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지성체이며, 유기체이다.
그런데, 사실 인간은 왜 인간에 대해서 지성체라고 하며, 왜 유기체라고 하는지. 그 원인 조차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없는 것 같다.
사실 지성체라는 낱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 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지성체이다. 사실 지성체가 지성체라는 말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면, 의학을 비롯한 모든 지식은 버려져야 할 쓰레기 같은 것들이다.
사실 의학의 무지는 그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인체를 해부한다는 일 자체가 가장 무식하고 어리석은 짓들이기 때문이다.
인체는 유기체라는 말을 했던 '히포크라테스'의 말은 철저히 무시된 무지한 짓들이기 때문이다.
인체를 기계와 같이 부품들로 이루어진 것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체는 유기체라는 말의 뜻 조차 이해 할 수 없는 무지의 산물이다.
인간은 인간의 기원을 모른다.
인간은 누구나.
지성체들의 지식은 '내가 사람이다'고 아는 앎에 대해서 의심해 볼 수도 없는 무지몽매한 것이다.
'내가 사람이다'는 말이 있다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라는 말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사람이다'는 앎(말) 자체가 올바른 앎이 아니라, 그릇된 말(앎)이다.
'내가 사람이다'는 말은 '내가 사람이 아니다'는 말과 상대적인 말이기 때문이다. 나가 있다는 말은 너가 있다는 말과 상대적인 말이기 때문이다. 나가 없다는 말은 너가 없다는 말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사실 지성체들은 이런 말에 대해서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언성을 높일 것이며, 주먹을 휘두르고 싶할 수도 있을 것이며,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아니 정신 나간놈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며, 그져 신비주의자 쯤으로 여기고 깊어할 것이다.
'내가 사람이 아니다'는 말에 대해서 이해 하는 일은, 끔찍한 사건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말이며, 다른 관점에서 보는 말이다. 인간의 관점이 아니라, 그대 자신의 순수의식의 관점에서 보는 말이며, 자연의 입장에서 보는 말이다.
인간들의 세상에는 문제만 무성할 뿐, 해답이 없다.
인생에 해답을 구할 수 없는 이유 또한, '나 아닌 것'에 대해서 '나'라고 아는 앎에 대해서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다만, 지성체들이 그런 사실에 대해서 지적으로나마 이해 할 수 있을때, 삶과 죽음의 모든 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수많은 방편을 들어 반복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지성체들에게는 '논리적'이라는 말이 있다.
'논리적'이라는 말은 '논의할 논' 자이며, '다스릴 리' 자로써의 논리적이라는 말이지만, 사실은 그런 뜻이 아니라 '언어의 근본 원리'를 깨달아 앎으로써의 그 언어의 이치를 따른다는 뜻이다. 언어의 근원에는 언어가 없다. 그런데 언어의 근원을 모르는 사람들이 '논리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니 논리가 무엇인지 모르는 자들이 언어의 이치를 논한다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언어의 근원에는 언어가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기원에는 인간이 없다.
이와 같이 '내가 사람이다'는 말(앎) 또한 근거가 없는 말이다.
'내가 사람이다'는 말은 '내가 사람이 아니다'는 말과 상대적인 말이다. 다만 인간들은 어린아이시절부터 '내가 사람이다, 우리는 사람이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며, '우리는 사람이 아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낯선 말일 뿐이다.
그대의 '내가 사람이다'는 말은. 말은 말이지만, 근거가 없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대가 말을 배우던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으나, 지금 말을 배우는 어린아이들을 보면, 그 아이들에게는 '내가 사람이다'는 말이 없으며, 내가 남자, 여자'라는 말, 말, 말... 그 말들에 대한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단지 어려운 말이 아니라, 인간세상에서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던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투리와 같이, 왜래어와 같이 낯선 말일 뿐이다. 그리고 알고나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며, 보편타당한 앎인 것이다.
'말을 배워서 자기를 인식하기 이전의 아이들'에게는 '나와 너' 라는 상대적인 생각, 분별심이 없었다는 뜻이다. 나와 너, 나와 다른 것들 등의 이원성이나 다양성들... 본래 있던 것들이 아니라, 타인들의 말, 말, 말을 듣고 배움으로써 생겨난 허구적인 것들이라는 뜻이다.
이런 말들...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에게는 상식적인 말이며, 보편타당한 지식이다. '내가 사람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지식과는 차원이 다른 지식이다. 그런 지식에 대해서 '올바른 앎, 참된 이치를 아는 앎, 통찰... 등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기억할 수 없는 어린아이시절을 경험한다.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경험은 경험이지만, 경험이 아니다. 그 경험의 오류에 의해서, 타인들의 말에 의해서 '내가 사람이다'고 알게된 것이며, 지금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며 자신을 주장하는 것이며,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이다.
올바른 앎이란, 그런 자신의 자존심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이라고 아는 앎이다.
누구나 젊고 건강한 시절을 경험한다.
그 시절에는 내몸을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착각과 함께, 내 마음이 내것이라는 착각을 동시에 하게 되며, 내 생각이 내생각이라는 착각으로써 욕망을 채위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 한다. 하지만 만족하여 평화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젊은이들의 자살율은 더 높아지는 것이 문명사회라는 인간들의 발전된 사회라는 사회의 실상이다.
그렇게 번뇌망상에 시달리다 보면, 몸은 병들게 마련이며, 마음의 상처는 깊어져만 간다. 더 나아가 자신의 마음에 꼭 드는 사람 또한 단 한사람도 찾을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면서 옹고집의 노인이 되어 버리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 또한 젊은시절보다 더 커져만 간다.
자신의 몸 조차 온전하게 가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죽는 날까지도 자신을 고집한다는 것, 그것에 대해서 내 인생이다'라고 주장하니 참으로 비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 아니한가?
나이가 들든 말든, 병이 깊어져서야 비로소 '내몸이지만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어렴풋이나마 이해 하게 된다. 그 이해 또한 이해가 아니라, 남들에게 의존하여 낫기를 바라는 것 정도일 뿐, 여전히 해답은 없다.
각종 수많은 질병들에 따른 고통은 그것들 경험하는 당사자들만이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다. 수술을 집행하는 자들은 수술로써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몸을 갈기갈기 찟어서 암덩어리를 제거하겠다는 무식한 짓들을 일삼는 것이며, 오직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환자들의 등골을 빨아먹는 무지한 짓에 대해서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것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일 자체가 무지의 소산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생겨나는 원인에 대해서 분명한 앎이 있다면... 그것들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며, 생겨나지 않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유일한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며, 수많은 비유법 중의 하나가 하나가 '도가의 약식'이다. '도가의 약식'으로써 만병이 치유될 수 있는 까닭은, 인간의 기원, 생명의 근본원인에 바탕을 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치를 이해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히포크라테스의 인간은 '유기체'다는 말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면, 최소한 살아 있는 동안 내내, 질병에 따른 고통을 겪지 않을 수 있는 것이며, 죽는 날까지 건강한 몸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이해 하기 시작한다면... 삶은 고통이 아니라 검증된 삶으로써 가치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죽음 또한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다는 말이다.
명색이 성인, 성자라는 인물들의 말 또한 그러하다.
그대 또한 한생각의 차이에 대한 이해로써 그들과 다름이 없는 사람이다.
이곳에 쓰여지는 모든 글들... 그 길에 대한 방법에 대한 설명들이며, 그것에 바탕을 둔 삶의 방식들에 대한 비유이다.
늙어서 드는 병이거나, 늙지 않아서 생기는 병이거나, 그것은 고통이 아닐 수 없으며, 그때 비로소 '내몸이 내 뜻대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사실 몸은 내것도 아니며, 나도 아니며, 나와 비슷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나라고 안다면, 그것은 유기체라고 알아야 한다는 뜻이며, 유기체라고 이해 할 수 있다면... 자연계의 야생동물들과 같은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선뜻 이해 할 수 없다면, 이곳의 수많은 글들로써 이해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그 이치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인체는. 인간은 누구나 한방울의 물로 시작된 것이다.
그 물의 다른 이름이 '정액'이라는 말로, 난자, 정자... 등의 말로 표현 되는 것이며, 이름지어진 것이다.
'태아'의 시작이 '한방울의 물'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없다. 천지만물의 조화와 같이 물이 변화하여 천지만물이 생겨난 것이며, 그 조화에 따라 변해 가는 것이며, 반복 순환되는 것이다. 자연계의 생태고리 현상과 같이.
물은 같은 물이다. 다만 변화하여 다르게 바뀌는 것이며, 그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 물이기 때문이다.
바람속에도 물이 있으며, 물 속에도 바람이 있으며, 땅에도, 하늘에도 물이 있다. 그 물은 수증기로 변하기도 하며, 독소로 변하기도 하며, 얼음으로 변하기도 하지만, 본질은 변함없는 물이다.
그 물을 뱀이 마시면, 독이 되며, 젖소가 마시면 젖이 되며, 인간이 마시면 역시 독이 된다. 천지만물들 중에서 가장 독성이 강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에서 분비되는 타액(침)의 독성이다. 인간 지식은 그 태액의 독성이 황소 다섯마리를 죽일 수 있는 만큼의 맹독성이라는 시실에 대해서 밝혀 낸 것 같다. 그것을 알아서 어디에 쓸 수 있단 말인가?
미친 개의 독성보다도 더 강한 독성이 인간의 구강에서 분비되는 타액의 독성이다. 미친개의 이빨에서 분비되는 독성은 인간의 타액의 독성과 같이 황소 다섯마리를 죽일 수 있을 만큼 강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사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인간의 타액의 독성이 야생동물들보다 더 강한 이유는. 인간동물은 여타 다른 동물들보다 더 다양한 음식물을 섭취하는 잡식성 동물이기 때문이다. 존재계에는 인간동물들을 제외한 수많은 생명체들, 유기체들이 공존한다. 그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유기체들 중에서, 오직 인간유기체들의 숫자가 가장 많은 까닭은 그런 방식(타액의 독성)으로써 생명을 보존했기 때문이며 발전(퇴화=번식)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유기체들과는 달리 인간유기체들에게만 불치병이나 난치병 등의 수많은 질병들이 생겨나는 까닭은. 인간유기체들만이 자연상태에서 벗어나기를 원했기 때문이며, 다른 유기체들과는 달리 불을 발견함과 동시에 '도구'를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간혹. 불치병이나 난치병으로써 시한부 생명을 선고 받았던 사람들이 삶을 포기하거나, 물질적인 욕망을 포기하고 산중으로 들어가서 불치병이 치유되는 사례들이 있다. 요행이지만, 올바른 앎으로 본다면 황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는 경우와 같이 자연의 원리에 적응하게 된 까닭이다. 인간 또한 본래 인간이 아니라, 자연계에 속했던 것이며, 자연과 분리되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식은 끊임없이 다른 약물을 창조해 내며, 더 좋은 음식이나, 민간요법 등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제 유산균이 헛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소금 또한 적당한 량을 섭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적당한 량보다 적은 량일 경우에 질병이 더 많이 생겼다고 주장한다.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방법이 없는 것이며, 알 수 없는 것들이지만... 그 주장들은 아득한 옛날부터 지금 이 순간 까지 어이져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무지이며 무한한 어리석음의 소치라고 아니라고 할 수 수 있겠는가말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인생에 해답이 없듯 질병들 또한 해답이 없다.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이 있기 때문에 그 길을 알리는 것이며 그 길로 가라는 뜻이다.
인간들의 모든 질병들 또한 자연계의 야생동물들과 같이 건강함으로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다만 인간들의 지식이 모두 허구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인식하지는 못하더라도, 지식으로써는, 의학 따위의 허구적인 앎으로써는 '불치병'이라는 말이 생겨났듯이 모든 질병들에 대한 원인에 대해서 이해 할 수도 없으며, 어떤 질병이든 완전한 치유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만큼이라도 이해 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뜻이다.
더욱 더 분명한 것은 현대의학으로써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퇴화된 신장기능의 재생이 '도가의 약식'으로 정상상태로 회복된다는 사실이다.
인간세상의 모든 원칙에는 원리가 없다.
인간이 인간의 기원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원리가 없는 원칙만 있는 것이며, 그것들 중 하나가 의학이라는 무지이며, 불치병을 양산해 내는 현대의학의 한계이다.
인간 지식의 한계를 초월한 앎에 바탕을 둔 '만병 통치식품'이 '도가의 약식'이다.
하지만 '도가의 약식'은 인간의 근본원인에 바탕을 둔 것이기 때문에 그 원리에 따른 원칙이 있다. 다만 최소한 그 원리에 대한 이해가 우선 되어야 하며, 원칙을 따라야만 한다. 설령 그 원리에 대해서 모두 이해 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생명의 원리에 바탕을 둔 원칙에 따른다면... 그것이 어떤 이름이거나, 불치병 난치병 등의 모든 질병은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질병들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본래 있던 것은 본래 없던 것이 나타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세상에는 오직 나의 말만이 진실된 말이다.
나의 말은 단지 니의 말이 아니라, 그대 자신의 순수의식에 바탕을 둔 말이기 때문이다.
우주의 근원에 바탕을 둔 말이며, 인간의 기원에 바탕을 둔 말이며, 생명의 기원에 바탕을 둔 말이다.
사실 이런 말들에 대해서 완전하게 이해 할 수 있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다만, 수차례 반복해 읽어봄으로써 이해게 다갈 수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일체유심조의 더 깊은 뜻' 이라는 제목의 글을 수차례 더 읽어 봄으로써 어렴풋이나마, 그대의 진정한 나에 대한 이해가 다가올 수 있다.
그대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대와 인류에게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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