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내용은 다른 곳에서 퍼온 글이며, 소위 '옛 조사'라는 언술이 뛰어난 중생들의 어리석음을 대변하는 내용들이기에 소개하려는 것이며, 공부인들에게 올바른 앎을 알게 하기 위한 방편이다.
32칙 임제와 불법의 대의 |
“시절인연 도래한 지금 여기에 깨달음…” |
〈벽암록〉 제32칙에는 임제 선사에게 불법의 대의를 질문하고 깨달음을 체득한 정(定) 상좌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싣고 있다. 불법의 대의는 불법의 현지(玄旨)를 말하는데, 번뇌 망념을 초월하여 불성을 깨닫는 견성(見性)과 반야의 지혜를 체득하여 정법의 안목을 구족하는 불법의 근본정신을 말한다. 불법의 대의를 체득하면 반야의 지혜를 구족한 정법의 안목으로 일체의 만법을 올바르게 볼 수 있기 때문에 만법의 차별경계에 걸림 없이 무애자재한 지혜로써 보살도의 삶을 전개 할 수 있는 것이다. 정법의 안목을 구족한다는 것은 불법의 대의를 체득한 경지를 말하는데, 임제는 이러한 선사를 ‘무위진인’이라고 하였고, 진정한 견해를 갖춘 사람이라고 하고 있다. 성본스님 / 동국대 불교문화대학 교수 ---------------------------------- |
사실. 이런 글에 대한 설명은.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만이 이해 할 수 있는 말이다. 만약에 '불법'이라는 말을 사실로 여기는 광신자나 맹신자들의 견해로써는 절대로 이해가 불가한 말이며, 하근기중생으로써도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만약에 일념법수행으로서 마음이 생각에 불과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실소를 금할 수 없는 내용들이다.
만약에 일념명상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깨달음을 증거하는 말이라는 '별은 별이 아니다'는 말에 대해서 '명색의 동일시' 에 대한 비유법이라고 이해 하는 사람으로써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 영혼은 영혼이 아니다, 또는 불법은 불법이 아니다'라는 말들이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라고 이해 하는 사람이라면... 선사들의 선문답들에 대해서 어리석은 자들의 말재간으로 볼 수밖에 없는 말들이다.
그런 앎이 아니라면... 여전히 우이독경이다.
깨달음은 이런 것이다, 저런 것이다, 라는 분별들.... 우주보다 더 무한한 어리석음이니. 무용지용이 아니라 무용지물들인 것 같다.
사실 석가모니는 자신의 '깨달음'에 대해서 '불법'이라고 말하지 아니 하였다. 중도에 앉았으니 그 이름 '부처'로다' 라는 방식으로 설명했다. 참으로 올바른 말이다. 왜냐하면 한글로 '깨달음'이라는 말로 표현되지만, 그것은 이름지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름지을 수 없다는 뜻은 언어가 상대적이기 때문이며, 상대적인 언어로써는 '상대적이지 않은 것'에 대해서 표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상대적이라는 것에 대한 비유법에서 섧명한 바와 같은데. 낮과 밤에 대한 비유이다. 만약에 어두운 밤이 없다면, 밤이라는 말이 필요치 않은 것이며, 밤이 없는 낮만 지속된다면, 낮이라는 말 또한 필요치 않은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변함없이 영원한 것은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다. '부처' 또한 이와 같은 맥락으로 표현되는 말이며, '도' 라는 말 또한 '참다운 도는 언어로 표현될 수 없다'는 노자의 말 또한 이와 같은 맥락이다.
사실. '깨달음'이 대도무문이 되어버린 까닭은 위의 말들과 같은 소위. 선사라는 하근기 중생들의 어리석은 말재간들이 주요 원인인 것 같다. 석가모니의 말이 왜곡되면서 우상숭배사상으로 전락된 탓이며, 석가모니를 우상으로 숭배하는 자들에 의해서 '불법'이라는 말이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불법이라는 말은 '석가모니불' 자와 '법 법' 자로써의 불법이다
사실. 올바르게 깨달아 아는 사람이라면 '그것'에 대해서 '불법'이라고 말할 수 없다. 석가모니 또한 '이 법'은 내가 만든 것도 아니며, 내가 창안한 것도 아니다. 다만 본래 있던 것에 대해서 스스로 깨달아 안것이다. 라고 말한 까닭이다.
'노자'는 그것의 이름을 '도'라고 짓겠다는 방식으로 표현했으니... 올바른 앎이라고 하는 것이다.
'명색'이 불법이며, 명색이 부처이며, 명색으로서 깨달음 이라고 하는 것이다.
만약에 깨달음의 길을 가는 자들이 그것에 대해서 '불법'이라거나 '불도'라고 이해 한다면, 삿된 길을 가는 자들이며, 어긋난 길을 가는 자들이다. 부처를 염두에 둔 수행은 이미 어긋난 길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라는 금강경 사구게의 내용이다.
불법은 불법이 아니다.
깨달음이란 불법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의 근원을 보기 위한 일념의 행위로써 남들에게 묻거나 들어서 아는 앎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 깨달아 아는 자신의 마음의 허구를 보는 것이다.
이 말을 기억하라.
이 말을 항상 기억하라.
석가모니 가르침의 깨달음을 얻기 위한 더 분명한 말은. '무상한 것(육체)은 나가 아니다, 수상행식(마음작용)도 이와 같다, 그것을 관찰하라'는 말이다.
이에 대해서 일념법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위의 내용들에 보면. 임제선사와 황벅선사라는 머리깎은 중생들의 몽둥이 찜질방법과 멱살을 잡고 빰을 한대 후려친다는 말에 대해서 당연한 절차인듯 칭송하는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무식하고 어리석은 자들의 작태이다. 거기다가. '할' 이라고 소리치기도 하며, 심지어 주장자를 내려 치기도 하는 등의 웃지못할 전설들이 많기도 한데.
그런 하근기 중생들... 모두가 자신의 마음을 찾았던 자들이 아니라, 불법을 구하려 했던 무식하고 이러석은 자들의 말재간들일 뿐, 쓸모 없는 것들이다. 그러니 무용지용이 아니라, 무용지물이다.
한대 얻어 맞고나서 '크게 깨달았다'는 방식이다.
대체 무엇을 깨달았다는 말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한대 얻어 맞거나, 세차례 얻어맞고나서 크게 깨달았다면, 대체 무엇을 깨달았다는 말일까? 무엇에 대해서 불법의 대의라고 하는 것일까?
법 또한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본래무일물'이라고 하는 것이며, 말변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 이치조차 깨닫지 못한 자들이 서로가 깨달았다고 주장하며, 말재간을 부리는 것들이니, 어찌 하근기 중생이라고 아니할 수 있겠는가말이다.
'무위진인'이라고 하며, 걸림이 없다고 한다.
하늘에 구름이 걸릴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는 방식이다.
망상이다.
만약에 석가모니에게 '불법의 대의'가 무엇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석가모니가 내려와서 멱살을 잡고 빰을 한대 후려 쳤겠는가? 아니면, 달마대사가 '할' 이라고 소리치거나, 주장자를 내려 치는 짓들을 할 수 있겠는가? 어리석은 자들의 괴변이다.
그대가 수행자든 아니든. 깨달음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 지적으로나마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대의 삶에 해답이 없다면, 죽음이 두렵다면, 그 해답을 찾는 방법이며, 가치 있는 삶, 검증된 삶을 위한 유일한 방법에 대한 알아차림에 대해서 깨달음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삶이, 죽음이, 고통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알기 위한 방법이다.
그대의 삶이 기쁨과 즐거움, 평화가 아니라면, 그것은 남의 탓이 아니며, 세상탓이 아니라 자신이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 만큼, 꼭 그만큼만 타인들의 마음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대에게 평화 있기를...
일념법. 일념명상법이 진리이다.
왜냐하면 그대 마음의 근원을 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대와 인류에게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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