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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 철학의 선언 - 존재와 무, 구토... 장 폴 사르트르 / 지성의 무지, 실존의 허구/본질 - '불변의 진리' - 진실된 지식...

일념법진원 2016. 11. 12. 07:29

아래는 '실존주의 철학의 선언'이라는 명제와 같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는 '사상가' 이다.

 

이곳에 '사르트르'에 대해서 설명 하는 까닭은, 진리와 벗삼는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 즉 지식으로써의 지성체의 무지와 어리석음의 한계를 실감하는 인물들에게 지식의 허구(무지와 어리석음의 한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이며... 인간세상에 인간류의 무지와 어리석음의 한계를 설명 하기 위해서이다. 인간류의 진정한 자유와 평화는 오직, "지식이 무지라는 사실" 즉 '진리의 길에서만 가능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깨달음의 실체를 밝힌다" 라는 책을 쓰기 전에... 보고, 간략하게나마 옛 글에 설명되었던 내용들인 것 같다. 사실, 세성에 "지식" 너머 "진리"를 전하기 위한 책들이 있었다면... 굳이 또 다른 책을 써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쓰기 전에...'신비주의자'들을 모두 검색해 본 후에 나머지 철학가, 사상가 등을 비롯하여 '노벨상'을 받았던 인물들에 이르기 까지... 모두를 검색해 본 후에야 비로소 인간세상에 '진리'를 전하는 글을 발견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책 한권을 남기게 된 것이며, 그 책 또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더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서 두 번째 "비밀의 언어" 라는 책을 쓰게된 것이며... 책을 더 쓰지 않은 이유 또한 "지식"으로써 "지식의 무지"를 본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래의 간략한 설명을 통해서.. 지극히 아둔한 자가 아니라면 "지식"의 무지와 어리석음의 한계를 볼 수 있는 일일 것이며... "진리"의 밝음으로... 실존이 아니라, '본질을... 자아의 본성을 발견하기 위한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며...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누릴 것이다. 

 

아래는, '사르트르'의 작품세계와 가치 없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한 인간의 일대기이다.

 

 

--- 아   래 --- 

 

 

실존주의 철학의 선언

장 폴 사르트르

Jean Paul Charles Aymard Sartre

 

출생일 1905년 06월 21일
사망일 1980년 04월 15일
국적 프랑스
대표작 《구토》, 《존재와 무》 등

 

인간의 존재 의미에 대한 철학적인 사색과 관찰로 당대 유럽의 사상계를 주도한 실존주의 작가이다. 1964년 노벨 문학상 수상을 거부하였다.

 

장 폴 사르트르

장 폴 사르트르는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작가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사상계를 주도했으며, 소설, 희곡, 철학 논문, 문학 비평서, 철학서 등 다양한 형태로 자신의 사상을 표현했다.

장 폴 샤를 아이마르 사르트르는 1905년 6월 21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장 바티스트 사르트르는 해군 장교였고, 어머니 안네 마리 슈바이처는 노벨 평화상을 받은 슈바이처 박사의 사촌이다.

2세 때 아버지가 죽은 뒤 어머니가 그를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가 어머니와 외조부모 슬하에서 자랐다. 초등교육은 받지 않았으나 책에 둘러싸여 많은 책을 읽었으며, 이 시기에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12세 때 어머니가 사업가 조제프 망시와 재혼하면서 함께 라 로셸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중등학교를 다녔다. 17세 때 대학 입학자격고사에 합격했으며, 명문 대학인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국립 고등사범학교) 준비과정 2년을 보낸 뒤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에 진학하여 수석으로 졸업했다. 준비과정 시기에 철학을 전공하기로 마음먹었으며, 폴 니장과 함께 동인지를 만들어 첫 소설 〈병자의 천사〉를 발표했다. 폴 니장을 비롯해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에서 만난 레몽 아롱, 메를로 퐁티, 시몬 드 보부아르 등은 그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특히 《제2의 성》, 《위기의 여자》 등을 쓴 프랑스의 대표적인 페미니즘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와는 이 시기부터 교제를 시작하여 평생의 동반자가 된다. 두 사람은 서로의 독립성을 중시하고자 결혼이라는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부부 관계를 유지하는 계약결혼을 처음 시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두 사람의 계약결혼은 당시 도덕주의자들을 분노하게 했고, 평생 구설에 올랐다. 그러나 두 사람은 계약결혼 상태를 50년간 유지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수많은 위기가 있었으나 이 관계는 사르트르가 죽을 때까지 이어졌고, 보부아르는 사르트르 사후 인터뷰에서 "사르트르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았다. 우리의 삶이 그토록 오랫동안 조화롭게 하나였다는 사실이 그저 아름다울 뿐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사르트르는 《철들 무렵》에서, 보부아르는 《초대받은 여자》에서 계약결혼을 형상화하기도 한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사르트르가 대학을 졸업하던 1929년은 많은 일이 일어난 해였다. 미국의 경제 대공황으로 증시가 붕괴되었고, 우파가 프랑스 정권을 장악했으며, 유럽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나아가던 시기였다. 또한 그해는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계약결혼 관계를 맺은 해이기도 하다. 그 직후 사르트르는 군에 입대했고, 18개월의 병역을 마친 후에는 3년간 르 아브르 중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곳은 후일 《구토》의 무대가 된다.

1933년, 사르트르는 현상학에 심취하여 후설과 하이데거 철학을 연구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떠났다. 1년간의 유학을 마친 뒤 다시 르 아브르 중등학교를 거쳐 파리 파스퇴르 중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리고 이때의 연구를 바탕으로 철학 논문 《자아의 극복》, 《상상력》 등을 썼다. 《상상력》에서 그는 고대부터 후설에 이르기까지 주요 서양 철학 사상 속에서 상상력과 이미지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고찰하고 이미지론을 정립했다. 이는 대학 시절에 쓴 의식의 본질에 관한 철학 논문이 바탕이 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1938년에는 현상학적, 실존주의적 입장에서 존재론을 표현한 장편소설 《구토》를 발표했다. '실존주의 철학의 선언서'라고 일컬어지는 철학서이자 '안티로망'의 선구 격인 소설로, 소설과 철학의 경계를 허문 한편, 양쪽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유례없는 작품이다. 부빌의 항구도시를 배경으로 32세의 연구원 로캉탱은 일상적 행위에 직면할 때마다 세상과 자신의 관계를 정립하고, 그 안에서 공허하고 압도적인 실재에 짓눌려 있는 자신을 인식한다.

 

"모든 것이 근거가 없다. 이 정원도, 이 도시도 그리고 나 자신도. 이것을 깨닫게 되면 가슴이 메스꺼워지고 모든 것이 붕 뜬 상태가 된다. 이것은 구역질이다."

즉 구토는 자기 자신의 존재를 포함해 사물의 우연성을 비정립적으로 포착할 때 체험하는 철학적 구토로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사르트르의 개념을 바탕으로 한다. 이런 개념은 5년 후 철학서 《존재와 무》에서 보다 발전되어 정립된다. 《구토》는 발표된 후 카뮈와 블랑쇼 등의 찬사를 받으며 공쿠르상 후보에 올랐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군에 징집되었고, 1940년 6월에 파리가 독일군에게 점령되자 전쟁 포로가 되었다. 그러나 1941년 수용소를 탈출하여 파리로 왔다. 이후 교사로 일하는 한편, 보부아르, 메를로 퐁티와 함께 '사회주의와 자유'라는 집단을 결성해 레지스탕스 운동을 벌였으며, 활발하게 저술 활동도 했다. 전쟁 기간에 사르트르는 이때 벌어진 굵직한 사건들을 '자유의 길' 3부작인 《철들 무렵》《유예》 등을 통해 다루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발표한 가장 중요한 작품은 1943년의 《존재와 무》이다. 무신론적 실존주의 입장에서 존재론을 정립한 저작으로, 사르트르의 중심 사상이자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사상계를 대표하는 저작물로 꼽힌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메를로 퐁티 등과 함께 〈현대〉 지를 창간하여 전후 문학적 지도자로 활동했다. 이 시기에 사르트르는 지식인, 문학인의 사회 참여를 주장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는데, 이는 전쟁 체험과 레지스탕스 활동 등이 일으킨 변모라 할 수 있다. 사르트르는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등을 통해 문학의 사회 참여에 대해 주장했으며, 전후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 시기의 사상을 형상화한 작업은 소설보다 주로 희곡으로 나타났는데, 전쟁 중에 발표한 〈파리 떼〉, 〈닫힌 문〉, 전후에 발표한 〈무덤 없는 사자(死者)〉, 〈더럽혀진 손〉, 〈악마와 신〉, 〈알토나의 유폐자들〉 등이 그것이다.

 

1950년대에 사르트르는 공산당에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전후 냉전 상황에서 공산주의를 지지했으며,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했다. 그러면서 실존주의 그룹, 〈현대〉 지의 중심인물들과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1952년, 사르트르가 〈현대〉 지에 〈공산주의와 자유〉라는 글을 발표하면서부터 카뮈, 메를로 퐁티 등과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되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개인주의적인 실존주의에 의한 사회 참여에 있어 한계에 부딪힌(후일 이를 인정했다) 사르트르가 사상과 행위에서 자기모순을 겪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르트르는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적극적으로 공산주의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때에 따라 일관성 없는 모순된 행위 및 애매하고 관념론적인 주장을 많이 했다.

1956년경부터 사르트르는 프랑스 공산주의자들과 거리를 두었는데, 현대의 공산주의(마르크스주의)가 동맥경화에 빠져 있음을 깨닫고, 실존주의 철학의 입장에서 공산주의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은 《변증법적 이성비판》으로 집약된다.

1960년대에는 베트남전에 대한 저항, 알제리 독립 지지, 소르본 학생운동, 공산주의운동, 반미운동 등에 가담하면서 활발히 활동했다. 1964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나 이마저도 정치적 저항의 표시로 수상을 거부했다. 1970년대 초에 알랭 제스마르와 베니 레비 중심의 마오이즘 집단에 가담하고, 마오이즘 기관지인 〈인민의 대의〉를 펴냈다. 또한 극좌파 일간지 〈해방(리베라시옹)〉에도 참여했다. 1973년에 건강 악화로 실명했고, 1977년에는 급기야 걷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지만, 사르트르는 계속해서 공식적인 사회 활동을 했다. 여기에는 레비의 도움이 컸다. 말년의 활동으로 사르트르의 명성은 더욱 치솟았고, 동시에 수많은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다. 죽기 직전까지 사회 활동을 하고 글을 쓰다가 1980년 4월 15일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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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 세상의 모든 유명 사상, 철학, 인문... 등의 학자들과 같이... 쓸모 없는 짓들로써 가치 없는 삶을 살았던 중생무리들 중의 하나이다. 인간으로써, 그의 생애를 통해서... '인간류의 지식의 무지와 어리석음의 한계를 볼 수 있다면... 이시대의 현자이다.

 

이 작은 나라, 한국. 자유민주주의, 명색이 법치국가에서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촛불시위 등의 사회 현상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본다면... '사르트르'의 생애와 같이, '많은 것을 아는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본다면... 걷지도 못하면서... 어떤 사회 활동을 해야만 하는... 비참한 말로, 멸망, 소멸이 아닐 수 없는 것이, 뭇 중생들의 삶이라는 허구적인 것이며, 안타까운 일이기 때문에... 지식 너머, 지식을 초월한 '진리'를 설명 하는 것이다.  

 

 

 

---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발표한 가장 중요한 작품은 1943년의 《존재와 무》이다. 무신론적 실존주의 입장에서 존재론을 정립한 저작으로, 사르트르의 중심 사상이자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사상계를 대표하는 저작물로 꼽힌다.--- 

 

 

 

"무신론적 실존주의 입장"에서 '존재론'을 정립한 저작... 중심사상... 사상계 대표하는 저작물... 이라는 말, 말, 말들로써... '지식'의 허구, 지식의 무지, 지식의 무한한 어리석음의 한계를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볼 수 있는 인물들이 있다면 오직 '일념법 수행자'들로써 '생각의 원리'를 '일념법 수행'으로써 스스로 발견하여 확인한 인물들 뿐일 것 같다.

 

 

사실, 인간들은 과거의 '언어'에 집착한다.

 

중요한 사실은... 공산주의든, 민주주의든, 자유주의든, 중도주의든, 이 작은 나라의 현 시국과 같이 말만 무성할 뿐, 투쟁만 난무할 뿐...해답, 정답은 없다는 것이며, 인간류의 유구한 역사와 같이... 투쟁,반목,전쟁만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의 악순환만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 이런 사실 조차 인식할 수 없는 것이 '지식으로 구성된 지성체'들의 실상이기 때문에... 그 무지와 어리석음의 한계를 설명 하려는 것이다.

 

사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지식'의 결과들이... 인간세상을 온통 전쟁터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 조차 올바르게 인식할 수 없는 무지몽매한 것들이... 사라트르 등의 언술이 뛰어난 자들의 "지식"이기 때문에... 지식 너머 새로운 지식, 진리를 설명하는 것이다.

 

지극히 아둔한 자가 아니라면, 이 글과 이곳의 여러 방편설명들로서... 지식과 진리의 차이를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며... '지식'이 아니라, 진리의 길을 갈 것이며... 비로소 인간세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누릴 것이다.

 

 

사실, '인간은 본래 인간이 아니라, 지식으로 가공된 '괴물'이거나 '기물'이다.

 

언어학적으로 보거나, 물리학적으로 보거나... '인간'이 본래 인간이라는 근거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자세히... 설명 되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한다. (지극히 아둔한 자가 아니라면.... 이곳의 글들 몇 편으로써도 지적으로나마 이해는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집중력이 붕어보다 조금 더 뛰어나야 하겠지만...)

 

 

참고로, 이곳, "도가"의 고급 수행자 "화원"을 비롯하여... 수 많은 일념수행자들에게는 '사르트르' 또한 단지 '언술이 뛰어난 말재간 꾼으로써... 하근기 중생이며, 진리가 아니라, 꾸며진 말들로서 사람들을 현혹하는 '악의 무리들' 중의 하나로 여길 수밖에 없는 일일 것 같다. 초보자들을 위해서 비유를 든다면... 나사롓 예수의--- "언술이 뛰어나서 나의 말을 옮기는 자는 '그리스도의 적, 적 그리스도'--- 라는 말과 같이... '진리'를 모르면서 '아는체'하는 인간들로 가득차 있는 것이... 명색이 '인간세상'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류의 지식의 한계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프트르'의 글들 중에... 중요한 구절이 있다면... '자아 모순' '존재와 무' '실존' 등인 것 같다. 

 

 

 

사실, '도가의 화원'은... '일념법'수행으로써의 고급 수행자들은...  '자아모순, 존재와 무, 실존'이라는 말에... 웃어버린다. 물론 대학에서 여성학을 강의 하던 시절만 하더라도... 사르트르는 존경할 만한 인물이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책으로 여겼다는데, 지금은 쓸모 없는 책들로써 불쏘기개 용도로 쓰인다는 것이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이와 같이... 세상 모든 '지식서'들이 "쓰레기"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종교들이 서로가 자신들만이 진리라는 우물안 개구리들과 같이 '내가 옳다'고 주장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지식들이 완전하게 '무지'라는 사실을 지극히 논리적으로 논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일념법 수행'의 위력이다.

 

세상 사람들은 '수행자'들에 대해서 매우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여기는 것 같지만, 사실... 본래 '구도자, 수행자' 등의 종교 등에서 유행하던 기도나 참선을 비롯하여 현 시대의 무수히 많은 '수행센타'를 비롯하여 모든 '명상'이라는 이름의 행위들 또한 본래 "진리"를 깨닫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된 행위인 것이며, 동시에 "지식의 무지와 어리석음의 한계"를 깨달아 앎으로써의 양 극단에서 벗어난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위한 '유일한 길, 방법'이라는 것이다.

 

환상의 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사르트르 등의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는 이상가, 사상가... 등의 지식들이 모두 거짓말이며... 쓸모 없는 지식으로써 '쓰레기'라는 사실을 사실 깨달아 아는 '진실된 지식'을 얻기 위한 공부가... '일념법 수행'이라는 뜻이다.

 

 

예수를 믿는 자들이 주장하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말이거나 또는 석가모니를 믿는 자들의 '광명의 빛' 이라는 말 또한... 어떤 환상의 세계를 보라는 뜻이 아니라, 이와 같이... 도가의 일념법 수행자들이 '사프트르'의 지식이 무지라는 사실을 발견 하는 일과 같이... '지식의 해답이 없는 어두움'이 아니라... 지식의 무지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한 '공부'라는 뜻이며... 무상의 '진리'를 발견함으로써의 '밝음'을 뜻하는 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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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종교들처럼 무조건 우리가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상가'들의 '이념, 이상, 사상' 따위들과 같이 무조건 자기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과학자, 의학자, 철학자들의 자신들만의 관념들, 개념들, 생각들 따위를 무조건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일념명상의 집, '도가'의 가르침만이 무조건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왜? 인간들의 지식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이며, 쓸모 없는 것인지를 논리적으로 '논증'이 분명한 것이며... 앞서 설명된 사실과 같이... 언어학적으로 보거나, 과학적으로 보더라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올바른 지식'이기 때문이며, 지식의 한계를 넘어선 '진리'이기 때문에, 그러너 사실을 여러 방편을 들어 설명 하는 것이다. 

 

 

'자아모순, 존재와 무, 실존'

 

만약에 '자아모순'을 발견 했다면...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다.

만약에 '존재와 무'를 발견 했다면... "예수, 노자, 붓다"와 같은 진리의 지혜를 깨달았을 것이다.

만약에 '실존'이 허구라는 사실을 발견 했다면... "나는 유일자이며, 빛이며,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고 설명 했을 것이다.

 

 

 

여기서는 '자아모순'이라는 구절 하나에 대해서만 설명하자. 왜냐하면... 이미 두 권의 책과 이곳에 충분히, 자세히... 설명된 내용들이기 때문이며, 지극히 아둔한 자가 아니라면, 지적으로나마 이해는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념법 수행으로써 스스로 확인되지 않은 지식으로써의 이해는 이해가 아니라, 여전히 오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사실, '자아모순'이라는 말에 대해서 끊임없이 설명 하지만... 올바르게 알아들을 수 있는 인물이 있다면, 오직 '일념법 수행'으로써... 자신의 자신도 모르는 '생각의 윤회현상'을 스스로 깨달아 아는... 즉 사실을 발견한 인물들 뿐이며, 인간세상의 여타 수 많은 다른 방법으로써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가의 일념법'에 대해서 "유일한 법, 방법"이라고 설명한 것이며, 불변의 진리라고 설명 하는 것이다.

 

 

"자아 모순"

 

인간류들 누구나 다 "내가 있다, 내가 사람이다, 내가 나이를 먹었다, 내가 피조물이거나, 내가 중생"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내가 있는데,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우울증이나 기타 여러 수 많은 질병들에 걸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의 촛불시위들과 같이... 서로가 선, 정의라는 주장들이 팽팽히 맞서서 목숨을 걸고서라도 '쟁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현 시국과 같이... 누구나 자기의 이상이나, 이념, 사상 따위를 서로 주장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자신들의 뜻, 의지, 관념, 생각, 마음을 주장 하는 분명한 "나" 가 있다는 것이 모순이다.  

 

이와 같이 진리는 단순한 것이며, 여기서 '자아 모순'을 발견할 수있다면... 이 시대의 현자이다.

 

 

 

1. 자신의 의지, 뜻, 마음, 감정, 이상, 사상, 이념으로써의 자신과 다른 상대들과의 투쟁을 일삼는 "나" 가 있다.

 

2. 자신의 의지, 뜻, 마음, 감정, 이상, 사상, 이념으로서의 자신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와 같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여러 불치병이나, 난치병, 우울증, 치매, 등의 질병에 걸리지 않을 수 없는 또 다른 "나" 가 있다는 것이다.

 

3.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걸리는 질병들을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이다.

 

4. 인간들 누구도...자신의 뜻, 의지를 모두 관철 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인간이 없다는 것이다.

 

 

 

위의 1의 "나" 와 2의 "나" 중에서 어떤 "나" 가 '진짜 "나"' 일까? 

 

전자의 나와 후자의 나... 둘 다 "나" 라면... 모순이다. 

전자의 나와 후자의 나... 둘 다 '나'가 아니라고는 감히 상상 조차 불가능한 일이다. 

 

 

간혹,, 띠엄 띠엄 경험하는 행복한 것이 '나' 인가? 행복하지 않은, 불행한 것이 '나' 인가? 

행복한 것이 '나' 라면, '불행한 것'은 "나" 가 아닌 것일까?

 

 

고통이 "나" 인가?

즐거움이 "나" 인가?

슬픔이 "나" 인가?

기쁨이 "나" 인가?

 

삶은?

죽음은?

 

성공한 것이 '나' 인가? 성공한 것이 '나' 라면... '실패한 것'은 "나" 가 아닌 것일까? 

 

대체 그대는... 인간들은 '무엇'을 "나" 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면... 그 생각은 누구의 생각인가? 

 

 

자신의 의지, 뜻과 상관 없이, 내가 정의라며 투쟁하는 것이 "나" 일까?

자신의 의지, 뜻과 상관 없이 걸린 불치병과 투쟁하는 것이 "나" 일까?

 

자신의 뜻, 의지와 상관 없는 나...

자신의 뜻, 의지와 상관 있는 나...

 

인간들 누구나.. 저마다의 자신의 의지와 뜻이 분명히 있기는 있는 것 같은데, 그것과 상관 없이 우울증이나, 치매에 걸리거나, 여러 질병들에 걸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자신이 스스로 자신을 치료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대체 '자신이라는 존재'의 실상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본질과 실존"

 

대체... '나라는 존재'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생겨난 것일까?  

 

존재의 원인을 모르는 '자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 또한 모순이다.

 

원인을 모르는 것에 대해서 '실존'이라는 주장 또한 모순이다. 그러니, 무지몽매한 것이다.

 

 

'본질'이 있다는 생각과 '실존'이 있다는 생각 또한... 해답이 없는 것이며, 망상, 망념의 결과일 뿐, 모순이다.

본질보다 실존이 앞선다는 생각 또한 말은 말이지만, 말도 안되는 소리이며, 모순이다. 어떤 근거가 있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며.. 오직 자신의 두뇌에 저장된 자신들만의 부질없는, 쓸모 없는, 근거도 없는 생각, 생각, 생각들을 주절거리는 것이며... 합리화 시키려는 수작이다.

꾸며진 말로써... '진실'은 없다는 뜻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그렇기 때문에... '지식은 무지몽매한 것으로써 사람을 해치는 흉기라고 하는 것'이다. 지금 이 나라의 현 시국이 지식의 무지와 어리석음의 한계를 드러나게 하는 일들 중의 소소한 일부이다. 올바른 지식이 있다면... 서로 다툴 일이 없는 것이며, 투쟁,전쟁은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위의 설명과 같이 '모순된 나'가 있기 때문에... 때로는 날카로운 창으로, 때로는 방패로... 바뀌는 것을... "나" 라고 생각하는, 지식의 함정, 지식의 무지, 지식의 어두움에 빠져 길을 잃었기 때문에... 길잃은 양새끼들과 다를 것이 없는 무리들이 '인간'이라는 이름의 괴물, 기물들이기 때문에, 모순이 아닌 '진실된 지식... 진리'를 설명 하는 것이다.

 

 

인간류의 지식의 한계란...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같지만,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이며, '사람들은 모두 거짓되다'는 예수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이며... '지식의 저주를 끊으라'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이며, '지식이 모든 고통의 원인'이라는 싯다르타-고타마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이며... '지식은 무지몽매한 것으로써 사람을 해치는 흉기'라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이며... 이와 같이 이곳의 모든 이야기들 또한 알아들을 수 있는 인간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도가의 일념법' 수행... 올바른 공부로써 스스로 자아무지를 깨달아 가는 거룩한 인물들은 예외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자아모순'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인식, 인지, 이해를 넘어 인정하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며, 인간류의 유구한 역사이래 지식 너머 진리의 길을 가는 지혜 있는 인물들로써 이시대의 위대한 인물들인 것이며, 우파니샤드의 현자들보다 더 높은 경지에 이른 지혜를 증득한 현자들이기 때문이다. 

 

 

본래 '종교'란... 으뜸 종... 가르칠 교... 자로써 과학이나 우상숭배를 위한 종교, 또는 학문들 따위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를 넘어서 '진리'를 가르친다는 뜻으로써, 무상의 가프침이 본래 "종교" 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것이다는 뜻이다. 하지만, 단지 언술이 뛰어난 자들에 의해서... 진리가 왜곡됨으로써 인간세상이 모두 '행복, 자유, 평화'를 갈망하지만, 예날과 같이, 현 시대와 같이... 지식이 더 할 수록 더 치열하고 악랄하고 무자비한 '전쟁터'가 되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세상에 유일한 '종교'가 있다면... 이곳, 일념명상의 집 '도가' 이다. 

 

 

예수의 말들 중에는, "나는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 불을 주러 왔다"는 말이 있다.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는 말이다. 하지만 진실된 뜻은... "인간류의 모든 지식이 '무지'라는 사실을 알려 주기 위해서 왔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나"는... 인간세상에 지식 너머 '진리'를 전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도가"의 수행자의 모임 또한... '진리의 밝음의 빛을 본 사람들이며, 진리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며... 더 나아가 세상에 진리의 빛을 널리 알리기 위한 인간세상에서는 가장 위대한 인물들의 모임인 것이다. 인간류의 오랜 역사와 같이 현 시국과 같이 지식의 시초는 악의 씨앗으로써 전쟁과 멸망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진리로 거듭남으로써 비로소 자아의 완성을 이룰 수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자유, 평화, 행복, 새로운 세상이라는 말이 합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모순된 "나" 가 아니라... 진실된 "나" 를 보라.

너 자신을 알라. 

 

이곳에 진리가 있다.

불변의 진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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