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용어에 '스트레스-호르몬'이라는 말이 있었다.
옛말에 만병의 근원이 마음이다, 는 말이 있었는데, 인간의 관념, 지식으로써는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다 보니, 이제 스트레스 라는 말이 생겨난 것 같다.
사실 인간의 마음 자체가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왜나하면 인간은 마음과 몸에 대해서 '나' 라고 여기는 앎에 대해서 하나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사실은 자신의 마음과 몸에 대한 권한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몸과 마음에 대해서 '나' 라고 생각하지만, 인간이 자각할 할 수 없는 마음의 내면 깊은 곳에는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무형의 실체'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며,그것에 대해서 영혼이라고 알기 때문이다.
참으로 신비스러운 일은, 인간은 모든 것들에 대해서 다 아는 것 같은데, 정작 자신의 자기에 대해서는 올바르게 아는 앎이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누구나 무지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마음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사실 조차 인식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지식이라는 앎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에 대해서 겨자씨 만큼도 올바른 앎이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자유의지가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실 자세히 관찰해 본다면 자유의지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지식으로써도 이해 할 수 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삶에 대해서... 자신의 운명이... 자신의 뜻이 아니라, 운명의 신의 뜻이라고 여기거나...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거나,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거나, 미지의 신이라고 믿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인간이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분명히 이해 할 수 있다면... 자신의 마음, 즉 자신의 앎을 믿을 뿐, 타인들의 말을 믿거나 종교를 믿거나, 운명의 신을 믿을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종교에 의존하거나, 무속신앙을 믿거나, 운명의 신을 믿거나, 사주팔자를 보거나, 운명철학을 믿거나, 기타 명상이나, 마음수련 등의 여러 수행, 수도... 를 하는 까닭은 인간들 모두가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만큼은 올바른 앎이 겨자씨 만큼도 없기 때문이다.
마음의 질병은 물론이거니와 몸에 나타나는 모든 질병들 또한 자신의 뜻이나, 자신의 의지,자신의 마음, 자신의 생각과는 상관 없이 생겨나기 때문이며, 스스로 치유할 능력 조차 없다는 것은... 사실 자신이 자신이지만 자신에 대한 올바른 앎이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의 모든 앎, 지식에 대해서 올바른 앎이 겨자씨 만큼도 없는 앎이라고 하는 것이다. 지식에 대해서 '무지, 무식'이라고 하는 까닭이며... 지식을 초월한 진리의 앎으로써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하는 까닭인 것이다.
사실,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자신의 마음에 대한 이해가 시작 될때, 그때 비로소 자신의 마음, 자신의 지식을 초월한 앎에 대한 믿음이 생겨나는 것이며, 삶의 목적이 분명해지는 것이며, 삶의 질이 180도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일념명상법으로써 자신의 마음에 대한 이해가 시작될때, 비로소 '진리' 라는 말의 뜻에 대한 이해와 함께 자신의 앎이 인간세상의 모든 지식을 초월하는, 지식의 최고지점에 서 있는 앎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깨닫게 되는 것이며, 비로소 살아가는 이유가 분명한 가치 있는 삶, 새로운 삶이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인간들의 모든 지식이 '無識' 이며 '無知'로써 올바른 앎이 겨자씨 만큼도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할 수 있으므로써 욕망의 늪에서... 언어의 늪에서, 생각의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삶과 죽음을 초월한 올바른 앎으로써의 검증된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사실, 질병의 이름들, 병명들은 무수히도 많지만, 진리가 단순하다는 말과 같이 모든 질병의 원인은 단순하기 이를데 없는 것이며, 올바른 앎이라면 근심, 걱정 두려움이 말끔히 사라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분명한 길이 있으며, 단순한 방법으로써 불치병이든 난치병이든 모두 완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식이나 관념을 초월한 '도가의 약식법와 '도가의 단식법'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지식의 가장 큰 오류(착각, 몽상)는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것에 대해서 영혼이라고 아는 앎이며, 또한 몸과 마음에 대해서 '자아'라고 아는 앎이다. 이런 모순에 대해서 인지할 수 없는 까닭은 순수의식, 무의식, 잠재의식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본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든 앎은 지식이다.
그리고 마음 또한 지식에 속하는 것이며, 어린아이시절부터 타인들로부터 얻어진 모든 앎이 지식인 것이며, 마음 또한 지식으로써의 앎이며, 앎에 포함된 것이 마음이다.
마음 안에 지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앎이 곧 마음이며, 마음이 지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앎'이 없다면... '자아' 또한 없는 것이다. 몸이 있다는 앎도 지식이며, 마음이 있다는 앎 또한 지식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은 지식의 앎(=마음의 작용)에 의해서 가공된 것이다.
자연상태에서 벗어나지 않은 동물들에게 인간들과 같은 질병이 생겨나지 않는 까닭은 인간들의 지식과 같이 몸과 마음이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런 앎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런 동물들에 대해서 '본능'이라고 한다. 그리고 인간은 지식의 앎에 의해서 그런 '본능'이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인간 동물들 또한 본래에는 그런 본능(자가치유능력. 면역력)이 있다. 다만 지식의 앎이 시작되면서 차가치유능력이 상실된 것이다. 하지만 본능은 내제된 것으로써 되살릴 수 있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앎, 진리의 앎으로써 모든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문명발전이 가속되는 만큼 더 많은 질병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지식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며, 본능을 망각한 모든 지식이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간의 모든 질병의 원인에 대해서 '스트레스 호르몬' 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앎은 올바른 앎이다. 비만의 원인 또한 스트레스 호르몬이 원인이라고 이해 한다면 올바른 앎이다. 그런데, 스트레스 호르몬에 의해서 '단백질'이 부족하다고 주장하므로써, 단백질을 더 많이 섭취해야 한다거나, 또는 몸에 좋은 음식이나, 약물을 사용한다는 앎은 그야말로 무한한 어리석음인 것이다. 왜나하면 올바른 앎으로써 스트레스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트레스가 사리진다면... 모든 질병들 또한 생겨날 수 없는 것이며, 생겨난 질병들 또한 스스로 치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 동물들 또한 그런 능력이 본래 있었기 때문이며, 내제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들 또한 불(火)을 발견하기 이전에는... 야생동물들과 같은 본능(자가치유능력, 면역력)이 있었다. 다만 지식에 의해서 야생동물들과 같은 본능이 사라진 것이다. 사실, 일념명상법으로써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이해 한다는 것은 자연을 이해 하는 것이며, 자신의 몸 또한 자신의 뜻(마음, 지식, 앎)과는 상관 없는 자연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다.
다만 인간이 그런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에 '타액'의 중요성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며, 마음에 대해서 이해 하는 앎일 때, 모든 질병들 또한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이해 한다는 것은... 올바른 앎으로써 올바른 앎을 믿는 올바른 신념이 생겨 난다는 것이다. 타인들로부터 듣고 보고 배운 타인들의 지식으로써 얻어진 앎에 대해서 믿는 신념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깨달아 아는 앎에 대해서 믿는 것이 믿음이 신념이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의 '네 믿음대로 되리라' 라는 말 또한 예수를 믿으라는 말이 아니라... 예수의 깨달음의 앎에 바탕을 둔 '올바른 앎의 말(진리의 말)'을 믿으라는 말이다. 예를 든다면 '네 안에 하니님이 있다'는 말을 믿으라는 말이며, 하루종일 일념명상법으로써 기도, 참선, 수행하여 스스로 깨달아 아는 앎을 믿으라는 말인 것이다.
사실, 도가에서 행해지는 도가의 단식법은 단지, 단식 뿐만이 아니라, 마음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 하는 앎과 함께 이루어지는 인간세상에서 유일 무이한 최선의 치료방법이며, 단식과 이어지는 도가의 약식 또한 그러하다. 인간에게 나타나는 모든 질병들이 단지 '도가의 약식' 만으로써 모두 완치될 수 있는 까닭은 자연의 원리에 바탕을 둔 것이며, 더 나아가 인간생명체의 근본원리에 바탕을 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삶은 예측 불가능한 것이다.
그대가 태어나기를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듯, 그대가 원하는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며, 원하는대로 죽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것이며, 일어나지 않을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실 인간이 살아가야 하는 이유, 즉 자아의 존재의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는 오직 '자신의 나'를 찾는 일이기 때문이며, 오직 그 일이 인간 존재의 유일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나를 찾는 일... 자신의 마음의 실체를 보는 일이다.
그것에 대해서 '도, 중도, 불성, 성령, 부처, 깨달음' 이라는 말이 창조된 것이다.
그런 삶에 대해서 가치 있는 삶이라고 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올바른 앎으로써의 존재에 대해서 검증된 삶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 앎에 대해서 지식을 초월한 올바른 앎이라고 하는 것이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앎이기 때문에 진리의 앎이라고 하는 것이며, '진리' 라고 하는 것이다.
진리와 인연있는 이에게 영원한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