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과 중도 · 방편설 - 말변사

삶, 그리고 죽음에 대한 사유/ 성탄절과 십자가의 의미 - 예수의 자취

일념법진원 2014. 12. 25. 06:29

사실. 예수의 탄생일에 대해서 축하해야 할 일이 아니라, 통탄해야 할 일이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현시대까지도 예수의 진리의 앎에 대한 가르침에 대해서 단 한구절도 이해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예수의 말에 대해서 단 한구절만이라도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있다면... 예수를 믿는 종교들끼리 서로가 진리라는 주장들을 비롯하여 기타 수많은 종교들간의 갈등이나, 다툼, 전쟁은 이미 사라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의 말 중에 가장 진실되고 단순한 말 한구절이 있다면...  "하나님이 어디에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하나님이 다른 곳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네 안에 하나님이 있다' 는 말이다. 다만, 너희가 말을 배우기 이전의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볼 수 없는 것이다", 라는 말이다.  

 

 

사실. 세상에서 가장 단순 무식하고 아둔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하나님 말씀'이라는 말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목숨거는 자들이다. 만약에 태초에 인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지금 말을 배우는 어린아이들과 같이...  부모님 말씀에 의존하여 말을 배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서로가 진리라고 주장하는 모든 종교나부랭이들이 그러하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부모님의 말씀들... 로부터 시작된 교육에 의해서... 이것은 자동차, 이것은 코끼리, 이것은 사람, 저것은 동물, 이것은 사과, 저것은 하늘, 이것은 땅, 저것은 까마귀.... 라는 어떤 물질과 이름과의 동일시를 배우는 것이며... 그런 배움에 대해서 태초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며, 그런 배움으로써의 모든 앎이 지식인 것이다.

 

그대 또한 이런 방식으로 말을 배우게 된 것이며, 사실 인간의 언어는 모두가 '명색'의 동일시로써의 착각이다. '형상'과 '이름'과를 동일시 하는 앎이 언어이며 지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의 언어는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늘에 날아다니는 어떤 생물체에 대해서 '까마귀'라고 이름 짓게 된 것과 같이.. 하니님이라는 이름 또한 그런 방식으로써 지어진 것이다. 사실 '하늘'이라는 말도 '이름' 이며... 땅이라는 말 또한 이름이며.... 생물이라는 말도 '이름'이며... 더 나아가 '인간'이라는 말 또한 어떤 물질에 대한 '이름' 이다. 그대의 이름 또한 그런 방식으로 '이름' 지어진 것이며, '그대' 라는 말 또한 어떤 것을 지칭하는 '이름' 이라는 뜻이다. 

 

 

사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본래무일물' 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언어로 지어진 모든 것들이 '명색의 동일시'의 착각일 뿐,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로써 '말변사' 즉 말로 지어진 세상일 뿐, 언어는 사실적인 것에 대한 표현이 아니라는 말(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래무일물이라는 말은 '언어' 또한 본래 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표현하기 위한 또 다른 '이름'인 것이다. 

 

사실. 예수는 이런 말, 즉 '언어가 본래 없는 것'이라는 말에 대해서 이해가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비유를 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네 안에 하나님이 있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너희가 어린아이시절의 말을 배우는 과정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볼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이 말은 석가모니의 말로 전해지는 '아상, 인상, 수자상, 중생상'이면 '여래'를 볼 수 없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왜냐하면... 어린아이시절에는 누구나... '내가 있다, 내가 사람이다, 내가 나이가 몇살이다, 내가 여자다, 내가 남자다... 등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현시대는 문자가 충분히 발전된 시대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실에 대해서 '생각의 원리'에 바탕을 둔 방법으로써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며, 육하원칙이라는 법칙에 따른 설명으로써 아둔한 자가 아니라면, 누구나 분명히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사실이라는 말은 '일 事' 자와 '열매 實' 자로써 구성된 말이며... 예를 들자면 '사과'라는 열매를- 보고 만지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보므로써.... 누구나 그 열매가 '사과'라는 열매라고 분명히 이해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사과'라는 열매 또한 근본원인은 '본래무일물' 이다. 왜냐하면... 분석하고 분석해 보더라도 그 사과의 '근원인자'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우주'의 근원물질이 '없는 것' 과 같은 이치이며, 인체를 분석해 보더라도... 인간 생명체의 근원물질을 발견할 수 없는 것과도 같은 이치이다. 

 

 

이와 같이 어떤 열매를 놓고서.... '이것은 사과다' 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을 사과라고 이름 지은 사람들은 누구나 동의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영어를 배워서 영어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것은 한국말로는 '사과'라고 부르지만, 영어권에 사는 사람들은 '애플'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는 사실에 대해서 분명히 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라는 말이나, '성령' 이라는 말이나 또는 불성이라는 낱말, 영혼이라는 낱말은 어떠하겠는가? 

 

사실. 하나님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는... 예수의 말을 믿는 자들이 아니라, 예수를 모독하는 자들이며, 부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자들 또한 그러하다. 그런 자들은 '진리'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진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진리란, 사실 올바른 앎이다. 

지식이 명색의 동일시일 뿐, 올바른 앎이 아니기 때문에 '진실된 이치'라는 뜻으로써의 '진리'라는 말이 창조된 것이다.

 

인간들의 앎은 모두가 '명색의 동일시'로써의 앎으로써 허구적인 것, 즉 사실적이 아닌 허구적인 것들에 대해서 사실적인 것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착각이지만 착각인 지 조차도 모르기 때문에... 원리전도몽상이라고 하는 것이며, 무지몽매한 것이 인간들의 지식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생각이라는 낱말은 순수한 한글이다.

그리고 한자로써의 생각이라는 낱말에 대한 표현은 다양하다. '생각할 상' 자와 생각할 유, 그리고 생각할 '념'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깨달아 아는 생각에 대해서 '깨달을 각覺'자로 표기된다. 그렇기 때문에 소위 '명색'이 깨달은 자들에 대해서 '각자' 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 같다. 사실. 소크라테스와 예수, 석가모니 등의 인물들이 '명색'이 '각자' 이며, 명색이 '부처'이다. 

 

 

생각의 논리로 본다면... 

'하나님'이 있다는 생각은 '하나님'이 없다는 생각과 상대적인 생각이다. 하나님이 있다고 주장하거나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끝 없는 논쟁이 아닐 수 없으며, 해답이 없기 때문에 전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있다'는 생각이나, '하나님이 없다는 생각'은 '하나님'이라는 어떤 형상의 생각이 아니라, 오직 인간들만의 서로가 다른 생각이라는 것이다. 

 

설령 광신자나 맹신자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어린아이시절이나, 또는 타인들로부터 그런 말들에 대해서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운 적이 없다면... 광신자나 맹신자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단순무식하고 어리석은 자들로부터 무조건 '하나님'이 있다, 그러니 믿으라' 라는 방식으로 세뇌당한 결과들이 종교들간의 갈등이며, 피를 흘리는 전쟁의 역사가 그러하다. 

 

지식의 무지이다. 그런 방식으로 세뇌당한다는 것은 사냥꾼에게 잘 길들여진 사냥개의 살인 행위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무엇인가에 대해서 광신하거나 맹신하는 것은.... 무속인들의 신내림을 받는 일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신이나, 하나님이마, 부처님의 마음이 행위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하는 것은 오직 인간의 마음의 작용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신의 마음의 작용에 대해서 무지하다 보니... 하나님이나, 영혼이나, 신에 의존하는 것이다.

 

 

사실. 인간은 언어에 대해서 무지하다. 

세상이 있기 때문에 언어가 생겨난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사실은 어떤 동물에 대해서 '까마귀'라고 이름 지은 것과 같이 세상이 먼저 있었기 때문에 '세상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늘'이 먼저 있어서 '하늘'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인간이 이런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는 까닭은 자신의 존재가 우주, 하늘, 땅보다 먼저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순수의식의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마음은 기억된 생각에 불과한 것이지만... 다만, 기억할 수 없는 생각들이 마음의 바탕이기 때문에 경험에 바탕을 둔 인간의 사고방식으로써는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해가 불가능한 것이다. 사실. 예수와 석가모니의 가르침의 핵심은... 그런 사실에 대해서 깨달아 알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가르침의 핵심에 대해서 '일념법, 일념명상법'이라는 현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언어로써 설명된 것이다.

 

'일념법'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에 대해서... 예수의 말이 왜곡된 성경에는 '하루종일 기도하여 깨어나라'는 방식으로 전해진 것이며,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무상한 것은 나가 아니다, 그것을 관찰하라'는 방식으로 전해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경전들에서 그런 방식에 대한 설명을 찾아볼 수 없는 까닭은... 이분법적 사고방식일 수밖에 없는 인간들의 사고방식에 의해서 '우상숭배사상'으로 전락되면서 완전하게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의 모든 고통은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의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수의 말과 같이... '너희가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네 안에 하나님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다는 말은, 석가모니의 말로 전해지는 '원리전도몽상'이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써 인간의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의 '경험의 오류'를 지적하는 말이다. 

 

말을 배우고 익히기 이전의 '무명'의 어린아이시절에는 누구나... '내가 있다, 내가 사람이다' 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육체가 나다, 아니다... 라는 분별된 관념이 없었다"는 뜻이다.

 

사실. '까마귀'는 '내가 까마귀' 다, 라는 생각(언어, 관념, 고정관념, 마음)이 없다. 동물들... 에게는 그런 고정관념이 없다는 뜻이다. '본성' 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겠지만... 본성이라는 말이 없는 행위가 본성이기 때문에 '자연상태의 동물들에 대해서 그것들의 '본성'이라다, 라는 말 또한 올바른 말은 아닌 것이다.

 

인간은 이런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시절에 대해서 '무의식, 순수의식, 잠재의식' 등의 말로  표현하지만... 사실 그런 말, 말, 말에 대해서 상상하거나 추측하는 것일 뿐, 그런 말들에 대해서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은 행복이라는 말 또한 그러하며, 삶이라는 말 또한 그러하며, 죽음이라는 말 또한 그러하다. 

 

 

사실. 그대의... '내가 있기 때문에' -세상이라는 대상이 있게 된 것이다-는 말이다. 

 

'나의 관념(기억된 생각, 지식들...)'이 있기 때문에 그 대상들이 있다는 뜻이다. 

세상이 사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의 '나라는 생각'에 바탕을 둔 환상물질이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그대가 사라지면, 대상들 또한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대가 깊이 잠들어 있었던 동안에 대해서는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하거나, 추측할 수 없다. 하지만... 그때... '그대의 나도 없었으며, 그대의 대상들 또한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 대해서 '본래무일물'이라는 말, 말, 말... '이름'으로 표현된 것이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이라는 말에 대해서 이해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 뿐만이 아니라 '삶'이라는 말에 대해서 이해 한다고 생각하며, 행복이라는 말에 대해서, 순수의식이라는 말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착각이다. 사실 인간은 그런 말들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말들에 대해서 상상하거나 추측하거나... 그런 말, 말, 말들에 대한 환상을 갖는 것이며, 환상을 간직하는 것이다. 그 간직하고 있는 것은... 언어로써... 기억세포에 저장된 말, 말, 말들에 대한 환상이다. 

 

지옥이라는 말 또한 그러하며, 천국이라는 말 또한 그러하며, 우주의식이라는 말들 또한 그러하며, 깨달음이라는 말 또한 그러하며, '道' 라는 말, 불성이라는 말, 성령이라는 말, 영혼이라는 말, 말, 말... 등을 비롯하여 사실. 인간들의 모든 말, 말, 말... 언어들이 그러하다. 

 

 

사실. 예수의 십자가의 의미는... 그런 허구적인 앎에 대해서 당연하게 여기는 인간들의 삶 자체가 고통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의 고행상과 석가모니의 고행상 또한 같은 의미로써 수행자의 삶을 이르는 말이며, 더 나아가 어린양들을 보살피는 예수의 모습과 석가모니의 형상인 불상의 모습 또한 같은 맥락이다. 석가모니의 형상은 밝은 웃음도 아니며, 슬픔 미소도 아니다. 예수의 어린양들을 보살피는 모습 또한 그러하다

근심과 걱정이 모두 사라진 모습으로써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한 번뇌와 망상에서 벗어난 여여한 모습일 것이다. 다만 그들의 존재는 인간들에게 지식의 앎을 벗어난 진리의 앎을 전하기 위한 목적으로써의 존재로써 인간세상이 존재하는 한 진리로써 영원히 남겨질 것이다.

 

다만,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그들의 말에 대해서 다시 설명하는 것이며, 문명발전에 따른 논리적인 방법으로써 그들의 말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설명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항상 내 안에 있기 때문이며, 내가 그들안에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전생이 있다면... 이 사람의 전생이 곧 예수이며, 석가모니이며, 소크라테스이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가 가장 강조했던 말은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이며 이와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 있다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다. 이 말은 또한 소크라테스의 말로 전해지는 "유일한 악은 지식이며, 유일한 선은 진리의 앎이다'는 말과 같은 맥락이며, 근본은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이해 하라'는 말이며, 마음에 대해서 이해 한다는 말은,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하는 앎을 이르는 말이며,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한다는 말은, 우주의 근원에 대해서 이해 하는 앎이며, 생명의 비밀에 대해서 이해 하는 앎이다. 

 

 

사실. 인간들은 무턱대고 '우리가 인간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인간이다'는 말은 사실 무근이며, 어떤 근거도 없다. 다만 근거가 있다면 고작... 단군신화 또는 하나님의 창조물' 이라는 허황된 낭설에 바탕을 두고 주장하는 것이다. 사실. 어린아이들에게 말을 가르치는 일들 또한 그러하다. 무턱대고 '이것은 원숭이다, 이것은 사람이다, 저것은 하늘이다, 저것은 땅이다... 라는 방식이다. 왜, 이것은 하늘이라고 하는지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것은 하늘이다.... 라는 방식으로 주입된 것이다. 

 

사실은 그대 또한 그런 사고방식으로  주입된 교육에 의해서 '내가 사람이다, 내가 여자다, 내가 남자다, 내마음이 있다, 내 자존심이 있다'는 방식으로 자기를 주장하는 것이다. 타인들로부터 들었던 앎(말, 지식들...)에 대해서 사실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 하는 앎에 대해서 진리의 앎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라고 한다.

 

 

'마음이 있다'고 무조건 주장할 일이 아니라, 이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왜, 언제, 어디서, 마음이 있다는 말에 대해서, 어떻게 알게된 앎인지... 돌이켜 생각해 본다면... 그대의 마음이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시절부터... 부모를 비롯한 타인들로부터...  듣고 보고 배웠던 말, 말, 말들에 의해서 가공된 것이 마음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가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본래 없었던 마음에 대해서, 그것도 타인들로부터 듣고 보고 배웠던 말들에 대해서 '내가 옳다고 주장한다면'... 그대의 주장이 그렇듯이, 다른 사람들의 주장들 또한 모두가 그런 방식의 근거  없는, 허무맹랑한 말들에 대해서 주장하는 것들이 아니라고 할 수 없지 않겠는가?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기 위해서는, 이런 설명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어야만 한다.

자신의 마음이 본래 자신의 마음이 아닌 것과 같이, 타인들의 마음 또한 본래 있던 것이 아니라... 서로가 각기 다른 타인들의 말들로써 가공된 것이 '마음'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을때, 그때 비로소 '자신의 마음과 타인들의 마음'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며, 그런 앎에 대해서 진리의 앎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나의 앎이 올바른 앎이 아니듯이 타인들의 지식들 또한 올바른 앎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며, 서로가 올바른 앎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할 때, 그때 비로소 언어로써 소통이 가능해 질 수 있는 것이며, 다툼이나 갈등이 말끔히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진리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며, 진리에 의존하여, 진리를 벗삼아... 진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삶과 죽음이라는 상대적인 언어의 한계를 벗어남으로써의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존재의 거듭남에 대해서 '검증된 삶'이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다.

 

 

이런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아는 앎일때, 그때 비로소 예수의 탄생이나 석가모니의 존재에 대해서 우상숭배사상이 아니라, 인류의 진정한 스승으로써 존경할 수 있는 것이며, 그들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이해 하는 삶일 때, 비로소 가치 있는 삶이며, 더 나아가 삶과 죽음의 한계를 벗어난 검증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에 대해서 지적으로나마 이해 할 수 있다면, 진리의 앎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진리의 앎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을때, 그때 비로소 일념명상법으로써 자신의 근원을 찾는 일, 즉 진리와 벗하는 것이며, 진리와 하나될 수 있는 것이다. 

 

진리안에서 모두가 평등한 이유는... 올바른 앎으로써 다툼이 생겨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진리와 인연있는이에게 영원한 평화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