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말에 만병의 근원은 마음이다'는 말이 있다.
이런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올바르게 아는 사람도 없다. 다만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만이 올바르게 아는 앎으로써 모든 질병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은 사람들이다.
일념이라는 말을 아는 사람들과 일념이라는 말의 신비스러운 뜻을 아는 사람과의 앎의 차이는 삶과 죽음과의 차이와 같다. 왜냐하면 인간은 삶이 무엇인지 모름으로 하여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며,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사람은 삶이 무엇인지 앎으로써 죽음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지성체다.
사실 인간의 지식이라는 앎은 말, 말, 말의 뜻에 대해서 아는 앎이 아니라, 말, 말, 말, 낱말들에 대해서 추측하거나 상상하거나 등의 환상을 쫒는 앎이다. 말을 말로 아는 것이 아니라, 소리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엄마라는 말에 대해서 이해 하는 사람은 엄마 뿐이다. 그것 또한 서로가 다르게 해석할 수밖에 없다. 어린아이는 엄마에 대해서 안다고 생각한다. 어린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엄마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린아이가 엄마를 이해 한다는 말' 웃을 수밖에 없는 말이다.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의 앎이 이와 같다. 말을 배우는 아이가 엄마에 대해서 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이.... 사람들의 끊임없이 주절거리는 자기 주장들이 세살먹은 어린아이들의 '나는 엄마를 안다'는 앎과 똑 같은 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은 뭇 인간들의 지식에 대한 주장들에 대해서 빙긋이 웃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유구무언이다. 그져 듣는다. 그리고 미소 짓는다. 침묵이 금이라는 말의 뜻을 아는 사람들이며, 벼가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 하는 사람들이다. 인간들의 모든 지식이 허구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이기 때문이다.
간혹. 이곳 카페의 글들은 어려운데, 화원의 브로그에 있는 글들은 이해가 간다는 사람들이 있다. 착각이다. 말은 같은 말이지만 그 뜻은 삶과 죽음과의 차이만큼이나 크기 때문이다. 이해와 오해는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라고 하는 이유이다.
인간은 누구나 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이 별개의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그것은 둘이 아니다. 하지만 하나도 아니다. 둘이지만 둘이 아니며, 하나지만 하나일 수 없다. 왜냐하면, 육체는 생각이 개입되지 않으면 하나의 순수한 물질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 또한 생각이 개입되지 않는 육체를 경험한다. 다만 깊이 잠든 동안이기 때문에 기억할 수 없으며, 상상할 수 없을 따름이다.
인간에게 고유한 마음이라는 것은 애초에 없다.
왜냐하면, 타인들로부터 들어서 아는 말, 말, 말들에 의해서 구성된 것이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만든 것이 아니라, 타인들의 말에 의해서 가공된 것이다. 그 타인들 또한 다른 타인들로부터 들었던 말, 말, 말들에 대해서 기억하는 것들... 그것들에 대해서 마음이라고 이름 지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찾다보면... 찾는 동안에는 마음이 없다. 찾지 않을때에만 작용하는 것이 마음이기 때문이다. 이런 말 또한 일념을 깨치지 못한 사람이라면 말은 알아듣겠지만... 이해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져 이런 말, 말, 말들에 대해서 상상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은 지식이 아니라 무지라고 하는 것이다.
그대가 무지하고 싶어서 무지한 것은 아니다.
그대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닌 것과 같다. 그대가 살고 싶어서 사는 것도 아니며, 그대가 죽고싶어서 죽는 것도 아니다. 그대가 원하는 것들 모두가 그러하다. 그대가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이유는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는 타인들로부터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타인들 또한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대가 그대 자신의 마음을 모르는 까닭은, 그대의 경험이지만 경험자가 없던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때 처음 알게된 앎이 '육체가 나다'는 앎이다. 물론 '육체가 나다'는 지식은 그대 스스로 깨달아 알게된 앎이 아니라 타인들로부터 수천수만번 반복해서 들었기 때문에... 세뇌 당한 결과이다. 앵무새에게도 그런 방식으로 반복해서 가르치다 보면, '육체가 나다'라고 말할 수 있으며, '내마음이 괴롭다'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인간들의 '내가 있다, 내가 사람이다'는 주장들 또한 앵무새의 지저귐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이라는 말에 대해서 관심이 없던 사람들 또한 '하나님이 아버지다' 라는 방식으로 세뇌 당하게 되면 광신자나 맹신자가 되어버리는 이치와 같다. 모든 종교들이나, 명상집단들 또한 그와 같은 방식으로 다시 세뇌 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스스로 자아도취에 빠지는 일들 또한 그와 같은 맥락이다. 굳이 하나님을 믿는 자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들과 학문들, 그리고 과학이나 의학 등의 모든 지식들이 그러하다는 뜻이다.
진리는 단순하다는 말과 같이 이치는 단순하다.
왜냐하면 '육체가 나다'라는 말과 '육체가 나가 아니다'는 말은 상대적인 말이며, 한 생각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다만 모든 인간들은 다른 인간들에게 세뇌 당함으로써 '육체가 나다'라고 알게 된 것이며, 그 '나'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대에게 세뇌 시킨 다른 사람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세뇌 당한 그대로 그대에게 세뇌 시키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의 모든 삶들... 환상이며, 몽상이며, 착각이라고 하는 것이다.
'육체가 나다'라고 생각하든, '육체가 나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든, 그 생각이 한생각의 차이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리고 그대 또한 '육체나 나다'라고 생각하든, '육체가 나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든, 그것 또한 그대의 자유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육체가 나다'라는 생각도 편견이며, 단견이며, 소견이며, 또한 '육체가 나가 아니다'는 생각 또한 단견이며 소견이며 편견이다. 마음 또한 그러하다. '내마음'이라고 생각하든 '내마음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든 둘 중의 하나겠지만... 이 또한 소견이며, 단견이며, 편견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 아니한가?
만약에 그렇지 않다고 반론을 제기 하려 한다면, 그 이유가 분명해야만 한다. 그져 남들이 그렇다고 하니. 나도 그렇다는 방식이라면... 그대에게는 '나'가 없는 것이다. 그대의 나는 '나'도 아니며, 그렇다고 하여 '남'도 아니다.
대체 그 무엇에 대해서 '나' 라고 주장한단말인가?
사실 그대는 자신이 존재한다고 알지만, 그 앎 또한 아무런 근가가 없는 앎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고 주장하지만, 그 주장 또한 그대의 주장이 아니라, 타인들로부터 끌어 모은 정보들에 대해서 '내가 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도대체 그대 자신만의 앎이 단 하나라도 있기는 있는 것인가?
인간이 어리석어서 자신의 앎을 주장한다. 하지만 자신 스스로 아는 앎이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말이다.
사실. 이런 사실 즉, 내가 스스로 아는 앎이 단 하나도 없다는 말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내가 스스로 아는 앎(지식)이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앎이 올바른 앎이라는 뜻이다.
소위 '깨달음의 세계, 도, 깨달음, 성령, 불성, 하나님, 부처' 등으로 표현되는 말들... 사실은 환상적인 것들에 대한 신비로운 것이 아니라, 이런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에 대한 비유법들이며, 방편설들이다.
이곳의 모든 말들 또한 바탕이 그러하다.
올바른 앎, 깨달아 아는 앎이란, 우주의 근원을 아는 것이며, 천지만물 만상의 기원을 아는 것이며, 인간생명체의 원리를 아는 것이다. 다만 인간의 통념이나 관념에 따른 모든 사념이 사라져야만 아는 앎이기 때문에 일념볍, 일념명상법으로써 그 길을 가라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들의 모든 고통은 '육체가 나다'라는 편견, 소견, 단견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며, 무지에 바탕을 둔 몽상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육체가 나다'라는 한 생각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며, 삶과 죽음의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에 '육체가 나가 아니다'는 한생각이 고정관념으로 바뀐다면... 삶과 죽음이라는 말은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의 '내가 사람이다, 내 인생이 있다, 내가 죽는다'는 말들에 대해서 말도 안되는소리이며, 어불성설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곳 모든 글들... 인간생명체의 원리에 바탕을 둔 말들로써, 인간이 인간으로써 영원한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법, 방법, 삶의 길을 전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이해 될 수 없는 말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모르는 바 아니다.
이해 될 수 없는 까닭은,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옳지 않는 말이 아니라, 단지 사투리와 같이 낯선 말들이기 때문이다.
인간들에게 나타나는 모든 질병들 또한 그러하다.
인간의 마음이 교묘하고 미묘한 까닭은 '죽을 병'에 걸린 시한부생명을 선고 받은 사람들 조차도 그 생각이 끊임없이 변해간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자신의 삶이 힘겹거나 고통스럽다고 생각 하던 사람들이거나, 또는 타인들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이거나, 또는 누군가에게 관심을 끌고 싶어 했던 사람들... 특정한 사람으로부터 병든상태와 같이 지속적인 관심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자신의 병이 치료되지 않기를 원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욕망의 다양한 형태이다.
육체가 나다라는 착각에서 비롯된 육체에 대한 집착이 모든 욕망의 원인이며, 그 욕망이 천태만상으로 드러나는 것들이 허구적인 인간들의 삶이라는 것이다. 우울증이나, 신들림, 빙의... 정신질환 등의 모든 질병들 또한 육체가 나라는 착각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암을 비롯한 중풍이나, 통풍이나, 마비 증상들, 신경성 질병들, 정신질환들... 모두 마음에서 비롯된 것들이며, 통넘이나 관념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앎이 겨자씨 만큼이라도 생겨난다면...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것이며, 일념법으로써 빙의 및 신들림까지도 치유될 수 있는 것이며, 도가의 약식으로써 육체의 모든 질병들 또한 온전하게 치유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몸 조차도 스스로 관리할 수 없다면, 어찌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말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일념법 일념명상법이 진리이다.
왜냐하면 그대의 마음의 근원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도가의 약식'이 진리이다.
왜냐하면 그대의 몸에 나타난 모든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인연있는자 그대에게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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