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인도의 수행방법들이 현시대 까지 어어져 오고 있다.
현 시대가 문명시대라는데, 과연 고대 인간들의 사고방식과 현시대 인간들의 사고방식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실, 인간류의 지식은 말만 무성해진 것일 뿐, 지식은 현시대까지도 고대인간들의 말의 뜻 조차 이해 할 수 없는 것 같다. 현시대 지식인이라는 자들의 하는 짓들이 겨우 아득한 옛날부터 전해져 오는 신화나 전설들에 대한 논란들일 뿐, 지식이 발전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석가모니의 말이나, 예수의 말 또한 전설이나 신화로 왜곡시킴으로써 그들의 진실된 말들이 우상화 놀음으로 전락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알아야 하는 앎이 있다면, 오직 인간들... 자신들의 마음이다. 사실, 인간이 인간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에 지식이라는 앎들은, 말만 무성해 지는 것일뿐, 해답이 없는 것이다. 그런 인간류들의 역사를 보니, 그나마 기원전 6세기 경에는 '소크라테스'와 '석가모니' 그리고 '노자'가 있었으며... 그들의 말은 현시대까지도 여전히 진리로 전해져 오고 있으나... 현시대 인간들의 문명이라는 지식은 그들의 말에 대해서 이해 조차 불가하여, 서로가 옳다는 주장들만 무성하다.
만약에 현시대 지식의 앎이 그들의 말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 할 있었다면... 서로가 시기하고 갈등하는 종교 따위들이 생겨날 까닭도 없었을 것이며, 세상이 이토록 시끄러울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예수의 말 또한 인간들에게 오직 "너 자신을 알라"는 말로써 자신의 마음의 근본을 깨달아 알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자신들이 사람이라고 주장하지만, 지식수준이 높다고 자랑하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지능이 뛰어난 동물이라는 방식으로 자화자찬이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이해 조차 할 수 없는 무지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식자우환이라는 말이 창조된 것이며, 우이독경이라는 말이 창조된 것이다.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이해 조차 불가능한 지식으로써의 앎들에 의해서 고통을 겪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식들... 참으로 쓸모 없는 것이다. 왜 쓸모 없는 것이냐 하면, 자신의 마음조차 모르면서 남들의 마음을 유린하는 짓들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며, 해답이 없는 인생에 대한 논란만 무성하기 때문이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서로가 죽는 날까지 경쟁, 다툼, 투쟁, 전쟁을 일삼는 일에 대해서 인생, 삶이라고 주장하기 까지 하니... 대체 인간들의 존재, 어떤 가치가 있을 수 있겠는가말이다.
사실, 지식의 앎은 몸에 깃든 무형의 실체가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영혼'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반면에 올바른 앎은... 영혼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생멸의 윤회현상에서 비롯된 생각의 환상물질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앎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일념을 깨달은 인물들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보편타당한 상식으로써 의심의 여지가 없는 앎이다. 이런 앎에 대해서 지식을 초월한 지혜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보는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영혼이 있다고 믿는 그대는 그대의 삶에 어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만약에 그대가 '영혼'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그대의 삶은 가치 없는 삶이다. 왜냐하면.. 그대의 삶은 그대의 삶이 아니라... 무형의 실체라고 믿는 영혼에 지배당하는 자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대는 그대가 아니라, 그대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영혼의 그림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대의 삶은 그대의 삶이 아니다.
영혼에 의해서 움직이는 몸과 마음에 대해서 '나' 라고 안다면... 그대의 삶은, 가치를 부여할 만한 가치도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사실, 인간의 존재들... 인간들을 위해서도 아니며, 자연을 위해서도 아니며, 우주를 위해서도 아니라면... 대체 존재의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아~~~ 지구상에서 가장 지능이 뛰어난 동물이니, 그러니.. 그런 동물이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이니까, 인간들끼리... 서로 잘난체 하며... 죽는 날까지 서로가 싸우고 이겨서 승리하기 위해서 존재 해야만 하는 것일까?
허긴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며, 살고 싶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렇게 길들여진 그대로 살다보니...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으려니와 또한 마음대로 살아갈 수도 없는데,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뭔가 죽기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막상 해야 할 일이 없다고 하더라도 죽음은 두려움과 고통이니... 여전히 해답은 없고, 그렇다 보니... 종교에 의존하거나, 유사 종교에 의존하거나, 명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명상이라는 낱말의 뜻 조차도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없는데... 남들이 그러니, 나도 해 보는 것이다. 그러다가 광신자 맹신자들과 같이 세뇌 당하지만, 여전히 세뇌 당한 줄도 모르는채... 죽는 날까지 투쟁을 일삼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수천억만년 전부터의 인간들의 삶의 실상이다.
자아, 지금 이 글을 보는 그대의 나는 누구인가?
어떤 글을 보니.
고대 인도에 죽음명상이라는 뜻의 '스칸다 명상'과 '아니다 명상'이라는 뜻의 '네티 명상'이 있다는데, 국내에 '마음수련회'라는 곳에서 하는 방법이 '스칸다 명상'이며, 이는... 의식의 확장을 위해서 체험이 필요한 것이며, 체험을 위해서... 상상속에서 자신의 몸을 폭파시키고, 용광로에 넣과 찢고 버리는 방법이라는데... 문제는, 부작용이 크다는 것이다. 자기조차 이렇게 가볍게 죽이다 보니, 남들도 그렇게 죽일 수 있다는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말인 것 같다.
그런데, '네티(아니다)'는 명상은, 육체로부터 시작하여 마음이나 감각에 이리기까지 자기에게 인식되는 모든 것이 진정한 내가 아니라고 강력하게 부인하고 그것이 아닌 여백의 존재성을 자각하는 것이라고 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옳은 방법이지만... 이런 방법으로써 깨달은 자가 없으니... 모두 헛된 소리들이다.
사실, 고대인도의 수행방법들이 현시대 인간들의 사고력보다 더 뛰어난 까닭은 그나마, 인간이 이식할 수 없는 '무의식' 즉 잠재의식 속에서 자기를 육체(몸)라고 여긴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사실 인간의 마음이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잠재의식 즉 기억할 수 없는 생각들이지만... '육체=나' 라는 앎(생각=마음)이 경험이전에 이미 생겨났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써는 어떤 방법으로써도 깨달음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깨달음이란,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는 언어로써는 표현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깨달음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본래 없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지적으로나마 이해함으로써 시작될 수 있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마음의 근원을 보는 일이다.
무식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의식의 확장'이라는 방식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깨달음이란 의식이 확장이 아니라, 의식이 본래 없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아는 앎을 이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의식, 즉 모든 사념이 사라졌을때, 즉 일념의 무념처에서 일어나는 최초의 한생각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사실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순수의식의 어린아이에게 일어났던 최초의 한생각과 똑같은 '한생각'을 보는 것이다.
일념의 무념처에서 최초로 일어나는 한생각은, '육체가 나라는 생각일 뿐...' 이라는 생각으로써 순수의식의 어린아에게 인위적인 언어를 통해서 일어나게 되는 최초의 한생각이 곧 '육체=나다' 라는 생각으로써 '육체와 나' 와의 동일인 것이다. 그 동일시의 앎이 착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스실 그대로 깨달아 아는 앎에 대해서 소위 '깨달음, 중도, 불도, 득도' 등의 말들로써 표현되는 것이다.
'육체가 나다라는 앎과 육체가 나가 아니다' 라는 앎이 분별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앎일때, 그들의 언어는 진실된 말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편견, 단견, 소견에서 벗어난 말이기 때문이다. 몸이 나다라는 앎도 편견이며, 몸이 나가 아니다라는 앎 또한 편견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말에 대해서 이해 조차 가능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지식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지식이란 모두 '육체가 나다'라는 편견에 바탕을 둔 주장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들의 모든 앎이 이와 같이 편견, 단견, 소견이 아닐 수 없기 때문에 지식의 앎에 대해서 올바른 앎이 겨자씨 만큼도 없다고 하는 것이며, 인간들의 진리가 아닌 지식에 바탕을 둔 주장들에 대해서 무지몽매한 짓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들의 지식에 바탕을 둔 모든 주장들이 사실상 근거가 없는 주장일 뿐만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조차도 사실상 근본원인인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지능이 뛰어난 인간이라면... 진리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며, 그대의 본성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 법에 대해서 일념법, 일념명상법이라는 이름으로 표현된 것이다.
일념법,일념명상법이 진리라고 하는 이유는, 오직 그 방법만이 인간의 마음의 근원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무한한 어리석음이란,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영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며, 그것이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몸에 깃들어 있는 것이며, 무형의 실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 이 내용은, 한글사전에 기록된 설명이므로... 인간들 지식에 바탕을 둔 앎이다 ---
지금 이 글을 보는 그대는, 자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인가?
그대는 감정의 동물인가?
그대는 생각하는 사람인가?
영혼에 지배당하는 사람인가?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영혼이라면... 사람은 영혼의 그림자란 말인가?
사람도 아니며, 영혼도 아니라면.
대체 그대의 나는 누구인가?
대체 그대의 나는 무엇인가?
인연있는 이에게 영원한 평화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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