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과 중도 · 방편설 - 말변사

행복의 조건 - 존재의 거듭남/ 죽음을 통과한 자의 승리와 영광/ 도. 진리. 깨달음이란? - 마음은 본래 있는 것인가?

일념법진원 2014. 12. 10. 07:18

사실. 인간세상에 행복한 사람이란 없다.

지금 그대가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면, 세상 사람들 또한 모두가 그러하다.

인간이 결코 행복이나 자유, 평화를 누릴 수 없는 까닭은 자신의 삶에 죽음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세상에서 '나는 행복하다'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면, 그는 정싱병자이거나 또는... 도, 깨달음, 진리에 대해서 분명히 이해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사실. 인간이 진정한 행복, 자유, 평화를 누릴 수 없는 까닭은 자신의 마음이 본래 자신의 마음이 아니라, 타인들로부터 가공되어진 것으로써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은 자신의 마음이 본래 자신의 마음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타인들의 시선에 의해서, 타인들의 말에 의해서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는 것이며, 스스로 완전하여 평화로울 수 없는 것이며, 끊임없이 흔들리는 것이다. 

 

사실. 마음이 끊임없이 흔들리는 까닭은 마음이 본래 자신의 것이 아니라, 불특정다수의 타인들로부터 듣고배웠던 말, 말, 말들, 정보들을 끌어 모아 스스로 가공된 것이 자신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이 본래부터 자신의 것이라면, 어찌하여 타인들의 마음에(타인들의 말, 말, 말들에...) 이리저리 이끌려 다닐 수 있겠는가?

 

 

사실. 인간은 누구나 행복과 평화, 자유를 갈망하는 것 같다. 

만약에 어떤 인간이 어떤 교육을 통해서 '마음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에 대해서 배우고 익힐 수 있었다면, 마음이 타인들의 말에 의해서 가공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할 수 있다면, 자신의 마음이 본래 자신의 마음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배우고 익힐 수 있었다면... 그리하여 서로가 서로의 마음에 대해서 온전하게 이해 할 수 있다면... 인간세상이 어찌 평화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음이 끊임없이 변하고 흔들리는 까닭은 본래 그것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웠던 것들에 대해서 '내마음'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지식과 마음이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마음이 본래 있는 것이며, 마음은 지식을 얻음으로써 행복이나 평화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만약에 인간이 지식을 탐구하므로써 행복, 자유,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면, 역사이래 지식수준이 최고에 이른 현시대는 누구나 행복한 삶이며, 세상 모두가 평화로운 삶이라야 한다.

그런데 아니다. 행복한 사람이 없다. 아니.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마음은 지식이며, 지식은 욕망을 추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창조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욕망은... 결코 만족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은 마음이 곧 지식이며, 욕망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마음이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니라,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웠던 지식들로써 가공된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은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써 '마음이 본래 있는 것이다'는 앎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진리는 그런 지식이 허구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앎이다. 지식은 지식의 시작에 대해서 무지하며, 지식의 끝을 모른다. 반면에 진리는 시작과 끝이 본래 없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이다.

 

지식은 삶이 있기 때문에 죽음이 있다고 아는 앎이며, 진리는 삶이 본래 없기 때문에 죽음 또한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아는 앎이다. 지식은 마음이 본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앎이며, 진리는 마음이 본래 없는 것이라고 아는 올바른 앎이다.

 

사실. 진리는 본래 진리가 아니라, 자식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앎이기 때문에 '진리'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사실. 인간들의 삶이 행복할 수 없는 까닭은 '마음'이 본래 있는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든 고통의 원인 또한 그러하다. 인간은 정신세계와 물질세계를 구분짓는 것 같다. 육체와 정신은 서로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마음의 세계와 육체의 세계(물질세계)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은 정신세계이며, 마음으로 느끼는 것은 물질세계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눈으로 자신의 눈을 볼 수 없듯이, 마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이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마음이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없다면' 어떨까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마음이 없다면 어떨까" 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물론 '생각을 하지 않겠다'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또한 '생각하지 않겠다' 라는 또 다른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의 윤회, 생각의 유희라고 하는 것이다. 언어 또한 그러하다. 언어가 없다는 생각도 언어이며, 언어가 있다는 생각도 언어이다. 이렇듯 마음이 있다고 단정 짓는 한... 해답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우주 하늘, 현상계를 인식하는 것은 마음이다. 

우주와 현상계가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마음이 있기 때문에 대상을 인식, 인지, 느낌.. 등의 말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생각'이 있는 것이며, 생각의 작용이다. 욕계, 색계, 무색계 라는 말이 있지만... 그 또한 그대의 기억세포에 저장된 낱말들에 한정된 생각들이다. 

 

세상이 신비스러운 것이 아니라, 신비스러운 세상을 창조한 마음이 신비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마음이 본래 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마음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지식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대가 기억할 수 없는 어린아이시절부터 타인들로부터 듣고 보고 배웠던 모든 것들이 지식이다. 그 지식에 의해서 '아상, 인상, 수자상, 중생상'이 생겨난 것이다. 그런 지식들에 의해서 '삶이 있으며, 죽음이 있다'고 알게된 것이다. 그런 지식에 의해서 생로병사의 고통을 겪는 것이다. 사실. 마음은 다른 것들이 아니라,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운 것들... 그런 지식이 곧 마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으로써는 마음이 무엇인지 이해 조차 불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마음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들의 '마음이 있다'는 주장은 근거 없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마음이 있다'는 앎과 '마음이 없다'는 앎은 상대적인 앎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논리적이라는 논리에는 육하원칙이라는 법칙이 있다. 그 법칙으로 보더라도 '누가, 언제, 어디서 , 무엇을, 어떻게, 왜... '마음'이 생겨난 것인지에 사유해 볼 수 있다면... 감히 '마음이 본래 있는 것'이다 라고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볼 수 있다면, 그리고 이런 사실에 대해서 지적으로나마 이해 할 수 있다면, 그대는 인간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진리에 대해서 이해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지성체가 아니라, 진리체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성체들의 지성체들간의 경쟁, 투쟁, 전쟁들...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예수를 믿는 자들과 석가모니를 믿는 자들의 끝없는, 끊임없는 투쟁은 왜, 멈출 수 없는 것일까? 

허구적인 지식을 믿기 때문이다.

마음이 본래 있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지식이 허구적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인간들의 '우리가 인간이다'는 앎 자체가 상대적인 앎에 바탕을 둔 편견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이 있다'는 앎, 말과 '마음이 없다는 앎의 말' 이 상대적인 앎이듯이, '우리는 사람이다'는 앎 또한 '우리는 사람이 아니다'는 앎과 상대적인 말이기 때문이다. 

 

사실. 존재의 거듭남이라는 말은 예수의 죽음을 통과하는 자의 승리와 영광이라는 말과 같은 맥락이며, 석가모니의 말과도 같은 뜻이며,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과도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사실,, 내가 있다, 내마음이 있다, 내가 인간이다는 주장들은 논리적으로 보더라도 타당성이 없는 앎이며, 주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의 모든 지식에 대해서 단견, 편견, 소견이라고 하는 것이다. 

 

진리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런 편견이 허구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아는 앎을 이르는 말이며, 단지 '자아'가 있다는 그릇된 앎이 착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 하는 것이다.  

 

 

인간의 지식은 편견이며, 진리는 그 편견이 허구적인 앎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또 다른 앎이며, 지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올바른 지식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식은 과학이든, 의학이든, 문학이든, 종교학이든, 신학이든... 모두가 근거 없는 말(앎)에 바탕을 둔 편견이며, 논리적으로도 육하원칙이라는 법칙으로 보더라도 올바른 앎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에 진리는 지극히 논리적인 것이며, 육하원칙이라는 법칙으로 보더라도 한치의 어긋남도 없는 올바른 앎이라는 것이다. 

 

 

사실. 문명이라는 낱말은 '문자의 밝음'이라는 뜻으로써, 본래 언어가 문자로 표기됨으로써 언어의 뜻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 하기 위해서 창조된 낱말이다. 사실. 인간의 관념으로써 언어의 기원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는 까닭은 인간은 누구나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에 대해서 '경험의 오류' 라고 하는 것이며, 현시대의 지식으로써도 이해 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 비유를 들어 방편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사실. 진리에 대해서 이해  한다는 것은 굳이 수행이나, 수도자... 등의 말들로써의 고행이 아니라, 단지 지식으로써 올바르게 이해 하는 일에서 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문법'이라는 말은 언어의 구성 및 운용상의 규칙이라는 말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시대에 존재하는 인간들에게 '진리'에 대해서 지극히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그대의 마음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할 수 있다면, 삶의 무게는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이 아닌 것들에 대해서 '내마음이다'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세상이 변해가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변해가는 것이 아니다.

세월이 오고 가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변해가는 것, 오고 가는 것은 오직 그대의 마음이다.

 

이 글을 통해서.

그대의 마음이 본래 '내마음이 아니다'는 사실에 대해서 지적으로나마 이해 할 수 있다면, 그대는 진리의 길에 들어선 것이며, 대도무문이라는 말이 허구적인 말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며, 신비의 문이라는 말 또한 '마음의 작용'에 대한 방편설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다. 

 

 

'해탈, '心解脫' 이라는 말은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써 마음으로부터 벗어난다'는 뜻이다. 사실. 현시대는 이런 설명으로써도  마음이 본래 없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지적으로 이해 할 수 있는 시대이다. 이런 논리적인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해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문명인이 아니라 문맹인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사실. 인간이 행복과 자유, 평화를 갈망하는 것은 진리를 갈망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길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진리안에서는 누구나 평등하기 때문이다.

 

진리와 인연있는이에게 영원한 평화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