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론 - 잘사는 삶 · 올바른 삶

꿈과 현실 /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나는 왜 나인가? 나는 왜 사람인가?

일념법진원 2014. 9. 18. 06:35

지금 그대는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

그대가 추구하는 것은 현실에서 벗어난 진정한 자유와 평화이다. 

하지만 그것은 꿈과 같은 것이다.

 

문학이든, 종교든, 예술이든, 종교든, 도덕이든, 사상이든, 이상이든.... 그것들의 결론은 그대 자신의 마음의 평화를 방해하는 것들일 뿐, 그곳에 평화는 없다. 하지만 그대는 그런 것들 속에서 자유와 평화를 찾는 것이다. 

 

누구도 찾을 수 없던 것을 찾는 어리석은 짓을 반복 수행하는 윤회의 틀에 갇힌 것이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자신의 행복이며, 행복은 '마음의 평화'을 일컷는 말이다.

 

다른 것들을 추구한다면, 그 또한 그 다른 것들을 통해서 만족감을 얻기 위해서이다.

그 만족감을 얻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것 또한 자신의 마음이 편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들의 모든 언행은 스스로 만족하여 평화로울 수 없으므로 행해지는 것들이다.

세상에 불평불만이 없다면, 그리고 자신에게 불평불만이 없다면... 학문이나 예술, 도덕, 종교 따위에 이끌려 다닐 이유가 없다.

 

그렇지 아니한가?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라는 말들, 뭔가 옳은 말인 것 같지만, 크나큰 착각이다.

사람들은 추구하는 바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고 흩어짐을 반복한다. 이합집산이라는 말의 뜻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모두가 같다.

모두가 같은 것을 추구하지만... 다른 것이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인간들, 인류 모두가 추구하는 것은 진정한 자유와 평화, 그리고 개인적인 행복이다.

 

서로가 다른 것을 추구한다고 떠들지만... 그 추구하는 방법이나, 수단, 노력들은 다양하기만 하지만, 결국 개개인의 행복을 위한 것이며, 마음의 평화를 위한 것이다. 그러니.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허구적인 것이다.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자들... 모두가 올바른 앎이 겨자씨 만큼도 없는 무지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인생의 해답을 모른다고 주장하는 자들... 그것들이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고 주장는 것들이다. 인생의 해답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들의 추구한다는 말은 인생의 해답을 안다는 또 다른 방식의 무지에서 비롯된 헛된 주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의 모든 지식에 대해서 겨자씨 만큼도 올바른 앎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지금 그대가 스스로 만족하여 평화로울 수 없다면, 그대의 삶은 가치 없는 삶이며, 헛된 노력을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행복할 수 없었다면... 미래 또한 그러하기 때문이다. 더 나은 미래는 없기 때문이며, 그 미래의 마지막은 죽음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자. 중요한 것은 인간들 모두가 추구하는 행복은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 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대 자신의 문제이다. 

어차피 인간은 인간의 기원을 모른다. 그러니. 해답이 없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들이 인간들 개개인의 자존심이며, 자아상이다. '자아상'이라는 말은 '자신의 내가 있다는 생각'이라는 뜻이다. 남들의 마음보다 내 먀음이 더 존귀하다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착각이다.

 

인간의 기원이 무엇인지 모르는 인간들의 모든 상상, 생각, 마음의 표현들에 대해서 지식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지식에 대해서 지식이 아니라 무지이며, 무식이며, 더 나아가 무한한 어리석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문학이든, 종교든, 예술이든, 도덕이든... 모든 문화가 그렇다는 뜻이며, 그것들로서는 결코 진정한 자유나 평화를 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인류의 역사가 그러하듯이... 삶의 전쟁, 인간들간의 전쟁은 끊임없이 반복 순환되는 것이기 때문에 윤회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인간의 기원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인간들의 지식들로써 어찌 인생의 해답을 찾을 수 있겠느며, 어찌 편안한 마음으로서의 자유와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겠는가말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세상에는 악으로 분류되는 사람들과 선으로 분류되는 사람들, 그리고 선도 아니며 악도 아니며....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선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그 둘 사이에 있는 사람이든, 추구하는 것은 자신만의 행복이며, 평화이며, 자유이다. 그것을 통칭하는 말이 '마음이 편안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이와 비슷한 말들이 있는데, 안심입명, 적멸위락, 적정열반, 하늘나라, 천국, 불국토... 등이다.

사실 고요하고 교요함의 경지라는 말이 가장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사실 인간들의 모든 법, 법칙은 마음이 편안할 수 없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창조된 것들이다. 그리고 그 법, 법칙들은 그 숫자가 끊임없이 더 늘어나며, 비대해 진다. 인간의 마음이 그러하기 때문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만족하여 평화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국법, 헌법, 상법, 민법... 등등의 법률들은 끊임없이 더 많아지며, 그것은 자류가 아니라 구속의 수단이다. 사전이 두터워지며, 경정들이 더 많아지는 이유 또한 길을 잃은 자들의 방황의 증거이다. 인류의 역사가 그러하다.

 

사실 마음은 본래 마음이 아니라 욕망이다. 탐욕이다. 그것을 교묘하게 '마음'이라고 이름 지은 것이다. 그 욕망을 욕망이 아닌 것처럼 꾸미기 위해서 만등러진 말이 '마음'이라는 말이다. 이름만 있을 뿐, 모양이나 형상이 없는 것이며, 기억세포에 저장된 수많은 생각들 중의 한조각의 생각의 표현이다. 그것의 이름이 마음이다.

 

 

그대가 다른 무엇인가를 추구한다는 것은 허구적인 것들이다. 왜냐하면 추구하는 결론은 자신의 마음의 평화를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학문이나 문화 예술, 도덕, 종교 따위에 얽매이는 까닭은 사실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리석게도 자신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의 실체를 찾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곳을 찾아 해메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마음을 누군가가 채워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이나, '부처님'이나, 다른 신들이거나, 다른 사람들의 말재간들 속에서 찾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자신이 모른다면, 누가 자신의 마음을 찾아줄 수 있겠는가말이다. 말도 안되는 소리가 아니란 말인가?

 

그렇지 아니한가?

 

 

누구나 인간이다. 

누구나 '내가 사람이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누구나... 라는 사람들... 누구나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말을 잘하는 자도 자신의 마음을 모르는 자이며, 말을 못하는 자도 자신의 마음을 모르는 자이며, 광신자들도 자신의 마음을 모르는 자들이며, 맹신자들 또한 자신의 마음을 모르는 자들이며, 발명가도, 음악가도, 예술가도, 꿈꾸는 자도, 이상을 추구하는 자도, 사상을 추구하는 자도, 이념을 추구하는 자도... 어느 누고도 자신의 마음을 모르는 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것들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그대가 그대의 마음에 대해서 아무것도 올바르게 아는 것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자신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에 다른 것들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자신의 마음을 모르면서 남들의 마음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자신의 마음을 모르는 자들이 남들에게 신이 있다고 주장하는 일들이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자신의 마음을 모르는 자들이 '인문학을 강의'한다는 것이 우스운 일이며, 똑 같이 자신의 마음을 모르는 자들이... 자신의 마음을 모르는 또 다른 자신의 마음을 모르는 자들에게 이끌려 다니는 일들이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더 우스운 일은,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들이 '마음수련'이라는 말을 한다는 것이며, 마음이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며, 마음을 수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마음을 깨닫게 해 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으며, 스스로 깨달았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으니, 아니 더 나아가 '내가 하나님이며, 내 마누라가 하나님이며, 내 자식이 하니님'이라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으니... 그 생각, 생각, 생각들... 과연 누구의 생각일까? 

 

그대의 생각과 남들의 생각의 차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사실 똑 같다. 서로가 자신의 마음을 모르는 자들의 사념에 불과한 것들이며, 망상에서 비롯된 말재간들에 불과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어떤 자는 '내가 중생'이라고 생각하며, 어떤 자는 내가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며, 어떤 자는 내가 광신자라고 생각하며, 어떤 자는 내가 맹신자라고 생각하며, 어떤 자는 내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며, 어떤 자는 내가 못났다고 생각하며, 어떤 자는 내가 깨달았다고 생각하며, 어떤 자는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어떤 자는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어떤 자는 내가 훌륭하다고 생각하며, 어떤 자는 삶이 고통이라고 생각하며, 어떤 자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그 생각은 시작도 끝도 없이 이어진다. 여전히 해답은 없다. 그러니 우스운 일이다.

 

그 생각들... 모두 자신의 나를 모르는 자들의 자신만의 사념이며, 망념이며, 망상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이 모두가 인간의 기원을 모르는 인간들의 상념이며, 망상이다.

자신의 생각, 생각, 생각들이 모두 올바른 앎이 아니라, 남들로부터 주어 모든 지식들이며,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앎이 아니라, 망상, 몽상, 상상, 환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들이 곧 현자이며, 도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선한자들이다.

 

 

그런데, 더욱 더 신비스러운 것은. 

사람들 누구나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이해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마음이 나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몸도 나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생각이 나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며, 생각은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만약에 이 글을 보는 그대가 귀하고 귀한 인연 있는 자라면. 

이 글들 중에서 단 한구절에 대해서만이라도 분명히 이해 할 수 있는 자이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상근기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사람이다'라고 아는 인간들 모두가 '내마음'이라고 당연시 하지만... 사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올바르게 아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면.... 최소한 인간 지식의 한계를 초월한 가치 있는 삶, 검증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인간들에 대해서 지성체라고 한다.

'지성체'라고 단정 짓는 까닭은. 인간들의 모든 앎이 말을 배우면서부터 시작된 말, 말, 말들일 뿐, 다른 것이 아니며, 말로 구성된 것들에 대해서 '나, 자아'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나(我)' 라는 말과 '내가 사람이다(人想)'는 앎(말, 뜻, 마음, 지식, 생각)이 이미 올바른 앎이 아니라 편견이며, 소견이며 단견이기 때문에 지성체들의 앎에 대해서 올바른 앎이 아니며, 편견이며, 단견이며, 소견이며, 착각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현세상에는 오직 나의 말만이 진실된 말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인간들의 모든 말(앎)들이 이와 같이 허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말이 진실된 말이 아니라, 인간들의 모든 주장이 허구적인 것이라는 말이다.

 

 

지성체들의 말, 말, 말들... 무수히도 많은 지식들... 그것들에 대해서 왜, 허구적인 것이며, 진실된 말이 아니라고 하는가 하면은. 인간들의 모든 앎이라는 지식의 바탕이 이미 어긋난 앎(말)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근기는 크게 웃어버리거나, 듣되 들을 수 없는 말이기 때문에 '우이독경'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하는 말이며, 불립문자로 표현될 수도 있는 말이며, 언어도단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도 있는 말이며, 어불성설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사람이다'는 말. 그 말 자체가 경험의 오류에서 비롯된 착각이며, 착각일 뿐만이 아니라 터무니 없는 자기 주장이라는 말이다.

 

'내가 사람이다'는 말은 통념이다. '통념'이라는 말은 '통상적인 생각'이라는 뜻이다.

아득한 옛날부터 통상적으로 그렇게 전해져 온 말들에 대해서 당연하다는 듯이 주장하는 말이 '내가 사람이다'는 말이다. 

 

사실. '내가 사람이다'는 말은 누가 보더라도 옳은 말인 것 같지만. 사실. 근거가 없는 말이며, 단견, 편견이 아닐 수 없다. 

왜? 내가 사람일까? 에 대해서 의심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겠지만, '내가 사람이다'는 말은 사실상 근거가 없는 말, 말, 말이다. 

 

 

'내가 사람이 아니다'는 말이 있다. 

'내가 사람이 아니다'는 말과 '내가 사람이다'는 말은 똑 같은 말이며, 한 생각의 차이이며, 상대적인 말이며 상방된 견해이다. 

 

그렇다. 

견해의 차이이며,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과 경험이전의 사고방식과의 관념의 차이이다.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은. 

자신의 태어남(창조)을 기억할 수 없으며, 말을 배우고 익혀서 '자아를 인식하기 이전'까지의 상황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다. 지성체는 '그 시기'에 대해서 '무의식, 잠재의식, 순수의식' 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상태에 대해서도 주장하는 자들이 있는데, 소위 정신분석학이라는 어리석은 학문들이 그러하다. 그것들은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추측에 대해서 주장하는 것이다.

 

 

인간들의. 지성체들의. '내가 사람이다'는 말은 이와 같이 사실적인 말이 아니라 허구적인 말이다. 

기억할 수 없는 '어린아이시절'부터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웠던 말, 말, 말... 들 중에. 한마디가 '내가 사람이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 말'. '내가 사람이다, 내가 여자다'는 말을 듣고 배우지 않았다면, 그렇다고 가정한다면... '내가 사람이다'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뜻이다. 

 

 

'나는 사람이다'는 말, 말, 말... 누구로부터 듣고 알게된 말인가?

'내가 여자다'는 말은? 누구로부터 듣고 배워서 알게된 말인가?

'내가 남자다'는 말은? 누구로부터 듣고 배워서 알게된 말인가?

그대 스스로 알게된 말인가?

그 착각에서 깨어나야만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말이다.

 

 

사실 인간세상이 단 한시도 평화로울 수 없는 까닭은 개개인들 모두가 '내가 사람이다'는 말에 세뇌 당했기 때문이며, 자신의 '자존심'이라는 말에 세뇌당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종교나부랭이들에 의한 세뇌, 이상이나 사상에 의한 세뇌, 교육에 따른 세뇌, 세놰, 세뇌... 모두가 그렇게, 사회적 동물로 길들여진 것이며, 길들여진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생로병사의 고통을 겪는 것이며, 삶이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오직 나만이 존귀하다는 자존심'이 고통의 원인이라는 말이다.

그 허구적인 자존심에서 벗어난 이후의 '나' 에 대해서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고 하는 것이며, 절대자, 유일자. 전지전능한 자' 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모든 것이며, 동시에 모든 것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이곳의 모든 말들에는 단지 주장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그 원인과 해답이 함께 있다.

인간들의 주장은 수천수만년전부터 있어왔지만, 해답은 있을 수 없으며, 문제만 더 늘어갈 뿐이다. 그대가 실존이라는 착각으로써 보는 현 세상이 그렇듯이 말이다.

 

세상이 그대를 속이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하여 그대가 그대를 속이는 것도 아니다.

총체적인 인류의 무지가 원인이다.

 

'내가 있다, 내가 사람이다, 내게 앎이 있다, 내가 옳다, 내게 자존심이 있다'는 말, 말, 말들이 모두 허구적인 앎이기 때문이다. 그 앎들... 말들... 모두가 그대 스스로 아는 앎이 아니라, 타인들로부터 끌어 모은 지식들 중의 일부이며, 한마디 말의 차이이며, 하나하나의 생각들의 어긋난 조합의 차이이다.

 

 

'너 자신을 알라'

'너 자신을 알면, 나는 사람도 아니다'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이기 때문이다.

'너 자신을 알라'

'너 자신을 알면, 네 안에 하나님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이기 때문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이 진리이다.

왜냐하면, 오직 그 길, 방법, 법만이 그대의 나를 알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릇된 앎의 지성체에서 진리체가 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진리의 길이라고 하는 것이다.

 

인연있는자여 그대에게 평화 있기를...

 

일념명사의 집 '도가' 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