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언어 · 불이일원론

불교와 양자물리학/ 입자와 파동설과 예수의 창조론 - 과학과 종교. 인간류의 총체적 무지와 진리/ 진리란?

일념법진원 2015. 4. 20. 07:56

18세기 최고의 철학서로 꼽히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서는 인간의 이성이 가진 한계를 명확하게 비판한다. 그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인간은 외계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직 자신의 해석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인간이 가진 감각기관의 고유한 한계에 의한다는 것이다.

자연이치 탐구했던 불교
만물 관통 연기진리 발견
과학자 교류 수행 지도로
이들 알아가는 노력 필요


이러한 이성에 대한 비판은 이후의 철학, 과학, 예술 등 전 학문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성에 고유의 한계가 있다면 자연과 인간과 신을 관찰하는 주체에 오류가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관찰해왔던 눈 자체에 문제가 있다니! 이것은 감각기관과 이성을 도구로 활용하여 쌓아왔던 모든 학문과 경험들이 부정될 수 있는 비판인 것이다.

그로부터 100여 년 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과학계에 큰 지각변동이 생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이어 양자역학이 등장하면서 생긴 변동이다. 뉴턴식 물리학에서는 고정된 시간과 공간을 전제했지만 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의 가변성을 보여줌으로써 이전의 상식을 깨뜨렸다. 양자역학은 우리가 바라보는 만물의 기본입자인 미립자는 파동으로도 입자로도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물질은 물질로만, 비물질은 비물질로만 존재한다는 고정적인 상식이 깨진 것이다.

이렇게 관찰 주체인 인간의 감각과 이성이 불완전하다는 사실, 그동안 관찰해왔던 외계가 고정적일 것이라는 결론의 부정확성이 서양사회에서는 현대에 들어 인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회가 이를 인정한다면 과학은 큰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데 자신들이 발견한 이치가 부정확한 관찰 도구로 연구된 결과물이기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되는 것이다. 인정하지 않는다면? 하나를 부정함으로써 모든 것을 부정하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되어 자신들이 발견한 이치 모두 스스로도 인정하지 못하는 하찮은 것이 되어버린다. 과학은 지금 이런 딜레마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부처님은 이미 2500여 년 전 전5식인 감각과 제6식인 의식의 불완전성에 대해서 말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가변성, 객관계 물질의 가변성에 대해서도 제행무상, 제법무아의 진리로써 이미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교는 과학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첫째, 과학이 근현대에 발견한 자연의 이치들은 불교의 진리를 다른 방식으로 증명해주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자연의 이치에 대한 탐구를 배제했던 타종교와는 달리 불교는 자연 역시 인간, 부처님과 상호연결된 존재로 파악하여 탐구를 이어왔고 만물을 관통하는 연기의 진리를 발견했다. 따라서 불교는 과학이 새롭게 발견하는 이치들을 환영해야 한다. 또한 성능 좋은 다양한 기기들이 세밀하게 관찰하여 얻은 과학실험의 결과들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 교리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둘째, 과학자들의 수행을 지도해줘야 한다. 과학은 인간의 6식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어 자연을 있는 그대로 관찰할 수 있도록 마음을 정화하는 수행론에 무지하다. 만약 진정한 과학자라면 관찰 주체인 주관의 한계가 점점 명확해지는 상황에서 주관의 오류를 해결하고 지혜를 갖춘 정확한 관찰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불교는 종교 리더로서 과학자들과의 교류와 교화를 통해 여실지(如實智, 만물의 참다운 실상을 깨닫고 불법을 꿰뚫는 지혜)를 갖추는 수행을 지도해줄 필요가 있다.

셋째, 과학에 대한 최소한의 공부를 통해 불교와의 접점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과학을 두려움 없이 자신감을 가지고 받아들이기 위해서, 또 과학자들과 교류를 통해 그들의 수행을 지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과학을 아는 것이다.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종교 리더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하지 못할 뿐 아니라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과학을 배척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 원빈 스님
연기설은 이 법계를 하나의 원인이 만들었다는 창조설과는 달리 지극히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진리다. 그러니 과학을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 새로운 과학의 발견들을 접할 때마다 흐뭇한 마음으로 불법을 새롭게 증명해주는 고마운 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오염된 인식을 정화하는 수행으로 과학자들을 이끌어준다면 시대를 이끌어가는 종교 리더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지지 않을까? 진리를 먼저 발견했고, 인식을 정화하는 수행론을 보유하고 있는 불교가 과학과의 만남에서 주도적인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1290호 / 2015년 4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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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글... 무식하고 어리석은 자들의 망상이다.

 

진실을 말하자면...

 

사실, 입자와 파동설은 인간류 스스로가 지성과 이성 감성 등의 인간류의 모든 지식의 총체적 무지와 어리석음을 깨닫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사실 인간류는 스스로 지구상에서 가장 지능이 뛰어난 동물이라고 생각 했던 것 같다. 사실 지구상에서 가장 지능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가장 지능이 낮은 동물류가 인간류들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본다면... 그런 사실을 스스로 깨닫기 위한 학문이 과학이 된 셈이다. 

 

 

이곳의 모든 글들은 '깨달음의 실체를 밝힌다' 라는 책과 '비밀의 언어'라는 책에 바탕을 둔 부연 설명들이며 또한 '나사렛 예수'의 방편설인 '하나님의 창조론'과 '싯다르타' '본무'에 바탕을 둔 방편설들에 대한 해석서이며, 현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언어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너희가 짐승보다 더 뛰어난 것이 무엇이 있는가' 라며 '너 자신을 보라'는 예수의 말과, '너희는 짐승들과 다를 것이 단 하나도 없는 중생무리들이다'는 싯다르타의 말과 '너 자신을 알라'고 했던 '소크라테스'의 말이 모두 같은 뜻의 다른 표현들로써의 진리에 바탕을 둔 방편설이다/는 사실.  

 

 

요약하자면, 예수의 말은 '너 자신을 알면, 네 안에 하나님이 있다'는 말이며, 싯다르타의 말은 '인간이 스스로 자신을 알면 '부처, 불타'/ 라는 말이며, 소크라테스의 말은 '나는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안다'는 방식으로써... 너희가 아는 것은, 남들의 말을 듣고 아는 것이다'는 말로써... 너희도 나와 같이 스스로 '진리'를 알 수 있다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사실 현시대는 문명의 발전이라는 말과 같이... 문자가 밝은 시대이기 때문에, 무식하고 어리석거나 또는 아둔한 자가 아니라면 그들의 남겨진 말들에 대해서 이해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지식은 비논리적인 주장으로서 종교나부랭이들과 같이 서로가 진리라고 우기는 것이지만... 진리는 지극히 논리적인 것으로써 지적으로서도 이해가 가능한 올바른 앎이기 때문이다. 

 

 

 

사실 가장 무식하고 어리석은 무리들이 연기와 법계와 부처님을 주장하는 자들이며, 둘째가 하나님을 주장하는 자들이다. 사실 인간류의 지식이 총체적 무지로써 올바른 앎이 아니기 때문에 논란만 가중되는 것이며, 다툼과 경쟁 투쟁, 전쟁이 끊일 날이 없는 것이다. 그 원인과 해결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의 행복과 평화 그리고 더 나아가 인류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사실. 지식은 이원성 다양성으로서 복잡하고 다양하기만 할 뿐, 올바른 앎은 단 하나도 없는 반면에 진리는 단순한 것이며 지극히 논리적인 것으로써 아둔한 자가 아니라면... 누구나 지적으로써도 이해가 가능한 것이며... 더 나아가 스스로 수행을 통해서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이며, 스스로 깨달아 아는 앎으로써 비로소 가치 있는 삶과 검증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삶과 죽음의 한계를 뛰어 넘어서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노자의 말과 같이 '무위자연의 자유와 같이...' 

 

 

 

싯다르타의 말이 언술이 뛰어난 자들에 의해서 '우상숭배사상'으로 왜곡되었으나, 그의 남겨진 진언들에 대해서는 이곳에 충분히 설명 되어 있기 때문에 생략한다. 예수의 말 또한 우상숭배사상으로 왜곡 되었으나, 그의 진언들 중에 가장 중요한 말이 스스로 깨닫기 위한 수행법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누구나 한글을 아는 자라면, 아둔한 자가 아니라면... 누구나 이해 할 수 있도록 논리적으로 설명 되어 있으니 생략하고... 그들이 인간세상에 전하고자 했던 진리의 요점에 대해서 두 가지만 설명하려 한다.

 

 

 

 

하나.

 

그들 소위 도를 깨달아 진리의 앎을 전한 자들의 공통된 가르침의 '너 자신을 알라' 는 말에 대한 추상적 또는 관념적으로써의 이해가 아니라... 사실 그대로의 이해에 관한 것이다.

 

사실, 인간의 지성, 이성, 감성이라는 모든 관념으로써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형이상학적인 것도 아니며, 하학적인 것도 아니며... 말은 말이지만 말도 안되는 소리 쯤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것으로써 고대, 중세, 현시대 까지도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있는 인간들이 없기 때문에... 인간세상의 역사가 그렇듯이, 현 시대 또한 그렇듯이... 행복한 사람이 있을 수 없는 것이며, 평화로운 세상을 볼 수 없는 것이며, 인간류의 존재들... 삶 자체가 남들과의 다툼, 갈등, 경쟁, 투쟁 전쟁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자신에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자신 스스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이리라고는 감히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며... 감히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 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들의 지식이라는 것은 모두 남들을 의존하여 얻어지는 것이다. 아득한 옛날부터 그렇게 듣고 보고 배웠기 때문에... 당연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일이며,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로부터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 '너 자신을 알라'는 말에 대한 분명한 뜻이며, 깊고 깊은 의미이며... 이런 말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이해 하는 앎에 대해서 '깊고 미묘한 법' 이라는 뜻의 '심심미묘법'이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 싯다르타의 말이 왜곡된 경전이다. (참고로... 이곳 카페의 회원들에게 이런 설명은 보편타당한 상식에 속하는 것이다) 

 

 

그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너희가 어린아이시절을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는 것이다' 는 말로 왜곡된 해석된 말에 대한 올바른 사유로써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짐작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인간은 선험적 사고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험적 사고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다는 말은, 즉 말을 배우기 이전과 남들을 의존하여 말을 배우고 익힘으로써... 의미 없는 소리가 언어화 되기 이전의 어린아이시적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 즉 순수의식의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대해서 자세히 관찰해 본다면, 그대 또한... 자신이 자신에 대해서 안다는 모든 것들... 또한 어린아이들이 말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과 같이... 자신에 대한 자신의 앎이 스스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들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누구나 이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태초부터... 남들이 그렇게 알고 그렇게 가르치고,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며... 누구나 그렇게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이 두려워 하기 때문에 나도 두려워 하는 것이며, 남들이 시장엘 가기 때문에 나도 가는 것이며, 남들이 욕망을 쫒기 때문에 나도 쫒는 것이며, 남들이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속이는 줄도 모르고 속고 속이는 짓들을 일 삼는 것이며... 그러다가 죽어 사라지는 것들... 인간무리들이다. 짐승보다 더 뛰어날 것이 단 하나도 없는... 길잃은 어린 양새끼들과 같이, 생명있는 모든 것들을 통칭하는 중생이라는 말과 같이... 

 

 

요점은, 남들을 의존하여 얻어진 지식으로써의 '지성체'는 그대의 본래의 '나' 가 아니다는 뜻이며... 최소한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만큼은 자신이 '스스로 아는 것' 으로써의 '나' 라야 한다는 뜻이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왜냐하면, 스스로 아는 것으로써의 올바른 앎이 겨자씨 만큼이라도 생거난다면... "그대의 나라는 것 =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지식" 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대 = 남들) 이니...

 

 

"그대의 나 = 지식" --- (지식=남들의 앎) 이기 때문에... '지성체' 라고 하는 것이며... 인체에 대해서 '유기체' 라고 하는 것이다. 그대의 내면에 있는 모든 것들은 그대가 아니라... 남들의 지식이기 때문이다. 그대의 두뇌에 저장된 모든 지식들 또한 '남들의 말들, 지식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이다. 그대 스스로 아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  

 

양자물리학에 의해서 밝혀진 입자와 파동 또한... 그런 터무니 없는 '자아'의 관념(지식)으로 보기 때문에... 지식에 의존하여 있는 것일 뿐...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는 말이다.

 

싯다르타가 말이 왜곡되어 '識' 으로 표현된 글자의 뜻이 그런 '지식'을 뜻 하는 말이며, 연기법 또한 그런 지식이 있기 때문에 고통이 있는 것이다/는 뜻이다. 예수의 '하나님의 말씀'으로의 창조' 라는 말 또한... 언어, 말, 말, 말을 배움으로써의 말이 있기 때문에..... 말에 의존하여 존재계가 있다는 말로써... 본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는 말이다.---------------------------------------------------

 

 

논리적 사유 방법에 대하여... 

 

굳이 양자물리학의 입자와 파동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단순한 논리로써 즉 생각의 원리에 바탕을 둔 설명으로써 누구나 이해가 가능한 것이 진리이다. 지식은 근거가 없는 것들에 바탕을 둔 주장들이 아닐 수 없기 때문에 말만 무성한 것이며 끊임없이, 끝없이 논란만 지속 될 수밖에 없는 것이며, 해답을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지식은 끝이 없다는 방식으로 지식을 합리화 시키려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생각의 원리에 바탕을 둔 올바른 사유로써 진리가 단순하다는 사실과 함께 지식을 초월한 진리의 앎으로... 단순한 몇 가지의 질문들로써 인간세상의 모든 논란은 종식 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무식하거나, 지극히 아둔한 자가 아니라면 말이다.  

 

단순한 비유를 든다면, 예를 들어서 '성령'이 있다는 종교와 '불성'이 있다는 종교들간의 서로가 진리라고 주장하는 무지와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갈등과 반복, 전쟁을 종식 시킬 수 있는 단순한 질문이 있다면... 아래와 같은 것들이다.

 

- 하나님이 있다면... 또는 부처님이 있다면... 그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라는 단순한 질문으로써... 논란은 종식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을 아는 자라면 말이다. 이런 말을 모른다면... 유구무언이 아닐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과연... 누구의 생각인가? 라는 질문. 

 

하나님이 있다는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이 아니라, 인간들의 생각이다는 사실. 

부처님이 있다는 생각은... 부처님의 생각이 아니라, 인간들의 생각이라는 사실. 

성령이 있다는 생각은... 성령의 생각이 아니라 '나는 생각하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인간들의 생각이라는 사실이 그러하며, 영혼, 영가, 불성... 절대자, 신 또한 그러하다. 

 

 

더 나아가, 나는 생각한다는 생각은 누구의 생각인가? 

나는 사람이다는 생각은 누구의 생각인가? 

 

인간 동물무리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지능이 뛰어나다는 생각은 누구의 생각인가? 인간류를 포함한 다른 동물류들의 공통적인 생각인가? 아니면, 인간동물들만의 편협한 생각으로써의 단견인가? 

 

 

내가 보기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지능이 낮은 동물류가 인간류인 것 같다. 

왜냐하면, 인간동물류들을 제외한 수 많은 여타 다른 동물류들에게는 스스로 존재하기 위한 본능이 있기 때문이며, 스스로 고통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인간동물들은 인위적으로 가공된 사고방식에 의존함으로써... 행복과 자유, 평화 라는 말을 창조 했지만... 어느 누구도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인간이 없으며, 죽는 날까지 자유와 평화가 무엇인지 이해 조차 불가능 한 것이... 소위 지성체라는 허구적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남들을 의존하여 얻어진 지식으로써의 그대가 아니라, 그대 '스스로 아는 것'으로써의 진리로 거듭 나기 위한 목적으로써의 행위... 존재의 이유이다. 

 

그런 존재에 대해서 가치 있는 삶이라고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삶과 죽음의 한계를 넘어선 올바른 앎으로써의 거듭남에 대해서 진리라고 하는 것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이 진리이다.

왜냐하면 그대의 - 그대 자신에 대하여 스스로 아는 앎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진리와 인연있는 이에게 영원한 평화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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