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성 비유비무 역유역무 유무합고 명위중도(佛性 非有非無 亦有亦無 有無合故 名爲中道)"
"불성 비내비외 역내역외 시명중도(佛性 非內非外 亦內亦外 是名中道)"
위, 두 구절. 불경의 '열반경'에 있는 글귀라는데, 이런 말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인용하는 말이며, 우상숭배사상에 세뇌된 자들로써 예수와 석가모니가 서로 다르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알음알이 상을 내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런 지식자들의 알음알이, 즉 언술이 뛰어난 자들에 의해서 중생들간에 끊임없는 다툼이 생겨나는 것이다.
종교를 비롯하여 수많은 명상집단들이 서로가 '도를 가르친다며' 옳다고 주장하는 일들, 서로 진리라고 주장하는 어리석음들... 우주보다 더 무한한 어리석음이다.
왜냐하면, 서로가 다른 타인들로부터 세뇌 당한 알음알이에 대해서 진리인냥 주장하기 때문이다. 서로가 옳지 않은 다른 지식들로써 죽는 날까지 싸우는 짓들에 대해서 가치있는 삶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타인들로부터 끌어모은 지식으로써 자기를 주장하는 자들이 가장 아둔한 자들이이며, 우주보다 더 무한한 어리석음이다.
사실. 그들의 말은 '중도론'이다.
불성은 '비내비외, 역내역외, 이므로 '시명중도' 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안과 밖의 구분이 없다는 말이며, 또한 안과 밖의 구분이 없다는 것도 없다는 말이며, 더 나아가 안과 밖이 없다는 말도 없다는 말이며, 없다는 말이라는 말도 없다는 뜻으로써... '언어가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니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명중도' 라는 말인데.
시명이라는 말은 '옳을 시' 자와 '이름 명' 자로써.... 올바른 앎이라면, 즉 불성이라는 것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이름으로만 있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이 곧 '중도' 라는 뜻이다.
사실. '무고집멸도' 라는 말과 같은 맥락이며,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고통'이 본래 없는 것이지만, 고통이라는 말이 있기 때문에 고통이 있다는 뜻이며, 본래 고통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고통을 소멸하는 방법 또한 있는 것이 아니다는 말이 '무고집멸도' 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일념법으로써 일념을,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깨달아 알고나면 그렇다는 뜻이며, 일념이 깊어지면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불성 비유비무 역유역무 유무합고 명위중도(佛性 非有非無 亦有亦無 有無合故 名爲中道)"
이 구절 또한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왜냐하면,
불성은... '비유비무' 즉 있는 것이 아닌 것이며, 없는 것이 아닌 것이며... 있는 것이 아니며, 없는 것이 아니다' 는 말이며... 역무역유라는 말은, 위와 같이... 있는 것이 아닌 것도 아니며, 없는 것이 아닌 것도 아니며... 라는 뜻으로써 본래 없는 것이라는 말이며... '유무합고' 라는 말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예부터 분리되었던 것이 아니라 합쳐진 것, 즉 하나라는 뜻이다. 불이일원론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
본래 '있다, 없다' 또는 '있는 것이다, 없는 것이다' 는 분별이 없었다는 말이다. 물론 이곳에 설명되는 바와 같이... 언어가 상대적인 것들로써... 언어는 '본래 없는 것들에 대한 분별망상'일 뿐, 올바른 앎이 아니라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언어가 상대적인 것들로써의 분별이기 때문에 올바른 앎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하는 일... 진리에 대해서 이해 하는 앎이다)
그러므로 불성은, '명위중도' 라는 말이며, '명위'라는 말은... 이름으로써만 있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올바르게 아는 앎이 '중도' 라는 뜻이다. 사실은 '중도'라는 말 또한 '이름으로써만 있는 것이다'는 말이니, 언어가 본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깨달아 알라는 뜻에서 이름, 말, 말, 말로 설명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말, 말, 말 또한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앎에 대해서 '중도'라는 또 다른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러니... 불성을 찾겠다는 자들, 성령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 석가모니를 우상으로 삼는자들, 성불하세요' 라고 인사하는 자들, 성불했다는 자들, 불성을 본다는 자들... 그것들에 대해서 하근기 중생이라고 하는 것이며, 우주보다 더 무한한 어리석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의 말 또한 같은 맥락이며, 단지 비유법들이 다른 것이다.
왜나햐면 "언어가 본래 없는 것이다" 는 말은...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절대로 이해가 불가능한 말이기 때문에... 그런 인간들에게 '길잃은 어린 양과 같다'는 방식으로 비유를 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차라리 "나의 말은 '하나님 말씀'이다'는 방식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이라는 말이 가장 적합한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 중요한 말은... 하나님이 어디에... ? 라는 질문에, 분명히 말하기를... '네 안에...'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을 숭배하는 어리석은 자들... 부처님을 숭배하는 무지한 자들.... 모두 짐승보다 더 뛰어날 것이 없는 중생이며, 길잃은 어린 양들이 아닐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대는 누구인가?
지식의 무지, 마음의 무지... 지식들의 어리석음을 볼 수 있다면, 진리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다. 무지의 첫째는 석가모니와 예수의 말을 서로 다르게 해석한다는 것이며, 둘은... 해석은 그렇다 치더라도... 죽는 날까지 오직 자기의 지식만이 옳다는 방식으로써 갈등, 투쟁, 전쟁을 일삼는 일에 대해서 가치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짐승들보다 더 가치 있는 삶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말이다.
그들의 말은 진리이다.
우주의 근본을 이해 하는 앎이며, 인간생명의 비밀을 아는 앎이며, 모든 것을 알기 때문에 '전식자'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또는 '이룰 성' 자의 '성인'이라는 말, 그리고 '이를 지' 자의 '지인'이라는 말 등으로 표현되는 것이며, '유일자, 유일신, 천상천하유아독존' 등으로 표현되는 것이며, 세상에서 유일하게 존귀하다'는 뜻의 '세존'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하는 것 같다.
다만, 석가모니는 그런 말들 보다는 '여래'라는 말로 표현했다는 기록이 있다. 사실. 어찌 부르던지 상관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중도'라는 말 또한 하나의 이름에 불과한 것일 뿐, 사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본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인간들의 시비분별하는 '언어가 본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 어떤 설명으로써도 "'본무= 그것'" 은 결코 납득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물론 문자에 대해서는 이해가 가능할 수 있는 말이며,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에게는 사실적인 말로 다가올 수 있는 말이다.
현 시대, 지식수준은 문자가 알려지기 이전의 옛날과는 달리 진리를 이해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시대이다. 그러니 옛사람들의 남겨진 말들에 대해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차라리 "논리적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논리로써 설명될 수 있는 것이며, 육하원칙의 법칙에 따라 설명하므로써 진리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며, 지식의 허구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
사실. 지식의 허구에 대해서 이해 한다는 것은 진리를 이해 한다는 것이며, 올바른 앎으로써 가치 있는 살을 살아갈 수 있는 바탕이 확립되는 것이다.
불성이나 성령에 집착을 하는 자, 그들은 스스로... 그런 집착이 언제 생겨난 것이며, 어디서 생겨난 것이며, 누구로 부터 듣고 생겨난 것이며, 어떻게 생겨난 것이며, 왜 생겨난 것인지에 대해서 되돌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불성, 성령, 영혼이 있다는 생각은 불성의 생각인가? 성령의 생각인가? 영혼의 생각인가? 에 대해서 사유해 본다면... 그것들이 생각하는 주체가 아니라, 집착하는 자, 보는 자, 듣는 자, 안다는 자의 생각이기 때문이며, 생각의 주체는 '자아'이기 때문이다.
사실. 서로간의 생각이 틀린 것이 아니라, 서로간의 생각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런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한다면... 다툼이 사라지는 것이며, 진리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다.
그것들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언어로써 창조된 말, 말, 말에 불과한 말이기 때문이며, 이는 날아다니는 '동물'의 이름을 '까마귀'라고 짓는 일과 같은 방식으로 '이름' 지어진 것에 불과한 또 다른 '이름'들인 것이기 때문이다. 영혼, 불성, 성령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이름지어진 것들이다는 뜻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이런 논리적인 방법으로써 진리에 대해서 눈뜨게 된다면, 어찌 서로간에 갈들이나 싸움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말이다. 더 나아가 일념명상법으로써 그런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닫는다면, 어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고통, 슬픔, 환상이 있을 수 있겠는가?
진정으로 올바른 앎일때, 그때 비로소 갈등이나 다툼이 사라지는 것이다.
나와 대상이라는 관념이 사라지는 것이며, 나와 세상이라는 생각이 허구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며, 나와 우주가 둘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것이다.
'도가'의 새로운 수행터는 이런 방식으로써 옛 사람들의 말에 대한 해석과 현시대의 가장 보편타당한 언어로써, 논리적으로써도 어긋남이 없는 말들로써 진리를 전파하는 인류역사이래 최초의 장소가 될 것이다.
진리를 갈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 될 것이며, 인간이 진리를 이해 하므로써 비로소 종교들간의 갈등이나, 지식들간의 모든 갈등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며, 그때 비로소 인류 모두가 행복과 자유, 평화를 노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인류의 역사를 보더라도... 인간세상이 행복한 세상이거나, 평화로운 세상이거나, 자유로운 세상은 단 한시도 없었다. 사실, 인간들의 행복과 자유, 평화에 대한 갈망은 다른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갈망이기 때문이다.
진리가 곧 모든 것이며, 또한 모든 것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사실. 지식은 '신, 영혼, 또는 절대자'가 "있는 것" 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써 근거가 없는... 사실적이 아닌 것에 대한 주장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진리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허구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함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지극히 논리적인 것으로써 누구나 지적으로써도 이해 할 수 있는 말이다. 왜냐하면 '생각의 원리'에 바탕을 둔 설명으로써 한글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적으로나마 이해가 가능한 말이기 때문이다. 아니 이해가 분명한 말이기 때문이다.
진리란, 다른 것이 아니라, 단지 생각하는 자... 즉 자아를 탐구하므로써 자신의 생각의 생멸현상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도가의 탄생은 인류가 가야 할 길을 밝히는 바탕이 될 것이다.
인류가 평화롭기 위해서는 오직 진리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며, 인류는 오직 진리로써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유일한 길, 방법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대에게 영원한 평화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에서--->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