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지성체의 허구

[스크랩] 비극! 혼돈! `인간의 근본적 무지` - "가스통 바슐라르, 인식론적 장애와 인식론적 단절? : "존재는 둥글다?" /지식의 저주... 모든 고통의 원인

일념법진원 2018. 10. 22. 05:24

say-the-truth

우연히 보게된 철학자들의 망상. 망언이 아래와 같다.

 

옛말에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과 같이... 참으로 무식해서 용감한자들... 언술만 뛰어난자들의 망상망언들이 아래와 같이 철학자들의 논쟁들이기 때문에... 진리를 갈망하는자들, 이시대의 현자들을 위해서 간략히 설명하려는 것이다.

--- 아   래 ---


               

가스통 바슐라르, 인식론적 장애와 인식론적 단절 : "존재는 둥글다"

"세계는 나의 도발이다."

“객관적 인식의 측면에서는 진실한 것이 아니지만 무의식적 몽상에서는 매우 실재적이고 활발한 어떤 것이 존재한다. 꿈은 경험보다 더욱더 강력하다.”
“원초적인 현상학은 감성의 현상학이다. 그것은 몽상에 의해 투사되어 있는 환영(幻影, fantômes)으로부터 객관적 존재를, 욕망으로부터 이미지를, 신체적 경험으로부터 물질적 경험을, 사랑으로부터 불을 창조하는 것이다.”
“객관적 오류를 고백한다면 얼마나 심오한 환희를 느낄 것인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의 정신적 통찰력에 대해서 가장 멋진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의 지식culture을 소생시키는 것이고 그것을 강화하는 것이며 그것을 집중된 빛으로 비추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지식을 객관화하고 공언하고 가르치는 것이기도 하다. 그때에 순수한 정신적 즐거움이 태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객관적 인식이 ‘주관적인 것’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되고, 우리 자신의 마음속에서 보편적인 인간성을 발견하고, 우리 자신에 관한 연구가 공정하게 정신분석된 후에, 우리가 정신의 규칙들을 심리학적 여러 법칙에 통합한다면 이 즐거움은 훨씬 강력한 것이 될 것이다.”

스통 바슐라르(1884~1962)는 프랑스 특유의 과학철학을 창시한 인물이다. 과학철학에서 바슐라르는 인식론적 장애와 인식론적 단절(obstacle épistémologique et rupture épistémologique)의 개념을 도입한다. 프랑스 및 유럽 철학의 주된 두 가지 흐름인 현상학과 과학철학 중 과학철학 분야를 개척한 인물로서, 그의 과학철학은 기존의 실증주의적 과학철학이나 라캉철학식의 소위 과학적 방법론을 사용한 철학과는 다르다. 그의 철학은 지금까지 인간이 해 온 '과학'적 행위에 대한 반성과 함께, 과학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억압되어왔던 인간의 상상력이 오히려 인류(또는 과학)의 발전에 기여해왔다는 것을 주장한다. 바슐라르의 작업들은 인식론 외에도 시, 꿈, 정신분석, 상상 등의 많은 논제를 다룬다. 불의 정신분석(1938년)과 공간의 시학(1958년)은 그의 저작들 중에 유명한 것이다.

그의 초기 저작인 <새로운 과학적 정신,
Le nouvel esprit scientifique,1934>이나 <과학적 정신의 형성, La formation de l'esprit scientifique>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사상은 새로운 과학의 발전을 목격한 그가 새로운 과학의 시대에 맞는 새로운 철학을 모색하게 된 것에서 시작한다. 그의 첫 시도는 미학적 탐구와는 거리가 있는, '과학적이지 않은 사항에 대한 탐구'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바슐라르의 과학철학과 과학사에 대한 연구들은 - 과학적 정신에 대한 정신분석의 한 종류로, 더 자세히 말하자면 과학의 발전에서 심리적 요인으로서의 - 역사적 인식론에 대한 그의 관찰에 근거한다. 바슐라르는 인식론적 장애(obstacle épistémologique)라는 개념으로 어떻게 과학적 진보가 지적 형태의 특정 유형에 의해 저지되는지 논증한다. 인식론의 한가지 과업은 과학에서의 과학자들이 장애를 극복하고 지식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하여 지적 형태를 명확하게 만드는 것이다.

과학사를 연구하는 철학자로서 그는 '과학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오히려 현대 과학에서 전혀 잘못되었거나 극히 일부분에서만 인정하고 있는 학설들이 소위 '과학적'인 이론으로 신봉되었던 역사에 주목하여, '왜 이렇게 잘못 생각해 왔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는 오류를 빚어내는 원인이 인간 심리 속에 존재한다고 보며, 그에 따라 인간의 주관성에 의심을 던지기 시작한다. 인간의 과학적 탐구의 역사에는 현재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수많은 오류들이 발견되고 있다. 바슐라르는 이 오류들에 관심을 가지고, 무엇이 그러한 오류를 낳게 되며, 그러한 오류의 교정은 가능한가 하는 화두를 던지게 된다. 그 의도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순수 사고'는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상상력은 끊임없이 상상하고 새로운 이미지들로써 스스로를 풍요롭게 한다. 우리가 탐구하려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이 상상되는 존재의 풍요로움이다."
"우리는 상상력의 영역에서 불, 공기, 물, 흙의 어느 원소에 결부되느냐에 따라 다양한 물질 상상력을 분류해주는, 사원소의 법칙을 규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모든 시학이 물질 본질의 구성요소-그것이 아무리 미약한 것이라 할지라도-를 받아들여야 한다면, 시의 영혼들을 가장 강력하게 결합시키는 것은 원초적인 물질 원소에 의한 분류임엔 분명하다. 하나의 몽상이 하나의 작품을 제작하는데 충분한 항구성을 가지고 계속되기 위해서, 또한 그것이 단순히 덧없는 무위無爲의 시간이 아니기 위해서는 자신의 물질matière을 찾아야만 하며, 어떤 물질 원소가 자신의 실체, 규칙, 또는 특별한 시학을 몽상에 제공해야만 한다."
“시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그들이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는가에 따라 그 시인들을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대의 무한이 어떤 것인가를 나에게 말해 준다면, 나는 그대 우주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다나 하늘의 무한인가, 깊은 대지의 무한인가, 아니면 장작더미의 무한인가?”

그의 입장은 앙리 베르그송 같은 선대 철학자가 주장한 시간의 연속성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의 저작인 "불의 정신분석" La psychanalyse du feu에서 그는 인간의 시간이란 비연속적인 것으로 판단하였다. 계속적으로 연결되어 쌓여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마다 이성과 상상력을 가지고 세계에 대항하여 싸우는 존재로 파악했던 것이다. 그러한 대결을 통하여 순간순간 창조해가는 것이며, 그런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시와 과학이라는 것이다.

그의 과학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개념인 '인식론적 단절'이란 이러한 의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과학사가 흔히 생각하듯 인간의 지식의 축적에서 그 진보가 이루어진다는 실증주의의 입장에 반대하여, 과학사에서 나타나는 커다란 혁명들은 불연속적인 것이라 주장하였다. 그는 기존의 이론들이 발전한 결과로 새로운 과학 정신이 연속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각각의 단계에는 단절이 있다고 생각하고 전혀 다른 새 패러다임 안에서 세계를 바라봄으로 다른 과학이 탄생하였다고 본다. 그러한 과정에서 그는 새로운 과학 정신이 이전의 과학 정신을 일정한 조건 안에서만 옳다는 부분적 진리로 포용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이러한 새로운 과학적 지식의 등장이 이러한 '감싸기'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과학 정신에 포용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과학 지식 자체가 객관적이며 절대적이라는 사항에 반대하여, 소위 객관적인 사실로 믿어지던 과학적 지식에 대해 앞서 설명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관점에 따라 "의문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더욱 객관성에 근접한 과학 지식이 탄생한다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객관성은 목표이지 현상이 아니다. 다시 말해 객관적이라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과학의 목표라 할 수 있는 실제적인 객관성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합리론과 유물론의 통합을 가져왔으며, 인간의 이성이란 존재하지만, 또한 그러한 이성과 만나지 않은 채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물질도 없다. 하지만 이성 또한 순수한 형태란 없고 항상 대상과 관련을 맺는 능동적인 것이라고 설정하는 응용합리주의의 태도를 세우게 된다.

이러한 과학 정신을 단절시키는 오류를 범하게 하는 것에 대한 탐구에서, 바슐라르는 인간의 원초적 경험, 친숙한 이미지나 언어의 친숙한 의미, 역사적 상황이나 정서에 뿌리를 둔 확실치 않은 사고 등을 '인식론적 방해물'로 설정한다. 이러한 경향과 태도들에 의해 인간은 오류를 범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론적 방해물의 원흉은 '몽상에서 비롯된 시적인 이미지'이다.

“몽상하는 것과 사유하는 것은 균형을 잡기 힘든 두 분야일 것이다. 혼란에 빠진 문화의 종말에 나는 점점 더 양자가 두 개의 상이한 삶의 분야라는 것을 믿게 된다. 양자를 분리하여, 몽상이 사유로 이끈다는 일반적인 견해와 단절하는 것이 내가 보기에 최선이다. 고대의 우주론은 사유를 형성하지 못한다. 그것은 대담한 몽상이다. 그것에게 생명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몽상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

이러한 시적인 이미지를 연구함으로써, 그것을 제거한 말 그대로의 '순수한 과학정신'의 가능성을 탐구하겠다는 과정에서 나온 저작이 앞서 언급된 "불의 정신분석" La psychanalyse du feu으로, 인간의 의식 내면에서 과학 정신(합리적인 사고, 또는 사고의 객관성)이 아닌 인간의 주관성을 탐구한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의식 활동으로서의 상상력의 가치를 탐구하고 있다.

그는 상상력을 정신분석학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무의식적인 행동이 아닌 의식 활동의 중요한 면으로 보았으며, 인간 의식의 고유한 자율적 활동으로 보았다. 상상력은 창조적 현실성을 가진 인간 심리의 또 다른 활동으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상력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객관성이라는 인간 의식의 한 측면과 인간의 정신적, 윤리적 행복과의 사이에서 조율하는 중요한 존재로서, 인간의 합리화/객관화/과학화만을 중심으로 달려온 서구의 문명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송태헌은 <가스통 바슐라르 : 과학철학에서 상상력 철학으로>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바슐라르에 의하면 상상력은 ‘인간 본성의 주된 권능’이다. 만일 상상력이 감각 실재에 대한 재생에 불과하다면, 인간은 불가피하게 그 실재의 틀 속에 갇힐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감각 세계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그런데 바슐라르는 이러한 종류의 상상력을 거부함으로써 그와는 전적으로 다른 인간관을 제시한다. <물과 꿈>에서 바슐라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상상력은 (...) 실재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능력이 아니다. 그것은 실재를 넘어서 실재를 노래하는 이미지를 형성하는 능력이다. 상상력은 초인간성surhumanité의 능력이다. 인간은 그가 초인超人인 정도에 따라 그만큼의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인간 조건을 넘어서게 하는 경향들의 총체에 의해 인간을 규정해야 한다.”

상상력imagination은 그 어원에 의해, 이미지를 형성하는 기능으로 생각하기가 쉽다. 그러나 <공기와 꿈>에서 바슐라르는 상상력의 본령이 이미지를 변형하는 능력임을 강조한다. “사람들은 상상력이 이미지를 형성하는former 능력이라고 파악한다. 그런데 상상력은 오히려 지각에 의해 제공된 이미지들을 변형시키는 déformer 능력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최초의 이미지들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고, 이미지들을 변화시키는 능력이다.” 바슐라르는 ‘지각된 이미지’와 ‘창조된 이미지’를 명확히 구분한다. 그리고 그는 창조성이 결여된 상상력, 지각 실재를 초월하지 않는 상상력은 진정한 상상력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지각이나 기억에만 관련되는 상상력을 재생적 상상력imagination reproductrice이라 부르며, 이는 창조적 상상력imagination créatrice과 전적으로 다른 것임을 역설한다.

 그는 심지어 “재생적 상상력이 창조적 상상력을 가리고 구속拘束한다”라고까지 말한다. 또한 이 철학자는 “지각하다percevoir와 상상하다imaginer라는 것이 현존과 부재만큼이나 상반되는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그는 상상력이 실재(혹은 현실)나 감각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데에 그 핵심이 있다고 본 것이다. 만일 상상력이 자율적이며 이미지에 선재先在하는 감각 실재에 초월해 있다면, 그리고 문학과 예술 작품이 상상력의 소산이라면, 작가의 전기적 사실들faits biographiques은 작품을 결정할 수 없다. 그리고 작가의 과거와 작가가 처한 상황을 이야기해주는 전기는 작품의 정수精髓에 접근할 수 없다. 바슐라르는 작가의 전기적 요소를 작품의 원동적 에너지로 받아들이길 거부하면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우리는 문학을 절대적인 가치로서 다룬다. 우리는 문학 행위를 역사적 맥락에서 뿐아니라 현행의 심리학 맥락으로부터도 분리시킨다. 우리가 보기에 한 권의 책은 일상사 너머로 분출하는 것이다. 한 권의 책은 표현된 삶이며, 따라서 삶의 확장이다."
“불규칙하면서도 근면한 나의 생애, 다양한 책들로 특징지어지는 나의 생애를 요약해야 한다면, 개념 concept과 이미지라는 남성과 여성의 대립 기호 아래 위치시키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개념과 이미지 사이에 종합은 없다. 양자 사이에 혈연 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자신의 정신을 개념에 바치고, 영혼을 이미지에 바친 자라면 누구나 개념과 이미지가 심령적 삶의 두 개의 상반된 노선에서 발전해가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태초의 세상은 불의 세상이었다, 장석주>....바슐라르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불의 형태, 즉 불, 전깃불, 인광, 화산 불, 번갯불들, 저마다 개성을 가진 불들을 끌어모으며 그 앞에서 몽상한다. 화덕에 얹힌 냄비에서 음식이 익어가듯 불에 대한 몽상 속에서 그 철학적 사유는 깊어진다. 바슐라르는 불의 철학자, 정신분석가 그리고 연금술사다. 그 연금술사에 따르면 불은 “극단적으로 살아 있는 것”이다. 불은 “물질 속으로 내려가, 증오와 복수처럼 잠재 상태로 그 속에 몸을 숨기기도 한다. 모든 현상 중에서, 불이야말로 선과 악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가치 부여를 분명하게 수용할 수 있는 유일한 현상이다.”

태초의 세상은 불의 세상이었다. 불꽃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처럼 타올랐다. 세상은 불의 바다였다. 어느 날 갑자기 그 불들이 사라졌다. 그 불들을 집어삼킨 것은 숲속의 나무들이다. 불들은 나무들 속으로 들어갔다. 나무들이 땅에서 수직으로 일어선 녹색 불꽃이란 별명을 얻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모든 나무들은 불들이 그러하듯 그 머리를 하늘로 향한다. “불은 두 나뭇조각에서 태어난 자식”(막스 뮐러)이다. 두 나뭇조각을 마찰하면 그 안에 숨은 불들이 홀연히 깨어 일어난다. 불은 욕망이며, 변화하고 생성하는 힘이다. 욕망이 꿈꾸는 것은 피안이다. 불은 피안을 향해 달리지만 그 끝은 욕망의 소멸이며 죽음이다. “매일 우리가 숲속에서 감시하는 둥지 속의 새보다 더 빨리 자라고 더 빨리 변화하는 불은 변화의 욕망을, 시간을 앞당기고자 하는 욕망을, 모든 생명을 그 종말, 그 피안으로 나르고자 하는 욕망을 암시한다.”

중국 고대신화에 나오는 수명국(遂明國)은 세상의 서쪽, 그 끝에 있는 나라다. 해도 달도 닿지 않아 늘 어둠에 묻혀 있는 나라다. 그 나라의 한가운데 수목(遂木)이라는 거대한 나무가 자란다. 거대한 독수리가 수목의 밑동을 계속 쪼아대면 영롱한 불빛들이 그 주위에서 반짝인다. 독수리가 나무에 숨은 불을 단단한 부리로 쪼아 깨우는 것이다. 지금도 불은 어린애가 제 엄마에게 달라붙듯이 나무에 쉽게 달라붙는다. 어린애에게 젖을 물리는 엄마와 같이 나무는 불에게 제 몸통을 내주고 아무 조건 없이 그 속의 자양분을 빨아먹게 한다. 불은 나무에 매달리고 파고들며 제 뿌리를 뻗어 나무 속에 깊이 박는다. 나무가 불에게 제 자양분을 다 빨린 뒤 재가 되면 불꽃 줄기는 그 재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제 씨앗을 간수하며 다시 타오를 기회를 엿본다.

어린시절 아궁이 앞에서 부지깽이로 불꽃을 들쑤시면 아버지에게 야단을 맞는다. 불은 어린애가 함부로 만져서는 안 되는 사회적 금기의 대상이다. 아버지는 화재의 위험성을 늘 과장하며 금기의 원칙을 강화한다. 불은 오로지 아버지의 것이다. 어린애들은 아버지의 것을 훔친 뒤 처음으로 불이 주는 기쁨을 맛본다. 불을 훔치는 아이들은 저희가 프로메테우스의 후손들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이것은 어른들이 전유하는 지식과 제작, 힘에의 의지를 욕망하는 아이들이 저지르는 첫 번째 범죄다. 야단치는 목소리와 위협하는 몸짓이 만든 금기들을 위반하며, 그리고 아버지의 원칙에 불복종하며 자라는 어린애들의 무의식에는 한결같이 프로메테우스 콤플렉스가 자리한다.

바슐라르는 노발리스의 작품에서 원시적 불에 대한 직관들을 찾아낸다. 노발리스의 상상력은 불의 빛보다 그 열에 더 반응한다. 노발리스의 상상력은 열 감각의 만족과 열이 주는 행복에 대한 깊은 의식에서 더 많은 자극을 받고 움직인다. “열은 하나의 재산이요 소유다”. 빛은 사물의 표면에서 미끄러지며 놀고 웃지만 열은 한사코 사물의 내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저 심연으로 스며들며, 심지어는 땅 속 깊은 곳으로 하강한다. 표면의 아래로 스미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밀한 열의 형태로 존재하는 불은 싹이다. 대지에 떨어진 씨앗은 그 중심에 불을 품는다. “불타는 것은 싹을 틔운다.” 빛은 보이지만 열은 느껴진다. 노발리스는 느낌 속에서 불을 감지한다. 부드럽고 모호하게 분산되는 열은 교감과 공감의 전도체다. 바슐라르는 불에 달라붙는 이 공감적 집착들에 노발리스 콤플렉스라는 이름을 붙인다.

물은 여성적 물질이다. 차고 축축하며 끈적이고 어둡다. 반면에 불은 그 본질에서 남성적 원소, 유황에 의해 배태된 물질이다. 남성의 고환은 불의 씨앗들을 저장하는 작은 창고다. 남성을 움직이는 것은 힘, 용기, 의지다. “사물들의 여성적 원리는 표면과 외피의 원리요, 품이요, 은신처요, 포근함이다. 남성적 원리는 중심의 원리요, 불꽃이나 의지처럼 능동적이고 갑작스러운 ‘힘’의 중심이다.” 여성의 수태는 오로지 불을 가진 남성의 생식력을 제 안으로 끌어당길 때만 가능하다. 여성의 질(膣)은 불의 정기를 자궁으로 이끄는 도관이다. 남성의 생식력만이 여성적 물에 작용하여 수태시킬 수 있다. 즉 물에 작용하여 형태를 결정짓는 불은 수컷의 원소인 것이다. 정낭은 불의 씨앗들, 정액이라는 액체화된 불의 저장소다. 그러나 여자들은 이미 그 내부에 남성적 요소를 숨긴 “신비스러운 남자들”이다. 거꾸로 불의 원리로 움직이는 남성적 활동, 팽창 같은 물리적 활동을 전유하는 남자들은 실은 “열에 의해 팽창된 여성”일 뿐이다.

바슐라르는 불을 제 몽상의 동반자로 초대한다. 불은 사람에게 “제1의 몽상 주제요, 휴식의 상징이요, 휴식에의 초대”인 까닭이다. 따뜻한 화덕 앞에서 몽상에 빠지는 것은 불의 일차적인 활용이다. 사람은 누구나 아궁이의 붉은 잉걸불이나 화덕의 희고 푸른 불꽃들 앞에서 안락한 몽상의 세계로 미끄러진다. 그 몽상은 철학적인 축(軸)들을 갖고 있다. 불보다 더 따뜻한 사유의 요소, 몽상에 적합한 원소는 없다. 불의 철학자, 불의 정신분석학자인 바슐라르는 불의 물리화학적인 성질과 그 현상에 대한 탐미적·정신분석적 관조를 펼쳐 보여준다. 불을 매개로 신화와 종교, 문학을 가로지르며 이끌어낸 프로메테우스 콤플렉스와 엠페도클레스 콤플렉스와 노발리스 콤플렉스와 호프만 콤플렉스를 거쳐 그것의 시적 다이어그램을 찾아주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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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 콤플렉스 : 불로 상징되는 지식에 대한 인간의 갈망
엠페도클레스 콤플렉스 : 자신을 파괴하여 재생의 기회를 얻는 것
노발리스 콤플렉스 : 두 개의 사물이 마찰로 인해 성적인 불이 더 강렬해지며 열기를 얻는 것
호프만 콤플렉스 : 불과 다른 요소와의 결합 - 불이 공기와 결합하면 상승해 하늘로 올라가 양陽이 되고 대지와 결합하면 음陰이 된다는 것. 바슐라르는 술을 불의 물이라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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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의 이야기들 중에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다.

참고로, '도의 이야기'는 비단, 노자와 장자의 이야기일 뿐만이 아니라, 석가모니와 에수,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진실된 말들.. 모두가  다 '도의 이야기'들로써 인간관념으로 납득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그들의 진실된 말, 진실된 뜻이 왜곡되고 변질되어서 '우상숭배사상'으로.. '기복신앙'으로 전락된 것이라고본다면.. 이시대의 현자이다.

'하늘의 그물은 성글어도 빠뜨리는 것이 없다'는 구절이 곧 '도'의 이야기로써.. 사실은 인간류의 모든 언어들.. 모든 학문.학설들 모두가 다 "사람들은 모두 다 거짓되다"는 예수의 진실된 말과 같이... 그럴듯한 거짓말일 뿐, 진실이나 사실이 아니고, 사실은 '없다'는 뜻이며..

인간류의 지식들 모두가 다 '환상'으로써 '망상, 망념'에 바탕을 둔 망언이 아닐 수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다 본다는 뜻으로써.. 과학자든 철학자든..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본다면.. 거짓말만 일삼는자들로써 살아갈 가치도 없다는 뜻으로 본다면.. 이시대의 현자이다. 

 

사실은 소크라테스가 '델포이신전'에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인용했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는 말과 같이.. 지금 이 글을 보는 그대 또한... '그대가 자신의 몸과 마음, 정신, 영혼, 운명'에 대해서 스스로 모른다면' 사실, '살아갈 가치도 없다'는 말과 같은 뜻이며... 위의 철학자들 또한 짐승보다 더 뛰어날 것이 없는 중생무리들로써 올바르게본다면.. '인간'으로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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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는 둥글다?

세계는 나의 도발이다?

인식론? 존재론? 실존론? 유물론? 창조론? - 사실, 모두 다 거짓말이며, 근거없는 소리이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근원에 대해서 '물(水)'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지만, 사실 지수화풍은 서로 상호작용하는 것으로써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며, 사실은 이와 같이 인간의 몸 또한 오장육부가 있다고 마구 지껄여대지만.. 지수화풍과 같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며,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은 그런 서로 화합하는 일에 대해서.. '유기적'이라거나 도는 '유기체'라고 부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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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는 둥글다'는 말... 참으로 어리석은자들의 망상망언이다.

왜냐하면.. '존재'는.. 즉,  인간은 단순히 '먹은 음식물이 어떤 작용(대사작용?)에 의해서 변화된 물질, 물건, 동물(움직이는 물건)이다. 그리고 음식물의 근원, 근본원인이 있다면, '태양과 물, 땅, 바람'이다. 하지만, 그것들 또한 '인식자'가 없다면.. '없다'. 즉, 보는자가 있기 때문에 대상이 있는 것일 뿐, 보는자가 없다면 '있는것'은 있는것이 아니라, '없는것'이다. 

 

  

지식의 저주를 끊으라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이며..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사유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인간이며..

마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이 인간이며..

 

마음이 물질적인것인지, 몸이 물질적인 것인지..

몸이 정신적인것인지.. 마음이 정신적인것인지 조차 구분할 수 없는것이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은 무지몽매한것으로서 사람을 해치는 흉기라고 설명하지만, 개나 도 말과 같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너희는 길잃은 어린양새끼와 같다'고 설명했던 인물이.. 나사롓 예수이며, 이와 같이 너희는 '실체가 없다'고 설명했던 인물이.. '석가모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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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마음이 사물인지 정신인지 조차 구분할 수 없는것이 '의학'이다. 

'마음'과 '정신'과 '의식'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인간이지만...

마음이 무엇인지, 마음은 어디에 있는것인지, 마음은 왜 생겨난 것이며, 언제 어디서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사유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인간이다.

 

그렇다보니, '정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없고, '의식'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없고, 영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없고... 꿈을 꾸지만, 꿈의 원인에 대해서 조차 설명할 수 없는... 무지몽매한 것이 '지식'이며... 위의 '철학자'라는 자들... '과학자'라는 자들... 모두가 다 이와 같이 그럴듯한 거짓말로 세상사람들을 농단하는 것이며.. 더 어리석은자들은 그런 무지몽매한자들의 그럴듯한 거짓말에 이리저리 이끌려다니다가.. 늙고 병들어 비참하게 죽는 것이며... 더 비참한 일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치매에 걸려서 '망연자실'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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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영속적? 연속적이다 아니다는 주장 또한 '원리전도몽상'이라는 말과 같이... '너희가 어린아이시절을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이 있다고 믿겠지만, 사실은 '시간'은 본래 없다는 듯이며, 과거와 현재, 미래 또한 사실적이거나 경험할 수 있는게아니라... 기억속에만 있는 환상이다. 

 

치매에 걸려서 기억이 기억나지 않거나, 기억을 생각할 수 없다면... 시간, 공간, 가족, 나와 너, 자존심이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것과 같다.

 

시간의 역사라는 말... 즉 과거, 현재, 미래.. 등의 '시간이 있다'는 말이 사실이 아니라 경험의 오류로써 착각이며.. 망상 망념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하나 더 비유를든다면... 사실, 인간들은 달나라에 옥토끼가 살고, 계수나무가 있다고 믿었던 것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과 같이... 더 나아가 '보름달, 반달, 초승달'이 있기 때문에.. 날짜를 계산하던 것과 같이... 인간류는 보는 것만 믿는다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달이 차고 기우는 게 아니라... 해와 달은 변함이 없고, 지구 또한 화성이라는 별에서 본다면, 똑 같이 하늘, 우주에 떠 있는 '별'이다. 참으로 어리석은자들이.. 외계인이 있을거라고 주장하는 것이며, 하늘나라가 따로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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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론'이라는 말이 이토록 황당무계한 말로써, 사실은 근거없는 소리이다.

'인식자'가 본래 있는게아니라.. 근거없는 지식에 취해있는 것이 명색으로만 있는 허구적인 것으로써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생은 허무한 나그네'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만, 왜? 인생은 허무한 것인지, 왜 '빌 虛... 없을 無...' 자로... '텅 비어 하무것도 없는것'이 '인간들의 삶과 죽음, 고통과 괴로움'이라고 했는지... 왜? '너 자신을 알라'고 한 것인지... 인간관념으로는 사유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지만, 사실은 인간류들의 삶, 존재, 인생이 '꿈과 같은 환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자세히... 구체적으로 분명해 설명했던 인물들... 그들의 이야기가 '도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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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지식을 전혀 배우지 않은 어린아이들에게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다. 즉 인간들로부터 지식을 배우기 이전의 어린아이들에게는.. '내가 사람이다'는 생각이 없고... '내가 여자'라는 관념이 없고, 내가 남자라는 관념이 없고... 삶, 죽음이라는 관념. 지식도 없고... 하늘과 땅이 있다는 분별도 없고... 나와 너라를 분별도 없고.. 이와 같이 자연과 나와 다르다는 분별도 없고, 우주와 나는 다르다는 분별도 없고... 더 나아가 '산함과 악함'이라는 무분별한 분별심도 없고... '좋은것과 나쁜것'이라는 무분별한 분별도 없고... 큰것과 작은것'이라는 무분별한 분별도 없고.. 아름다운것과 추한것이라는 무분별한 분별도 없고.... 없고..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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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모든 고통의 원인은 이와 같이 '무분별한 지식'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지식의 저주를 끊고, 진리로 거듭나라고 하는 것이다.

 

인간이 어리석어서 '물질, 사물'과 '정신'에 대해서 올바르게 구분조차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질병의 원인에 대해서 영원히 발견할 수 없는 것이며... 사실은 '마음'이 모든 질병의 원인이지만, '마음' 또한 '물질'로 여기는 무지몽매한 것이 '인간'이다.

 

사실, 마음은... 기억에 바탕을 두고 찰나지간으로 일어나는 '생각'이다. 

가슴속에 있는 게 '마음'이 아니라는 말이며, 머리속에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며... 오직 일념법명상, 일념삼매를 경험한자들만이 사유가 가능한 말이기 때문에... '일념법'을 유일한 법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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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어리석어서 '우울증'이나 여러 정신적질병에 대해서..

'뇌혈관질환'이거나, 뇌심혈관질환'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웃으면 엔톨핀이라는 호르몬이 나온다는 말은... 단지 남들의 이상한 말, 재미있는 말, 말, 말로써 '뇌'가 변한다는 뜻이다. 어떤 '호르몬'에 의해서 몸이 변하는 게 아니라... 남들로부타 듣고 배운 지식, 또는 남들의 웃기는 말 한마디에 의해서 건강에 이롭다는 엔돌핀이 분비되는 것과 같이... 남들로부터 언짢은 말이나, 기분 나쁜 말, 말, 말, 말을 들으면.. 화가 나기도 하고, 혈압이 올라가는데, 이럴 때에는 혈압약도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사실은 혈압약이 필요한 게 아니라... 올바른 지식이 필요한 것이며, 일념법명상. 일념법수행을 통해서.... '일념삼매' 즉 '일념의 유상삼매'를 경험할 때에 비로소... 올바른 지식이 생겨나므로써 화를 내거나 분노하는 짓이 자신에게도 해가되는 것이며, 남들에게도 해가된다는 사실을 명백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억지로 참으면, 억지로 인내하게되면... 그런 스트레스가 모든 질병의 원인이 되기 때문애, 인간류의 모든 지식에 대해서 '지식은 무지몽매한것으로서 사람을 해치는 흉기'라고 단정지어 설명했던 인물들.. 그들이 '노자와 장자, 석가모니와 예수, 소크라테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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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물질과 비물질이 있다고 분별하더라도... '몸'은 물질이지만, '마음, 영혼, 정신, 성령, 불성, 귀신'은 물질이 아니라.. '비물질'로써.. 몸 속에서 발견할 수 없는 것이며, 이와 같이.. '지식' 또한 '비물질'로써... 사실은 몸을 움직이게하는것은... '뇌에 저장된 지식'으로써, 사실은 인간류 저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찰나지간으로 스스로 생멸을 반복순환하는 생각에 의해서 행위되어지는 것이다. 

 

그대의 '내가 행위하는 게 아니라, 운명이라는 말과 같이... 저 자신들의 뇌에 저장된 지식에 의해서 행위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자유의지'는 모두 '환상'이라는 뜻이다.

 

의학이나 한의학, 첨단의학들이.. 몸 속에서 '입속세균'조차 발견할 수 없는 이유 또한... 말, 말, 말 한마디에 의해서 살인을 저지르거나, 폭행사건이 일어나는 것과 같이... 인간은 '말'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피조물이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옳고 옳지않음에 대해서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이 없는 것이며... 진실로 진실을 설명했던 인물들이.. 노자와 장자, 석가모니와 예수, 소크라테스'지만... 그들을 우상으로 숭배할 수밖에 없는 무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며... 그럴듯한 거짓말에 속수무책으로 이리저리 이끌려다니다가 결국... 그런 스트레스, 즉 마음의 병에 의해서 여러 불치,난치병에 걸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치매에 걸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모두 다 이와 같이 비참한 삶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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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여... 누구를 믿는가?

그대 자신을 믿지못한다면.. 세상에 믿을자가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의 말을 들으라.

나의 말을 듣고, 옳거든 그 길, 진리의 길을 가라.

 

진리란, 진리자가 존재하는 동안에만 진실로 진리이다.

 

지금 그대는 어디에 있는 것이며, 어디로 가는 것인가?

죽음의 소사슬 이끌고... 어디까지 와 있는가? 

죽음의 쇠사슬 이끌로.. 어디로 가는가?

 

무거운 짐진자여.. 모두 다 나에게 오라.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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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일념법 명상의 집- 道家 * 진리의 길-생명의 비밀-우주의 근원
글쓴이 : 진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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