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론 - 잘사는 삶 · 올바른 삶

인연법과 연기법(창조론)/ 육도윤회와 극락왕생/ 지식의 총체적 무지와 진리 - 석가모니의 자취

일념법진원 2014. 12. 11. 05:33

예전에 어떤 '머리깎은 중생'이, 왜 수행을 하느냐는 말에, 육도윤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라고 하기에. 이사람아. 석가모니 말하기를... 윤회가 본래 없는 것이라고 했다는데, 왠 윤회타령인가? 라고 물으니. 깨달은 자에게만 윤회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하근기 중생들은 절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것 같다. 

그러니 우이독경이며, 마이동풍격이다. 

 

윤회가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과 윤회가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싸운다면... 절대로 끝날 수 없는 싸움이다. 설령 다수결로 결정하자고 하더라도, 결정된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승복할 수 없는 싸움이다. 사실 인간들의 모든 주장들이 이와 같다. 

천국이 있기 때문에 지옥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과 그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 또한 그러하다. 

천부경이 옳다고 주장하는 자들 또한 그러하다. 

사실. 인간들의 지식들 모두가 그런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단견이며, 편견이며 소견들이다. 

 

예수의 말을 직접 들어본 자들의 말이 아니라, 언술이 뛰어나 예수의 말을 왜곡시킨 자들의 주장이기 때문이며, 석가모니의 말을 직접 들어본 자들의 주장이 아니라, 언술이 뛰어나j 석가모니의 말을 옮긴 자들의 말에 대해서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인간들의 모든 앎이 그런 방식이다. 직접 확인해 본 적이 없는 말들... 풍문들에 대해서, 옛 사람들의 말에 대해서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들이다. 

 

단지. 종교들이나 명상집단들 뿐만이 아니라 생명공학이나 의학들, 우주공학을 주장하는 자들 또한 그러하다. 사실. 인간의 목숨을 놓고서 장난질 하는 자들이 의학이며, 생명공학이며, 인간의 몸을 실험용 쥐로 여기는 것들이 소위 미신을 믿는 자들과 같이 자신들의 지식으로써 살인행위를 일삼는 자들이다. 물론 우주선을 만들고 화성까지 다니면서... 생명의 비밀을 찾겠다는 자들 또한 무지하기는 매 한가지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기원에는 인간이 없기 때문이다. 물질이 본래 물질이 아니라... 비물질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무지한 까닭은 다 아는 것 같지만,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으로 신비스러운 것은 그런 인간들이 '진리'라는 말을 창조해 냈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앎이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해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사전을 보니. 진리란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하는 앎이라고 설명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지식이 있기 때문에 지식으로써는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진리가 있다. 그것에 대해서 소위 '깨달음, 도' 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 같다. 사실 지식이 있기 때문에 진리가 있다. 지식은 있는 것이 있다고 믿겠지만, 진리는 있는 것이 본래 없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다. 물질세계가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관념의 산물이기 때문이며, 환상물질이기 때문이다. 아니, 환상이기 때문이다.

 

현시대는 문명의 발전으로써의 지식으로 인류 역사로 본다면, 지식이 최고조에 다다른 시대이다. 사실 지식이라는 말은 언어를 문자로 표현하면서부터 생겨난 말이다. 사실. 문자가 없었던 시대에는 '지식'이라는 말, 말, 말이 없었다는 뜻이다. 

 

이제 인간류의 지식수준은 진리에 대해서 이해가 가능할 만큼 충분한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옛 말들에 대해서 무조건 주장함으로써 인간이 인간이면서 인간들끼리 서로가 죽는 날까지 자기를 주장하기 위해서, 남들과 경쟁, 투쟁, 전쟁을 위한 시대는 지났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논리적으로써도 진리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문명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며, 논리정연한 말, 이치에 어긋나지 않은 말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만으로써도 더 이상 다툴일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스스로 경험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 즉, 타인들로부터 듣고 보고 배웠던 앎들에 대해서 자기자신의 앎이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내가 있다'는 앎이거나 또는 '자신의 나는 사람이다'는 말(앎) 조차도 타인들의 말을 듣고 배워서 아는 앎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타인들의 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그런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인간이 화성탐사를 통해서 생명의 비밀을 알고자 하는 일들 조차도, 자신 이외의 다른 대상들속에서 진리를 구하려는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망상이다.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탐구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들이나 다른 대상을에 대해서 탐구하는 까닭 또한 자신의 마음이 타인들이나, 세상, 또는 다른 대상들에 의해서 가공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인간들의 언어가 그러하다.

'자아'라는 말이 그러하다. 

 

인간들의 '자아'라는 말은 '스스로 自' 자와 '나 我;' 자의 '자아'라는 말로써.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나'에 대한 앎에 대해서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워서 알게된 앎이 아니라, 스스로 '나' 라고 알았다는 방식으로써의 착각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은 자신이 자신의 부모로부터 말을 듣고 배웠던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사실. 사실... 타인들의 말을 듣고 배워서 알게된 것이 '내가 있다'는 앎이며, '내가 사람이다'는 앎이며, 더 나아가 '내가 여자다, 내가 남자다'는 앎이며, 더 나아가 하늘과 땅이 있다는 앎이며, 더 나아가 수많은 지식들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있다는 말이나, 부처님이 있다는 말, 그리고 영혼이 있다는 말, 귀신이 있다는 말, 말, 말들... 그대가 스스로 깨달아서 아는 앎이 아니라, 타인들로부터 듣고 보고 배워서 아는 앎이다. 그렇지 않은가?

 

사실. 인간들의 창조설들 또한 그러하며, 진리 또한 그러하다.

진리가 있다고 알지만, 타인들로부터 들어서 아는 앎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 또한 타인들로부터 듣고 보고 배워서 알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창조론 또한 그러하다.

예수의 말이 왜곡어 변질된 말이 '하나님의 창조설'이다. 그리고 예수의 창조설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 석가모니의 12연기법이라는 말이다. 물론 석가모니의 직언이 아니라, 언술이 뛰어난 어리석은 자들, 하근기 중생들에 의해서 변질되고 왜곡된 말이다.

 

사실. 육도윤회라는 말과 극락왕생이라는 말은 예수의 말이 왜곡된 지옥과 천국이라는 말이다. 만약에 그들의 말이 현시대와 같이 한글로 번역되었다면, 그들의 말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같은 뜻의 다른 표현으로써 종교간의 갈등이나 투쟁, 이념 전쟁 따위는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다는 말과 같이, 인간들 또한 자신의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다. 이런 말을 염두에 두고 글을 볼 수 있다면, 예수의 창조설과 석가모니의 12연기법이 똑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할 수 있다. 물론 말을 배우는 어린아이들이 말을 배우는 과정을 보더라도 이해는 가능할 수 있다. 왜냐하면 어린아이들에게 말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고, 그 이름과 나이를 가르치는 일만 하다라도 수천수만번 반복해서 가르쳐야만 비로소 나이를 이해 하게 되며, 이름을 기억하게 되기 때문이다.

 

 

창세기 제 1 장에 기록된 말이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는 말로 시작되며, 하늘이 있으라 하니, 하늘이 있고... 라는 말로 시작된다고 한다.

 

 

태조에, 어린아이시절에 부모님 말씀에 의해서, 부모님의 말씀을 수없이 듣고 또 들음으로써 하늘이라는 말을 배우게 된 것이며, 땅이라는 말을 배우게 된 것이다... 는 말이다. 단지 인간은 자신이 인간이기 때문에, 어린아이에 대해서 또한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만, 어린아이에게는 '내가 있다'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이 없으며, '내가 사람이다, 내가 여자다, 남자다' 라는 분별심이 없었다. 앞서 설명한바와 같이 강아지와 어린아이기 눈밭에서 뛰어 놀더라도... 그것들에게는 '내가 강아지다, 내가 사람이다, 내가 춥다, 덥다, 눈이온다, 날시가 좋다, 나쁘다'는 관념, 마음, 생각... 등의 상대적인., 이분법적인 생각이 일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나와 너라는 분별심이 없다는 뜻이며, 좋은 것과 나쁜 것이라는 분별심이 없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뜻의 다른 표현들이 '불경'이라는 반야심경에 나오는데, 색즉시공. 공즉시색... 불구부정. 부증불감. 불생불멸. 무노사.. 등이다.

 

인간은 사람이 죽으면 천국, 하늘나라에 간다는 앎에 대해서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다. 죽은자의 무덤을 만들면서도 햇볕이 잘드는 곳에 묻어야 된다는 생각, 그리고 묘자리가 좋아야만 후손들이 성공한다는 생각들... 모두 망상이다.

사실. 인간은 자신이 죽더라도 세상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부재상태에 대해서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은 자신의 부재상태에 대해서 경험하지만, 그 부재상태는 경험자가 없기 때문에 기억할 수 없는 것이며,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가령, 그대가 깊이 잠들어 있던 시간동안이 곧 그대의 부재상태이며, 전신마취 되거나, 뇌졸증 상태 등 또한 그러하다. 그대의 부재는 단지 그대 자신의 부재일 뿐만이 아니라, 우주 천지만물 모두가 함께 사라진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우주 하늘, 천지만물은 보는자의 관념의 산물일 뿐, 사실적인 것들, 물질적인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의 창조론은 사실상, 그대가 기억할 수 없는 어린아이시절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간은 수억년 전에 빅뱅에 의해서 우주가 탄생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또한 망상이다. 시간과 공간의 관념 또한 오직 인간들만의 관념의 산물이기 때문이며, 그대가 깊이 잠든 동안에는 시간이나 공간이라는 관념 또한 사라져 없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시절에 부모로부터 말을 배우고 익힌 언어(하나님 말씀, 앎)에 의해서 고통을 겪는 것이다는 말이 예수의 가르침의 첫째이며, 둘째는 그런 앎에 의해서 고통을 겪는 것이며, 셋째는 그런 고통을 소멸하기 위해서... '하루종일 기도하여 깨어남'으로써 '사람이 진리로 거듭남'이 곧 하나님 나라를 보는 것이며, 성령이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가 깨어나는 날, 그날... 너와 나와 하나님이 둘이 아니라는 말이며, 더 나아가 '나와 너' 라는 분별심이 사라진 올바른 앎으로써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한 것이다. '나와 너' 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에서 깨어나라는 말이며,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 즉 상대적인 말에서 벗어나야만 삶과 죽음 등의 모든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다, 라고 했던 것이다.

 

석가모니의 창조론은 12 연기법에 기록된 내용과 같다.

석가모니가 말하는 연기법이란, 본래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고통은, 즉 '고집멸도'라는 말에서의 '모든 고통의 원인'은.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고 익힘에 따라서 생겨나는 앎(識)이 원인이라는 말이며, 이런 사실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했던 말이 12 연기법이다. 물론 두권의 책에는 연기법이라는 말은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책을 쓸 당시에는 석가모니의 말이 왜곡된 불경을 보아야 할 까닭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어린아이가 태어나 말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대해서 1차 에고 및 2차 에고의 탄생... 이라는 말로 설명되었을 것이다. 

 

사실. 석가모니가 말한 12 연기법의 본래의 뜻은. 어린아이가 태어나서 말을 배우고 익혀서 '앎'이 생겨나는 과정에 대한 것이다. 예수의 말과 같다. 

 

 12연기법의 내용을 보니...  "무명. 행. 식. 명색. 육입. 촉. 수. 애. 취. 생. 노. 사.... 등으로써 12 단계로 분류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수차례 반복 설명되었기 때문에 욕약하자면, 어린아이의 행위는 무명으로써의 행위라는 말이 '무명과 행' 이다.  이는 어린아이들이 기어다니고 걷기를 배우는 행위를 일컷는 말이다. 그리고 그과정에서, 엄마, 아빠 등의 말을 배우게 됨에 대해서 '앎(識)으로 표현된 것이다. 말을 배우는 과정에 의해서 앎(말)이 생겨났다는 말이다. 그 앎이 곧 '명색'으로써의 앎이라는 뜻이다. 

 

명색이라는 말은... 인간들의 모든 앎이 '이름과 형상'과의 동일시라는 말로써, 별은 별이 아니다' 라는 말에 대한 설명과 같은 뜻이다. 사실. 일념을 깨달아야만 '명색'이라는 말의 뜻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설명은 할 수 있으되, 관념으로써 이해는 가능할 수 있으나, 선뜻 이해 할 수 없는 말이다. 다만... '달이 뭐라카드나' 라는 말 또한 명색의 동일시에 대한 비유이며, 흔히 쓰이는 '명색이 사람이다' 는 말 또한 같은 의미로써, 이름과 형상만이 사람일 뿐, 본래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 명색으로써의 앎들이 곧 감각기관(오온, 육입, 육처, 육식... )에 대한 앎이며, 더 나아가 여려 감정들 즉 마음이 생겨났다는 뜻이며, 그런 마음의 작용이 모든고통의 원인이라는 설명이 연기법의 요지이다. 

 

사실. 육도윤회라는 말 또한, 감각기관의 작용에 의해서 마음이 끊임없이 변해가는 것... 이라는 뜻이며, 일념수행으로써 생각의 생멸현상에 대해서 이해 할 무렵이면 누구나 '육도윤회'라는 말이 '생각의 윤회'라는 말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분명히 이해 하게된다. 그런 앎들, 즉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스스로 깨달아 아는 앎은 타인들로부터 들었던 모든 앎들이 사실적이 아니라 허구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으로써 더이상 타인들(인간들...)의 말, 언술에 이리저리 이끌려 다닐 수 없는 앎이다.

 

그렇기 올바른 앎에 대해서 "불변의 진리"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사실. 석가모니는 자신의 가르침에 대해서 '인연법'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인연법이라는 말은 사실 원인법이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써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겠지만, 사실 인간이 왜 인간인가? 우리가 왜 사람인가? 내가 왜 태어났으며, 내가 왜 죽어야만 하는가? 내가 왜  행복할 수 없는가? 나는 왜 고통을 겪어야만 하는가? 등의 인간의 근본적인 존재의 이유, 원인에 대한 질문이며, 동시에 그 해답이다. 

 

진리가 그러하다. 

자아의 존재의 이유, 원인이 무엇인지 이해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를 모른다면... 자신의 나를 모른다면, 살아갈 가치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인생은 미완성이며 진리는 자아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물욕에 집착하는 까닭은 물질이 사실적인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니다. 우주 천지만물들, 더 나아가 그대의 몸 또한 생각의 환상물질일 뿐, 근본원인인자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착각에서, 꿈에서 깨어나라고 하는 것이다. 

 

요점 정리하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 그대의 '나의 마음'... 그것은 그대만의 나만의 고유한 것이 아니라, 타인들의 말에 의해서 가공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다. 마음이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니라, 타인들의 말들에 의해서 가공된 것이기 때문이다.  

 

둘. 색계, 욕계, 즉 현상계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마음)에 의한 창조물이며, 환상계라는 뜻이다. 이에 대해서 무색계(無色界)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다. (色은 '빛 색' 자로써... 빛에 의해서 형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지식은 知識이 아니라 無知이며, 無識이다.

본래 없는 것(생각의 환상물질)에 대한 분별이며, 망상이기 때문이다.

 

가치있는 삶과 살아갈 가치도 없는 삶.

그대의 뜻일까?

아니면, 신이 뜻일까?

 

인연있는이에게 영원한 평화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