을 믿는 것이다.
근거 없는 낭설들을 믿는 믿음이며 무한한 어리석음이다. 논리적으로 보더라도 절대로 논리적이 아닌 것들에 대해서 믿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세상의 모든 지식들.... 사실. 맹신자들이며 광신자들이 아닐 수 없다. 과학이든, 의학이든, 종교학이든, 신학이든, 물리학이든, 문학이든... 모두가 그러하다.
진리는 단순한 것이며, 근거가 분명한 것이며, 지극히 논리적인 것이다.
지식은 지식이 왜, 그 끝이 없는 것인지에 대해서 조차 이해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에 대해서 진리가 아니기 대문에 무식이며, 무지라고 하는 것이다.
행복과 자유 평화... 오직 진리 안에 있는 것이다.
진리 안에서는 누구나 평등하기 때문이다.
진리와 인연있는이들에게 영원한 평화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에서 --->http://blog.daum.net/powwr1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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