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이란... 올바른 앎이라면, '스승'이라는 '이름' 이다.
'스승' 이라는 낱말의 사전적 의미를 보니 아래와 같다.
스승 【명사】 자기를 가르쳐 주는 사람. 선생. 사부(師傅).
¶ ∼의 가르침에 따르다.
사실, 인간세상에 스승이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인간의 근본원인이 무엇인지 모를 뿐만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의 마음이 무엇인지, 몸이 무엇인지 조차 이해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지성인이라면, '스승'이라는 말에 대한 설명을 통해서. 인간들의 지식이라는 앎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주장이며, 근거없는 무조건 적인 주장인지에 대해서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앎이 올바른 앎이며, 진리의 길을 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설명을 통해서 왜, 인간들의 앎, 즉 지식에 대해서 올바른 앎이 겨자씨 만큼도 없는 앎이라고 하는지에 대해서 분명히 이해 할 수 있다.
예수는 왜, 인간들에게 길잃은 어린 양새끼와 다르지 않으며, 나의 말을 옮기는 자가 진리의 적이라고 한 것인지, 석가모니는 어찌하여 인간들에게 중생무리들이라고 하면서... 지식으로써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고 했는지,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왜, 인간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고 한 것이며, 진리를 모른다면 살아갈 가치도 없다고 했는지... 노자는 어찌하여 지식으로써 잘난체 하는 인간들에 대해서 '짚으로만든 개처럼 취급해야한다' 고 했는지... 그들의 말이 왜 진실된 말이며 진리인지에 대해서 분명히 이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스승이라는 말을 창조한 인간들의 지식이 무지, 무식을 넘어 참으로 신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말은 분명히 말인데... 말도 안되는 소리, 즉 '스승'이라는 말이 그야말로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지식은, 인간은... '영혼' 이라는 낱말에 대한 사전의 설명을 보니... "육체와 구별되어, 육체에 머물면서 마음의 작용을 맡고 생명을 부여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비물질적 실체. 혼(魂).' 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을 지배하는 무형의 실체가 있다면, 그렇다면 인간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육체가 무엇인지, 마음이 무엇인지, 생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올바른 앎이 없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게 아는 것이며, ... 공통적인 앎이라는 뜻(말)이다.
자. 그렇다면.
육체와 마음이 '나' 인데... 그 '나' 를 움직에게 하는... 다른 '실체' 가 있다는 말이 사전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육체와 마음은... '나' 가 아니라... 다른 '실체' 에 속한 것 이라는 말로 이해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나' 는 '나' 가 아니라... 다른 실체 가 '나' 라는 말이다. (육체와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실체)
'도가'의 화원의 '일념법강좌'의 내용들 중에... 개요 설명과 함께... 일념을 위한 구절들이 여럿 있는데... 그 중에서 첫째 구절이. '나는 나가 아니다, 나는 나라는 생각이다, 생각으로 이루어진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라는 문구인 것 같다.
그렇다면... 도가의 화원의 강좌는 분명히 지식을 넘어선 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를.., 지식을... 자존심을 주장하는데... 그 '자기' 가 '자기' 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하는 앎에 대해서 설명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실. '영혼'이라는 낱말 하나를 통해서 보더라도.., 인간은 '우리는 인간이다' 라고 주장하지만, 정작 인간은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완전하게 무지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지식의 앎이 이토록 무모한 것이며, 무식인 것이며, 어리석은 것이다. 아니, 어리석음을 넘어서 신비스러운 일이다. '영혼' 이나 또는 '신, 하나님, 절대자, 귀신이 ' 신비스러운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지식이라는 앎으로써의 서로가 옳다는 방식의 자기 주장들... 모든 학문들... 지식의 앎이 참으로 신비스러운 일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그런데, 인간이 무엇인지 이해 조차 할 수 없는 인간들이... '스승, 선생, 사부, 제자' 라는 말들을 창조하고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세상이 인간세상이니, 어찌 인간세상의 모든 일들이 참으로 신비러운 일이 아날 수 있겠는가말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지금 이 글을 보는 그대는 이런 사살에 대해서 어찌 생각하는가?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그 원인 조차도 이해 할 수 없는 인간들... 이합집산들... 인간의 근본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해 조차 불가능한 인간세상에 '스승'이 있다면... 스스로 스승이라고 주장한다면, 사실 그런 자들이 가장 낮은 단계의 하근기 중생들인 것이다. 그러니, 어찌 짐승보다 더 뛰어난 인간이 있을 수 있겠는가말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그런데, 재미있는 일은... 인간세상에는 '오직 모를 뿐... ' 이라는 말까지 창조하여, 자기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자들까지 있다는 것이다. 진실로 '오직 모를 뿐'이라고 안다면... 어찌 모를 뿐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말이다.
모르면, 모른다는 상을 낼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 인간세상에 인간류의 역사로 볼때, '스승'이 있다면 '석가모니'와 '예수' 이다. 그리고 그들의 말과 같은 맥락으로써 진실을 말했던 인물이 있다면... 소크라테스, 노자, 장자 등이다.
사실, '석가모니의 법' 이라는 말로 왜곡되면서 '불법'의 맥이 이어져 오고 있으나... 명분만 그러할 뿐, 올바르게 깨달아서 석가모니의 말과 같은 진언을 설한 인물들은 단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만약에 석가모니나 예수와 같이 스스로 깨달아 아는 앎으로써 진리의 앎, 즉 진실된 말을 남길 수 있는 인물들이 간혹이라도 있었더라면, 인간세상... 현시대와 같이 서로가 진리라고 주장하는 종교들이 나, 수많은 학문들로써 지식 따위를 견주거나, 지식 따위로써 경쟁을 일삼거나, 다투거나, 투쟁하거나 전쟁을 일삼는 짓들에 대해서 위대한 삶이라고 주장하는 어리석음이 현시대까지 이어질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세상이 아득한 옛날부터 현시대까지도, 가면 갈수록 종교들이 더 무성하게 늘어나고 더 나아가 '진리의 길, 방법'이 왜곡된 명상집단들이거나, 기타 유사 종교들이거나, 마음을 유린하는 집단들이 우후죽순과 같이 더 많이 생겨나고 커지는 까닭은... 진리, 즉 '도' 의 자취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실. 근본이 없는, 근본을 모르는 인간들이, 언술이 뛰어난 다른 인간을 스승으로 섬기거나, 우상을 숭배하는 까닭은 지식이 올바른 앎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식은 분별일 뿐,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이지만, 인간이 무엇인지 조차 이해 할 수 없는 무지, 무명, 무식이기 때문이다.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모른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조차 불가능한 삶이라면... 어찌 살아갈 가치가 있겠는가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념법, 일념명상법이라는 말을 창조하여, 그 뜻을 전하는 것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일념을 깨닫기만 하더라도... 자신의 생각의 생멸현상에 대해서 지적으로나마 이해 할 수만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무지에 바탕을 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세상에 스승이 있다는 말... 어불성설이다.
그대가 그대 자신의 스승이라야만 한다는 뜻이다.
- 아래의 글은 어떤 하근기 중생의 '스승'에 대한 말재간이다-
스승은 내가 만든다
스승은 내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고자 많은 가르침을 베푼다.
그러나 어리석은 제자는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나는 아직 배운 게 없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믿는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스승도 있다.
마조스님은 좌선해서 어떻게 성불하느냐는
스승의 질문을 받고 자기 생각에 모순이 있음을 깨달았다.
꼭 대단한 능력이 있어야만 스승이 되는게 아니다.
내가 그를 믿으면 그는 곧 내 스승이 된다.
나무토막도 굳은 믿음으로 대하면 부처가 될 수 있고,
아무리 훌륭한 분이라도 내가 믿는 마음을 일으키지 못하면
그는 나에게 아무 능력도 영험도 없는 존재일 뿐이다.
나무로 만든 불상도 내가 부처님 앞에 서 있듯
진실한 마음을 내면 영험이 생기거늘,
하물며 사람 앞에서 지극하게 내 마음을 돌이킨다면
그 영험이 얼마나 크겠는가.
살아 있는 사람 앞에서 그 분을 부처님이라 생각하고
내 마음 한 번 돌이키면 그 영험은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처럼 영험이 무량하고
결과가 확실한 행위를 하려 하지 않는다.
돌부처 앞에서는 엎드려 절하면서
부모 앞에서 남편 앞에서 아내 앞에서 자식 앞에서
절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돌멩이도 부처라 여기면서 그들을 부처라
여기지 못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돌멩이로 만든 불상이라도 내가 진정 부처라 믿고 절하면서
한마음 돌이키면 결국 자신을 위한 복덕이 되는데,
어찌 아내나 남편,
부모나 자식에게 머리 숙이고
내 마음 돌아보는 수행을 하는데 공덕이 없겠는가
'여기를 파면 물이 나온다' 고 스승이 일러주면
제자는 응당 삽을 가져와서 파야 한다.
그러나 공부가 안 된 제자는 땅 팔 생각은 안 하고
'여기 파면 정말 물이 나옵니까?'
'정말 나옵니까?'
하고 물으러 다니기에 바쁘다.
여기를 파면 물이 나온다는 스승의 말을 믿는다면
바로 땅을 파기 시작해서 물이 나올 때까지
파내려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데 조금 파다가 물이 안 나오니
스승의 말을 의심하면서
그 자리가 맞느냐고 스승에게 또 물으러 간다.
이런 믿음으로는 아무런 영험이 있을 수 없다.
스승에게 물어놓고도 스승을 믿지 못하고
그 말씀대로 행동하지 않는 이 모순을 봐야 한다.
스승에 대한 믿음이 없으니 자꾸만 묻게 되고,
스승의 말씀대로 좇아 행동을 해도 이내 회의가 오고
의심이 생겨 일을 그만두니 물은 얻지 못하고
공연히 구덩이만 여기저기 파놓는 고생만 할 뿐이다.
- 법륜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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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 어리석음이 무한한 하근기 중생의 괴변이다.
첫째, 어리석음이 '석가모니'의 전설을 믿는 자이기 때문이다.
둘째, 내가 그를 믿으면, 그는 내 스승이 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샛째, 믿는 마음이 없으면... 능력, 영험이 없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무엇인지 이해조차 불가능한, 마음이 무엇인지 이해 조차 불가능한... 하근기 중생의 말재간이다)
사실, 석가모니와 예수의 말이 왜곡되고 변질된 경전들 또한 단군신화와 같은 신화로 둔갑된지 어연 이천여년이 지난 것 같다. 사실. 인간세상에서 가장 낮은 단계의 하근기 중생들이 '석가모니와 예수'의 '신화'를 믿는 자들이다.
사실, 인간세상에서 진리를 설했던 유일한 인물들을 꼽는다면, 석가모니와 예수,그리고 소크라테스와 노자, 그리고 장자... 등이다. 그들이 존재하던 시대의 언어이기 때문에... 올바른 앎이 전해질 수 없기 때문에... 전설이라고 하는 것이다.
지금 이곳에 쓰여지는 글들, 어려운 말이 아니라 현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언어로 표현되는 말이지만, 일념을 깨닫거나... 또는 인간세상에서 지능이 가장 뛰어난 인물들이 아니라면, 이해 조차 불가능한 말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말은 이미 이천여년 전에 사용되는 언어들, 그것도 한국말이 아니라 관념이 다른 지역에 존재했던 인물들의 말이며, 그들의 전설들이 다시 한글로 번역된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군신화와 같은 신화라고 하는 것이다. '곰이 마늘을 먹고 인간이 된 것'이라는 주장과 다르지 않은 것들이기 때문에 우상숭배사상으로 왜곡되고 변질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스승' 이라는 말이 있기 때문에 '스승' 이 있는 것이다.
인간세상에서는 스승을 찾을 수 없다.
인간세상에는 스승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인간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며, 스승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승은 그대 안에 있다.
'一念法. 일념명상법' 으로써 그대 내면에 들어가라.
그리하여 스스로 승리하는 자, 스승이 되는 것이다.
오직 그 일이 그대, 존재의 유일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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