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예전에 이어 다시 소개되는 글인것 같은데... '사라하 의 노래' 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것 같다.
그런데, 이런 글들을 보노라면, 참으로 언술이 뛰어난 중생들이 많다는 생각과 함께... 우려되는 것이 있기도 하며, 또한 지식으로써도 납득이 가능한 말들이 있기도 하기 때문에 다시 설명하는 것이다.
다만 항상 아쉬운 것, 안타까운 것은... 진리를 구하기 위한 방법.... 자아의 실체를 볼 수 있는, 직접적인 방법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의 말이 왜곡된 성경에서도 볼 수 없으며, 석가모니의 말이 왜곡된 불경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여타 종교들이나, 기타 다른 집단들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 까닭은... 수많은 종교들, 이단들, 사이비들, 명상 집단들... 모두가 진리와는 전혀 상관 없는 것들이며, 다만 무식거나 언술이 뛰어난 자들의 괴변이며, 언술이 뛰어난 자들의 우상숭배사상을 위한 잡서들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진리는 우상숭배사상이 아니라... 지식을 초월한 올바른 앎이며, 참된 도리이며, 참된 이치이기 때문이다.
〔頌 32〕
이 모든 현상(現象)은
빛의 원천으로부터 나왔으며
그 빛의 원천은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이네
무형(無形)의 에너지,
그 소용돌이 속에서 갖가지 형상(形象)과
그 형상을 있게 하는 질서가 태어났네
그리고 이 모든 형상과 질서 속에는 영원히 이어지는 생성(生成)과 파괴(破壞)가 있네
그대여, 참다운 명상에 들고자 하는가
이 흐름의 법칙에 묵묵히 따라가라
이 흐름의 법칙은 사념(思念)의 작용도 아니며
길이 퇴색치 않는 응시(凝視)요
따지고 헤아리는 마음은 거기 존재할 수 없네
그대의 ('나 아닌 나') = '本無(본래무일물)' = (빛의 원천. 무형의 에너지) --- 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념법, 일념명상법만이 유일한 길이며, 방법, 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일념법은 우상숭배를 위한 법, 방법이 아니라.. 다만, 그대 자신의 마음의 실체, 근원을 보기 위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頌 33〕
사념(思念), 이지(理智),
그리고 저 마음속에 부침(浮沈)하는
갖가지 환영(幻影)들은
모두 이 진공(眞空)에서 비롯되었네
이세상 모든 것이 감각과 그 감각을 느끼는 주체(主體)와
우둔함과 혐오와 욕망, 그리고 깨달음
이런 모든 것들이
저 진공(眞空)에서 떨어져 나와
각기 다른 것처럼 보일 뿐이네
(본무 = 진공 = 빛) ... 모두 '본래무일물'의 다른 표현이며, '비아, 무아'의 표현이기도 한 말들이다. '깨달음, 욕망, 우둔함, 혐오.... 등의... 인간들의 모든 언어가, 언어 자체가, 인간이.. ('본래'... '없는 것') 이라는 말이다.
깨달음이 있다, 없다는 말... 인간이 있다, 없다는 말... 내가 사람이다, 아니다 라는 말.... 그런 말, 말, 말들이 '본래 없는 것이다' 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념명상법' 만이 유일무이한 길이라고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인식하는 '자아'가 있기 때문에... 대상들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자아가... 본래 '나' 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이 모든 것이며, 또한 모든 것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우주. 천지만물들...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보는자의 관념(앎, 지식, 마음)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頌 34〕
불빛이 어둠을 몰아내듯이
진공(眞空)의 지혜는
지식의 축적으로 분열되고 있는
마음의 어둠을 지워버리네
욕망의 바람이 잔 존재의 이 상태를
아아,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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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지식의 무지, 무명에 바탕을 둔 '앎'이 있기 때문에 '깨달음, 진리' 즉 '광명의 빛'이라는 말, 말, 말로 표현되는 올바른 앎이 있는 것이다.
'육체가 나다, 아니다' 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상대적인 말로써 허구적인 것이기 때문에 올바른 앎, 즉 진리로 거듭나야만 가치 있는 삶이며, 검증된 삶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주, 삶, 죽음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때문이다.
세간에 스스로 깨달았다며 세상을 돌아다니며 떠들고 다녔다는 '오쇼-라즈니쉬'를 비롯하여... 마명보살, 용수보살 등의 언술이 뛰어난 자들의 주장들... 모두가 올바른 앎이 아니라, '육체가 나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하근기 중생들의 단견, 편견, 소견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마음이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본래 하나'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본무 라는 말... 마음이 본래 없는 것이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깨달아 알때, 그때 비로소 이런 말들에 대해서 분명히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생각의 원리로 본다면, 인간세상의 모든 지식들... 올바른 앎이 단 하나도 없는 무명에 바탕을 둔 무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바른 앎이란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면... 단지 한생각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육체가 나다' 라는 생각과 '육체가 나가 아니다'는 생각이 한생각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이다'는 생각과 '내가 사람이 아니다'는 생각이 한생각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내마음이 있다'는 생각과 '내마음이 없다는 생각' 이 한생각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영혼이 있다는 생각' 과 '영혼이 없다는 생각' 이 한생각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귀신이 있다는 생각' 과 '귀신'이 없다는 생각'이 한 생각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우주가 있다는 생각' 과 '우주가 없다는 생각'이 한생각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빛이 있다는 생각'과 '빛이 없다는 생각'이 한생각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삶이 있다는 생각'과 '죽음이 있다는 생각' 또한 한생각의 차이이다.
그러니, 깨달음이 있다거나 깨달음이 없다는 말 또한 한생각의 차이인 것이다.
그러니. 깨달은 자가 있다는 말과 깨달은 자가 없다는 말 또한 한생각의 차이일 뿐,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에 대해서 '진리'라고 하는 것이며, 깨달음 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있다, 없다'는 분별망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들에 대해서 짐승보다 더 뛰어날 것이 없는 하근기 중생이라고 하는 것이다.
현시대에는 일념법, 일념명상법이 있다.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워서 아는 모든 앎은 상대적인 분별로써 올바른 앎일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들의 지식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이 스스로 깨달아 알기 위한 유일한 법, 방법이 있는 것이며, 그 방법이 '일념법, 일념명상법'이다.
일념법은 자신 스스로 깨달아 아는 앎으로써의 올바른 앎인 것이며,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앎이기 때문에 불변의 진리라고 하는 것이다. 반면에 지식은 타인들로부터 빌려오거나, 얻어진 것들이 아닐 수 없기 때문에 올바른 앎이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지식은 쓰고 버려져야 할 것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용지용' 이라는 말이 창조된 것이다.
인간세상 모두 다 둘러보더라도 그대의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을 찾을 수는 없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그런 사람을 찾겠지만... 세상 사람들 모두가 자신의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을 찾을 수 없는 이유는... 인간들 모두... 서로가 자신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서로가 똑 같은 자존심, 자존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 자존심, 자존감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말들로써 구성된 허구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아는 앎에 대해서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이며, 진리의 앎'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리를 이해 하는 이들... 그들은 어디에서나.. 소통될 수 있는 것이며, 마음에 꼭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의 앎에서는 다툼이나 논란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자유, 평화를 누릴 수 있다고 하는 것이며, 올바른 앎에 대해서 무위자연의 자유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대의 '나 아닌 나' 그것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자신의 생각의 생멸현상에 대해서 이해가 깊어질때, 그때 비로소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백천만겁난조우' 라는 말로 표현되는 귀하고 귀한 인연을 만난 것이기 때문이다.
진리, 도, 깨달음을 이해 하는, 구하려는... 귀하고 귀한 인연있는 이에게 영원한 평화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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