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언어 · 불이일원론

마음과 영혼의 실체/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생각과 일념법. 일념명상법과의 관계 / 지식의 허구. 무지와 진리

일념법진원 2015. 1. 8. 12:31

생각.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그런 생각의 윤회에서 벗언라 수 없기 때문에 삶과 죽음... 고통을 겪는 것이며, 사실적인 느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부지불식이라는 낱말의 사전적 의미를 보니. 아래와 같다.

 

부지불식 (不知不識)[―씩]【명사】 생각지도 알지도 못함.
¶ ∼중에 내뱉은 말.

 

 

'아닐 불' 자와 '알 지' 자, 그리고... "아닐 불' 자와 '알 식' 자로써. 사실 자신의 앎, 지식이나 지혜와는 상관 없이 스스로 일어나는 생각을 이르는 말이다.

 

 

사실. 인간의 지식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써의 모든 앎이 행복이나, 자유, 평화로운 삶이 아니라... 생로병사의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까닭은  '생각'의 주체가 '자신'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들의 모든 상반된 주장에 따른 갈등이나, 다툼의 원인이 있다면... '부지불식'이라는 말과 같이...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는 생각의 윤회가 원인이다. 사실, 인간의 착각 중에서 가장 원초적인 착각이 곧 '내가 생각한다, 또는 나는 생각할 수 있다' 는 고정관념이다. 

 

인간은 누구나 '나는 생각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일념명상법 수행을 통해서 스스로 깨달아 알게되는 최초의 올바른 앎이 곧 '내가 생각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 크나큰 '착각이다' 라고 아는 앎이다. 타인들로부터 들어서 아는 지식이 아니라, 사실 자신 스스로의 노력으로써 스스로  깨달아 아는 최초의 앎이며, 올바른 앎이며, 이런 앎에 대해서 지식을 초월한 지혜라고 한다.

 

 

일념법수행으로써 '내가 생각하는 주체가 아니다' 라는 앎, 즉 '생각하는자, 보는자가 나가 아니다' 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아는 앎에 대해서... 최초의 진리의 앎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비로소 타인들로부터 듣고보고 배웠던 모든 앎이 허구적이라는 사실에 대한 이해가 다가오는데, 그런 앎, 즉 스스로 깨달아 아는 앎만이 진실된 앎인 것이다.

 

 

사실,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부지불식'간에 생각이 일어난다고 알지만... 스스로 일어나는 생각의 원인에 대해서 무지할 뿐만이 아니라, 감히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는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에 모든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 이해 조차 불가능한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생각... 그것에 대해서 인간들은 '신' 절대자' 등의 이름을 짓게 된 것이며, '영혼' 이라는 이름을 짓게된 것이다.

 

일념법수행으로써 그런, 생각의 원리를 이해 할때, 그때 비로소 '꿈'의 현상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며, 인간들의 모든 질병의 원인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며, 우주의 근원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생명의 비밀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진리라는 말만 아는 것이며, 진리의 앎과 지식의 앎의 차이 조차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 조차도 없다. 사실, 예수의 말과 소크라테스의 말, 그리고 석가모니의 말은 한치의 오차도 없는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며, 진리의 말이지만... 그들의 말이 우상숭배사상으로 전락된 까닭이 바로 지식에 매몰된 인간들의 무지가 원인이 된 것이다. 

 

사실. 인간은 인간의 근본(근본원인)이 없다는 사실 조차도 이해 할 수 없다. 사실 근본이 없는 것이 인간이다. 다만 이런 말에 대해서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기 때문에... 보되 본바 없는 것이며, 이해 조차 혼란스러운 것이다.

 

 

만약에 인간세상에 소위 지식인이라는 자들이 그들의 말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있었다면... 현시대와 같이 종교들간의 갈등이나, 분란, 전쟁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지식으로써의 앎과 진리의 앎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 지식은 이런 말 조차 이해 할 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현시대는 문명의 발전으로 인하여 '논리적'이라는 말이 있으며, 육하원칙이라는 법칙이 있기 때문에 논리적인 설명으로써 지식의 앎과 진리의 앎의 차이에 대해서 이해가 가능한 것이다. 

 

 

사실. 지식의 앎과 진리의 앎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면... 지식의 앎은 어린아이시절부터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웠던 모든 말(언어, 앎, 지식, 마음)에 대해서 '앎' 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며, 반면에 진리의 앎이란...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워서 아는 앎이 아니라....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스스로 깨달아 아는 앎이라는 것의 차이이다. 

 

 

지식의 앎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방식이며, '진리'의 앎은... 생각의 주체는 '나'가 아니라, 신이다' 라고 아는 앎이다. 물론 신 또한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환상물질'이라고 이해 하는 앎이라면 진실된 앎이며, 이에 대해서 '깨달음, 진리' 의 앎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인간세상에서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 "생각의 원리"라는 말이다. 

'생각의 원리' 라는 말은 '진리'에 대해서 한글로 표현될 수 있는 유일한 구절이다. 그리고 '생각의 원리' 라는 말은 인간세상의 인간의 지식으로써는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말이며, 한자로써도 표현될 수 없는 말이다. 왜냐하면 '생각'이라는 낱말은 순수한 소리 글자로써의 한글이며, 한자로써의 '생각'이라는 낱말은 '생각할 상, 생각할 념, 생각할 유, 생각할 사' 등의 여러 낱말들로 표기되기 때문이다. 

 

사실. 식자우환이라는 말은 이처럼 부지불식간에 일어나고 소멸됨이 반복순환되는 생각의 윤회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며, 지식의 앎이 올바른 앎이 아니라, 분별망상이 아닐 수 없기 때문에... 즉 해답이 없는 앎이기 때문에 알면 아는만큼 우환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사실. 현시대의 모든 지식들이 그러하다. 

 

종교들은 서로가 옳다며, 서로가 진리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진리'라는 말의 뜻 조차 이해 할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역사가 그러하듯이 전쟁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며, 의학이라는 학문 또한 인간의 몸이 '유기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간들의 고통만을 더욱 더 가중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인간이 유기체이기 때문에 '일병만약'이라는 말이 생겨나게 된 것이며, 일병만약이라는 말은 '한가지의 병에 만가지의 약이 있다'는 말로써 사실상 인간들의 질병에는 뚜렷한 약이 없다는 말임과 동시에 '만병의 근원은 마음이다'는 말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사실. 도가의 약식 또한 만병의 근원이 마음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으로써 가공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가의 약식'으로써 모든 병이 치유될 수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마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써... 즉 '생각의 원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써, 즉 진리에 대한 이해로써 비로소 모든 고통의 원인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진리에 대한 밝음으로 하여 가치 있는 삶, 검증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인간들의 모든 문제는 생각의 원리에 적용하므로써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실 문제가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모든 고통과 괴로움은 지식의 무지에서 비롯된 허상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언어는 인간들의 소통을 위한 수단으로써 창조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없다면, 언어 또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인간이 '언어가 없음'을 경험할 수 없는 까닭은 '언어'가 이미 생겨났기 때문이며, 언어가 상대적이기 때문이며, 언어의 시작도 중간도 끝도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어가 없다'는 말 또한 언어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언어  이전에 생각이 있었던 것이며, 부지불식간에 일어나고 소멸됨을 반복 순환하는 생각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 언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이 없는 언어는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인간은 '생각이 없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생각이 없다는 생각' 또한 '생각이 없다는 생각'일 뿐... 생각이 없는 상태를 경험할 수 없다는 뜻이다.

 

물론 그대가 '깊이 잠들어 있는 동안' 에는 '생각'이 없다. 하지만 그동안에는 '생각이 있다'는 생각도 없으며, '생각이 없다'는 생각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이 없음'에 대해서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생각이 없음'이라는 말은 있을 수 있겠지만... '생각이 없는 상태' 는 '경험자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사실. '생각이 없다는 생각'과 '생각이 있다'는 생각은 한생각의 차이이다.

이와같이 '육체가 나다'는 생각과 '육체는 나가 아니다'는 생각 또한 한생각의 차이이다. 사실, '신'이 있다는 생각 또한 그러하며, 영혼이 있다는 생각 또한 그러하다.

 

사실, 창조가 있다는 생각과 창조가 없다는 생각 또한 그러하다.

사실은 인간이 있다는 생각과 인간이 없다는 생각 또한 그러하다. '내가 사람이다' 라고 주장하지만... '내가 사람이 아니다' 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사실. 석가모니는 '나는 천룡도 아니며, 봉황도 아니며, 하늘의 신도 아니며, 더 나아가 '나는 사람도 아니다' 라는 말을 남겼다는 기록이 있다. 사실, 예수 또한 똑 같은 말을 남겼는데... 단지 '나의 말은 하나님 말씀이다'는 방식으로써 비유법을 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디에... " 라는 질문에, 답하기를... '네 안이 있다'고 한 것이다.

물론 소크라테스의 말은 조금 다르다. 하지만 같은 맥락이다. 왜냐하면 '너 자신을 알라' 고 했으며... '나는 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 그것 하나만은 분명히 안다'는 방식으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사실. 우주가 본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분명히 안다는 뜻이며, 인간의 근원에 대해서 분명히 안다는 뜻이다. 이 말은 또한 '본무' 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한다는 뜻이다.

 

 

사실, 그들의 말은 시간과 공간, 즉 시대와 상황 조건에 상관 없이 똑 같은 말들이며, 단지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언어가 다른 것이며, 표현방식이 서로 다를 뿐이다. 모두 한생각의 차이에 대한 설명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 시대의 언어로써 표현된 것이며, 현시대는 언어가 다양화 되고 풍족하기 때문에 '생각의 원리'라는 말로써 '진리'의 앎을 전할 수 있는 것이며, 그 길, 법을 전하는 것이다.

 

사실. 지식은 근거가 없는 말들에 대해서 무조건 적으로 주장하는 것이며, 반면에 진리의 앎은 지극히 논리적이며, 근거가 분면한 앎이라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간략한 사레를 든다면, 지식의 앎으로써는 삶과 죽음이 있으며, 신, 영혼, 하나님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진리의 앎으로 본다면... 인간의 기원에는 인간이 없기 때문에, 삶과 죽음 또한 있는 것이 아니며, 신, 절대자, 영혼 등의 말, 말, 말들 또한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언어로 지어진 이름이며, 생각의 환상물질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분명히 아는 앎이라는 차이이다. 

 

 

마음 또한 그러하다.

인간세상의 지식으로써는 '마음이 있다' 고 주장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마다 제각기 고유한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천성'이라느 말이나, '유전'이라는 말에 대해서 당연하다는 듯이 주장하지만... 올바른 앎 즉 진리의 앎은... 마음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앎이라는 뜻이다. 마음 또한 근거가 없는 것이며, 부지불식간에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순수의식의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경험의 오류'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겠지만... 태어난지 일주일 쯤 되는 아이에게는 '마음'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마음이라는 말, 말, 말을 모르기 때문이며, '내가 사람이다'는 생각 또한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세상의 모든 수행법은 마음을 이해 하기 위한 것들이며, 집중을 위한 수단들인 것이다. 다만,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들의 상상력으로써 수많은 종교들이 생겨나듯이 수많은 명상법들이 창조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인간들.... 누구나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만큼은 완벽하게 무지하다는 것이다. 

 

인간세상의 모든 이합집산들... 하나같이 모두가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에 수많은 방법들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이며, 서로가 서로를 속고 속이는 것이다. 속이는 줄도 모르면서 속이는 것이며, 속는줄도 모르면서 속는 것이다. 생각의 윤회현상에 속수무책으로 속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자신의 마음의 실체를 보라는 말이 이곳 모든 글들의 핵심이며, 요점이다. 

 

 

지식이 무지이며, 무식이기 때문에 진리를 깨닫기 위한 일념법, 일념명상법이 있는 것이다. 

생각의 원리를 이해 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진리의 길이라고 하는 것이다. 

자신이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조차 이해 할 수 없다면... 살아갈 가치가 없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 조차 이해 할 수 없다면, 대체 무엇을 이해 할 수 있겠는가말이다.

 

무식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말재간을 부리는 것이다.

그 언술, 논술들 또한 자신의 자신만의 앎이 아니라,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운 것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무속인들이 신을 믿듯이, 부지불식간에 광신자, 맹신자가 되듯이, 지식에 대한 맹신 또한 다르지 않은 것이다. 오직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을때, 그때 비로소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진리에 대한 올바른 앎으로써 검증된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그들 성인들의 한결같은 교훈이다. 

 

'도, 진리'와 인연있는이에게 영원한 자유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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