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지성체이다.
그리고 지성체는 인간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런데, 사실 이런 말 또한 올바르게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 지성체의 지식이라는 앎이다.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같은데, 정작 올바르게 아는 것은 아무것도...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지식으로 구성된 지성체는... 마음이 나다, 몸이 나다, 라고 아는 것에 대해서 하나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몸이라고 알며, 내마음이라고 알며, 내가 옳다고 주장하기를 일삼는다. 그리고 죽는 날까지도 자기를 주장하며, 자기를 위해서 존재하며,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산다.
사실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까닭은... 자신이 자신에 대해서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자신을 인정할 수 없는 까닭은 자신이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을 의존하여 자기를 인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며... 남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는가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보다 남들에 대해서 관심이 더 많은 까닭은 자신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자신에 대한 관심보다도 남들의 일, 즉 세간의 사건들에 대해서 더 관심이 많은 까닭은 자신이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며, 자신 또한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주관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주관이 없는 것이다. 주관이 없다는 말은 일관성이 없다는 말이다.
사실, 인간이 일관성이 있을 수 없는 까닭은 올바른 앎이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죽는 날까지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는 까닭은 온전하게 믿을만한 것(앎, 지식)이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 자신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남들을 믿는 것이며, 남들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믿을만한 구석을 찾는 것이며, 그것에 대해서 인생이라고 하는 것 같다.
살아 있는 동안 내내 무엇인가를 구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유 또한 그러하다.
사랑을 구하거나 행복을 찾거나, 재물을 구하거나 명예를 위해서 존재하지만... 어느 것 하나 완전한 것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종교들이 생겨나는 것이며, 명상집단들이 생겨나는 것이며... 언술이 뛰어난 자들의 서로가 옳다는 방식의 강의와 책들이 많아지는 것이며, 더 나아가 범죄 행위가 많아지는 것이며, 치매와 질병이 많아지는 것이며... 그런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이리 저리... 찾아 헤매다가 마침내 '사망' 즉 죽어서 멸망하므로써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인간들은 그것에 대해서 '인생'이라고 정의 하는 것 같다.
꿈과 희망을 찾아서... 길잃은 양무리들과 같이 헤매는 일들에 대해서...
사실 인간세상이 더 다양해 지고 더 복잡해 지는 까닭은... 인간들 서로 서로가 자기 자신 이외의 타인들로부터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자신이 믿을 만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인간세상에 완전하게 믿을만한 것도 없으며, 믿을 수 있는 사람도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깨닫는 것은 죽음 앞에 바짝 다가서 있을 때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한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만은 세상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남들을 의존하여 얻어진 지식으로써 살아갈 수 밖에 다른 방법을 구할 수 없는 인간들의 삶들... 누구나 그러하다.
그들... 명색이 성인들의 말을 올바르게 이해 하지 못하여... 그들을 우상숭배사상으로 스스로 왜곡시켰기 때문이다.
인간들 누구나 세상으로부터 완전한 의지처를 구하려고 하거나 또는 만족하여 평화로울 수 있는 그 무엇을 구할 수 있다고 믿는 까닭은... 드러나지 않는 잠재의식에는 온전한 의지처가 있었기 때문이며 그 시절이 곧 순수의식의 어린아이시절로써 마음이 생겨나기 이전이며, 부모에게 완전하게 의지하던 시절에 대한 의식이 잠재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는 까닭은... 순수의식의 어린아이시절에는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언어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 삶이 스스로 만족할 수 없으며, 스스로 평화로울 수 없는 까닭은 자신이 자신에 대해서 올바르게 아는 것이 아무것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는 말... 이 말에 대해서 조차 이해 할 수 없다. 만약에 이런 말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지식을 넘어선 진리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며, 겨자씨 만큼이나마 올바른 앎이 있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자신에 대해서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이 무슨 뜻인지 묻는다면... 유구무언? ...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자신에 대해서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아는 것이 단 하나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서로가 옳다는 방식으로써 무수히도 많은 학문들을 창조해 냈다.
하지만 여전히 인생에 대한 해답이 없으며, 해답이 없는 이유 조차 이해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세상의 지식이라는 앎이다. 그리고 그 해답을 밝혔던 인물들이 곧 무위자연의 자유를 말했던 노자이며, 석가모니이며, 예수이며 소크라테스이다. 그리고 그들의 말의 공통점이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며, 스스로 아는 것이 진리라는 말이다.
석가모니의 말이 한자로 번역되면서 '正見'으로 표기된 말이 있다.
한글로 번역한다면 단지 '올바른 견해' 또는 '올바르게 본다는 것' 으로 이해 될 수 있는 말이지만... 원문의 해석서를 보니, '지식은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 이며, 정견은 '스스로 아는 것' 이라는 말로 해석되어 있다.
어떤 말로, 어떤 글자로 표기 되거나 상관 없는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 과 '스스로 아는 것' 이라는 말에 대한 차이가 '지식' 과 '진리' 와의 차이로써 인간의 지식에 바탕을 둔 관념을 초월한 말인 것이다. 왜냐하면 사실 인간들의 '내가 사람이다' 라는 앎 조차도 스스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며, 진리란 그런 지식이 올바른 앎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스스로 만족하여 평화로울 수 없는 까닭은, 자신이 자신에 대해서 올바르게 아는 것이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의 지식으로써도, 남들을 믿음으로써도 평화로울 수 없는 것이며, 남들을 의존하여 얻어진 지식으로써 고통을 겪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또한 스스로 경험한 것이 아니라 남들을 의존하여 얻어진 지식 때문인 것이다.
인간의 모든 언어, 모든 지식은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들이다. 만약에 그대가 죽음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안다면, 또는 그대가 태어나기 이전에 대해서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본다면, 또는 그대가 깊이 잠든 상태에 대해서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안다면... 또는 세상의 소멸에 대해서 사실을 그대로 올바르게 본다면... 그대와 존재계 즉 현세상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기 때문이다.
꿈속에서는 꿈이 사실적인 것이며, 현실에서는 현실이 사실적인 것이다.
현실이 사실이라면 꿈은 사실이 아닌 것이며, 꿈이 사실이라면 현실은 사실이 아닌 것이다. 이와 같이 삶이 사실적인 것이라면 죽음은 사실적인 것이 아닌 것이며, 죽음이 사실적인 것이라면, 삶의 현실은 사실적인 것이 아닌 것이다.
모순이지만 모순이라는 사실 조차 이해 할 수 없는 것이 남들을 의존하여 얻어진 지식인 것이다.
지식은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으로써 '無明'에 바탕을 둔 無知인 것이며, 어리석음인 것이다. 그것이 깨달음이든지, 과학이든지, 의학이든지, 종교학이든지, 신학이든지, 무속학이든지, 철학이든지.... 노자, 석가모니 예수, 소크라테스 등의 말에 대해서 자기를 합리화 시킨다거나, 주장 한다거나 하는... 모든 지식이 그러한 것이다.
그러한 지식이 있기 때문에 불변의 진리가 있는 것이며, 진리의 앎이란 인간세상의 지식을 의존하여 아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아는 것이다, 는 말이다.
그들 즉 노자와 석가모니, 예수와 소크라테스 등의 인물들이 "스스로 아는 것"을 설한 인물들인 것이다.
만약에 지식이 올바른 것이라면....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더 지헤로워져야 하는 것이며, 자연상태의 동물들과 같이 더 건강해 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며... 늙음과 병듦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져야 하는 것이며, 근심 걱정 또한 사라져야 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무위자연의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검증된 삶이라고 하는 것이며, 진리를 알아가는 삶에 대해서 가치 있는 삶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대 자신이 그대 자신의 나에 대해서 스스로 아는 방법이 있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이다.
스스로 아는 방법이란...
예를 든다면.
인간은 누구나 '영혼'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영혼이 있다는 것 또한 자신이 스스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이다. 일념법이란 이런 의문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묻는 방식이기 때문에 '자아탐구' 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남들에게 영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각종 종교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학문들은 서로가 옳다고 주장할 것이며, 종교들간의 다툼이나 전쟁들과 같이 끝없는 의구심만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 물어야 하는 것이며, 스스로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영혼이 어디에 있는가' 라는 한구절, 한생각만을 천번이나 만번 쯤 되뇌이며 자신에게 물을 수 있는 근기가 있다면... 그 한생각만을 끊임없이 반복하여 수행할 수 있다면... 만번을 반복할 수 있다면 그대는 그때 비로소 스스로 아는 것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영혼이 영혼이라는 생각에 불과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문득 알아차리게 될 것이며, 그런 앎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아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며, 정견이라고 하는 것이다.
양자물리학이라는 학문으로써 밝혀진 내용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한다는 것 또한 쓸모 없는 지식에 불과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지식을 얻음으로써 스스로 만족하여 평화로울 수 없기 때문이며,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지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어리석어서 자신의 몸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자신의 몸 조차 올바르게 관리하지 못하여... 몸에 병이 들면 자신의 몸 조차도 다른 전문가에게 맡김(의존함)에 대해서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그와 같이 자신의 마음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믿지 못하여 교회나 절간이나, 다른 신이나, 운명철학이나 토정비결 등의 점성술이나 무속신앙에 의존함에 대해서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모순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자신에 대해서 자신 스스로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타인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으로써의 자아가 아니라, 그대 스스로 아는 것으로써의 자아가 있다.
어찌하여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남들의 앎을 '나의 앎'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대의 모든 앎들... 그대 스스로의 앎이 아니라 남들의 앎인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자신에 대해서 자신 스스로 아는 앎이 진리인 것이다.
진리와 인연있는 이에게 영원한 평화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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