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 의 본래의 뜻은... '실체' 라는 이름으로써만 존재하는 것일 뿐, 본래 없는 것이다.
인간은. 인간의 마음과 육체를 지배하는 비물질적인 것으로써의 '실체'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사실. 사전적 의미를 보니. 육체속에 깃들어 생명을 유지하고 마음을 움직인다고 여겨지는 무형의 실체에 대해서 '영혼'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이 인간들의 지식이며, 지식의 한계이다.
사전의 설명으로볼때 인간은... '영혼'이 있으며, 영혼이 '실체'라는 앎으로써의 상대적인 앎의 지식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시 '실체' 라는 말을 검색해 보니.
국어 실체 [
그리고
실체(實體)는 언제나 있으며 없어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변전(變轉)하는 것의 근저(根底)에서 변함이 없는 것으로 본체(本體)라고도 한다.
생각하는 것, 표현하는 것은 가능하나 보거나 만질 수는 없는 것이다. 이를 본질적으로 문제삼은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는 "실체(實體)는 주어(主語)가 되며 술어(述語)는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스어로 우시아(ousia)이며 구체적으로 어떤 개체를 가리켰다. 데카르트는 그 자신에 의하여 그것을 위해 다른 것이 필요하지 않은 것을 실체라고 말했다
--- 하근기 중생들, 언술이 뛰어난 중생들의 주장일 따름이다---
그리고 다른 설명을 보니.
인도 자이나 철학의 기본개념.
(산스크리트로 '實體'를 뜻함)
자이나 철학에서는 운동(dharma)·정지(adharma)·공간(ākāśa)·물질(Pudgala)·영혼(jῑva)의 5가지가 존재의 실체를 구성한다고 하며, 이들을 존재의 불변하는 범주로서의 연장적 실체(延長的實體 astikāyas)라 한다(→ 색인 : 다르마). 운동은 자이나 철학 고유의 의미로 말하면 움직임의 매개체이며 정지는 멎음의 매개체로서 이 두 실체는 사물이 움직이고 멎을 수 있게 한다. 공간은 사물이 존재하는 장소를 제공하며 세간적 공간(世間的空間 lokākāśa)과 초세간적 공간(a-lokākāśa)으로 나누어진다. 초세간적 공간은 세간적 공간보다 무한히 크지만 텅 비어 있다. 이 3가지 범주는 유일하고 정적이다. 물질과 영혼은 동적이며 무한하지만 수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물질만이 지각 가능하며 생명만이 영혼을 가지고 있다. 자이나 철학은 인도철학에서 가장 처음으로 물질과 영혼을 완전히 분리시킨 학파이다 (→ 색인 : 지바). 뒤에 실체의 6번째 범주로 시간(kāla)이 추가되었다. 이것은 영원하지만 전 우주에 편재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세계의 가장 외곽층에서는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브리테니카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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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들로써 이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져 서로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있다' 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논리적이거나 또는 육하원칙이라는 법칙에 적합해야만 한다. 하지만... 영혼이 실체다는 주장은 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영혼이 있다'는 무조건 적인 주장이다. '실체'가 있다는 주장 또한 그러하다.
단지 인간들은...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어떤 것이 있다'는 방식으로써... 영혼과 실체를 주장하는 것이다. 물론 인간은... 왜, 우리가 인간인지 모르기 때문이며, 마음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며, 왜 사는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며, 사실 존재의 이유가 무엇인지 조차 모르면서 자기를, 자존심을 주장하기 위해서, 서로가 잘났다고 주장하기 위해서,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기 위해서, 서로가 더 뛰어나다고 자랑하기 위해서... 인간이 인간이면서 인간들끼리 경쟁, 투쟁, 전쟁을 일삼는 일에 대해서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는 무한한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살아갈 가치도 없는 존재라고 하는 것이다.
인간들의 삶들... 서로가 죽는 날까지 갈등과, 다툼, 투쟁, 경쟁, 전쟁을 일삼는 짓들에 대해서 '인생'이라고 주장하면서도 또한 서로가 행복, 자유, 평화를 주장하는 양 극단을 향해서 달려나가는 무지, 무식, 무한한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를 모른다면... 살아갈 가치도 없다고 하는 것이며, 길잃은 어린 양새끼와 같다고 하는 것이며... 짐승무리들과 다를 바 없는 중생무리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인간들의 삶 자체가... 인간과 인간들간의 자유경쟁(전쟁. 투쟁. 다툼)논리를 주장하면서 또한 서로가 행복한 사회를 건설하자는 논리 자체가 모순이지만 모순인 줄도 모르는 무지에 대해서 아는 앎이 '지식'이라는 앎이기 때문에 인간들의 지식에 대해서 우주보다 더 무한한 어리석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인간류의 역사를 보라. 그리고 현시대를 보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쟁들... 서로가 더 잘살아야 한다는 각 계층들마다의 투쟁들, 인간세상의 모든 이합집산들간의 서로가 더 이익을 챙기려는 투쟁과 갈등들... 그 속에서 어찌 행복, 자유, 평화를 주장할 수 있겠는가말이다.
'진리' 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를 보니.
진리. 명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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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의 언어 자체가 혼돈이다.
인간들의 지식, 앎들... 말, 말, 말, 언어들을 보니, 일관성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
몸에 깃들어 있는 무형의 실체가 영혼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우주의 근원적 원리가 '진리' 라고 주장하는데, 또한 인간들의 '자아'에 대해서는 '실존'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실존이라는 말은 '실제로 존재하는 유일한 것'이라는 뜻으로써, 나의 삶이 있으며, 나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도 없거니와 '대신 죽어줄 수 없기' 때문에 개체적 '자아'가 실존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류가 욕망의 노예, 욕망의 화신으로 가공됨으로써 가치 없는 삶, 투쟁을 일삼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으면서도... 욕망과 탐욕을 채움으로써 결코 인간세상 어느 누구도 스스로 만족하여 평화로울 수 없는 까닭은, 사실상 자신의 내면, 즉 마음이 생겨나기 이전의 잠재의식으로써 드러날 수 없는 간절히 갈망하는 진리에 대한 갈망(욕구)에 대해서는 지각능력으로 감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들이 궁극적으로 갈망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진리인 것이다.
왜냐하면 지식은 분별로써만 존재하는 것이지만, 진리 안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며, 누구나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시실. 진리는 단순하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사념들속에 존재하는 '생각' 이라는 낱말이기 때문이다.
단지 인간은 '생각의 생멸현상'에 대해서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사념의 윤회현상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생각의 원리' 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며, 생각의 생멸현상에 대해서 깨달아 알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법에 대해서 '일념법, 일념명상법' 이라고 하는 것이며, 인간의 관념, 사념으로써 '진리'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진리'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인간들의 지식이라고 여기는 모든 사념들은 기억세포에 저장되어 있는 낱말들이며, 언어들이다. 그리고 그 언어들의 유기적인 작용에 의해서 일어나는 상대적인 언어에 대해서 사념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념들은 상대적인 말들로써 ... 즉 양 극단을 이루는 말들인 것이다. '좋다, 나쁘다' 는 말들과 '나와 너' 라는 분별, 그리고 '선함과 악함' 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그러하다.
사실, 인간들의 스스로 생각할 수 있다는 생각이 오류이다.
왜냐하면... 가령, 영혼이 있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겠지만.... 감히 영혼이 없다고는 주장할 수 없가 때문이며, '내가 사람이다' 라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나는 사람이 아니다' 라고 주장할 수 없는 이치와 같은 맥락이다.
자신의 생각이지만... 진정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생각이라면, '나는 사람도 아니다' 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나는 신이다' 라고, 나는 하나님이다' 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 그대의 생각은 그대만의 고유한 생각이 아니라는 뜻이며... 다만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생멸을 반복 순환하는 윤회현상에 의존하여 존재하는 것이며, 생각의 윤회현상, 생멸현상에 의해서 '자아'와 '우주'를 경험하는 것이며, 생로병사의 고통을 경험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인간들의 지식으로써 주장하는 '실체' 와 '우주의 근본원리'는 단지... 생각의 환상물질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우주가 있다는 생각도 인간의 생각이며, 영혼이 있다는 생각 또한 인간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있다는 생각도 인간의 생각이며, 부처님이 있다는 생각 또한 인간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진리'를 이해 한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이 자신의 고유한 생각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것이다. 생각은 해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생각의 연속됨으로써, 연기함으로써 시작도 중간도, 그 끝도 가늠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은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며, 영원성이며, 연속성'이라는 특성이 있다고 설명한 것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내생각'이 '내생각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각성에 대해서 '진리'에 대한 올바른 앎이라고 하는 것이며, 대도무문의 문을 보는 것' 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며, 신비의 문을 보는 일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에 대한 앎에 대한 석가모니의 말은... '백천만겁 난조우' 의 인연'이라는 말로 전해지는 것이며, 예수의 말은...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요, 구하라 그러면 구해질 것이다' 라는 말로 전해지는 것이며, 소크라테스의 말은... '너 자신을 알라'는 방식이다. '너 자신을 알지 못한다면, 살아갈 가치도 없다는 말과 함께. 여러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말이 있다면... '대도무문'이라는 말이며, 생각의 생멸현상에 대해서 이해 한다는 것은 곧 '대도무문'의 빗장을 여는 일인 것이다.
진리와 인연있는 이에게 영원한 평화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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