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인간세상, 인간들의 언어가 혼돈이다.
왜냐하면 말, 말, 낱말은 무수히도 많은데, 낱말들에 대한 이해는 시대와 조건, 상황에 따라서 전혀 다른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사실 '정신세계' 라는 말 또한 그러하다.
정신세계라는 말은 다른 물질세계가 있다는 전제하에 창조된 말이기 때문이다. 영성세계라는 말 또한 그러하다. 인간은 이성, 지성, 감성... 등의 마음의 작용에 대해서 끊임없이 더 많은 말들을 창조해 낸다, 그 대표적인 말이 '느낌' 이라는 말인 것 같다. 그 느낌이라는 말들에 대한 다른 표현들이... 지성, 감성, 영성, 영적... 이라는 말 등이며, 더 나아가 '자비, 공덕, 은총, 축복' 이라는 말 등인 것 같다.
이런 말들의 사전적 의미를 보니.
국어사전.
사실. 이런 말들에 대해서 다시 설명하는 까닭은 '빛명상' 이라는 집단과 '정법시대' 라는 집단들에 대해서 들었기 때문이다. 도가를 방문했던 인물들... 그들 또한 진리를 갈망하여 수많은 곳을 찾아다녔다는데. 그들로부터 들었던 말이 참으로 신비스러웠기 때문이다.
'빛명상'이라는 집단을 통하여 인도까지 다녀왔다는데... 그들의 말 중에는. 스승의 눈과 마주침으로써 축복을 얻는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의 그런 허황된 말들에 속수무책으로 속는다는 것이다.
사실, 공덕이라는 말과 자비라는 말은 한자로서 불교를 통해서 창조된 말이며, 축복이라는 말과 은총이라는 말은 기독교를 통해서 창조된 말인 것 같다. 사실. 이런 말들이 끊임없이 창조되는 까닭은 그런 것들이 본래 있어서 창조된 말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만족하여 평화로울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얻기 위해서 창조된 말이다.
사실, 행복, 자유, 평화라는 말 또한 그러하다.
사실. 이런 말들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관념'이라는 말의 뜻에 대해서 먼저 이해 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인간들의 언어는 항상 과거의 일들, 즉 지나간 일들에 대한 말들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과거가 있기 때문에 현재 또는 현실이 있으며, 미래가 있다는 생각에 대해서 당연하게 여길 수밖에 없겠지만... 사실 인간은 현실, 현재, 지금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항상... 과거의 기억에 바탕을 둔 과거를 사는 것이며, 끊임없이 새로운 과거를 창조해 나가는 과정이 인간들의 삶이라는 허구적인 것이다.
사실. 인간의 관념이란 지금 이 순간과 순간들에 대해서 현실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찬라지간으로 생멸(生滅)을 반복 순환하는 생각의 윤회현상에 대해서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과거가 아닌 현제와 미래가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이런 사실적인 말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인물이라면... 인간세상에서는 가장 뛰어난 지식이거나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이라고 말하는 순간, 순간, 순간들... 찰나지간이라고 할지라도, 그 찰라 또한 찰라라는 생각이 떠오름과 동시에 과거이기 때문이며, 이와 같이 인간은 현제를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관념(觀念)이라는 낱말의 뜻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있다면, 인간들의 사고방식은 변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자신과 천지만물들 모든 것들이 '관념'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사실. 일체유심조 라는 말과 같은 뜻이며, 생각의 환상물질 이라는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 '관념'이라는 낱말이기 때문이다. '관념'이라는 낱말의 뜻은 '볼 관' 자와 '생각 념' 자로써 '본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의 언어는 다섯가지의 감각기관들을 총칭하는 말이 '관념'이라는 말인 것 같다. 사실 관념이라는 말은 '볼관'자로써 '눈으로 봄'에 대한 '생각'이다' 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실. 사실. 석가모니의 말로 전해지는 '무안이비설신' 이라는 말의 - 다섯가지 감각기관이 본래 없는 것-이라는 말의 뜻은. '관념'이라는 말의 '념(생각 념)' 즉 '생각'만이 기억에 남겨지는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그대의 '나' 또한 기억된 생각이 모든 것이다. '기억된 생각들'에 대해서 '나' 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그 기억된 생각들에 의해서 모든 고통을 겪는 것이다-는 말이다.
사실. 인간은 감각기관에 대해서 '있는 것이다'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눈으로 본 것만이 '관념'이 아니라... 귀를 통해서 들었던 말들, 소리들, 그리고 코를 통해서 냄새를 맡거나 향기를 느끼는 느낌들, 그리고 혀를 통해서 맛을 아는 느낌이나 감정들, 신체를 통해서 느끼는 느낌들... 모두에 대해서 '볼 관' 자의 관념이라는 말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가령. 눈으로 보았다는 말과 '귀로 들어 보았다' 그리고 '코로 냄새를 맡아 보았다' '혀로 맛을 보았다'는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이 언어이다. 하지만... 그 모든 감각기관들의 작용들, 느낌들은.... 기억세포에 저장된 생각, 생각, 생각들일 뿐... 다른 것들이 아니다. 그대가 '나'라고 아는 앎들이 모두 기억된 생각들이라는 뜻이다. 다만 인간의 관념으로써 자신의 마음이 허구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인식할 수 없는 까닭은... 자신의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는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말을 배워서 말의 뜻에 대해서 알기 이전의 상태에 대해서는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 즉 말이 없는 상태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는 까닭은... 인간의 생각은... 언어로 구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이 없던' '말을 모르던'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는 기억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사고방식'이라는 말을 창조 해냄으로써 '나는 생각하는 사람' 이다 라는 방식의 '내가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할 수 있다'는 생각이 착각이다. 물론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이런 말에 대해서 이해 조차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종교들, 명상 집단들 더 나아가 '뇌과학' 이라는 학문들까지 생겨나게 된 것이며, 무수히도 많은 명상 집단들이 생겨나는 것이며, 그들 모두가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주장하는 것이다.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에 주장하는 것이다.
그들 모두가. 아니 인간들 모두가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는 완전하게 무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상 인간의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 즉 생각들로써는 절대로 이해 조차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식자우환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사실. 깨달음, 도, 진리 또한 '올바른 앎'으로써의 지식이다.
지식을 초월한 지식이다.
다만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납득할 수 없기 때문에 신비의 세상이라는 터무니 없는 말이 창조된 것이다. 물론 인간의 관념으로 이해 할 수 없을 수밖에 없으나... 그 방법에 대해서 그시대의 보편적인 언어로 설명했던 인물이 '예수'와 '석가모니'이다. 그리고 이곳 모든 글들이 현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언어의 본래의 뜻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생각의 원리에 바탕을 둔 설명이기 때문에 지적으로나마 이해가 가능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인간들이 창조한 언어는 본래 있는 것들에 대해서 찾기 위한 것들이 아니라, 본래 없는 것들에 대한 갈망 즉 간절한 소망에 의해서 창조된 것들이다. 사실. 행복이나 자유, 평화라는 말 또한 그러하다. 행복이나 자유, 평화가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어로 창조된 것이다. 물론 삶과 죽음, 슬픔, 환상 또한 그러하다.
사실 인간이 언어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까닭은, 언어가 모든 것이기 때문이며, 자신의 '나' 조차도 기억세포에 저장된 기억된 생각(언어)으로써 구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기억된 언어 즉 기억된 생각이 없다면... '자아'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도, 깨달음, 진리라는 말은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며, 다만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하는 앎이다.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하는 앎은 '생명의 비밀'에 대해서 이해 하는 앎이며, '우주의 근본원인'에 대해서 이해 하는 앎이며, 궁극적으로 본다면... 인간들의 가치 있는 삶을 위한 유일한 방법론이다. 다만 인간들이 그런 사실에 대해서 납득할 수 없기 때문에... 여러 방편설들로써 그 이치에 대해서 설몀하는 것이다.
사실. 예수가 가장 강조했던 말은, 어떤 계명, 계율보다도 가장 큰 계명이 있다면...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이라고 한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는 일이 모든 계명, 계율 중 으뜸이라는 뜻이다. 이 말의 바탕은 '자아' 즉 -인간들의 자아, 즉 '나' 라는 것이 기억된 생각에 바탕을 둔 환상물질일 뿐, 사실적인 것이 아니다-는 뜻이다. 이 말은 또한 석가모니의 말로 전해지는. '무상한 것은 나가 아니며, 마음 또한 그러하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이런 사실들. 옛 시대와는 달리 문자가 발전된 시대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며, 육하원칙이라는 법칙에 어긋남이 없도록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지식은 논리적이지 않으나, 진리는 지극히 논리적이기 때문이며, 육하원칙의 법칙으로 보더라고 어긋남이 없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
본래 '자비'라는 말과 '공덕' 이라는 말은 '석가모니'의 최초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말이다.
사실. 지금 이사람이 인간세상의 인간들에게 하고자 하는 말들 또한 그러하다. 어떤 물질적이거나, 정신적으로 얻었던 것들에 대해서 베푸는 것은 자비가 아니며, 불가에서 주장하는 '보시' 라는 말이나,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십일조, 헌금' 등의 행위는 공덕이 아니라는 말이다.
단지 올바른 앎으로써 인간세상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 진실된 말을 전하는 일에 대해서 '자비'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석가모니가 스스로 깨달아 아는 앎으로써 인간들에게 그런 사실을 알리고자 하였으나, 올바르게 알아들을 수 있는 인간이 없었기 때문에... 다시 산중에 들어가서 코끼리와 더불어,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써... 산중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때 진리를 갈망하던 몇몇 사람들이 석가모니를 찾아와서 했던 말이... '세존이시여, 자비를 베푸소서' 라는 말에서 유래된 말이 '자비' 라는 말이다.
그리고 '공덕'이라는 말은.
석가모니의 자비로운 말들... 즉 올바른 앎에 대한 가르침, 진실된 앎, 진리에 대해서 그 뜻을 올바르게 이해 하여 스스로 큰 이익을 얻음에 대해서 '공덕'이라는 말로 창조된 것이며, 그 공덕, 즉 올바른 앎을 아는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 다른 사람들, 이웃에게 그 뜻을 전하여, 다른 사람들 또한 크나큰 이익을 얻는 일에 대해서 '공덕'이라는 말이 창조된 것이다.
이는. 일념을 깨닫고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 스스로 자신의 병든 몸을 치유할 수 있는 올바른 앎을 이르는 말이며, 이웃에게 그런 올바른 앎, 진실된 말, 진리의 말을 전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또한 진리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이곳 '도가'를 방문하여 '마음의 작용'에 대한 설명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써 '마음'이 본래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가공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써 올바른 '명상법'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엇그제 방문했던 인물들... 그들이 그런 사실에 대해서 이해가 가능했던 인물들인 것 같다.
예수의 말이 왜곡되어 전해지는 기독교의 '헌금, 십일조' 등으로 표현되는 말들과 석가모니의 말이 변질되어 생겨나게된 '보시' 등으로 표현되는 말은... 현시대 인간들의 지식으로써 이해하는 그런 뜻이 아니다는 말이다.
사실. 자비와 공덕이란는 말은...
진정한 행복과 자유, 평화... 즉 진리를 갈망했던 인물들이 '백천만겁 난조우의 인연'이라는 말과 같이... 귀하고 귀한 인연으로써 지적으로나마 '진리' 즉 올바른 앎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올바르게,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게 됨으로써 비로소 없던 마음을 내는 일을 뜻하는 말이다. 가령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듣고자 하는 인물들이 석가모니가 머무를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는 것과 같은 경우이며, 인도의 성자로 알려진 '라마나 마하리쉬'의 제자들이 그의 말을 듣고 배우기 위해서 '성전'을 짓는 일과도 같은 것이다.
옛 말중 하나를 비유로 든다면.
달마대사를 만났다던 어던 황제가. 달마대사에게 말하기를, 나는 절간을 많이 짓도록 보시를 하였으며, 승려들을 많이 배출했는데, 나에게는 공덕이 얼마나 있습니까 라고 물었다는데. 달마대사 말하기를 '無' 라고 했다는 말이다. 그런 짓들은 공덕이 아니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올바른 공덕이란, 스스로 진리에 대한 올바른 앎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그 앎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말이 '자리이타'라는 말이다.
소위 깨달은 자들, 성자들, 진리를 말했던 자들의 행색은, 석가모니나 예수, 또는 소크라테스나 노자, 장자 등과 같이 보잘것 없는 외모를 지녔을 뿐만이 아니라, 남루한 차림세로써 있는 그대로 존재한다. 그런 까닭은 사람들의 관념이나 시선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스스로 만족하여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며, 그들에게는 꼭 해야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단지 그들에게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 또한 굳이 해야 할 일은 아니지만... 인간세상에 그 길, 즉 진리를 전하기 위한 언행들이라는 것이다.
진리와 벗 하라는 이유는, 오직 진리가 자유이기 때문이다.
인유의 자유와 평화 행복은 오직 진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진리가 곧 모든 것이며, 모든 것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진리와 인연있는 이에게 영원한 평화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10
'무위자연과 인간이 관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용(中庸)과 중도(中道, 導-인도할 도) - 지식의 앎의 무지와 진리의 앎에 대한 사유/ 깨달음이란? (0) | 2015.02.03 |
---|---|
인간의 조건/ 인간다운 인간과 인간답지 않은 인간/ 존재의 이유 - 지식과 진리의 관계에 대한 사유 (0) | 2015.01.28 |
생명의 비밀/ 우주의 비밀- 왜 혜성인가? - 비밀이 있기는 있는 것인가? - 식자우환에 따른 망상이다 (0) | 2014.11.14 |
현대인의 고질병. 대장암 그 원인과 치유원리/ 지식과 마음의 관계/ 문명의 무지와 진리- 불이일원론이란? (0) | 2014.11.12 |
진정한 휴식. 휴가. 힐링이란? / 몸과 마음의 치유 원리와 일념명상 (0) | 2014.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