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여(眞如)
불교에서 의미하는 중생심의 근원이 되는 참되고 한결같은 마음.
[내용]
진여는 우주 만유의 실체로서 현실적이며 평등 무차별한 절대의 진리로 불교의 여러 학파에서 끊임없이 연구되어 왔다. 우리 나라에서는 ≪대승기신론 大乘起信論≫에 입각하여 신라의 고승 원효(元曉)가 주장한 설을 널리 채택하고 있다.
≪대승기신론≫에서는 일심(一心)을 참되고 한결같은 본체적인 면과 변화하고 움직이는 현상적인 면으로 나누고, 이를 심진여(心眞如)와 심생멸(心生滅)이라 하였다. 그리고 참되며 한결같은 진여는 말로써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여 이언진여(離言眞如)를 간략히 밝히고, 이어서 그래도 감히 말로써 설명해 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것을 밝힌 의언진여(依言眞如)의 장을 두었다.
본체로서의 진여가 과연 절언인가 부절언(不絶言)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문이 있을 수 있고 논쟁이 전개될 수 있는 충분한 소지가 있다. 이에 대하여 원효는 진여를 사(事, 現象)에 대한 이(理, 본질적인 원리)로 이해하고, “이 이(理)는 언설을 절한 것도 아니고 언설을 절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理)는 언설을 절한 것이며 또한 언설을 절하지 않은 것이기도 함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원효는 ≪대승기신론소 大乘起信論疏≫에서 이언진여에 대한 몇 가지 점을 말을 빌려 밝히고 있다.
① 진여는 전체성·보편성·영원성을 지닌 대총상(大總相)이며, ② 진여는 참된 이해를 낳게 하는 원리원칙으로서의 법(法)이고, ③ 진여는 열반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되며, ④ 일심을 그 체(體)로 하고 있고, ⑤ 불생불멸(不生不滅)로서 시간성을 초월하고 있으며, ⑥ 망념(妄念)을 떠나 있기 때문에 말로써 설명될 수 있는 것도, 문자와 개념으로 알릴 수 있는 것도, 분석적 사변이 닿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하였다.
진여에 대한 두번째 설명은 말에 의지하는 방법이다. 말에 의거한 진여 설명은 부정으로서의 공[如實空]과 긍정으로서의 공[如實不空]으로 다시 분류된다. 궁극적인 실재를 드러내기 위하여 여실공을 세웠고, 진여의 자체에는 완벽한 상태의 공덕이 갖추어져 있음을 밝히기 위하여 여실불공을 세운 것이다.
즉, 여실공의 진여는 유상(有相)도 아니고 무상(無相)도 아니며, 비유상(非有相)도 비무상(非無相)도 아니라고 하여 일체의 상대적인 모습을 부정하고 있다. 그리고 여실불공으로서의 진여는 영원하여 불변하고 공평무사한 법이 가득 차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여실불공의 진여가 깨달은 사람에게만 온전히 드러난다는 사실을 원효는 상기시키고 있다.
진여에 대한 세번째의 설명은 진여를 본체[體]와 속성[相]과 작용[用]의 측면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진여의 체는 보이지 않는 초험적인 것이고 선험적인 것이다. 그것은 모든 현상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진여 그 자체이며, 본각(本覺)이기도 하다. 이 체의 모습은 범부라 하여 주는 일이 없고 부처라 하여 늘어나는 것이 아니며, 시작과 끝이 없는 영원한 것이라고 한다. 진여의 상은 진여한 마음이 갖는 완벽한 덕성이다.
그 덕성이란 ① 대지혜이고 광명이며[大智慧光明], ② 모든 대상세계를 남김없이 두루 비춰 주며[偏照法界], ③ 진실한 인식이며[眞實識知], ④ 그 본래의 성격은 청정한 마음이며[自性淸淨], ⑤ 영원하고 행복하고 자유자재하고 더러움이 없으며[常樂我淨], ⑥ 청량하고 변화됨이 없으며 자재로운 것이다[淸凉不變自在].
이 여섯 가지 진여의 속성들은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본체를 세속적인 표현을 통하여 열거한 예에 불과하다고 원효는 단서를 붙였다. 진여의 용은 진여심의 작용면에의 위대성이다. 이 용에 대한 설명은 본각을 회복해서 가진 부처를 내세워 설명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진여의 용이 무슨 까닭으로 있게 되는가를 주로 다루고 있다.
즉, 진여의 작용은 ① 제불여래(諸佛如來)가 본래 부처가 되려고 수행하는 단계에서 대자비를 발하여 갖가지 바라밀(波羅蜜)을 닦아 중생을 포섭하여 교화하고, ② 대서원(大誓願)을 세워 무한한 겁(劫)을 통하여 미래가 다하도록 모든 중생계를 해탈시킨다. ③ 일체의 중생을 자신의 몸과 같이 여기기 때문에 따로 중생관(衆生觀)을 두지 않는다. 그 이유는 중생과 자신의 몸이 진여이고 평등하여 차별이 없음을 분명하게 알기 때문이다.
원효는 진여의 작용이 있게 되는 이 세 가지 중에서 ①을 결과가 나타나게끔 하는 행위, 즉 본행(本行)이라 하였고, ②를 본래의 소원[本願], ③을 위대한 능력을 지닌 대방편(大方便)이라 하였다. 그리고 대방편의 지혜가 있기 때문에 무명을 없애고 본래의 법신(法身)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과 불가사의한 여러 가지 작용이 저절로 나타나게 된다고 하였다. 또한, 그 작용은 참되고 한결같아 두루 미치지 않는 데가 없으며, 중생이 보고 듣는 데 따라서 그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결국 진여의 작용은 대방편의 지혜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초월자적인 존재가 힘없고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베푸는 그 무엇이 아니라 중생심 그 자체의 작용이며, 진여한 중생심 속에서 스스로가 어떻게 보고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서 발현되는 작용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원효의 진여에 대한 주장은 중생의 본체를 설명하는 데 있어 후대의 우리 나라 불교계뿐만 아니라 중국 및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어느 백과사전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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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장 (어느 백과사전의 내용 중... )
여래장은 중생의 번뇌 중에 있지만 그 번뇌에 더럽혀지지 않으며, 본래부터 절대 청정하여 영원히 변함없는 깨달음의 본성이다. 여래장의 산스크리트는 여래와 태(胎)의 복합어로서 '여래의 태'를 의미한다. 여기서 태는 모태 또는 태아를 가리키는데, 이로부터 여래장은 성장하여 부처가 될 태아를 뜻하기도 하고, 그 태에 부처의 성품을 간직한 자를 뜻하기도 하며, 중생을 설명하는 말로도 쓰인다. 일반적으로 진여나 불성의 다른 명칭이며, 중생의 번뇌 속에 덮여서 가려진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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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의 대종사를 해석 하다 보니... 해석의 내용 중에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다.
夫知有所待而後當(부지유소대이후당) : 대체 지식이란 의거하는 표준이 있은 다음 비로소 옳은 것이 된다
其所待者特未定也(기소대자특미정야) : 그 표준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庸詎知吾所謂天之非人乎(용거지오소위천지비인호) : 내가 말하는 자연이 사람이 아닌지
所謂人之非天乎(소위인지비천호) : 내가 말하는 사람이 자연이 아닌지를 어떻게 알겠는가
且有眞人而後有眞知(차유진인이후유진지) : 그러니 진인이 있어야만 비로소 참된 지식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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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들... 올바른 앎이 없는 하근기 중생들의 편견, 소견, 단견이며... 아래 장자의 말은 진인의 말로써 올바른 앎, 즉 진리, 진여에 바탕을 둔 말이며, 정견을 넘어서 "중도에서 보는 말'이다.
그런데 위의 글들 중에 중요한 말, 참고 삼아야 할 말이 하나 있는데... "여래장" 이라는 말의... 산크리트스어의 본 뜻은, '여래와 태'의 복합어로써 '태'는 '태아'를 가르친다는 말이다/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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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앞서 설명된바와 같이... 예수의 말이 왜곡된 창세기 제 1 장의... '태초에 말씀이 계셨으니... 하늘이 있으라 하니 하늘이 있었고 땅이 있으라 하니... 땅이 있다'는 말에 대한 설명과 같이... 인간이 태어나서 '남들을 의존하여' 말을 배움으로써 알게 된 지식에 의존하여 천지만물이 있는 것이며, 또한 그런 지식이 모든 고통의 원인이라는 뜻이며... 싯다르타의 말이 왜곡되어 전해지는 '12연기법'의... 무명, 행, 식, 명색, 육입... '등에 대한 설명과 같이... '진여' 라는 낱말 또한... 일념법수행으로써 '언어가 본래 없는 것이다'는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아는 앎에 대한 다른 표현이며, 다른 이름이다/ 라는 설명들과 같이... "진여" 라는 말 또한... 한글로 "깨달음" 을 이르는 말이며... '불성, 불타' 라는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그와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 '진여 또는 여래장' 등이며... 부처 10호라는 여러 이름들과 같은 뜻의... 다른 '이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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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이라는 지식서, 잡서에 보니... 是名中道, 시명불성, 시명 아뇩다라삼목삼보리 등의 글귀가 있다. '시명'이라는 말은, "스스로 아는 것'으로써 올바르게 본다면 '이름'이다" 라는 뜻으로써의 '바를 시' 자이며, 이름 명' 자이다.
일념법수행으로써 생각의 생멸현상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 하는 지혜가 생겨나서...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본다면... 불성, 중도 등의 모든 말들 또한 '이름 名' 자로써... '이름'으로 있는 것일 뿐... 근본윈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며, 이는 또한... 양자물리학의 입자와 파동설과 같이... 인간과 우주 또한 본래는 근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름'으로써만 있는 것이다는 뜻이며... '본래무일물' 이라는 낱말의 뜻이 또한 그러하다.
두 권의 책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의 완전함' 이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며... 그 또한 다른 '이름'으로써... 언어로 표현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언어는 상대적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며... '그것'은 상대적인 언어로 표현될 수 없기 때문이며... 언어는 상대적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로 표현될 수 있다면.... 이미 어긋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인 앎이 아니라, 절대적인 앎이라는 뜻으로써의 '진리' 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며...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앎이기 때문에 불변의 진리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인간의 기원에는 인간이 없다는 앎이 절대적인 앎이며, 우주가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는 앎이 절대적인 앎인 것이다. 지금 이 글을 보는... 그대의 나 또한 근거가 없는 것이며... 단지 언어로 구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근거가 없는 말, 말, 말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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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와 예수, 그리고 노자와 장자의 말은 모두 같은 뜻의 다른 표현들이며, 소크라테스의 방편설 또한 그러하다. 다만... 예수와 싯다르타의 진언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깨달음을 얻기 위한 방법이 분명히 설명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루종일 기도하여 깨어나라' 는 말이 그러하며... '무상한 것은 나가 아니며, 수생행식도 이와 같다'는 말 또한 같은 맥락으로써 현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언어로 설명된 것이... '생각의 원리'에 바탕을 둔 '일념법, 일념명상법, 일념 수행법' 이다. 그런 수행법으로써 얻어진 앎에 대해서 한자로 '정견'으로 표현된 것이며... 어린아이들이 말을 배워서 하늘과 땅을 아는 것과 같이... 남들을 의존하여 얻어진 지식이 아니라... 일념수행으로써의 '스스로 아는 것'으로써 생겨나는 지혜에 대해서 '정견'이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다. 왜냐하면 지식을 넘어선 올바른 앎이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지식서들(대승신기론이나, 기타 여러 잡서들... 싯다르타의 진언이 아닌 모든 책자들...) ...그런 지식서들로써의 서로가 옳다는 사고방식이 학문들이며, 그런 학문으로써의 말재간을 겨룰 일이 아니라... 일념수행으로써 생각의 원리, 즉 "올바르게 본다면 생멸법이다(是生滅法)" 는 뜻의 -생각의 생멸현상-에 대해서 스스로 아는 것으로써의 지혜가 생겨나야만 비로소... 그들의 '진언'에 대해서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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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둔한 자가 아니라면... 생각의 원리에 바탕을 둔 '진실된 언어, 진언, 진리'에 대한 비유 설명으로써 지적으로나마 이해가 가능한 까닭은... '진여'가 있다는 생각은... '진여'의 생각이 아니라... 인간들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부처님'이 있다는 생각 또한 '부처님의 생각'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에 의존하여 생겨난 '이름'이라는 뜻이며... 하나님이 있다는 생각 또한 하나님의 생각이 아니라... 인간들의 생각이며, 어린아이적부터 남들에 의존하여 배우고 익힌 말, 말, 말들에 바탕을 둔 개개인들의 생각일 뿐, 올바른 앎은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대의 두뇌에 저장된 모든 지식들, 언어들은... 스스로 아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가 남들을 의존하여 말을 배우고 익히듯이... 사실 남들로부터 듣고 배운 것들로써 '언어' 아닌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언어들... '시명중도, 시명 불성'이라는 말과 같이.... 올바르게 본다면, 모두 서로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 어떤 것에 대해서 '까마귀' 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과 같은 방식으로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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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예수의 진언이 왜곡된 성경이 그렇듯이, 불경이라는 책자 또한 하근기 중생들에 의해서 한자로 번역되어 전해진 것이다 보니. '생각할 想' 자로 표기 되어야 하는 글자들 대부분이 '형상 狀' 자로 표기 되거나 또는 '서로 相' 자로 표기 됨으로써 '진인'들의 본래의 뜻 조차 이해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사실 불경에 표기된 '빛 色'이라는 글자의 뜻은 '불빛' 등의 빛이 아니라... 빛에 의존하여 나타나는 천지만물 만상을 뜻하는 글자이며... '형상' 이나 '대상'을 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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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장자의 말에서 중요한 말은... 지인이 있어야만 비로소 참된 지식이 있다는 말은... 인간들은 지식으로써 참과 거짓을 가리려 하지만.... 사실 지식으로써의 앎에는 올바른 앎이 단 하나도 없다는 뜻이며... 오직 진인에 의해서... 지식의 옳지 않음에 대해서 밝혀 질 수 있다는 뜻이다.
소크라테스 또한... 너희가 원한다면 진지를 알려 줄 수 있다고 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도를 깨닫는 방법에 대한 글귀를 찾아 볼 수 없는 것 같다. 사실, 노자와 장자의 글에서도 '깨닫기 위한 방법'에 대한 분명한 글귀가 없는 까닭은... 그들의 진언이 그대로 전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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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간의 지식은 어떤 면에서 보더라도 근거가 없는 것들이다. 분명한 근거가 없는 것으로써 구성된 것이 지식이기 때문에, 지식은... 그 시작 부터가 자기 주장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그로 인하여 서로간의 갈등이 빚어지는 것이며, 더 나아가 시기와 다툼을 넘어 경쟁과 투쟁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국가간의 전쟁들이 그렇듯이.... 인간류들간의 스스로의 전쟁에 의해서 멸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진리의 앎으로써만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 지식의 무지에 대한 사유 ---
사실 지식은... 지식이 무엇인지 모르며, 지식의 시작도 모르며, 그 끝 조차 알 수 없는 것으로써 지식을 쫒는 일은 무모한 짓이다.
사실 지식은...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며, 인간의 기원을 모른다.
사실 지식은... 마음이 있다고 알지만, 그 마음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생겨난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지식은... 내가 사람이라고 알지만... 내가 왜?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정의 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지식은... '하나님, 부처님, 불성, 성령, 영혼'이 있다고... 서로가 주장하지만... 근거 없는 것이며, 사실무근이며, 풍문이나 옛 전설을 그대로 믿는 무모한 것이며... 어리석음이 무한한 것이다.
사실, 지식은... 위의 논란들과 같이... 서로가 옳다고 주장만 하는 것으로서... 매사에 다툼이나 경쟁, 투쟁 전쟁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앎이 겨자씨 만큼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선함과 악함이라는 분별 또한 그러하며... 나와 너 라는 분별 또한 그러하다.
창조자, 또는 절대자, 또는 신... 이 있다는 생각 또한 창조자의 생각이 아니라... 인간들의 근거가 전무한... 생각이라는 사실.
'여래, 여래장, 진여' 라는 말들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 '중도' 이며... 그것에 대해서 '道' 라는 이름이 지어진 까닭은... 인간 또한 본래 인간이 아니지만, '가치 있는 삶, 검증된 삶'을 위한 유일한 인생의 길이기 때문이다. "道 法" '공의 도리' '진리의 길' 올바른 앎으로써의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뜻으로써 '道' 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이며... '일일시호일' 이라는 말 또한 '옳을 是' 자로써의 올바르게 좋은 날이라는 뜻이며... 일념법으로써 생겨나는 지혜(시생멸법, 즉 생각의 생멸현상)로써 삶과 죽음의 한계를 넘서더는 올바른 앎으로써의 삶을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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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들이... 하니님이 옳다, 부처님이 옳다며 죽는 날까지 투쟁을 일삼는 것이다. 하지만 올바르게 본다면... 부처님이 있다는 생각은 부처의 생각이 아니라, 중생의 생각이라는 사실... 하나님이 있다는 생각 또한 생각의 주체가 '하나님이나 성령'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사실... 불성이나, 신, 영혼이 있다는 생각 또한 그러하다.
일념수행으로써... 잠재의식, 무의식, 순수의식에 각인(고정관념화된)된... '육체가 나다'라는 생각이 절대적인 앎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깨달아 아는 앎에 대해서... '진리, 여래, 진여' 등으로 표현된 것이며... 예수는 그것에 대해서 '하나님 말씀'이라는 말로 방편을 든 것이며, 싯다르타는... '여래' 라는 말로 방편을 든 것이며... 노자와 장자는 '있는것과 없는 것의 근원'... '그것'에 대해서 '도' 라는 이름으로 표현한 것이다. 아득한 옛날 부터... '도' 라는 이름으로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깨댤음의 앎이란... 순수의식의 어린아이들과 같은 순수의식을 보는 것이며, 분별이 사라진 순수사고이기 때문에, '진여, 여래' 등의 낱말들 또한 '산크리스트어'에서의 뜻에는... '태아' 라는 뜻의 '태' 자로 표기될 수 있는 까닭 또한 그러하다. 이는, 예수의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지 않으면... 하늘나라를 볼 수 없다'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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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간들의 앎을 지식이라고 하는 것이며, 인간의 지식으로서 이해가 불가능한 앎에 대해서 '진리'라는 말로 표현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식으로써 진리를 이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 방법이 있으며... 책과 이곳에 설명된 '일념법, 일념명상법' 수행이다. 그런 수행으로써 생각의 생멸현상에 대해서 '스스로 아는 것'으로써의 지혜가 생겨날 때, 그때 비로소 지적으로나마 이해가 가능할 수 있는 것이며, 그 때 비로소... 생각의 생멸현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써의 올바른 사유가 가능한 것이며, 그때 부터 비로소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일념을 모른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모른다는 것이며,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것이며, 자신의 몸에 대해서 또한 무지하다는 것이다. 자신이 자신에 대해서 무지하다면... 자신이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사실... 자신이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삶이라면... 살아가야 할 가치가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사실, 진리란 단순한 것이며... 너 자신을 알라는 말과 같이,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스스로 아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삶이라면... 그것은 자신의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지금 이 글을 보는... 그대는...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무엇을 아는가?
사실, 인간들의 '육체가 나다'는 앎과 '마음이 있다는 앎' 과 '내가 사람이다'는 앎 등의 모든 앎이... 상대적인 언어로 구성된 것이며, 생각에 의존하여 일어나는 망상이며, 올바른 앎일 수 없는 것이며, 절대적인 앎일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자아의 발생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본다면, 자아가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자아의 소멸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본다면, 자아가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와 같이... 또는 양자역학의 입자와 파동설과 같이...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본다면, 그대와 세상이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언어 또한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식은 단견, 편견, 소견이며.... 진리는 절대적인 앎이라는 사실.
올바른 앎이 겨자씨 만큼만 있다면... 시한부생명의 불치병 환자가 '도가의 단식법'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얻는 일과 같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보물이 있다면... 일념법수행으로써 '스스로 아는 앎'을 얻는 것이며... 그로써 진리의 길을 가는 것이며, 진리에 의존하여 사는 것이며... 진리를 벗삼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류의 자유와 평화는 오직 진리의 앎을 앎으로써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시대에는 진리를 전하는 유일한 곳이 '일념명상의 집 '도가' 이다.
진리와 인연있는 이에게 영원한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
카페 원글보기 ---> http://cafe.daum.net/husim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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