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언어 · 불이일원론

종교와 과학/ 뇌과학과 신학 - 인류의 총체적 무지외 진리

일념법진원 2015. 1. 27. 06:05

인간의 어리석음이 우주보다 무한하다고 하는 까닭은 소위 인류의 성인이라는 '소크라테스와 예수, 그리고 석가모니'의 진실된 말들에 대해서 이해 조차 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에 인류의 삶이 삶이 행복, 자유, 평화를 위한 목적이라면... 인류는 그들의 진실된 말에 대해서 지적으로나마 이해 할 수 있어야만 하며 진리의 앎을 이해 해야만 하는 것이다.   

 

사실, 인류는 지식으로써의 앎을 주장하기 위해서 존재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지식이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조차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없는 것 같다. 사실 인간의 어리석음이란 지식이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지식이 무지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는 것 같다. 사실. 진리가 아닌줄 알면서도 지식을 주장하기 때문에 우주보다 더 무한한 어리석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예수의 말과 석가모니의 말은 '신화, 전설'로 둔갑되면서 기복신앙으로 전락된지 오래이며 단지 소크라테스의 말만은 왜곡되지 않은채 현시대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 같다. 사실, 그들의 말은 지적으로써도 이해가 가능한 말들이다. 왜냐하면 지식은 비논리적이며 또한 근거 없는 앎에 대해서 주장하는 앎이지만 그들의 말들... 즉 진리의 앎은 분명한 근거에 바탕을 둔 말들일 뿐만이 아니라 지극히 논리적인 말들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인간이 그들의 말에 대해서 이해하려 들지 않는 까닭은 인간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앎이 완전한 무지라는 사실에 대해서 밝혀지는 일이 두렵기 때문인 지도 모른다. 

 

사실 지식은 해답이 없을 뿐만이 아니라 복잡하지만 반면에 진리는 해답이 분명한 것이며 단순하기 이를데 없다. 사실. 지식은 근거가 없는 주장이기 때문에 비논리적인 주장들인 반면에 진리는 근가가 분명하기 때문에 논리적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종교는 과학이 밝히는 존재의 비존재에 대해서 '신의 뜻'으로 여기는 지식이며, 과학은 존재의 비존재의 원인에 대해서 이해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둘 다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써 경험이전의 사고 상태에 대해서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말을 배우고 익히던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자기 자신(몸, 마음, 언어, 앎, 지식, 뜻)이 본래 있는 것, 즉 본래부터 '인간, 사람' 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의 오류이다)  순수의식의 어린아이들에게는 '나와 너, 선과 악, 인간과 신, 나와 우주' 등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해야만 자신의 실체를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이며, 무위자연의 자유와 같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이해 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인간은 누구나 소크라테스와 예수 그리고 석가모니와 똑같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며, 오직 그 방법만이 삶과 죽음을 초월한 가치 있는 삶, 검증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석가모니, 예수, 소크라테스 등, 인류의 성인이라는 인물들의 앎과 인간들의 앎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들은 자신의 나에 대해서 스스로 깨달아 아는 앎으로써의 자신만의 올바른 앎이며, 인간들의 앎은 앎은... 모두가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운 그대로의 앎으로써 자신의 자신만의 앎이 아니라... 타인들의 타인들에 의해서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워서 알게된 타인들의 앎이라는것과의 차이이다. 지금 이 글을 보는 그대의 앎이 그대 스스로 깨달아 아는 앎이 아니라.... 타인들로부터 얻은 앎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올바르게 인식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그대의 모든 앎은 그대의 앎이 아니라... 타인들의 앎들을 빌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세상의 지식으로써는 그런 스스로 깨달아 아는 앎에 대해서 '도, 진리, 깨달음, 부처, 도통군자' 등의 말로 표현되는 것 같다. 

 

 

사실. 그들의 앎에는 공통점이 있다. 사실은 고통점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일념명상법을써) 스스로 깨달아 아는 앎은 불변의 진리라는 말과 같이... 인간세상이 존재하는 한 누구에게나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올바른 앎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석가모니와 예수의 말이 시대와 조건, 상황이 다름에도 한치의 오차도 없이 같은 뜻의 다른 표현들로써 진실된 말이며, 인간세상에 영원히 진리로 남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의 앎에 대한 사례, 즉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초월한 비유를 든다면... 소크라테스의 "유일한 선은 진리이며, 유일한 악은 지식" 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원죄' 라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 선함과 악함이라는 말, 앎이 절대적인 앎이 아니라 상대적인 말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의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 또한 같은 맥락이며,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 또한 같은 맥락이며, 석가모니의 '나는 사람도 아니다'는 말 또한 같은 뜻의 다른 맥락이다. 왜냐하면 사실상 인간의 사고방식의 최초의 오류가 '나는 사람이다'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도 아니다' 라는 말은... 본래 '나(我)' 는... 이것도 아니며, 저것도 아니며, 다른 것도 아니며, 더 나아가 사람도 아니라는 말로써... 이것, 저것, 다른 것... 등의 분별 자체가 절대적인 앎이 아니라, 단견이며 편견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사람이다' 는 말은... '내가 사람이 아니다' 는 말과 상대적인 앎이기 때문이며, 이는 절대적인 앎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이 평화로울 수 없는 까닭은 이와같이 절대적이 아닌 앎에 대해서 서로가 주장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사람도 아니다'는 말은, 이것도 아니며, 저것도 아니며, 다른 것도 아니며 더 나아가 사람도 아니라는 말이다. 인간들의 언어 자체가 상대적인 말들이 아닐 수 없기 때문에 인간들의 모든 지식이 올바른 앎(지식=識)이 아니라 허구적인 앎인 것이다. 인간의 모든 고통의 원인이 이렇듯 올바른 앎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명색이 '오쇼라즈니쉬'라는 중생이 있었는데, 그의 글을 보니. '영혼은 과학이 밝힐 것이다' 라는 말이다. 인간들의 모든 지식이 허구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조차 불가능한 하근기 중생이다. 사실, 이곳 카페의 회원들 중에는 이미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명색의 동일시에 대해서 깊이 이해 하는 인물들이 많고도 많다. 그들의 앎으로 본다면... 오쇼라즈니쉬라는 준생이거나 또는 용수보살, 마명보살 등의 중생들의 언술들로써 가공되어 전해지는 수많은 책자들이 모두 하근기 중생들의 주장일 뿐, 올바른 앎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지혜가 생겨났다는 뜻이다. 이렇듯 일념명상법으로써 일념을 깨닫는다는 것은, 지식을 초월한 지헤를 얻는 것이며, 그때 비로소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종교와 과학이 인간들의 모든 지식의 중심인 것 같다. 

하지만 인간의 지식은 무명에서 출발된 것이며, 무지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지식은 그런 사실에 대해서 이해 조차 불가능하다. 진리 라는 말이 있으며, 우주의 근본원인을 이해 하는 앎에 대해서 진리라는 말로 이해 할 따름이다. 물론 이해는 이해가 아니라 여전히 오해이며, 올바른 앎이 아니다.

올바른 앎이라면, 우주의 근본원인에 대해서 이해 하는 앎이라야만 하는 것이며, 인간생명체의 근본원인에 대해서 분명히 이해 하는 앎이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앎에 대해서 올바른 앎이며, 진리의 앎이라고 한다. 

 

 

사실 인간이 본래 무지해서가 아니라.... 단지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있지만, 마음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생겨난 것인지에 대해서 무지한 것이며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조차 이해 할 수 없는 것이며, 삶이 고통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종교의 시작은 아마도 석가모니와 예수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 같다. 물론 그들이 존재했던 시대에도 여러 종교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현시대를 볼때 종교의 시점은 그들의 말이 왜곡되면서부터인 것 같다. 사실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은 '네 안에 하나님이 있다' 는 말이며, 석가모니의 말 또한 '네 본래성품이 부처다'는 말이 요점이다. 그리고 그들의 요점은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사실, 인간의 지식에 바탕을 둔 관념으로써 그들의 가르침의 요점이자 핵심인 '너 자신을 알라'는 말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었더라면... 종교집단들 따위는 생겨날 까닭이 없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이 '네 안에 있다'는 말은... 하나님이 마음 밖에 있다는 말이 아니며, 하늘나라 어디엔가 있다는 뜻도 아니며, 교회나 절간이나, 사원이나, 기도원에 있다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의 실체를 찾으라는 말인 것이다. 왜냐하면 몸에 깃든 무형의 실체가 영혼이 아니라... 기억할 수 없는 생각, 즉 잠재의식에 저장된 '나라는 생각' 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관념으로써 기억할 수 없는, 잠재의식(순수의식. 무의식)에 저장된 '나라는 생각'은 '육체가 나다'라는 생각이며, '육체가 나다' 라는 생각은 '육체가 나가 아니다'는 생각과 상대적인 생각이기 때문에 분별된 생각의 시작지점인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잠재의식'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무형의 실체가 '영혼' 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하나님이 우주 너머  어딘가에 있는 것이라는 환상, 망상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과학이나 신학 등,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써는 '무형의 실체'라는 말을 창조할 수 있을 뿐, 그 실체를 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말만 무성할 뿐, 해답을 구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인류의 역사로 볼때, 그 실체를 본 인물들이 있다면 오직 에수와 석가모니이며, 그들의 말은 모두 같은 뜻의 다른 표현들이다.

 

그 실체를 본다는 말은.... 일념명상법으로써 경험할 수 있는 일념의 무념처에서 비로소 '육체가 나라는 생각'이 단지 분별된, 상대적인 하나의 생각일 뿐, 실체가 본래 없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의 이분법적인 모든 사고방식들이 올바른 앎이 아니라 허구적이라는 사실에 바탕을 둔 방편설들이 그들의 가르침인 것이며, 인간은 본래 근본원인이 없는 것이라는 말이 요점이다.

 

하지만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 삶이 평화롭기 위해서는 서로가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는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 인간이라고 아는 앎이 편견이며, 단견이기 때문에 그들의 가르침의 요점은 오직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다. 

 

인간이 인간으로써 자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자신의 마음의 실체를 보는 것 뿐이다. 그렇치 않다면 결코 가치 있는 삶일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공부인이라면... '나와 너, 선과 악' 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떠나... 자기를 주장할 일이 아니라... 항상 대상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므로써 서로가 평화로운 삶을 창조해 나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사실. 신학은 과학을 신뢰할 수 없으며, 과학 또한 신학을 신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생명의 비밀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보더라도 물질의 근본원인 또한 '없는 것' 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학은 그런 현상에 대해서 무조건 '하나님의 창조'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과학은 실체를 볼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라는 것 또한 실체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본래무일물' 이라는 말과 같이 '본래 없는 것'이 실체이다.

다만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본래 없는 것'을 볼 수 없는 것이며, '본래없는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본래없는 것'이라는 말에 대해서 밖에 상상할 없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말만 무성할 뿐, 해답을 구할 수 없는 것이다.

 

인위적인 어떤 방법으로써도 '자신의 부재상태'에 대해서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깊이 잠든 상태'에 대해서 조차 이해 할 수 없다. 사실, '깊이 잠든 상태' 와 같이 '생각의 생멸현상(생각의 윤회현상)'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과 같은 상태 또한 '본래무일물'의 상태와 유사한 것이지만... 사실 죽은자의 생각의 끊어짐과 같은 상태가 곧 '본래무일물' 상태이다. '언어가 없는 상태' 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을 따름이다.

 

 

사실. 인간이 '일념의 무념처에서' 그런 상태를 경험함에 대해서 소위 '깨달음, 득도' 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며, 이는 앞서 설명한바와 같이 일념의 무념처에서 '육체가 나라는 생각'이 단지 상대적인 하나의 한생각일 뿐, 사실적이 아니라는... 올바른 앎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아는 '앎'을 이르는 말인 것이다.

 

 

사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의 핵심은, 인간의 '육체가 나라는 앎'에서 비롯된 모든 고통은 지식(앎=앎識)이 원인이라는 말이며, 그 원인을 소멸하기 위한 방법이 '무상한 것은 나가 아니다, 마음 또한 이와 같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관찰하라'는 말이다. 이는...  '도가의 화원의 일념법강좌'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은 '일념명상법'으로써 스스로 깨달아 아는 앎, 진리의 앎으로써만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깨달음은 '육체가 나다'라는 편견에서 벗어나는 앎으로써... 삶과 죽음이 본래 없는 이치를 깨닫는 앎을 이르는 말이다. 예수의 가르침 또한 같은 맥락이며, 단지 한글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왜곡되고 변질되었으나... '너희가 어린아이시절, 순수의식의 분별없음'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으나, 하루종일 기도하여 진리로 거듭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옛 말들에 대해서... 현시대의 보편적인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말과 방법이 일념법, 일념명상법 수행이라는 말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는 말... 일념법, 일념명상법을 이르는 말이다.  

 

 

사실. 수행자가 일념명상법으로써 일념을 깨닫는다는 것은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인간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실체가 영혼이 아니라, 자신의 스스로 생멸을 반복 순환하는 생각의 환상물질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올바른 앎이다.

 

 

인간의 사고방식의 바탕은 '육체가 나라는 생각' 이며 고정관념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무의식에 잠재된 생각이기 때문에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인간의 지식으로써도 이해가 가능한 중요한 사실은....  언어의 근본원인이 되는 시작 언어가 '생각'이라는 낱말이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생각의 원리'라는 말로 표현 한다면, 인간들의 모든 언어가 상대적인 말들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앎이 아니라, 허구적인 앎이며, 한생각의 차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납득할 수 있는 것이.

 

가령, 하나님이 있다는 생각과 하나님이 없다는 생각은 한생각의 차이이다. 상대적인 생각으로써  서로간의 주장만 다를 뿐이니, 가치 없는 생각이라는 것이며, 영혼이 있다는 생각 또한 그렇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있다는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이 아니라... 오직 인간들만의 자기 주장들이며 생각으로써만 존재하는 것일 뿐, 사실적인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 '육체가 나다'는 생각과 '육체가 나가 아니다'는 생각 또한 그러하기 때문에 인간의 사고방식으로써는 육체와 마음의 근본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해 조차 불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사실 육체 또한 근원물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환상물질이기 때문이다. '육체가 나다, 육체가 나가 아니다'는 생각들 또한 분별된 상대적인 생각일 뿐, 사실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 인간의 질병들에 대해서 완전하게 치유할 수 없는 것이며, 정신이 무엇인지,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조차 이해가 불가능한 것이다. 사실 도가의 약식과 일념명상법에 바탕을 둔 올바른 앎, 즉 진리의 앎으로써 의학으로써는 치유가 불가능한 불치병이나 난치병들이 완전하게 치유될 수 있는 이유 또한 그러하다. 생명체의 근본원인이 물질이 아니라 '나라는 생각'의 환상물질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식에 대해서 무지몽매한 앎이라고 하는 까닭은, 인간은 누구나  '육체가 나다'라는 착각에서 비롯된 환상의 세계에 대해서 사실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욕망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죽는 날까지 남들과의 경쟁, 투쟁, 전쟁을 일삼는 짓들에 대해서 삶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간들의 삶의 결론은 후회와 회한, 여한만이 남겨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삶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우주보다 더 무한한 어리석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를 모르는 삶이라면 살아갈 가치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예수의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는 말이 곧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며,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자신의 마음의 실체를 보라는 뜻이다. 

 

 

진리와 인연있는 이에게 영원한 평화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에서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