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론 - 잘사는 삶 · 올바른 삶

가치있는 삶. 그 허구와 진리 / 인간에게 가치 있는 삶이란 없다 - 삼매. 열반. 득도란? 진리란?

일념법진원 2014. 10. 3. 04:45

사실. 인간에게 가치 있는 삶이란 없다.

가치 있는 삶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가장 어리석은 자들이며, 가장 가치 없는 삶을 사는 자들이다.

'가치 있는 삶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가치 있는 삶을 산자가 아니라, 치졸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말재간을 부리는 자들이기 때문이며, 근거가 없는 자기주장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들의 '내가 사람이다'는 말 자체가 근거가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우스운 일이다.

인간들의 삶이라는 말이 참으로 우스운 말이다.

왜냐하면 '삶이 있다'는 말은 '삶이 없다'는 말과 상대적인 말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에게는 삶이 없다.

현제도 없으며, 미래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 고 한 것이다. 

 

사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사실. '네가 너 자신을 알지 못한다면, 살아갈 가치가 없다'는 말이다. 

 

 

사실. 인간들의 '내가 있다'는 말과 '내가 사람이다'는 말 자체가 사실적인 말이 아니라, 허구적인 말이다. 왜냐하면, '내가 사람이다'는 말은 '내가 사람이 아니다'는 말과 상대적인 말이기 때문이며, 상대적인 모든 것들은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들의 '내가 사람이다'는 말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내가 사람이다'는 말에는 근본원인이 없다. 

인간은 누구나 '내가 사람이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주장들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근거가 없는 주장에 바탕을 둔 지식들... 어찌 감히 가치 있는 삶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사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이런 근본적인 질문으로서 자신의 나의 근원을 찾으라는 말이며, 그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 스스로 깨달아 알때, 그때 비로소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며, 그 근원, 의심의 근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검증된 삶, 준비된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삶과 죽음이 상대적인 말로써 그 또한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말들에 대해서 또 다시 지식으로 받아들인다면, 세상에서 가장 무식하고 어리석은 자들이다.

근거도 없는 지식들... 모두 버려져야만 비로소 자신의 나를 이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자신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것이 착각이다. 자신의 나가 있다는 말, 앎 자체가 근거가 없는 낭설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의 지식이라는 것은 허무맹랑한 것이며, 무지몽매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신은 누구입니까? 라고 물었을때. 당연하게 '나는 이러 이런 사람이다'며... 과거의 기억들에 대해서 줄줄이 쏟아 놓기 때문이다. 과거의 기억. 즉 기억된 생각들에 대해서 '나' 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사실. 그 기억들... 기억세포에 저장된 생각, 생각, 생각들, 무수히도 많은 생각들.. 그 모든 생각들 중에서 '내가 있다, 내가 사람이다'는 생각이 가장 처음 기억세포에 저장된 생각이며, 모든 생각의 바탕에 있는 생각이다.  

 

그 첫 생각. '내가 있다는 생각, 내가 사람이다'는 생각. 그리고 내가 여자 또는 내가 남자라는 생각.

그 생각은 과연 처음부터 그대가 스스로 깨달아서 아는 그대의 생각이었는가에 대해서 사유해 보라는 말이다.

그렇다. 사실. 타인들로부터 들어서 아는 말, 말, 말들.... 그 말들에 대해서 기억하는 것이며, 그 기억된 생각들에 대해서 '내가 있다, 내가 사람이다, 내가 안다' 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아니라는 근거는 없다.

 

단지 낯선 말일 뿐이다.

그대의 기억세포에 저장되지 않은 말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다지 어려운 말은 아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거나 중학생 정도의 수준이라면, 아니 한글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가 가능한 말들이며, 현시대에서는 가장 보편적인 말들이다. 다만 그대는 이런 사실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을 따름이다.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기 때문에 낯선 말일 뿐이다. '내가 사람이다'는 말만 들어봤을 뿐, '내가 사람이 아니다'는 말은 세상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기 때문에 낯선 말이며, 단지 낱선 말이기 때문에...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주장하고 싶을 것이다. 

 

사실. 인간들의 '내가 사람이다'는 말은 사실.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단지 어린아이시절에 타인들로부터 들어서 아는 말이 '내가 사람이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타인들로부터 들어서 아는 말들... 그 말들에 대해서 '내가 사람이다'고 아는 것이며, 내가 이런 사람이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사실. 소크라테스는 그대에게. 인간들에게 그런 사실에 대해서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만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인간이 인간의 근원을 모르면서 가치 있는 삶이 있다고 주장하는 일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인간의 근원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대 또한 그대의 근원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대가 아는 모든 것들... '내가 사람이다'는 앎 조차도 그대 스스로 깨달아 아는 것이 아니라, 타인들로부터 들어서 아는 것이며, 그 타인들 또한 다른 타인들로부터 들어서 아는 것들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내가 있다, 내가 사람이다, 내가 여자다, 내가 남자다, 내게도 자존심이 있다, 내게 감정이 있다, 내게 느낌이 있다, 오직 나만의 느낌, 감정, 비밀이 있다'는 말, 말, 말들, 앎, 앎, 앎들, 지식들... 과연 누구로부터 들어서 아는 것들일까?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는 내가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 그것만은 분명히 안다' 고 했다. 

그렇다. 

남들, 타인들로부터 들어서 아는 것들. '내가 사람이다'는 앎. 그 자체가 올바른 앎이 아니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기억할 수 없는 어린아이시절부터... 타인들로부터, 그 타인들 또한 다른 타인들로부터 들어서 아는 말들. 그런 말들에 의해서. 그런 말들에 세뇌 당함으로서 '내가 있다'고 알게 된 것이다는 말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그런 사람들.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깨달아 아는 것은 단 하나도 없는 사람들. 그들이 '삼매, 열반, 득고' 라는 말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고 주절거린다. 진리라는 말에 대해서 주절거린다. 그 또한 타인들로부터 들어서 아는 말이다. 그런 말들... 그런 말들의 뜻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말들... 타인들로부터 들었던 말, 말, 말들, 그 말들을 상상하는 것이다. 이해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삼매, 득도, 열반, 진리... 라는 말은 같은 뜻의 다른 표현들이다. 

 

지식은 무엇인가? 

지식은 지식이 무엇인지 조차 이해 하지 못한다. 

지식이 지식을 이해 한다는 것은, 왜 지식이 끝이 없는 것인지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다. 지식이 왜 끝이 없는 것인지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다면, 그것은 지식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지이며, 무명이며, 무식이다. 식자우환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삼매. 득도. 열반... 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들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들이 '空' 이라는 말과 '無' 라는 말이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공' '무' 라는 말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이해와 오해는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일 뿐, 올바른 앎은 아니다. 인간의 '공, 무'에 대한 이해는 '공, 무' 라는 말, 말, 말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이다. 기억세포에 저장된 말, 말, 말들로써 다시 기억세포에 저장된 또 다른 말, 말, 말말들을 상상하는 것이다. 타인들로부터 들었던 말들이 기억세포에 저장 된 무수히도 많은 생각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지금 이순간, 현실, 현제가 있다고 믿는다. 

사실. 믿는 것이 아니라 기억세포에 저장된 낱말들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이다. 지금 이 글들 또한 기억세포에 저장 되겠지만... 저장될 수 없다. 왜냐하면, 낱선 말들이기 때문이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이 있다면, 그 말들은 기억세포에 저장된 말들이거나 또는 기억세포에 저장된 말들과 유사한 말들이며, 그 유사한 말들 또한 기억세포에 저장된 다른 말들이다. 

 

 

지금. 그대가 지금이라고 말하는순간 순간 순간... 그 순간은 항상. 그 순간이라고 말하는 순간 순간 기억세포에 저장되며 기억으로, 생각으로 남겨진다. 그대는 지금 이순간을 붙들 수 없다. 이 순간에 머무를 수 없다. 찰나지간이라고 말하더라도 이미 지나간 것이며, 그것에 대해서 과거라고 한다. 현제, 현실을 살고 있다는 착각에서 깨어나야만 비로소 이런 말에 대해서 이해가 가능할 수 있다.

 

 

인간이 지식으로서 인지할 수 있는 것은 현제나 미래가 아니라, 오직 과거 뿐이다.

사실. 무식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이 순간을 살아라' 라는 말을 인용하지만, 그들은 '이 순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타인들로부터 들었던 말, 말, 말들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이다. 그 상상 또한 타인들의 말에 바탕을 둔 상상이다. 그러니 그대의 모든 상상들, 사념들... 허구적인 것들이다. 이런 말들 또한 그대에게는 허구적인 것들이다.

그대가 스스로 깨달아 알기 이전에는 말이다.

 

 

결론은 항상 같다. 

그대 자신의 나를 알아야만 비로소 가치 있는 삶이라는 말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육하원칙에 의해서. 내가 어떻게 지금의 나가 된 것인지. 내가 어떻게 '내가 사람이다'고 알게 된 것인지. '내가 왜 사는 것인지, 내가 왜 죽는 것인지' 에 대해서 분명히 이해 할 수 있을때, 그때 비로소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검증된 삶, 준비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이런 글들 또한 지식. 즉 기억된 생각들로써 이해 하려고 애쓰겠지만, 애쓰지 말라. 결국 또 다른 지식들. 타인들로부터 끌어모은 정보들로써 이 글들을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쓸모 없는 지식들, 타인들로부터 끌어 모은 정보들, 말, 말, 말들.... 그 지식들, 그 지식들에 바탕을 둔 사념들이 조금이나마 사라져야만 이해 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억된 생각들을 지우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지운다는 말 또한 지운다는 또 다른 생각이기 때문이다. 생각을 버리는 일 또한 그러하다, 왜냐하면 생각을 버린다는 일 또한 생각을 버린다는 또 다른 기억된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 기억된 생각의 범주를 벗어난 생각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의 유희이며, 생각의 휴희라고 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생각의 윤회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관념으로써는 절대로 그 방법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그 길을 가라는 것이 이 글의 요지이자. 다른 글들의 요점 또한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자신의 나를 알라는 것이다.

 

이 길, 법은 유일한 것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영원한 것이며, 불변의 진리이다. 

왜냐하면 오직 이 방법으로서만 '진리'를 이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직 일념법만이 자신의 마음의 근원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가치 있는 삶을 위한 유일한 길이며, 검증된 삶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그대와 인류에게 영원한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