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인간세상의 인간들... 인간답지 않은 인간도 없으며, 인가다운 인간 또한 있을 수 없다. 스스로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인간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인간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무형의 실체가 '영혼'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며, 동시에 영혼에 의해서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몸과 마음에 대해서 '자아'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모순이지만, 모순이라고 인지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들의 앎에 대해서 무지몽매한 것이라고 아니 할 수 없느 것이다.
아래의 내용들은 인간류의 역사에 기록된 철학자들의 논술, 언술들이다. 인간의 근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들이지만... 여전히 해답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해답을 알리려는 것이다.
인간의 조건 이라는 제목의 저자... (에릭호퍼)의... 요약은.
183개의 아포리즘으로 말하는 ‘인간의 조건’!
인간과 자연에 대한 아포리즘 『인간의 조건』. 에릭 호퍼가 1964년부터 1972년 사이에 집필한 책으로, 《맹신자들》 이후 연이어 발표한 주요한 저작들의 주제가 집약된 183개의 아포리즘 모음집이다. 인간과 자연의 근원적 본질과 조화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는 이 책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 인간의 창조성의 원천, 인간의 본성, 트러블메이커의 본질 등 다양한 분야의 주제를 아우른다.
호퍼는 자연이 ‘잘못’ 창조한 불완전하고도 매혹적인 인간이라는 피조물의 본성을 평생 연구하였는데, 자연과 달리 인간은 치유할 수 없는 불완전함을 지닌 생명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인격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선과 악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힘인 ‘동정심’에 의지해야 하며, 또한 개인의 재능과 창의성에 수반하는 어려움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보문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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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테니카 백과사전의 인간에 대한 논란들... 은 아래와 같다.
철학사에서, 생물학적 현상이나 사회적 현상으로 또는 종교적·인격적·이성적인 것으로 이해되는 존재.
인간의 고유한 특징으로는 영혼·사유·노동·유희·소비·도덕 등이 제시되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은 세계와 우주의 본질을 탐구했는데 이러한 존재 질서에서 인간은 중심 위치를 차지했다.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이지만 인간의 본질은 영혼이다. 신화적·종교적 세계관에서는 영혼이 천상에서 물질 세계로 추방되어 육체에 갇혀 있지만 세계보다 참된 것이라고 보았으며 여기에서 이원론적 사고가 마련되었다.
소피스트는 자연철학에서 벗어나 인간에 대해 본격적으로 사유하기 시작했으며, 인간을 세계의 보편법칙인 로고스를 지닌 존재로 보는 데 반대하고 인간을 만물의 척도로 삼았다. 소크라테스는 보편적인 도덕적 가치와 규범을 인정함으로써 소피스트의 상대주의를 극복했다. 그에 따르면 이성적 존재인 인간은 감각세계의 변화를 넘어서 영원하고 변치 않는 이성적 진리를 알 수 있다. 이런 사고는 고전적인 형이상학에 연결된다. 플라톤은 감각적인 가상세계를 넘어서는 지적인 정신세계를 실재라고 본다. 인간의 영혼은 변화하는 세계를 초월하여 불변하는 이데아의 세계에 속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인간이 이성을 지니므로 다른 존재보다 우월한 것으로 본다. 그는 질료와 형상 원리에 따라 인간의 영혼을 육체의 형상으로 보고 영혼과 육체의 결합을 추구했다.
중세시대에는 그리스도교에 기초하여 인간을 신적(神的) 질서의 일부로 이해했다. 인간은 신이 창조한 인격이며 신을 추구함으로써만 그 의미를 갖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면서도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랑 안에서 완성되는 자유의지를, 토마스 아퀴나스는 자유와 사랑보다 지성을 강조했다. 종교개혁 이후 신앙이 부여한 통일이 무너지고 인간은 세계의 중심에서 주변으로 떨어져 방향과 안식처를 잃은 존재가 되었다. 근대에 들어와 인간은 객관적인 존재질서의 중심이 아니라 주관적 인식의 중심이 되었다(주관으로의 전환). 르네 데카르트는 의식의 순수한 자기 확실성을 확고부동한 출발점으로 삼았다. 모든 사물에 앞서 자신을 사고하는 자아는 구체적인 인간이 아니라 순수한 이성이다. 데카르트는 정신과 물질, 사유하는 의식과 연장(延長)을 지닌 육체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실체'라고 본다. 이러한 영혼과 물질의 단절은 근대 철학을 일면적으로 만들었다. 정신만을 강조하는 합리주의는 인간의 이성을 사유하는 주관으로 축소시켰고 경험론은 경험과 물질에만 매달린다.
이마누엘 칸트는 양자의 대립을 넘어서고자 했다. 그런데 대상적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순수이성을 추구하는 칸트의 선험철학(先驗哲學)은 인간의 통일과 전체성을 이루는 데 실패한다. 그는 감각적 직관과 개념적 사유, 이론적 인식과 실천적 행위, 지식과 신앙의 대립을 통일하지 못했다. 칸트는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이러한 질문은 형이상학·도덕·종교에 기초해서 인간학을 확립하려는 것이다. 독일 관념론은 절대적 자아와 절대정신을 추구하여 칸트의 한계를 극복하려 했다. 인간의 전체성은 세계와 역사 안에서 절대자의 변증법적 자기발전으로 파악된다.
18세기 프랑스의 유물론자인 라 메트리, 디드로, 달랑베르, 홀바흐 등은 인간의 정신적 본질을 부정하고 인간을 물질 체계의 한 현상으로 본다. 19세기 실증주의의 창시자 오귀스트 콩트는 인류가 신학적·형이상학적 단계를 거쳐 실증적 단계로 발전한다고 본다. 실증적 단계에서는 세계를 실증적·과학적으로 탐구하여 실재에 대한 객관적 지식을 추구하는데, 이때 인간은 자연과학·경험심리학·사회과학의 대상이다. 카를 마르크스는 역사를 유물론적으로 해석한다. 그는 인간을 노동하는 존재로, 물질적 생산을 통해 세계를 만드는 존재로 보았다. 인간은 사회공동체 안에서 다른 인간과 더불어 살면서 의식을 갖추고 물질적·정신적 활동을 하는 사회적 존재이다. 그런데 계급사회의 인간에서 생활은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와 거기에서 생기는 착취자와 피착취자의 적대적인 계급으로 분열된다. 이때 인간은 계급적 개인이고 소외된 개인이다.
인간을 보편적인 존재로 보기를 거부하는 키에르케고르는 '실존'을 문제삼는다. 이것은 자기의 고유한 경험, 유일성과 독립성, 자유와 책임에서 개별적인 인간을 보는 것이다. 인간은 무기력과 좌절, 죄와 불안 속에서 자기를 경험하는데 신과 마주섬으로써만 자기 실존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니체는 이와 반대로 자연적 인간과 그 생명력을 중시하면서 그리스도교를 비판한다. 그는 삶을 고양시키기 위해 그리스도교의 '노예도덕'을 버리고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다. 생(生)철학자인 베르그송은 실증주의와 유물론에 반대해서 끊임없이 운동하고 성장하는 삶에 주목한다. 이것은 생명의 약동에 의해 창조적으로 진화한다. 그것은 합리적으로는 파악할 수 없고 직관으로 체험해야 한다. 이런 흐름은 실존주의에 연결되어 카를 야스퍼스는 실존의 해명을 통한 초월을, 마르틴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실존론적·존재론적 해석학을, 사르트르는 의식의 현상학을 펼친다.
인간에 관한 논의는 철학적 인간학의 중심이다. 현대의 철학적 인간학은 막스 셸러에 의해 기초가 마련되었는데, 그는 〈우주에서 인간의 지위 Die Stellung des Menschen im Kosmos〉(1928)에서 인간과 동물의 행동을 비교하고 인간의 '세계개방성'을 동물의 '환경에 구속됨'과 구별하여 인간의 지위를 정신에서 찾는다.
아르놀트 겔렌은 경험과학을 인간학 관점에서 종합하여 동물이 고도로 전문화되어 있고 확고한 본능을 지닌 데 비해 인간은 전문화되어 있지 않은 '결핍 존재'임을 밝히려고 했다. 인간은 자신의 행위로 그 결핍을 보충해야 했고 그리하여 높은 정신적·문화적 성취를 이루었다고 본다. 이와 달리 아돌프 포르트만은 생물학과 비교행동 연구에서 인간이 이미 생물학적으로 정신적·문화적 성취와 인격적·사회적 관계, 즉 '인간적인' 것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고도로 '전문화'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헬무트 플레스너는 인간이 자기 삶의 중심을 거듭 반성하고 이를 초월해서 '탈중심'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동물의 '중심성'과는 다르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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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깨달음의 실체를 밝힌다' 라는 책을 쓰기 전에 이런 생각이 일어났다. 만약에, 현세상에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올바르게 설명했던 인물이 있다면 굳이 새로운 책을 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검색을 통해서 보았던 내용들이 아래의 내용들이며, 유사한 내용들이었다.
다시 보니. 위와 같이 인간들의 제각각의 자기를 주장하는 글들 중에 신선하게 표현된 글이 있는데... 마지막 부분의 '아르톨트 겔렌'의... "경험과학을 인간학 관점에서 종합하여 동물이 고도로 전문화되어 있고 확고한 본능을 지닌 데 비해 인간은 전문화되어 있지 않은 '결핍 존재'임을 밝히려고 했다... 는 내용이다.
사실. 인간의 관점에서 볼때에... 인간보다 동물이 고도로 전문화되어 있고, 확고한 본능을 지닌데 비해 인간은 전문화되어 있지 않고, 본능조차 인위적으로 가공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결핍 본재' 라는 말은 참으로 옳은 표현이다.
이 말은 인간류의 역사에 기록된 말들로 볼때 '맹자'편에 나오는 '고자의 불선무불선'이라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성향, 성품, 성격... 은, 물을 터놓으면 터놓은 방향으로 흐르듯이, 인간의 성품 또한 인위적으로 가공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들과 같은 본능도 없는 것이며, 동물들과 같이 생존을 위한 고도의 전문성도 없는 것이라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사실 동물의 입장에서 본다면 전문성이나 본능이 없다. 인간의 관념으로 볼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동물은 '동물의 입장'이라는 관념이 없다. 하늘 또한 '하늘의 입장' 이라는 관념이 없으나... 예수의 말과 같이 하늘의 입장에서 본다고 가정한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한가지 중요한 것은 '소크라테스의 말과 예수의 말, 그리고 석가모니의 말과 노자와 장자의 말들은 모두 같은 맥락이라는 사실이며, 그 중에서도 조금 다른 것은 '예수와 석가모니'의 말에는... '경험이전의 사고'에 대한 언급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순수의식의 아이시절을 경험하지만, 기억할 수 없는 것이며, 그런 아이들에게는 '내가 사람이다'는 앎(언어, 지식)이 없었다는 뜻이다.
사실. 인간은 '결핍 존재' 가 아니라 -본래 '없는 것'- 이다. 우주. 자연. 동물이 먼저 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관념-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앎에 의해서 우주 자연이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앎'이 없다면... '인간' 이라는 언어가 없는 것이며... 대상들 또한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동물'의 입장에서 본다면 동물이 없다는 뜻이며, 동물 또한 인간의 앎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라는 뜻이다. 인간이 없다면, 언어가 없는 것이며, 언어가 없다면... '아무것도 없는 것' 이라는 말이다. 석가모니의 '본래무일물' 이라는 말의 뜻이며, 예수의 '하나님 말씀' 이라는 말의 본래의 뜻이다.
'지식' 이라는 말과 '진리' 라는 말이 있다. 이 또한 '지식'이라는 말이 있기 때문에 '진리'라는 말이 있는 것이며, '지식'이 무지(無知)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하는 앎이 진리이다. 사실 '우주의 근본원리'를 이해 하는 것이 '진리' 가 아니라, "인간과 우주자연이 본래 없는 것" 이라고 아는 앎이 '진리'이며, 불변의 진리라는 말은 오직 그런 앎만이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앎이라는 뜻이다.
현대철학은 고대철학에 대해서 이해 하려고 하겠지만, 고대철학이거나 현대철학 또한 '석가모니'와 '예수'의 말의 뜻에 대해서는 이해 조차 불가능하다. 사실 예수의 말이나 석가모니의 말은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오직 그들만이 '진리' 즉 '導' 를 깨달은 것이다. 물론 '도' 라는 말은 '참된 인생의 길' 이라는 뜻과 '인도할 도' 라는 뜻으로써... 인간의 존재의 목적과 가치 있는 삶, 그리고 검증된 삶을 위한 도리를 일컷는 말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존재 자채가 결핍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은 결핍이 아니라, 인간이나 인간의 대상 모든 것들이 '본래 근본원인'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통해서 몇 가지 중요한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면, 그대는 가치 있는 삶, 검증된 삶으로써 후회없는... 언제 죽더라도 여한이 없는 삶으로써, 삶 자체를 기쁨으로 여길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그 하나는 그대 자신이 전 인류 중에 최초의 인간이며 또한 인류의 마지막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그대와 우주는 동시에 탄생된 것이며, 또한 동시에 소멸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둘은 그대가 우주를 창조한 절대자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며, 셋은 그대는 죽음을 경험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삶의 무게가 본래 없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에 대해 이해 하기 위해서는 그대의 지식에 바탕을 둔 사념(모든 생각)이 허구적인 것들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지적으로나마 이해 해야만 하며, 사유할 능력이 있다면... 그대가 '나는 생각하는 사람이다' 라고 안다면... 올바른 사유로써 누구나 이해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실. 인간에게 존재의 이유가 있다면... 오직 그것 하나 뿐인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본래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며, 우주가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그대 또한 본래 그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과 우주 만상만물들은 근본원인이 없는 것들이며,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언어' 또한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어가 없다면... 인간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언어가 없다면... 하늘, 땅, 자연, 인간, 동물, 영혼, 귀신, 하나님, 부처님... 등이 '없는 것' 이기 때문이다. '없는 것' 이라는 말 또한 '없는 것' 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인간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인간답지 않게 산다는 것이며, 인간답지 않게 산다는 것이 또한 인간답게 사는 것이다. 땅위에 기어다니는 개미 무리들은 어떻게 살거나 개미 무리들로서 사는 것이며, 개구리 무리들 또한 본능을 지닌 개구리 무리들이며, 하늘을 나는 새 무리들 또한 이와 같다. 다만 인간 무리들만이 서로가 다른 무리들이기를 바라는 것이며, 제각기 이합집산들로써의 서로 제각기 다른 분별이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진리가 아니라, 경험에 바탕을 둔 지식에 의해서...
사실. 지구 즉 자연의 입장에서 본다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개미 무리들이나, 개구리 무리들을 비롯하여 무수히 많은 무리들 중에서 가장 쓸모 없는 무리들, 가치 없는 무리들이 인간 무리들인 것 같다. 아니 사실은 인간 무리들 또한 다른 무리들과 다를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다만 인간 무리들만이 스스로 창조한 분별심(언어)에 의해서 스스로 고통을 자초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무리들의 앎이 진리가 아니라, 지식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인간무리들의 존재가 사실적인 것이라고 가정한다면(본래 근본원인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가치 있는 삶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지식 즉 언어에 얽매이는 삶이 아니라 지식을 초월한 '진리의 앎을 이해 하는 삶' 이다. 왜냐하면 지식은 고대철학이거나 현대 철학이거나 인간이 무엇인지 이해 조차 불가능한 무지이기 때문이며, 진리는 그것을 초월하는 올바른 앎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본래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며, 우주 또한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앎이 진리이다.
진리와 자유,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이 진리이다. 왜냐하면 진리를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대 마음의 근원, 의심의 근원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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