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 입력 2015.11.24. 23:26
[한겨레]제주·서울 개막…사진·영상 전시


9년간 강정앞바다·활동가삶 담아
김진수·노순택 등 사진가들 참여
문정현 신부 “예술이 진실 증언”

“세계 여러 곳을 다녀봤는데/ 이보다 아름다운 곳을 본 적이 없다/ 얘들아/ 너희들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어머니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겨도 된다/ … / 저 바다를 보아라/ 구럼비 해안에 돌찔레가 보이느냐/ 너희들 어머니시다/ 범섬 너머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느냐/ 너희들 아버지시다.”

신경림 시인은 시 ‘강정의 아이들에게’에서 구럼비 해안의 돌찔레와 범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강정의 어머니와 아버지라고 했다. 마을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기라고도 했다.

길고 긴 투쟁의 날들이다. 국내에서 이렇게 오래 주민들이 중심이 돼 국책사업에 대해 반대운동을 벌인 예는 흔치 않다. 2007년 5월 결성된 서귀포시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반대대책위원회의 활동이 3000일을 넘었다. 제주도 사람들조차 가본 이가 많지 않고, 조용한 곳이었던 강정마을은 이제 전국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마을 가운데 하나가 됐다. 전국에서 전세계에서 연대자들이 강정마을을 찾는다.

24일부터 제주와 서울에서 열리는 강정기록전 ‘적, 저 바다를 보아라’는 지난 3000일의 기록을 오롯이 담았다. ‘적’이라니? 대한민국 해군을, 정부를 ‘적’으로 본다고? 아니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강정마을회, 제주 군사기지 저지와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범도민대책위원회, 제주해군기지 건설 저지를 위한 전국대책회의 등의 말을 빌리면, ‘적’은 ‘어떤 상태나 동작이 진행되거나 그 상태가 나타나 있는 지점 또는 그때’를 뜻하는 의존명사다. 구럼비 너럭바위가 있었던 시점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구럼비 해안이 폭파돼 해군기지가 건설되기 이전의 어느 한때를 기록한 사진과 영상이 아름다움과 아픔을 동시에 바라보고 있다는 말이다.

전시회에는 2007년부터 지금까지 강정마을과 강정 앞바다의 수중환경을 기록한 사진 60여점과 영상 등 초청전과 9년의 기간을 사진으로 정리한 아카이브전으로 열린다. 3000일 동안 현장에서 기록해온 김진수·김흥구·노순택·송동효·양동규·이우기·조성봉·이강인 등이 참여했다.

사진은 군사기지 반대투쟁의 일상을 기록했다. 해군기지 옆 묏부리 해안에서 바라본 범섬과 눈이 흩날리는 모습(사진), 해군기지 관사 반대투쟁 때 눈 내리는 모습, 지금은 시멘트 더미에 파묻힌 아이들이 뛰노는 구럼비바위, 울타리가 둘러쳐진 구럼비, 지금은 볼 수 없는 구럼비의 붉은발말똥게 등 생명체들, 구럼비 너럭바위 폭파 모습과 활동가들의 일상도 담겨 있다. 천연기념물 제442호인 연산호 등 해양생물이 해안 매립과 방파제 공사 등의 영향으로 묻히는 모습도 시기별로 촬영했다.

사진 작품을 출품한 이우기(36)씨는 “2011년 강정마을의 투쟁을 알게 됐다. 사진을 찍으러 왔다기보다는 궁금해서 왔다. 강정마을에서처럼 활동하는 지킴이(활동가)들을 처음 봤다. 그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어 그 뒤부터 한 달에 한두 번씩 강정마을을 들러 기록했다”고 말했다. 양동규 제주민예총 사무처장은 “강정마을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자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다 지난 9년 동안의 강정 모습을 정리해 보여주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시멘트 더미에 묻혀 망각된 강정마을과 생명을 이번 기회에 끄집어내려고 시도했다”고 말했다. 고권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대책위원회 위원장은 “강정마을이 생긴 이래 지난 9년만큼 회오리 속에 휩싸인 적은 드문 것 같다. 전시회를 보니 그동안의 활동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고 회고했다.

문정현 신부는 이날 오후 전시회 개막식 축사에서 “사진전은 진실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예술은 문학, 미술, 사진 등 모두 진실을 증언하고, 따라서 진실을 밝히는 데 기여한다”고 의의를 설명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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